[은하철도 999]는 알지만 [캡틴 하록]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사람으로, 단지 류승룡이 더빙을 하셨다기에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다. 알고보니 그것은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나은 점으로 작용했는데, 왜냐면 나는 과거의 하록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지금의 하록에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애정만화 주인공 필이 나는 정감 넘치는 하록과 달리 이번 하록은 칼에 찔려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인공미 쩔은 하록이었기에, 과거 하록의 팬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듯해서 말이다. 뭐, 내가 봐도 그 차이가 엄청났으니, 그들이 어이없어 하는 것들이 이해가 가긴 하다. 이름과 코스프레만 똑같을 뿐, 전혀 다른 분위기의 등장인물을 같은 사람이라고 우기니 얼마나 생경했겠는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을 것이다. 아니면 적응이 영 안 되거나.

뭐, 일단 줄거리는 우주의 반역자이자 해적선의 선장이 되어 나타난 하록과 그를 저지하려 혈안이 된 우주 위원회 가이아의 대립으로 시작된다. 지구를 멸망시켰다는 죄책감에 우주의 시간을 되돌려 초기화 시키려는 하록과 자신의 실수로 형을 불구로 만든 죄책감에 하록을 암살하기 위해 하록의 선함에 잠입한 야마...서로를 적대시해야 마땅한 둘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파괴했다는 공통의 죄책감때문에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이 가이아 위원회에서는 환상이 지속되는 한 우주는 평화롭다는 모토하에 하록 일당을 저지하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만다. 지구의 멸망에 맞서 과연 하록과 야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줄거리는 영화를 보면서 따라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그치기로 하고, 대충 내가 영화를 보면서 든 느낌만 정리하자면...

일단은 우주 배경이나 우주 함선을 표현하는 것들이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멋졌다. 이렇게 탁월하고 정교하게 우주 미래를 구현해 내다니, 비록 만화속에서지만 일본 사람들이 존경스럽더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하면 미국이 먼저 떠오르고, 그들의 스케일이야말로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섬세하고 엄청난 기술력등은 미국 못지 않았으며, 어떤 장면들에선 애니라서 가능한 상상력들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지...대단하다는것만은 인정해야 겠다.

두번째로 언급하고 싶은건 , 하록 선장이 망토를 휘두르는 장면이 왜 이다지도 많을까 싶었던 점이다. 툭하면 바람에 화르르~~망토가 휘날리던데, 일본어로 가꼬이, 즉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듣기 위해 각고의 애를 쓰는듯한 느낌이었다. 문젠 처음엔 그래도 멋져 보였는데, 지나치게 남발하니 식상해지더라는 것. 오로지 가꼬이를 위해서만 그림을 그렸다는 느낌이랄까. 왜 꼭 이다지도 멋져 보여야만 하는지, 멋진 캡틴이 아니라 지적이고 영리하며 정감이 가는 캡틴이여도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멋지게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캐릭터의 인간미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듯 보여서 말이다. 아마도 이런 겉멋 잔뜩 든 멋짐에 환장을 하는 것이 일본의 정서인 듯 보이긴 하는데, 우울한 천재, 완벽한 고독남, 인류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도 불평하지 않는 사내에 대한 일본의 로망은 사무라이의 잔재 때문일까? 일본 영화다 보니 일본정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일 테지만서도, 종종 심했다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살짝 오바다 싶은 것이지, 영화를 감상하는데 치명적인 결점은 아니었으니 감안해서 들으시길...

세째는 더빙판으로 봤는데, 그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기대했던 류승룡님의 하록이 별로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은 누가 배역을 맡았을까, 그는 이보다 더 잘 했을까가 궁금했는데,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오구리 슌이 했다고 한다. 원작 예고편을 보니 우리나라 더빙보다 훨씬 낫다. 그건 아마도 일본 영화의 색을 누구보다 일본 사람들이 잘 알아서 그런 것일 것이고,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일본 제작진이 더 적확하게 찾아낸 것일테지. 하여간 누가 더빙을 했는가에 따라서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던데, 만약에 보실 생각이라면 자막으로 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나는 다음에 볼 기회가 생긴다면 자막으로 보겠다. 정말로 원본 같다. 우리나라 더빙이 복사본 같다면...

네째는 3D영화로 본 건데, 보는 내내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분이 3D 효과라는 것인지, 그것이 크게 다가오지 않아서 말이다. 2D로 봐도 3D와 별 차이가 없는게 아닐까 싶던데, 내가 잘못 본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다섯째는 영화가 약간의 진화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을 내용속에 집어 넣으려 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절대 멸종하지 않을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고는 있지만, 멸종은 과거에 늘 반복되었던 사실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벌어질 사실이고 말이다. 그런 멸종이 있어 왔기에 현재 인간이 지구의 주인인양 큰소리 땅땅 치면서 사는 기회를 얻은 것이고, 우린 이런 현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 우리 역시 언젠가는 멸종될 것이라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종말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렇다고 그걸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리가 두려워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운명도 아니고, 또 그것이 아주 아주 먼 미래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런 이야기가 일반적인 대화속에선 흔하게 접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보면서 솔깃했다. 그걸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그저 영화속 헛소리처럼 들려왔을지 모르겠지만서도...

2시간 여를 흥미진진하게 봤다. 다만 중간에 깜빡하고 졸길래 피곤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나처럼 졸았다는 분이 더 계시더라. 그 말은 즉, 어쩜 피곤해서가 아니라 지루해서 였을지도...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을 뿐이고, 영활 보는데 지장이 있는것이 아니었으니, 고로 결론은 재밌었던 걸로. & 볼만한 영화였던 걸로. 하지만 12세 이하는 관람시키지 않는 걸로. 재밌으면 조카 보여줄 생각으로 봤는데, 안 보여 주기로 했다. <그래비티> 이후로, 왠만하면 연령가는 지키기로 마음 먹었는데, 이 영화 는 12살 이상가이면 적절하지 않는가 싶다. 해서 조카는 나중에 나중에 알아서 보라고 하기로. 12세 이상 되시는 분들 역시 알아서 하시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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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밍고의 미소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2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명주 옮김 / 현암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칼 세이건, 데이비드 아텐보러, 리처드 리키...나의 어린 시절 tv나 책을 통해 과학을 쉽게 소개해주던 세 명의 과학자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통해, 데이비드 아텐보로는 그 유명한 BBC 다큐들을 통해, 그리고 리처드 리키는 <오리진>이라는 책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소개를 하던 몇몇 다큐들을 통해...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들을 어찌나 매혹적이면서도 쉽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들려 주시던지, 당시 해당 분야에 별다른 지식이 없던 어린 나도 시청하는데 지장이 없었다는건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에도 가족들이 모두 모여 과학 다큐를 시청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그때는 그것이 가능했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것들과  NHK방송사가 만든 < 실크로드>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근사하게 수놓아준 수작 다큐들이었는데, 지금 본다면 예전에 봤을때처럼 아련한 느낌이 나려나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들이 뿌린 씨들이 지금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직도 난 과학 다큐나 역사 다큐라면 사죽을 못쓰니까.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한다는걸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리요. 전공을 선택할때갈등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때 난 어른이 되면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 취향도 변할줄 알았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스러운 관심이 생길거라고. 하긴 어른은 아이의 연장일 뿐이라는걸 그때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미처 살아보지 못한 세월을 헤아리는 아이는 없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들의 다큐를 보면서 자란 소녀가 어른이 도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면 아마 그들도 보람을 느끼지 않을런지...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들이 바로 그 세 명의 과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영상 매체들을 통해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 서 왔다면 굴드는 지면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같은 목적을 이뤄 놓으신 분이라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어서다. 알고보니, 굴드는 2001년 작고하기 전까지 무려 27년동안 <내추럴 히스토리>라는 잡지에 3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연재하셨다고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과학의 최신 정보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하지만 결론만 내어놓은 것이 아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추론 과정도 보여주면서 현재 과학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일목 요연하게 들려주고 있던데, 그 기간이 27년이고, 모두 합해 300편이란다.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동안 쓸 말이 바닥나지 않았을지,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그 모든 일들에 대한 압박감을 뒤로하고 글을 쓰실 수 있었을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의 박학함이나 지적인 통찰력, 그리고 실제 성격은 내성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격이지 않을까 싶음에도 남들 못지 않은 입담에, 이야기를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는 유려한 글솜씨는 왜 그의 월간 에세이를 사람들이 목매달고 기다리며 읽었을지 짐작이 가게 해주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얼마나 부럽던지 말이다.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이런 에세이를 쓰시고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은 이런 재밌는 과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성장했을걸 생각하니 질투가 나더라. 이런 뛰어난 과학자를 배출해낸 미국이란 나라가 부러웠고, 그의 글을 따끈 따끈할때 읽을 수 있었던 미국 사람들이 부러웠다. 더불어 지금 미국이 과학 강국이 된 것도 이해가 갔다. 과학의 대중화에 이런 인재들이 나서서 솔선수범했으니 지금의 결과야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한 물 갔다고, 퇴페한 나라라고 말하던데, 솔직히 난 이런 글을 읽을때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건 우리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조용히 자신의 나아갈 길을 가고 있는 미국 지성인들의 실체를 우리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닌지 싶어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이 글을 쓰실 당시 저자가 암 투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글속에선 도무지 그가 암은 커녕 생사의 기로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그만큼 지식을 향한 그의 집중력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다. 그의 지식에 대한 열정이,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집념이 이해되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한층 깊어졌다. 전공이 전공이시다 보니,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과학자가 아니라면 주목하지 않은 특이한 사연들을 진화 사례에 맞춰 흥미진진하게 서술한 것이 좋았다. 생물학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추리 소설 읽는 듯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가장 재밌었던 챕터는 제목인 <플라밍고의 미소>와 그가 자신에게 특별하게 한 턱 쓴 작품인 <작품 번호 100번>이었다. 특히< 작품 번호 100> 은 자신의 연구 분야인 케리온 달팽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으시던데, 그가 그 작품속에서만 그 열정을 털어놓으신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굴드는 자신이 관심있는 것이 독자들에게도 흥미가 있겠는가라는 겸허한 생각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에세이는 가급적 피하셨다고 하는데, 그가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독자들이 매혹을 느끼는 것은 때론 저자의 열정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하니 이 책 속에 들어있는 30여편의 에세이중에서 그가 자신을 위해 쓴 그 작품이 제일 재밌었다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 리처드 포티의 <삼엽충>을 읽으면서 그의 열정이 압도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굴드 역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글을 썼더라면 그 못지 않은 매력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지 싶기도 하다. 왜냐면 분야의 다양성이나 지적인 호기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열정에서만큼은 리처드 포티에 미치지 못하는 듯 보여서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쉬지 않고 주절대는 사람과 남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소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린 사람과의 차이가 아닐런지 싶었다. 결국 본인이 가장 재밌는 이야기를 해야 남들도 호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왜 인간이겠는가. 공감하고 반응할 줄 알아서 인간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과학 에세이다. 굴드가 그 오랜 시간동안 인기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충실한 글들이었고, 뒤늦게 나마 이런 글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세상 모든 것들이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수수께끼 투성이일까 싶어 그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비록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그들의 수수께끼 풀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우주와 지구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눈뜬 장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오늘을 살아가고는 있지만서도, 때론 저 먼 우주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호기심을 느끼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아마도 이 책은 최선의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런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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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굴드의 <풀하우스>에서 왜 야구에서 4할 대 타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추론을 읽으면서, 아 생각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했었는데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분화이고, 이로인하여 생물의 다양성이 더 많아진다는 그의 주장이 다시 생각납니다. 요즘 복잡해진 사회를 보며,역시 사회도 진보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분화하여, 다양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움직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이네사 2014-03-29 20:26   좋아요 0 | URL
<풀 하우스>는 2002년에 출간된 책이군요. 그런데 4할 타자론에 대해선 굴드의 책 중에서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딘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요즘 굴드의 에세이가 줄줄이 출간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 한편에서 읽은 모양이여요.

맞아요. 우리는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신선하네 라고 생각하게 만드시더라구요.
더불어 과학자가 안 된 것이 무척 안타깝더라구요. ㅋㅋㅋ 이렇게 재밌는 것인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했을텐데 라면서요. 이젠 너무 늙어서 안 되겠지만서도, 아마 다음 생에 태어 난다고 해도 다른 재밌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서 과학자는 무슨~~~이라고 콧방귀를 뀔지 모르겠지만서도, 하여간 무언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게 참 멋지다 싶었습니다. 굴드는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그닥 이 생에 미련이 없으셨을 듯 싶어요. 워낙에 알차고 신나게 사셨으니 말여요.^^
 


해본 거 없고 가본 곳 없어 인터넷 중매 사이트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월터 미티. 17살 이후로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고 살아온 이 42살의 남자에게서 한때 모히칸 머리를 하고 킥보드 우승을 거머쥐던 꿈많은 소년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지금의 직장인 <라이프>지에서 사진 인화 당담을 해온 지 어언 16년,  성실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그의 인생은 어찌보면 단조롭고 소심하게 보입니다. 그런 그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겨나죠. 아니, 변화라기 보단 변화를 시도하고픈 일이 생겨났다는 것이 정확한 것일 겁니다. 바로 그의 직장에 어여쁜 이혼녀 쉐릴이 들어온 것이여요. 그녀에게 반한 월터는 어떻게해서든 그녀에게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그의 소심함은 이때에도 그의 발목을 붙들게 됩니다. 우연히 쉐릴이 e-하모니란 중매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말을 줏어들은 월터는 그녀에게 접근해볼 생각으로 큰 맘 먹고 그 사이트에 가입을 합니다. 하지만 프로필 난에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는 살아있는 좀비같은 그의 이력은 매칭 시스템 자체에서 그를 걸러지게 만드는 수모를 당하게 되죠. 상상속에서만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재밌고 말발 죽여주는 그지만,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현실속의 그일뿐이니 말입니다. 이에 자신이 한심스러워진 월터, 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개선을 위해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일일 것입니다. 그는 다시 소심하게 주저앉고 말죠. 그렇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보았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려는 찰나, 그의 인생에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그의 직장인 <라이프>지 사가 하룻밤새 팔려 버린 것이죠.월터는 이제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잡지의 마지막 호를 위해 사진을 인화해야 합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 마지막 호를 발행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모자라, 그 기념비적인 마지막 호를 장식해줄 표지 사진이 사라져 버립니다. 사방군데를 찾아봐도 사진은 나타나지 않고, 결국 월터는 사진 작가인 숀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혹시나 그가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죠. 문제는 숀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모험과 아름다움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는 방랑가라는 것이고, 해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 벼랑위에 서 있는 월터, 과연 그는 그의 마지막 사진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우직하고 책임감이 강한 소시민을 위한 찬가라고나 할까? 세계적인 영화배우긴 하지만 어딘지 루저의 인상이 짙은 벤 스틸러가 자신에게 딱 맞는 역을 가지고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 루저들에게 연민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점에서 벤 자신이 무척 선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얼마든지 거들먹 거리면서 승자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에 치이고 치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착한, 그래서 험난한 세상에 더 치이고 치이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려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고나 할까, 해서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벤 스틸러가 감독겸 배우를 했다.)의 메시지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메시지 자체는 훌륭했다는 뜻이다. 거기에 무엇보다 화면이 화려하다. 난 벤 스틸러가 이렇게 영화를 그림같이 찍으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감독으로써의 역량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데, 곳곳의 풍광이나 화면을 구성하는 면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멋지더라. 월터의 직장을 <라이프>지로 한 것도 다 이런 화면을 위해서였구나 싶을 정도로 화면들이 탁월했다. 영화들 중에서는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큰 화면에서 보지 않아도 충분한 영화가 있고, 3D 촬영을 했다고는 하지만 2D로 보는 것이 더 나은 영화들도 있다. 제작사에서 내건 것과 실제로 보면 다른 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집에서 작은 TV 화면으로 본 영상과 직접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본 영상이 너무 큰 차이가 나서 하는 말이다. 아마도 굉장히 공들여서 찍었을 듯한 곳곳의 풍광들은 그 자체로 눈을 시원하게 했다. 안구 정화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야 라는 듯 말이다. 하니, 만약 월터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솔깃하신 분들이라면 되도록이면 영화관에서 보시라고 권해 드린다. 다시 말하지만 작은 화면으로는 감독이 보여주려 한 풍광들의 감흥이 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쩌면 그 풍광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람료 값을 하지 않을까 한다. 화면이 그만큼 신선했다.

 

등장인물들의 따스함이나 정감 같은 인간적인 면모, 커다란 화면을 꽉 채우는 탁월한 영상미, 그리고 배우들의 허술하지 않은 연기등 장점들이 많은, 그래서 TV에서 광고 영상을 보여주는데 왠지 내가 전에 가본 여행지를 우연히 둘러 보는 듯한 아련함과 애틋함이 배어나는 장점이 많은 영화임에도, 다만 단점이라면 이야기가 비교적 단조롭다는 것이다. 초반을 지나고 나면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짐작이 되고, 더이상 뻗어나갈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감독은 타협을 한게 아닐까 싶었다. 최소한의 배우들과 최소한의 이야기로 대신 영상만큼은 최대한으로 하자는 선에서 말이다. 그의 선택이 최선이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가본 곳 없음 해본 곳 없음에 동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다. 아마도 그의 프로필 난이 nothing에서 something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들에 같이 환호성을 지르게 되질 않을런지... 적어도 난 그랬으니 말이다. 더불어, 이 영화의 핵심 키 플레이어인 숀이 말한 Life의 정수를 담은 25번째 사진은 정말로 기발했다. 마지막 감동을 위한 반전용으로 이보다 더 적절하긴 어렵겠다 중얼 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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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메이플 스토리 오프라인 RPG 67 코믹 메이플 스토리 오프라인 RPG 67
송도수 글, 서정은 그림 / 서울문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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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 올줄 몰랐네요. 출간일 챙겨 가면서까지 이 책 나오길 기다리게 될 줄은 말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조카가 좋아하는데... 아~~~(장탄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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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잊지 못할 비행 무민 그림동화 13
토베 얀손 글.그림, 이지영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책들이 아직도 종종 기억이 나는걸 보면 신기하다. 어떤 책은 지금도 너무도 보고 싶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애가 타기도 하고 ( 다락방인지 마루밑인지에 작은 소인들이 산다는 설정의 동화를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제보 바랍니다. 그 책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찾을 수가 없네요. 어렸을 적에 참 재밌게 읽었었던 책인데...) 어떤 책은 이 무민처럼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반색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 반 부반장 부모님은 우리동네에서 유일하게 교육열이 높으신 분들이었다. 그 말인 즉슨, 그녀의 집에 가면 전집으로 된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재밌는 것은 내 친구는 공부는 잘 했지만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부모님이 사다준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덕분에 그녀의 부모님들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그 책들을 몽땅 다 읽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집에 가면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나는 감지덕지였고, 그녀는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책을 내가 왜 그렇게 허겁지겁 읽어 내려 가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가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랬더라면 아마 내가 자신의 책을 그렇게 읽어 치우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하여간 그 많은 전집 책들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무민 시리즈가 그렇다. 무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 내가 이 책을 정말로 좋아해서 그녀의 집에 갈때마다 거듭해서 싫증내지 않고 읽었기 때문이다. 천진스러운 무민 가족들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그렇지만, 이런 상상속의 세계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따스함이 무엇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그때 아직 어려서, 정말로 어딘가에는 무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존재할 것이라 믿었었다. 그래서 그 어딘가에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라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한장면은 무민의 여자 친구로 유난히 치장에 신경을 쓰는 스노크 아가씨가 좀 더 예뻐 보이려고 앞 머리를 손질하다가 불에 태워 먹은 씬이다. 불에 그을려 대머리가 되어 버린 앞머리 때문에 울상이 된 스노크 아가씨의 모습이 넘 웃겼고, 그것이 그녀의 허영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예쁘다고 위로를 해주는 무님 가족들이 넘 좋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4학년용 이상향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아련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무민 가족들 이야기가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인 지금에도 나온다는 걸 알았을때 얼마나 놀랐는지...어찌나 오래전 이야기인지 지금은 전생에서 읽은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 지금까지도 읽힌다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렸을 적 그렇게 매혹에 빠졌던 무민이 어른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매혹적일까라는...


결론은 어렸을 때의 낭만이랄까, 아련함은 없지만 그럼에도 좋은 책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는 것이다. 동글동글 통통통, 한없이 매력적인 무민 가족들의 몸매도 그렇거니와 낙천적이고 천진난만한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사건들도 지금 읽어도 그다지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유아용 동화책이지만, 등장인물들 각자 개성들이 뚜렷하다는 점도 무시못할 장점. 그래서 새로운 권이 나올때마다 과연 이번엔 누가 사고를 칠까, 그리고 그것의 수습은 어떻게 할까 그것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누구라기 보단 무민네 남자들이 단체로 열기구를 타고 모험을 나서는 것에서부터 사고가 시작된다. 여자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뒤로하고 비행 모험에 나선 길, 처음엔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갑작스레 폭풍이 몰려 오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나침반이 필요한데 심하게 흔들리는 열기구 안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다가 그만 잃어 버리고 만 것...이에 열기구에 타고 있던 무민 일행들은 다들 겁에 질리기 시작한다.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보시길...참 알 수 없는 일은 어렸을 적 무민 시리즈를 읽을때마다 내 느낌상으로는 장편 대하 소설 하나씩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달랑 26페이지라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왜 어렸을 적 기억에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일까? 어릴적 내 머리 용량으로는 26페이지가 지금의 400 페이지에 맞먹는 분량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당시에는 이보다 많은 내용들이 들어있었던 것일까?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단 느낌인데, 과연 26페이지의 내용을 가지고 그 안에 차곡차곡 내가 무엇을 채워 넣었었던 것인지가 궁금하다. 단지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왜곡된 기억에 불과한 것일 뿐일까? 하여간 오랜만에 무민 시리즈를 만나서 반가웠다. 내가 어린 시절 봤던 그런 향수는 머리가 굵을대로 굵어버린 지금 느낄 수 없었지만서도, 그럼에도 반가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난 여전히 무민들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반가운 책을 조카가 놀러오면 읽어줄 참이다. 녀석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나완 다른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녀석이라 감수성이 나와 다른다는걸 생각하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무민의 다른 책들을 읽어줘봤더니 의외로 고분고분 귀를 쫑긋하면서 재밌어 했었다. 이 책도 그러길 바라면서...녀석도 나 만큼의 상상력으로 이 책의 빈 공간을 마음껏 채워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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