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동스 1 - 나는 행복한 고양이 집사 옹동스 1
Snowcat(권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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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블러그를 하다보면 간혹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인데도 먼 친척이나 오래된 친구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일상에 지쳐서 한참을 잊고 살다가도 문득 요즘 어떻게 지내나, 하면서 불현듯 못견딜만큼 근황이 궁금해지는 사람들이...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스노우캣이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같다고나 할까, 내지는 좋아하는 친구의 절친 정도? 왜냐면 스노우캣을 알게 된 계기가 내가 좋아하던 이웃 노튼님때문이여서 말이다. 하여간 어쩌다보니 일상에 치여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갑자기 올 초엔가 그들이 너무도 궁금해져 버렸다. 어떻게 지내시나, 왜 요즘 이렇게 조용하시지? 라면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만, 알고보니 그들은 전혀 조용히 지내고 있지 않았고, 꼬박꼬박 자신들의 근황을 업데이트하고 있었으나 단지 다만 내가 철저히 그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렸다. 우선은 그들이 건재하다는 것에 반가웠고, 둘째는 못보는 사이에 고양이 한마리가 더 늘어 있길래 깜짝 놀랐다. 스노우캣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는다는 중차대한 변화가 있는 동안 난 까맣게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니... 무심함이 좀 지나쳤네 라는 생각에 반성을 할 즈음, 두 마리 고양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해졌다. 해서 스노우캣의 블러그를 유심히 살펴보니, 냐옹이에게 꼬마 여동생이 생긴 모양이던데, 그런데 내가 그들을 봤을 즈음해서는 이 꼬마 여동생의 몸매가 가히 냐옹이를 육박하고 있을 즈음에서여서 말이다. 도무지 누가 오빠고 누가 오누이라는 것인지 한참은 헷갈렸었다. 그만큼 내가 고양이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을테지만, 하도 간만에 보다보니 누가 누군지도 가늠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노우캣의 그림과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다행스럽게도 곧바로 알아보겠더라. 누가 오빠 냐옹이고, 누가 응동이라는 것인지. 그리하여 스노우캣 남매의 이름이 합해서 옹동스!!! 이 책은 바로 스노우캣, 옹동스의 행복한 고양이 집사가 은동이를 둘째로 들이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생긴 일들을 그려낸 것이다. 스노우캣과 그들 남매를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사실 난 이 책이 출간된다고 했을때 그다지 관심이 있진 않았었다. 왜냐면 나에게도 두번째 조카가 생겨서 그 아이를 쫓아 다니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살았었기 때문이다. 그냥 스노우캣 가족들이 잘 살고 있다니 다행이다, 가족이 늘었다니 얼마나 좋을까, 정도에서 그쳤을 스노우캣 엿보기는 이 책을 소개하는 몇 장의 컷으로 나를 설득시키고야 말았다.


그게 뭐냐고? 그건 바로 <우리 애는 천재인 것 같아요>라는 장에서 스노우캣이 냐옹이의 천재성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고양이야말로 천재라면서 그 일화를 일일이 손에 꼽는것만으로도 입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는 스노우캣 집사는 듣는 사람들이 그걸 알아듣지 못할까봐 몇 몇 장면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 중 하나가 동물병원이라는 말에 쌩하고 도망가는 냐옹이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에 내가 박장대소하면서 웃고 만 것은 그것이 요즘 내 조카를 바라보는 시선과 일치했었기 때문이다. 약~~! 이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면 횡하니 짧은 발들을 굴려가며 구석으로 도망가는 20개월 조카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딱 그랬으니까. 황급하게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절대로 절대로 아무것도 입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는 녀석을 보면 이걸 장하다고 해줘야 하는 건지 다그쳐야 하는건지 아니면 신기해 해야 하는건지, 하여간 마음이 그랬었는데, 알고보니 스노우캣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보다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의 마음과 고양이를 키우는 고양이 집사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이 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과연 우린 얼마나 얼마나 닮았을까요,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정말 그렇지 않나요 라면서 동감의 고개짓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읽어보니, 정말 그녀와 나는 별반 다르지 않더라. 생명을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낸다는 사명감 외에 내가 똑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애정 넘치는 사랑이었다. 알고보니 스노우캣의 바람과 나의 바람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물론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겠지만서도, 그건 바람의 문제가 아니라 종의 문제에 기인한 것일 것이고. 해서 그녀의 옹동스에 대한 사랑과 나의 조카들에 대한 사랑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예전부터 스노우캣 집사의 고양이 사랑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다른 사랑이 별나다고 생각하던 내가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은 아마도 그 사이 내게 조카가 생겨서일 것이다. 과거엔 몰랐던 사랑을 이제는 알았기에 가능한 대입이라고나 할까.


그런 시각에서 책을 보니, 스노우캣이 왜 그렇게 옹동스를 애지중지 하는지 너무도 잘 이해되더라. 그녀에겐 옹동스가 자식이자 조카라는 것을. 그녀가 마음껏 애정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감정들을 그간 누누히 자신의 책에서 설명했음에도 이제서야 알아듣는다는게 참 우습기도 하지?  그런걸 보면 경험이 지식을 앞서가지 못한다는 말을 맞는 말인가보다.


해서 결론은, 이 책 재밌습니다. 감히 천재급이라 할만한 능력자 고양이 냐옹이를 키우던 스노우캣 집사가 백치 아다다급의 천진한 말썽쟁이 은동이를 둘째로 들이면서 생기는 일들이여요. 첫째 냐옹이의 불안과 그걸 바라보는 스노우캣의 죄책감, 그럼에도 가족을 들이기 위해 조금씩 서로가 노력하는 과정들이 그려져요.무엇보다 이 책 속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새로 등장한 캐릭터인 은동이의 황당 사건 일지여요. 냐옹이와는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데, 허당 매력을 활활 불태우는 은동이의 활약을 한편으로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스노우캣의 추임새에 힘입어 우린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어요. 거기에 스노우캣이 자신만의 꿈을 집을 드디어 만들어내는 과정 역시 흥미롭더라구요. 블러그에 나온 사진을 보면서 집 한번 잘 사셨네, 아주 멋진데 싶었는데, 알고보니 스노우캣이 열심히 고민하고 애써서 얻어낸 결과물이더군요. 옹동스를 위해 멋진 집을 선사해주려 고민하는 스노우캣이 얼마나 근사해 보이던지요. 스노우캣 집사가 옹동스를 만난 것도 행운이지만, 옹동스가 스노우캣 집사를 만난 것 역시 그들의 행운이었다고 봐요. 그들의 꿈같은 나날들이 , 소박한 일상들이 지금처럼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모두 누구가를 사랑하며 사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낭비된 삶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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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러운 책이군요. 담아갑니다~

이네사 2015-04-28 23:35   좋아요 1 | URL
네, 그렇답니다. 제가 리뷰를 워낙 엉성하게 쓰느라고 가장 중요한 사랑스러운 책이라는 말을
빠뜨렸는데, 용케 그걸 캐치해 내셨네요. 덧글 보고 깜짝 놀랐네요.^^
 
A Trick of the Light (Paperback) - A Chief Inspector Gamache Novel
Penny, Louise / St Martins Pr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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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읽을 것이 없어서 머리를 쥐어 뜯고 있다가 생각이 났다. 두어달 전에 루이즈 페니의 책을 사두었다는 것을. 다행히도 그동안은 어쨌거나 읽을만한 것이 있어서 고이 놔두고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떨어져서 말이다. 책장을 청소할때마다 못 본척 내진 모르는 척 외면을 하면서 난 전혀 널 읽고 싶지 않아라고, 최면을 걸어두었던 책을 해서 드디어 개봉하고야 말았다. 시기가 어쩌다 보니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일종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는데, 내가 나에게 준 선물치고는 꽤나 사려깊게 시기절적한 (?) 것이 된 셈이다. 혼자 북치고 장구쳐놓고선 그게 무슨 시기절적이냐고 하실지 모르시겠지만서도, 어떻게 내가 두어달 뒤에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다고 진저리를 치고 있을지 알아겠는가 말이다. 난 정말로 몰랐다니까? 해서 깊은 좌절감에 어쩔 수 없이 너를 읽는다는 뉘앙스까지 보태서-쉽게 말해 다른 읽을 거리가 없어서 오로지 이 책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는 뜻, 왜냐면 나는 책을 저글링하면서 보는 습관이 있어서, 한번에 두 세권을 동시에 읽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보니 재밌는 책은 먼저 읽게 되게 되는 반면, 재미없는 책은 뒤쳐지거나 잊혀지거나 던져지거나 한다. 그런면에서 내가 어떤 책을 한번에 읽었다는 말은 그 책이 굉장히 괜찮은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홀가분하게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읽을 거리가 있었다면 얼른 이 책을 읽고 그거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 안달을 했을텐데, 이번엔 정말로 그럴일이 없어서 말이다. 읽고 싶은 책이 없다는 것이 때론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루이즈 페니의 아직 안 읽은 책을 손안에 들고 있을때야 뭐, 더이상의 것이 필요치 않기도 하고 말이다. 


페이지를 열자마자 스리 파인즈에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짐작은 했었지만 다시 같은 마을에 살인 사건이라니. 이젠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게 느껴진다. 이런 패턴이 과연 또다시 먹힐 수 있을까 라면서 살짝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무렵, 또다시 루이즈 페니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나를 흥분시킨다. 도무지 이 작가의 재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번번히 허를 찔린단 말이지. 매번 예기치 못한 역습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가면서 읽는데, 그것이 루이즈 페니의 필살기인 것 같기도 하고...만만하게 보여서 경계를 늦추었더니 바로 공격을 해들어오는데 당해낼 장사가 없다. 하여간 이번 살인 사건의 장소는 스리 파인즈의 화가 클라라의 집 정원이다. 화가로 첫 전시를 성공리에 마친 그녀가 절친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었는데, 그 다음날 그녀의 정원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자신의 정원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식욕이 싹 가신 클라라는 그 시체가 자신의 어릴적 베스트 프랜드인 릴리안 다이슨이라는 것을 알고는 식욕이 돌아온다. ( 봤지? 독자를 홀리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라니까. ) 혹시나 이번엔 클라라가 범인으로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 스리 파인즈의 여인 사총사는 그간 가마슈를 지켜봐온 경험을 바탕으로 혐의자 취조에 나서게 되지만, 오히려 내부분열만 가져온다. 감옥에서 무죄 석방이 된 올리비에는 스리 파인즈가 감옥보다 더 치욕적이라는 것때문에 가마슈를 용서할 수 없다. 올리비에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다 까발려진 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예전처럼 그를 대할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올리비에는 이 모든 것이 가마슈 탓이라고 생각한다. 화가로 큰 성공을 거둔 클라라는 성공이라는 댓가를 치르기 시작한다. 남편 피터와의 균열은 점점 크게 벌어지더니 떡하니 그 둘 사이에 깊은 수렁을 만들어내고, 평론가들의 날이 선 평론에 기가 죽은 클라라는 루스 자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마슈의 부하 보부아르는 댐 사건의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한다. 힘들게 이혼한 그는 그동안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따로 있었다는걸 인정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그녀가 유부녀에다 가마슈의 딸이라는 것 정도? 그는 자신이 사랑에서 눈을 돌려야 할지 아니면 용기를 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어 한다. 살해된 여인이 클라라의 어릴적 친구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가마슈는 그녀가 왜 클라라의 정원에서 살해된 것인지 의아해한다. 그녀가 AA클럽( 금주 협회) 회원이었다는 것을 알아낸 가마슈는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이 극명하게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불행하고, 잔인하며, 남의 인생을 망치는데 앞장서던 표독스러운 여인 릴리안과 행복하고 밝은 개과천선한 릴리안으로...두 가지 부류들 다 자신이 본 릴리안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가마슈는 릴리안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인간이 변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되는데...


말미에 루이즈 페니가 열심히 썼으니 즐겨주심 좋겠다고 쓰셨던데,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정말로 그랬다고. 그 이상의 말은 이 책에 필요없을 것 같다. 뭐, 미술계의 뒷면에 대한 이야기,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 알콜 중독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모든 것이 다 흥미진진하다. 캐릭터 확실한 스리 파인즈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일일 드라마에 지루함이 아니라면 나를 죽일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이젠 제법 형사로써 한 몫을 해내는 이사벨 형사, 그간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보여주던 보부와르의 갈등등이 중심 제대로 잡고 떡하니 버티고 있는 가마슈 경감을 배경으로 일사분란하게 그려지는데, 이보다 더 설득력있게 그려질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재 어딘가에 스리 파인즈란 마을이 실재하는 것만 같다. 내 어딘지 알 수만 있으면 당장 짐싸들고 달려갈텐데 말이다. 스리 파인즈란 가상의 마을을 친근하고 친숙하며 아련할만큰 정이 가게 만들어냈다는 자체가 루이즈 페니의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게 아닐런지. 거기에 간간히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유머에 인간성에 대한 흔치 않는 통찰력,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믿음까지 얹혀지다보니, 내가 왜 이 책을 그렇게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하여간 이 책을 읽고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루이즈 페니를 의심하지 않겠다고. 이만하면 더이상 의심한다는 것이 불경한 것이라고 말이다. 앞으로 그녀가 쭉쭉 열심히 책을 써 내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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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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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음속의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을때 내가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소재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을 쓴 저자가 <차일드 44>의 톰 롭 스미스라는 말에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의심이 많은 나 같은 독자는--내지는 경험이 많은 나 같은 독자는?--전작이 좋았다고 할시 오히려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우등생이라고 해도 맨날 백점만 맞기는 힘든 것처럼, 전작만큼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해서, 연작인데도 비교적 고르게 작품을 내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을 내놓는 작가도 있다. 때론 전작에서 작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티가 역력해서 다음에 뭐가 나올지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작가도 있고. 톰 롭 스미스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차일드 44>가 굉장히 재밌기는 했지만 후속작이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해서 그가 다른 작품을 내놓았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한 문장때문이었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발상을 얻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작가는 , 그때의 혼란과 불안을 바탕으로 밀도 높은 심리 스릴러를 구상해냈다...."는 것 말이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웨덴으로 이주를 한 부모님, 잘 계시는 줄 알았더니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가 미쳤단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번엔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이 이웃 사람들과 공모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고 있다고, 나는 병원에서 탈출했으나 분명 아빠에게서 전화가 갈 터이니 그를 믿지 말라고, 지금 내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이다. 과연 이런 전화를 연달아 받게 되었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것에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작가는 그걸 어떻게 극복해 냈을지가 난 궁금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무엇을 배웠을까 라는 점도...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숨차게 밀어붙이는데, 역시나 재능있는 작가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인데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다보니 일필휘지로 시원스럽기 그지 없다. 아버지에게서 걸려온 끔찍한 전화 한 통, 한눈에 봐도 미친게 틀림없는데 미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엄마의 등장. 확연하게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경악한 아들 다니엘까지 숨돌릴틈이 없다. 믿을 사람이 다니엘밖에 없다며 엄마는 자신이 마을의 살인 사건을 알고 있으며 그 사건의 주모자들이 자신을 정신병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엄마가 제기한 사건의 심각성에 놀란 다니엘은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당황하는데...



라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작에 버금가는 작품은 아니었다. 가장 맘에 안 드는 것을 꼽으라면 중반 정도에서 결정적인 헛점을 드러내며 멈칫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내려 놓을 정도로 신빙성이 떨어져서 말이다. 스웨덴 태생인 엄마가 열 여섯에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정을 털어놓는데, 그게 좀 어설펐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의문부호가 생겨나자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가 별로 재밌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건 망상이건 간에 이미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결말 부분에 가서 설득력을 되찾아 올 수 있었지만, 이미 생긴 실망감을 감추기란 힘들었다. 초반과 결말 부분만 두고 보자면 잘 짜여진 소설이라고 할만했는데, 추리 소설로 만들기 위해 억지를 쓴 것이 오히려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가 어떤 경험을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의 엄마가 어떤 이야기를 했고, 아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니면 믿는 척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었겠지.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써냈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가 얼마나 거대한 음모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건 간에 아마 아들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이상하다는걸 알기에 더 섬뜩하다고. 간단하다.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그걸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었다. 추리 소설을 만들었어야 했기 때문에. 그점이 아마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를 잘 짜여내긴 했지만 어딘지 진실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하니, 아귀가 맞는 듯한 추리 소설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은 보시길. 과연 이 엄마가 미친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하신 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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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언 프로이드 - 오래된 붓으로 그려낸 새로운 초상의 시대 다빈치 art 21
조디 그레이그 지음, 권영진 옮김 / 다빈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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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 되다>를 읽은 독자로써 지나칠 수 없었던 작품.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루시언 프로이드를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재능이 출중한 두 작가 ( 마틴 게이퍼드와 이 책을 쓴 조디 그레이그) 에 의해 낱낱이 조명이 되다보니, 루시언 프로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겠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난 마틴 게이퍼드가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거나...<내가 그림이 되다> 정도의 책을 쓴 사람이라면 통찰력이 없을리 없으니, 그에게 루시언 프로이드가 안 보였을리 만무하고, 그가 무언가를 봤음에도 쓰지 않기로 결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과 그 책을 비교해 본 결과 마틴 게이퍼드가 쓰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나름 웃기고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그건 루시언 프로이드의 주장대로 그를 그림으로만 봐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마틴의 무언의 동의였지 않을까 싶더라. 두 남자가 사생활이 아닌 자신이 창조해낸 결과물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을 했다고 말이다. 그것에 대해 내가 뭐라할 이유는 없다.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각기 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두 사람이다보니, 다른 말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건조한 면이 있긴 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오해의 여지도 잘못 해석할 이유도 없다. 둘 사이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흘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림이 되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그림을  그대로 빼다박은 글을 써낸 것이므로. 해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서 알게 된 사실 한가지는, 그리고 마틴 게이퍼드가 그의 책 속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한가지는...


바로 루시언 프로이드가 소시오패스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토록 자신의 사생활이 언급되는 것에 신경을 곧두세운 이유는 그가 지극히 비밀스러운 사람이였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사생활이 그만큼 난잡했기 때문이다. 성관계를 맺은 여인만 대략 500명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자식만 열 네명, 그외 알려지지 않은 자식들만 삼십명이 넘을지 모른다고 하니 대충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나이차가 얼마나 되든, 그들의 족보가 어떻게 되건( 전 아내의 딸과 관계하기도 함.) 상관하지 않으셨다니, 그를 현대판 카사노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내가 그림이 되다>에서 카사노바를 소시오패스라고 진단하시길래 얼마나 통찰력 있으신가라고  감탄했더니만,  알고보니 그도 같은 과라서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아니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까나?--그가 평생 아버지로써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뭐, 그런 것조차 없었다고 하니 내가 왜 루시언 프로이드를 소시오패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실 것이다. 그런걸 보면 예술가를 아버지로 둔다는 것이 생각만큼 근사한 일은 아닌가 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냉정하거나 무자비하거나 무관심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타인이라면 친절할 수도 매력을 발휘할 수도 있도 사람이기에, 루시언은 타인으로 만난 이 작가에게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타인과 친구라는 경계 선상에서 만났으니 상처를 입을 일이 없어서 작가로썬 좋았겠다 싶다. 좋은 점만 보고 들었어도 되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에서 루시언의 일생을 돌아본 것이 장점, 왜냐면 얼마든지 삼류 막장극으로 빠져들 여지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루시언의 사생활이 얼마나 난잡하고 야만적이었던지 간에 우리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그림들 때문이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영리한 전개였지 싶다. 루시언 프로이드를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말하건데, 이 이상의 책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루시언에게 질릴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루시언을 좋아하고픈 사람들은 그의 그림들만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그가 화가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림속에 다 담아 두었으니 말이다. 추측컨대 그는 평생 인격자나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이 되고자 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다만 탁월한 화가가 되고자 했고 그 야망을 이루었다. 타협하지 않은 지성과 진정성을 잃지 않는 뚝심, 그리고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그의 업적에 경도된 사람들이 눈을 가리기로 결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때론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영생을 사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예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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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 동물의 왕국에서 벌어진 가슴 뭉클한 43가지 이야기!
제니퍼 S. 홀랜드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책속의 사진때문이었다. 각 사연들 속에 나오는 사진들을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내 호기심에 불을 당겼던 것이다. 동물들의 이야기라면 종을 불문하고 좋아하는 나로써는, 사진까지 첨부된 이런 미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종이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본능을 무시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니.그레이트 데인이 새끼 사슴을, 테리어가 새끼오리를, 암닭이 강아지를, 어미개가 새끼 고양이를, 점박이 양이 달마티안 개를, 돌고래가 바다 사자를, 소년이 마못을, 올빼미가 야옹이를...끝도 없이 나오는 이종들의 향연. 과연 그것이 가능해 라고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서도,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니 놀랄노자 아니겠는가. 해서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보게 된 책인데, 책을 얼마 읽지 않아서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은 우리도 동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이종 동물들끼리 사랑하고 돌보고 아끼고라는 단어를 곰곰히 따져본다면, 우리야말로 그런 경우의 최고봉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이야말로 다양한 동물들을 키우니까, 단지 먹기 위해서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로써 말이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다른 동물들도 그럴 수 있는게 아닐까, 인간이 돼지를 먹지만 어떤때는 애완용으로 키우듯이 말이다. 우리의 동물 사랑이 무한대라면,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다고 추측한다는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들이 우리와 너무도 다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쩜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애정이라는 감정을 가지는 동물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쩜 우리의 무지나 오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사랑하고자 하는 감정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건 똑같을텐데 말이다. 그들이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거나, 지능이 낮다거나, 우리와 다른 뇌의 구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다른 종을 사랑하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에게 있는 감정이 그들에겐 없을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는 것일까?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인간들이 그들에게도 인간을 사랑하는 감정이 있다고들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데 말이다. 개나 고양이에게 우리 인간은 다른 종 아니던가? 그러니까, 어찌보면 이 책속에 나온 많은 동물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만큼 특별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동물들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다만 특별하다면 다른 종과 교감을 하고 공감을 나눌만큼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일테지만서도, 그런건 인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니 넓게 본다면 다른게 없다고 하겠다.


그런 것에 생각이 미치다보니, 이종들의 사랑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저자의 글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책들 속에서 나오는 동물 모두에게 찬탄을 금치 못하던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되진 않아서 말이다. 그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사진이다. 동물들의 사진들...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저자의 글에 실망을 하다가도 사진만 보면 그런 기분이 싹 가신다. 그러면서 애초에 내가 왜 이 책을 보고 싶어했던가 이해가 된다. 난 그저 동물들이 애정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귀엽고 신기하고 동화속에 나올만한 비주얼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흐른다. 기분이 나쁠때 휙휙 넘겨보면 우울한 기분이 가실 것도 같다. 광고계에서 3B가 있다고들 하지. 아기, 미인, 그리고 동물...정말로 이해가 간다.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에는 눈길이 저절로 머문다. 하니 우울하시고 기분이 안 좋은 분들이라면 한번 보시길. 이종 동물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아끼고 등을 기대고 코를 맞대는 모습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솔깃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해지는 광경들에서 눈을 떼기란 지극히 어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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