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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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고대 그리스를 생각하면 떠오는 것! 이에 철학, 민주주의, 광장, 민중이라는 단어와 함께 그 모두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적용 되는 것이 있다. 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웅변 또는 연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토론도 함께)

그러나 연설이 가진 순기능이 아닌, 또 다른 일면, 이에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치가 드러낸 그 많은 가치중에서, 혹여 그 중 '추악한 일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그 대표적인 예로서 (플라톤 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꼽고자 한다. 그도 그럴것이 기록 속에서 표현된 재판의 모습,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궤변론자) 사이에서 오고 간 토론의 기록을 가만히 접하고 있으면, 분명 그 속에서는 '현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어느 개념이 반드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예를 들어 출판의 보급, 영상물의 전파와 기록, 더욱이 정치가 보다 넓은 의미의 국민을 대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필요해진 조건들 중에는 분명 '설득을 위한 보다 명확한 기준'과 '사실성' (팩트)이 필수적이다. 이때!적어도 명확한 기준이라 하면, 재판에 있어서는 법률이 그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며, 이에 각 의견과 주장을 견주는 척도에 있어서도 그 바탕을 초월 할 수 없다... 라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진 상식의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당시 '소크라테스가 건강한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에 대하여, 소피스트가 민중(재판에 참여한 청중)에게 미친 그 영향력 가운데선 적어도 근. 현대적 의미의 논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느 주장을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를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 책이 아닌 다른 '설득의 기술'에는 오롯이 그 주 무대를 이루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더욱 더 중요한 가치로서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그러한 '야바위' 와는 다르게, 논증에 필요한 구심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연설가가 주제와 환경에 걸맞는 개연성을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리가 그 무엇보다 돋보인다.

오직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목적을 달성하려 것과는 달리...(중략)

표지

물론 결과적으로 '현장의 여론'이 곧 정책(투표)로 이어지기 쉬운 체제 속에서, 오롯이 '정의'와 '정론'만을 꼽아 주장한다는 것 또한 현실성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정의의 개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조건과 방법에는 그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이에 저자의 기록에는 수사학이 추구해야 할 본질 가운데서, 제일이 바로 그 윤리와 정의의 기초를 닦는 일이며, 이후 그 기초를 가장 효과적으로 현실정치에 (적용하고) 구현하는데 있다.

그러나 그 정의의 존재가 어떠한 것인가? 혹 신들이 정한 '섭리'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과정 속에서 드러난 사실을 분석하며 축척한 '인간의 지혜'인가? 그도 아니면 이 세계를 초월한 절대적인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인가? 하는 그 개념과 척도의 다름에 따라서, 이 수사학 뿐만이 아닌, 역사 속의 '연설'(메시지)의 존재 또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적어도 이 수사학의 개념에는 목적을 위해서 탐구되고 활용되는 조건(환경)은 있어도 오롯이 목적을 이루기위해 만들어진(창조된) 조건은 존재 할 수 없다. 비록 인간의 감정, 환경,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과 같은 그 추상적인 영역이라 할지라도, 이에 단순히 '방법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분명 그 속에서도 논리적인 추론이 가능한 '사실' '정의' '문제의 핵심'이 녹아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활용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통해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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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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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드러난 SF라는 단어와는 달리! 나는 개인적으로 이 '스캐너 다클리'라는 소설 속에서, (가상의) 먼 미래에 대한 상상과 창의력보다는 오늘날 현 시대에서도 일어나는 어느 사회적문제에 대한 (나름) 리얼한 이야기를 마주했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국내... 특히 대한민국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그 심각성에 대하여, 그리 밀접하게는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아... 딱히 그렇지도 않은가? 예를 들어 버닝0 같은 사건도 있었으니까.)

그도 그럴것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사회와 개인, 그 모든 관계 가운데서 '화제가 되는 단어'는 바로 마약과 약물이다. 실제로 D라는 중독성 약물과, 그 유명한 코카인 등이 불법적으로 또는 활발히? 암거래되는 세상 속에서! 이른바 주인공 주변의 '사회' 또한 앗! 하는 사이에 중요한 것을 빼앗기는... 최악의 슬럼(빈민굴)이 형성되었다.

바로 이때 주인공은 그 D의 유통과정과 함께, 그 핵심을 끄집어내려는 시도 속에서 활약하는 비밀요원의 신분을 가진다. 때문에 그는 주변의 중독자들과 함께 교류하고 또 생활하면서, 절대적으로 '논리적이지 않은' 많은 현상들을 마주하게 되지만, 반대로 그 프레드(주인공)는 그밖의 다른 '엘리트'와는 달리 그 스스로의 현실과 갈등을 이유로 점차 붕괴되어가는 비극의 인물로서, 그려지는 부분이 드러나기도 하다. 물론! 그 제일의 이유에는 주인공 스스로가 (그 나름의 이유에 있어서) D라는 약물을 투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정작 '수사기관'은 그 행위에 대한 '필요악'을 인정하고, 또 암묵적으로도 용인하는 이중적인 모습 등을 서슴치 않게 드러내, 이에 (독자인) '나'로서는 그 현상과 흐름이 그리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앞으로 흘러가는 프레드와 그 주변인물들의 '교류'또한 분명 읽는 독자의 입장에 있어서, '이해하기 힘들것'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약물에 찌들어, 오롯이 '약'을 먹는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잊어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인간성! 더욱이 이미 논리를 벗어나 '이미 망가져버진 사고방식'이 낳은 그 대화의 이모저모를 어찌 상식으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에 결과적으로 이 책속에 드러난 가장 큰 '메시지'는 약물은 분명 사람과 사회... 그 모든것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약물에 찌든 슬럼가의 사람들과 함께, 그 나름 슬럼과 사회 가운데 걸쳐 있었던 주인공 또한 중독이라는 현상에 의해 망가졌다. 또한 여담이지만 단순히 소설을 떠나, 저자 스스로의 현실의 삶을 들여다 보아도, 약물은 저자 주변에 관계된 친구 등의 목숨을 앗아간 가장 최악의 물건으로 회상된다.

때문에 이 스캐너 다글리는 오롯이 미래의 암울함을 드러낸 것이라기 보다는 도리어 저자 스스로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미국'(캘리포니아)의 모습 거의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라 이해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1960년~ 그리고 2020년... 그 오랜세월이 흐른 이후에도, 책 속에 표현된 '마약'은 분명 그 사회 문제의 제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어째서 약물은 사라지지 않는가' '어째서 그 자리매김한 약물을 경멸하고, 경계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저자는 오래전부터 결정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여느 사람들을 위해서, (소설로나마) 일종의 경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격렬한 "반 마약 소설" 이처럼 저자 스스가 드러난 단어와 같이! 독자 또한 그 대전재을 받아들이며, 내용을 읽어 나아간다면? 분명 그 어수선하고 비 논리적인 흐름이 점차 더욱더 무겁고 또 무섭게도 다가올것이라...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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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쿠엔스의 음식이야기 - 세계 음식 문화를 만든 7가지 식재료
제니 린포드 지음, 앨리스 패툴로 그림, 강선웅.황혜전 옮김 / 파라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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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보존식품의 등장과, 냉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분명 (현대의)'인류'는 점차 부엌에서 자유로워지는 생활을 영유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 현상에서 더 나아가, 현 대한민국의 식문화를 관찰해본다면? 조금 과장해서 이미 '부엌에서의 졸업'을 떠나, 일반적으로 행하는 요리의 정의에 대하여, 그 나름의 수정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굳이 '식재료'라고는 하지만, 결국 이 모든것은 기존의 역사와 문화적 흐름을 통하여 만들어진 성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일 뿐, 더 나아가 이것을 보다 밀접한 생활의 영역으로서 받아들이고, 또 활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이 책의 도움이 아닌, 다름아닌 독자 스스로의 필요성, 또는 노력에 의하여 수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각설하고 이 책 속에서 소개하는 '식재료'의 면면을 살펴보면? 흔히 '식품'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조금 난해하다는 생각이 미친다. 특히 쌀과 돼지고기 그리고 토마토는 분명 식품에 속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소금과 꿀은... 조미료나 감미료로 불리우는 것이 더 익숙하지 않은가? 그러나 결국 이 모든것이 뒤섞이고, 또 조리되는 과정을 통해서, 각 민족특유의 요리가 등장하고, 또 그 문화권의 독득한 개성이 분출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 책이 드러내려는 음식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독자들에게 있어서, 생각이상의 지식과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것이라, 나는 그리 여기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대형마켓에서 살 수 있는 형태의 식재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분명 그 대상과 형태는 같은것이라도, 책 속의 돼지고기는 인류가 '고기'를 얻기 위해 길들이고, 사육하며, 분류하고, 활용하는 그 복잡하고 기나긴 이야기 속의 돼지고기이다. 이른바 문화사 속의 돼지고기! 그리고 생각보다는 활용하기에는 거리감이 존재하는 돼지고기! 이에 저자는 나름 '세계 속의 요리법'을 함께 소개하며, "한번쯤 활용해보라" 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역시 나의 입장에 있어서는 그 현실적인 권장보다는 옛 사람들의 지식을 얻어가는 본분의 내용에서, 더 큰 가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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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군대 - 근대 일본군의 기이한 변용
도베 료이치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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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앞서, (안타깝게도) 한반도의 '민족'들은 옛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기억이 있다. 때문에 사실상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 있어서도 그 흔적은 여기저기에 남아, 이른바 한반도의 분단부터, 대한민국 근 현대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상당히 많은 갈등요소를 남기며, 분명 '부정적인 면'에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드러냈다... 그리 표현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위의 '학문으로서의 역사'의 인식을 떠나, 대중 속 '인식'에 있어서도, 분명 구 일본군(또는 영향력)에 대한 부분은 대단히 경멸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세계2차대전을 통해서 드러난 꼴사나운 모습, 또는 광신적인 모습이 회자되며, 군대로서 있을 수 없는 '범죄'를 양산한 공동체, 흔히 '막장'의 끝을 달렸던 군대로서! 흔히 사람들의 상식에 각인되어, 변할 줄을 모른다.

물론! 이에 대하여, '나' 또한 그 상식선을 수정하라' 감히 권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의외로 대중 속에서 각인된 구 일본군, 그리고 그들이 벌인 '전쟁범죄'등이 진정 '구 일본군 전체의 문제였다.'라고 이해한다면? 결국 이는 세계사(전쟁사) 적인 입장에 있어서, 일본의 근대화를 과소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이를 '독자'로서 한번쯤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의 조건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나라의 군대라고 한다면! 또는 오늘날의 상식선에 비추어볼때! 역시 '국민이 국가가 정한 법에 따라 병역에 종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일본(도쿠가와 막부) 이라는 '옛 봉건주의 국가' 속 국방과 군대는 흔히 '국민개병제에 익숙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과 후유증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기도 하다.

특히 일본 스스로가 고심한 최대의 문제는 '근대국가 속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그 자체가 단순히 막대한 비용과 물자에서 멈추지 않는 것!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 군 내부와 함께, 사회전반적인 인식에 있어서, '병역'에 대한 전혀 새로운 가치를 학습시키고,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때문에 이 책 속에서는 그 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 생겨나고, 또 하달되기도 하지만... 역시 결과론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모든 과정은 변질되고 또 외곡되어, 비합리성과 광신주의라는 기형을 만들어내내고 말았다.

물론 그 결과를 진단하며,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 또한 이 책이 가지는 하나의 '목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에 대해, 근대화를 진행한 구 일본군의 과정을 보다 오롯이 드러내며, 이른바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하는 그 흐름을 통해, 독자 스스로가 보다 더 저자의 주장에 대하여, 이해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 것이 나로서는 매우 고마운 것으로서 느껴지기도 했다.

이에 결과적으로 (나름) 정리하자면, 일본은 과거 전통적인 군대를 정리하고, (대의적으로) 외세에 대항하는 국민군을 창설하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원칙적으로 '무엇을 위한 군대인가' '어떠한 대의로 창설된 군대인가' 에 대한 대전제부터 시작해, 현실적인 편제와 구성, 장비의 확보, 또 그 무엇보다 사회 엘리트로서 군림했던 사무라이와 아직도 봉건주의적 신분사회에 젖어 있던 대중들을 통합해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시민계급'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수행해야 하는데 있어서, 분명 (국가) 일본은 온 힘을 기울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세이난 전쟁' 그리고 훗날 일본의 군대를 장악한 '군인칙유' '보병조전'의 본질을 바라보면, 역시나 그 모든것은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와 함께, 현실적 한계를 깨닫지 못한 역사 속 일본군의 모습이 여실이 보여진다. 그렇기에 구 일본군은 (결과론적으로) 만용의 군대, 광신적인 군대, 육탄의 군대로 불리우는 오명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허나, 이후 이 책을 통하여, (오늘날) 그와는 달리, 왜! 그 오명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혹은 그러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역사의 이유'를 탐구하는 것을 배제 한 체, 오롯이 '감성에 의지한 경멸'을 반복한다면...' 이에 그 질문에 있어서, 어리석음이라는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부분에 있어서, 이에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모두 나 스스로가 독서를 통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서, 드러낼 부분이라.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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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광인일기, 식인과 광기 - 권위와 관습적 읽기에서 벗어나 21세기에 다시 읽는 「광인일기」
이주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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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활동을 통해서, 또는 어느 작품군을 접하게 되어 가면서, 혹 나는 어떠한 것을 두고 '원작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에 솔직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첫 사례를 떠올려보자면,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이 있었다고 할까? 그도 그럴것이 비록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접한 것이였다해도, 그 이야기가 풀어가는 난해함은 상상을 초월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주장이나 리뷰, 그리고 후에 출판되어 나온 '해설서'등을 통하여, 그 나름의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을 거쳐 나아갔다.

이처럼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위의 장황한 이야기를 드러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책 또한 '해설서'와 다름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루쉰' 그리고 '광인일기'라는 작품세계에 대한 문학과 현실개념의 해석을 내놓아라! 그것도 "4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의 해석을 내놓아라!" 라는 조건이 만들어낸 괴물... 그야말로 근대 중국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가 있어야지만 만들어 질 수 있는 높은 난이도의 성과를 손에 쥐며, 나는 결과적으로 멘탈이 흔들리는 나름의 큰 충격을 받았다 고백한다.

도 그럴것이 나는 이 책을 읽는 순간에 있어도 작가 '루쉰'이라는 인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실제로 이 책을 받아든 목적 또한 루쉰의 작품세계를 접하고, 또 입문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째서 그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략집?을 먼저 손에 쥐고, 읽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는가? 각설하고, 결국 또 다른 소설과 이 책의 해석! 그 모든 것을 마주한 이후 새롭게 표현을 해보자면, 그 나름 루쉰의 광인일기는 흔히 생각하는 비판을 떠난, 보다 더 심층적인 고뇌와 그 해결책을 모색한 현실적인 가치관이였다... 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근대의 중국 그리고 '청나라'속의 중국이 서양의 놀이터로서 유린되어 가는 것을 마주하며, 이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양무운동'에 대한 본질은 단순히 '서양의 장점'을 흡수해야 한다는 표면적인 변화에서 멈추고만다. 그러나 '중국민족의 노예근성' '유약함' '굳은 정체성' '유학의 패혜'를 통렬하게 주장하며, 중국인 스스로가 지금의 '조국과 민족'을 깎아 내렸다면? 과연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이에 어디까지나 나의 감상에 불과하지만, 결과적으로 루쉰의 광인일기는 당시의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의 '과정'에 대한 가장 통렬한 자기반성이 드러난다. 때문에 그 내용에서 '식인'에 대한 단어와 그 현상에 대한 이야기 또한, 분명 독자들은 중국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식인의 모습을 같이 비추며, 그 단에 속에 녹아있는 가장 핵심적인 '무게'를 한번 느껴볼 필요도 있다.    식인! 이른바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이유!


혹여 그 속에서 흔히 '황건의 난'과 같은 상황을 떠올렸다면? 그야말로 대 기근속 최악의 환경 속에서만 일어났던 단면적인 비극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그렇다면 루쉰은 그것에 대한 분명한 부정을 거쳐 이른바 '중화가 계승한 어느 것'에 대한 대단히 비판적인 주장을 드러낼 것이다. 그야말로 전통속에서 굳어진 '폐악' 부모님이 아프면 손가락과 종아리살을 배어내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당해야만 했던 사고방식의 정착! 이에 다른 외국인 작가인 '펄벅'의 작품세계에서도 충.효.예라는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정신적인 가치관이 '현실'과 '상황'속에서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일그러질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오랜 봉건주의적 세상속에서 만들어진 충성과 굴종이 합치된 '최악의 사고방식'이 드리워진 이유를 탐구하며, 이에 아마도 작품 속의 '식인'또한 결국 식인종으로서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던! 존재를 드러내, 그 나름의 일침을 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지? 한 번 이 독서를 마무리하며, 나 나름대로의 정리를 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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