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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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책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은 분명 한 시절을 강타한 가장 강렬한 내용이기는 한가보다. 이처럼 저자 이영훈의 주장과 심적 마인드를 엿보고 또 비평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귀화 일본인 (호사카 유지)가 정면에 나섰다.

이때 책 속의 주제이자, 저자 스스로가 큰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던 문제! 이는 분명 과거 일본제국 차원의 '범죄' (인권유린) 라 볼 수 있는(인식 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강제징용으로 압축될 수 있는 징병과 강제노동... 그리고 최악의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종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문제는 비록 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여전히 풀리지 않은 응어리의 형태로 각 국가 속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강제징용의 문제는 폭넓게 국가와 민족간의 갈등까지 불러왔다. 때문에 최근 반일종족주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간의 갈등은 점차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내국인 끼리의 갈등으로서도 확산되며, 이를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심상치 않은 현상으로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에 저자는 최소한 이 현상의 과정이 '역사관의 충돌' (학설의 충돌)로서 이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저자는 이영훈의 '역사표현'을 여러가지 지적하면서, 그것이 결국 역사학이 아닌 이영훈과 그 일파?가 주장하는 친일성향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야말로 반일종족주의는 과거 일본제국과 군부 (대본영) 이 추구한 인권유린의 (조직적) 움직임을 부정하고, 이에 옛 조선민족은 그 행정아래서 나름의 이익울 추구했다는 일본 극우의 의식을 대변하는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을 더는 왜곡해서는 안 된다.

270 페이지

이처럼 강제노동을 '정당한 대가 속 노동'으로 종군 위안부를 '스스로 감내한 매춘활동'으로 정당화했지만... 과연 그 많은 주장들은 사실일까?

이에 저자는 그 정당화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옛 일본의 자료와 국내의 자료, 심지어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회고록과 증언을 토대로, 하나하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렇기에 이를 접하는 '나' 또한 문득 정작 중요한 본질을 잊고 논란에만 집중하지 않았는가? 하는 나름의 반성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일제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라 부르는 시대 속의 흐름에서, 강제징용과 종군위안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설사 그것이 구 일본제국과 옛 조선민족 사이에서 어쩌한 관계를 가졌는가?에 대해서도 분명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이를 깊이 공부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했다! 안했다! 있었다! 없었다! 와 같은 차원의 비평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문화권과 민족성을 지닌 타 민족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2등 국민과 '조센징'의 가치를 낳은 일본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비평, 그리고 더 나아가 대법원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그 해석과 역사적 의의를 이해하는게 더욱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폭넓게 생각하여,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 속 인식가운데 일제 강점기는 곧 '식민지배의 불법성' 을 바탕으로 한다는 공유의식이 (지금도) 지배적이다. 때문에 한낱 개인의 (위안부들의) 기억과 주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리는 이유 또한 옛 일본이 자행한 폭력과 불법 그리고 전쟁범죄에 대한 무수한 '역사의'(연구)를 진행시킨 사실 등을 국민의 입장에서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반일종족주의는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정말로 두렵고도 우려스러운 일이였다. 그래서일까? 이때 나름 역사의 보충이자, 복습과도 같은 이 책의 주장 (또는 정리)가 무척이나 고맙고 또 의미있는 것으로도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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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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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뉴스를 접하게 되었을때, 이제 코로나19의 악영향은 전세계로 퍼져나간 심각한 사건으로서 이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특히 저자의 조국 이탈리아는 그 최악의 피해를 거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름 정석과는 동떨어진! (국민들의) 안이한 인식으로 인하여 그 불행을 키웠다는 그다지 좋지 못한 인식으로서도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겠다.

실제로 유튜브에 올라온 '이탈리아 델리아 시장'의 일침은 보다 폭 넓은 사람들에게 현 이탈리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42 페이지

이에 적어도 '저자'의 입장... 그것도 물리학자이자, 지성인(소설가)라는 입장에 서지 않은 '사람'으로서 쓴 이 책속의 내용에서도 보여지듯이 아마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또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자, 일원으로서 활약하지 못한다 함은 정말로 괴로운 현실로서 다가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대중적으로 "이게 다 누구의 탓이냐!" 는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책임론에 입각해 원인을 파해치려고만 한다면, 결국 그 끝에는 발생지에 대한 비난의 여론 뿐만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피어나는 끝없는 분쟁과 혐오의 감정만이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인지함으로서 생겨나는 분노, 공포, 불안, 불신... 물론 이러한 감정 또한 인간과 대중이 쉽게 공유하고 전파하는 일종의 당연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어려운 시대에 있어서, 위의 감정이 폭발하여 생겨 날 수 있는 수 많은 가능성 속에서, 과연 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에 그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코로나19는 이미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에 현대인으로서, 그리고 곧 야만으로 추락하기 일쑤였던 옛 역사 속의 어리석음을 '기억하는 지성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극복을 위해서, 스스로가 인식하고 행동하고 또 과거의 일상과는 '다른 것'을 요구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언젠가 이 바이러스(코로나19)는 재난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 일상과도 동떨어질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언제쯤일지, 그리고 그때까지 국가와 사회 개인이 이 비상식적인 생활을 얼마만큼 견딜 수 있을지는 그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어쩌면 이 책이 주장하는 그 모든것은 인내와 희생이라는 단어로 압축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현실에서 그것을 감내하지 않는 나날만이 늘어난다면? 만약 그러한 인식과 행동이 늘어난다면... 그 결과는 분명 극복과는 동떨어진 더욱더 큰 재난 속에서 고통받는 나날이 늘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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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
마르크 오제 지음, 서희정 옮김 / 황소걸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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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것이 과연 스스로 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이에 대하여 자신있게 '네' 라고 답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처럼 이 책 속에서도 좀 더 특별하고자 하는 소비와 욕구... 그 밖의 다양한 서비스를 즐기려는 삶의 선택과는 달리, 좀더 감성적이고 또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시끔 그 행복을 인식함으로 인해서, 크게 불만족스러운 일상을 되돌아보며, 개선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이에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최선을 다해 독자들을 이끌어내려 노력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그대로 행복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과 인식에 따라서도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한 조건이 각각 다른 만큼 아쉽게도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절실히 와 닿지 않는 '좋은 문장'에 불과하다는 감상을 품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저 너머 궤도 밖에 올라 지구를 마주한 우주비행사가 받은 감동과 깨달음, 그야말로 이 아름다운 행성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고, 결국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그때! 이에 그 발버둥치는 인간의 입장에 서서 듣게 된 '우주의 이야기'는 과연 얼마만큼의 큰 울림으로 다가올까? 물론 그러한 심오한 세계관과는 다를지라도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행복과 삶 그리고 그것의 끝을 향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복잡미묘하다. 아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 할 수가 없다고 정의하는 것이 올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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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보물 고대 그리스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2
데이비드 마이클 스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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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고대 그리스가 남긴 '유산'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이에 아마 많은 사람들은 정치와 철학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논할수도 있겠다. 물론! 좀더 다양한 생각을 하다보면,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거대한 대리석의 건축물과 함께, 그 문명을 지탱했던 웅장한 갤리선에 대한 것들도 떠오르겠지만, 그래도 역시나 이처럼 책 속에 드러난 많은 보물(유물)들을 마주하다보면, 점점 나 스스로가 때때로 얼마나 편협한 지식을 쌓아왔는가에 대한 아쉬운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문명이 낳은 보물들을 논하는데 있어서, 이 책은 단순히 그 문명의 '개성' (독창성)만을 주목하지 않는다. 실제로 구석기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방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롯이 저자의 눈높이에 따르면 유골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물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상을 증명 할 수 있는 모든 유산들은 모두 고고학에 있어서 귀중한 보물로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은 유물의 크기를 가늠하게끔 친절한 그림을 삽입했다.

때문에 이 책 역시 그 가치관에 따라, 그 각각의 유산에 대한 기능과 가치를 설명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의 박물관을 찾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세계적으로 고대 그리스가 가진 매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가? 초기 민주주의 문명,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화를 남긴 문명, 돌 밖에 존재하지 못한 곳에서 피어난 찬란한 해상문명, 그리고 가장 유명한 철학과 철학가를 낳은 문화와 학문의 문명... 그 다양한 입문의 과정을 거쳐 다가간 '책 속의 박물관에서' 과연 저마다의 독자들은 이 보물들과 저자의 설명을 접하며, 그 어떠한 감상을 받게 될까?

문화의 생활과, 풍요, 영광을 증명하는 물건! 이에 나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이 역사의 가치를 알아가며 생겨난 감상인 것인지, 아니면 고대 그리스가 지닌 남다른 개성을 발견하면서 품은 감상인지는 지금도 선듯 정리하기 어렵다. 다만! 좀더 인간과 그 삶의 방식을 알아가면서 느끼는 어느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겉보기에 수수하거나, 화려하거나...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삶 어딘가에 필요했기에, 만들어지고 또 남아버린 것들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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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소녀를 구하는 자 - Goodbye to Fate
니시노 료 지음, 후지 초코 그림, 정은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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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이러한 형태의 경소설 (라이트노벨)을 접하고 있으면 소위 '이세계물'(이세계 용사물)이라는 장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이에 글 속의 본질을 떠올려보자면, 소설을 읽는 독자층...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현 시대 속에서 쉽게 손에넣지 못하는 것! 일종의 상상과 이상을 충족하기 위한 하나의 대리만족의 것으로서 정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많은 소설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거의) 어느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신들(또는 상위의 어느 존재)의 사랑을 받아 보다 월등한 능력을 부여받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지닌 장점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는 세상으로 건너가, 그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한 경의와 보상을 받는 것이다.

'특별한 존재가 완성되어가는 과정' 어쩌면 독자들은 단순히 그것 하나를 음미하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글을 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현실의 각박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원하는 그 현상! 또는 유행!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도 그러한 가치를 찿으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말해서 독자들은 그 목적과는 다른 매우 무거운 분위기의 글 속에서 당황 할 지도 모르겠다.

위와 아래. 하늘과 땅.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의 인생과 입장을 드러내는 구도

230쪽

감히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겠지만 단 하나 소설 속 '전설의 용사' '선택받은 영웅' '사랑받는 자'의 자리를 차지 한 것은 주인공이 아니다. 물론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용사인) 상대에 대한 우정 또는 신뢰에 금이 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용사와 친구 사이의 문제가 아닌, 그 관계를 지켜보며 멋대로 재단하는 주변의 인물과 환경이다.

그야말로 주인공 사이와의 인연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그들을 구분지었고, 또 상.하관계를 강요한다. 이에 결국 비주류로서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끝내 퇴출당한자의 눈 앞에 비추어진 '세상의 악' 아니... 정확하게 정의하여 '세계관에 이용당했을 뿐인 가녀린 존재'를 만났을때, 과연 그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될까? 결국 나의 감상에 따르면 이 소설은 그 세계관의 진면모, 그리고 그 속에서 상처받은 비주류들의 아픔과 내면을 표현한 '꽤나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의 것이였다.

용사에게 자신이 믿는 정의를 표현할 수 있게 된 주인공

이처럼 이 소설은 악을 멸하는 정의의 용사(모험가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한 평범한 자의 여정을 표현한 소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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