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힘 - 연결의 시대,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세계 경제
프레드 P. 혹버그 지음, 최지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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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과 문명은 '자급자족' 을 벗어나 교류라는 것을 해왔다. 때문에 그 교류의 흐름 가운데서 각각의 문명은 서로간의 단점. 예를 들어 부족한 자원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명에 대한 발전의 불균형을 해소하며, 이른바 상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지만, 반대로 그 교류의 확산 가운데서 함께 터져나온 갈등... 흔히 불공정이 만들어낸 '피의 역사'를 써온 기억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무역이란 단순히 물자와 재화의 흐름만이 아닌 보다 복합적인 교류를 낳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며, 이에 보다 안정적이고, 발전지향적이며, 평화적인 (또는 매우 이상적인) 무역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끝임없이 추구하고 또 정립하려는 노력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게 했다. 때문에 오늘날의 '대세'는 바로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자, 나름(이 시대속의)의 해답이라 이해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 해답이 여느 다른 영역과 결단에 의하여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러므로 무역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가치, 이에 어쩌면 오늘날까지 발전한 '보이는 무역'과 '보이지 않는 무역'의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분명 이 책은 나름 어려운 내용으로서 독자들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책의 표지(또는 서문)을 들여다보면, 흔히 세계화 속에서 구축된 무역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책으로서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다. 물론 위의 정의도 크게 틀린것은 아니지만, 특히 저자는 세계속의 미국경제, 그리고 최근 일어난 많은 경제정책의 변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결단에 의하여 변화한 흐름의 주체인 '보호무역의 부상'에 대단히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 책은 최근 미국무역의 변화 그리고 그 결과가 낳을 저자의 우려섞인 의견과 주장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정치의 영역에서 (쉽게) 다가서는 보호무역의 정의는 곧 잘 '우리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대의 앞에 빛을 발하지만 과연 그 효율성은 어떠할까? 실제로 오늘날의 미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를 마주하였다. 흔히 고집스럽게 고립적이며, 또한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세계의 하청업체가 불리우던 중국이 이제 그 과거를 뛰어넘어 미국에 위협적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외적 경제정책의 주요한 부분은 '중국을 배제한 공급사슬 구축' (또는 자국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때문에 흔히 무역전쟁이라 표현되는 (보호)정책을 통해 회손되어진 자유무역의 흐름은 결국 의도된 미국 경제의 이익, 그리고 미국내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시도였지만, 막상 그 결과를 받아보면 수 많은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정리하자면 최근의 미국은 스스로가 지키려는 산업을 지켜냈다. 그러나 미국의 철강산업을 지켜내는 와중에 다른 종류의 제조업, 항만, 서비스 등에 큰 파격을 입었다면? 역시 그것 또한 정책의 실행가운데 발생한 문제(또는 실패)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경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경쟁자가 타격을 입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항구에서 영국 선박을 돌려보내거나 중국산 철강을 수입 금지하는 식으로 미국 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던 단순한 시대는 끝이 났다.

170쪽

이처럼 이제 세계화 그리고 소비사회가 구축되어진 세상에서의 보호무역은 도리어 경제와 사회 등에 큰 파격을 입힌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글로벌 벨류체인의 형성과정은 어느 특정 국가의 산업 육성과 (사실상)이익의 독점을 위해서 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합한 또 다른 성장과 이익을 창출하려는 그룹화의 결실이다. 그러나 프럼프 행정부는 이를 미국의 안정, 미국의 보안, 미국의 패권을 방패삼아 훼손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부진하고 낙후된 산업의 육성을 위해서 필요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수 많은 해외진출을 막고 국내에 '공장을 지을 것을' 권한다. 이에 저자는 오늘날 정부가 해야 할 역활, 그리고 앞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표현에서 이 미국의 선택이 큰 잘못이라 정의하려고 한다.

오늘날 국가가 행하여야 하는 역활은 '광부가 끝까지 광부의 역활을 다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제 더이상 석탄을 쓰지 않는다면, 이제 광부를 보다 새로운 산업에 적응하게 하고, 또 그에 따르는 교육과 환경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이 더 건설적인 선택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에 산업과 지역등의 발전에 국가의 행정력(또는 지원)이 얼마나 책임을 가져야하는가? 에 대하여는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단 하나 확고한 것은 이제 완벽하게 자국에 기댄 제품의 생산. 소비가 이루어질 수 없고, 더욱이 세계화에 반하는 제품과 컨텐츠 또한 존재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자행된 무역전쟁과 경제보복의 선택의 과정에는 흔히 경제보다는 어느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카드이자 수단으로서 전락한 모습 또한 보여진다. 이때 그 과정을 거친 이후, 과연 그것이 목적 수행과는 달리 (경제와 산업 등에)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각각의 국민의 감정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지, 더욱이 자유무역의 흐름에 얼마만큼의 악영향을 미쳤는지 진단하여 본다면, 결국 무역이 미친 영향력이란 것은 흔히 생각하는 영역보다 더욱 더 크고 또 치명적이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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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이문열 엮음, 김석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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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에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인간이라면 보다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군인이나 소방관과 같은 특정한 (직업) 사명이 부여됨으로서 발생하는 죽음의 형태는 일종의 (국가)공동체의 유지를 목표로 하기에, 결국엔 개인적인 죽음을 넘어선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 밖에도 어느 개인의 죽음에 있어서도, 그 사람의 지위나 업적 영향력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후세의 평가 등이 으레 뒤따르듯이 타인의 기억 뿐만이 아닌 역사적인 기록에 남으며, 흔히 무(無)로 스러진다 생각되는 죽음의 본질을 떠나, 그 흔적이 남게 되는 것도 어쩌면 이 (문명)사회가 진행됨으로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라 생각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적인 죽음의 형태와는 다르게, 문학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도 죽음은 곧 잘 활용되는 인기있는(?) 주제이다. 그도 그럴것이 인간의 삶의 형태를 그리는 소설 등에 있어서, 어쩌면 보다 강한 감정과 갈등, 그리고 그 끝을 장식하는 가장 적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명체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도 그려진 것과 같이, 인간은 스스로 '삶의 길이냐! 죽음의 길이냐!' 을 선택하고 또 그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민 할 수 있는 감정과 지성을 지닌 존재이다.

때문에 문학에서는 앞서 언급한 현실과 '사회적 인간'으로서 드러나는 죽음에 대한 현상을 떠나, 보다 인간 내면에서 끌어올려 질 수 있는 것,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의 모습을 그리며, 저자 나름의 인간과 그 끝을 통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틀림없이 이 선집을 엮은 의도는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지만, 어쩌면 실제적인 효용은 교양으로 접근하는 쪽에 더 높게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서문

이처럼 이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른바 세상에 명작이라 불리우는 문학작품을 소개하며, 소위 '문학은 죽음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에 대한 다양한 샘플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러한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어느 환경이 만들어낸 죽음과, 내면의 의지가 만들어낸 죽음, 더욱이 죽음 그 자체를 두고 인식되는 끔찍함과 무력감 그리고 어느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감정 이모저모를 보여주면서, 이에 결국 죽음에 대한 문학의 접근 또한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 책을 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또한 (이미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모습의 죽음을 접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실제로 이미 오래전에 쓰여진 탓에 또 새롭게 '개정되면서' 저자는 옛 죽음과 오늘날의 죽음... 그야말로 죽음의 가치를 오롯이 느끼게 하는 문학의 가치를 재정립하며, 보다 받아들이고 또 내려놓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지었다. 예를 들어 저자 스스로가 빼낸 우국(미시마 유키오)의 내용을 접하며, 이에 문학의 가능성과 예술성 그리고 지성의 영역에서 이를 가치있다 여기는 것은 (분명)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때문에 비록 죽음이라는 한정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주제에 대한 많은 시대적 해석과 분석 그리고 묘사가 있음을 드러내었다. 그렇기에 이때 한 사람의 현대인이자, 지성을 추구하려는 자로서 결국 그 묘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는지... 이에 그 나름의 눈을 갈고닦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쓰여지고 또 읽혀지는 이유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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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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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흔히 동양철학이라 분류하는 '성리학'에 대하여 어쩌면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이에 고루하고 또 낮선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다르게 표현하자면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의 성리학이란 어떠한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면... 결국 이를 어렵고 또 '잘 모르겠다' 할 현대인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동양(또는 대한민국 속의)의 사회와 또 개인의 품성에 영향을미치는 도적적 관점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큰 역활을 하는 것이 바로 유학이라 불리우는 이 책 속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능력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일반적인 인식에서도 이 유가의 철학은 이후 (제목의) 주자학과 양명학 등으로 구분되어, 하늘의 도리와 인간의 근본을 연구하고, 정의하는 과정에 있어서 일종의 세분화가 진행되어 왔다(또는 발전되어 왔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감상 중 하나다.

일본 주자학이 명분론, 특히 군신의 대의로서의 명분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서, 중국 주자학에서는 그런 의미의 명분론이 그렇게까지 독점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결함이다.

333쪽

이처럼 신 유학으로 분류되는 주자학이 그 발상지인 중국을 넘어, 저자의 조국인 일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하였는가? 에 대하여, 저자는 나름의 연구와 해석을 드러냄과 동시에, 특히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세분화되어가는 와중에서 그 차이점은 어떠한 것에서 드러나게 되는가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도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일까? 때문에 나는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다만! 유학의 발전사에 있어서, 초기 자연철학의 발전과정과 함께, 이 유학 또한 세상의 본질을 파악함과 동시에, 이후 등장하는 불교와 같은 다른 형태의 철학적 개념과도 충돌함으로서, 결국 이에 어떠한 것을 배척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서 발전한 것이 바로 위 두개의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데는 나름 이해를 했다고 본다.

이때 나는 이 내용을 바라보면서 그 두개의 차이점을 느낀다. 예를 들어 하늘과 땅. 이에 만물의 근원과 인간 내면의 원리를 추구하는 접근에 있어서, 분명 이 두개의 학문은 (전통적) 유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끝없는 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방법과, 양심과 도덕성에 기초해 실질적 실현을 이루려는 노력의 차이는 결국 최고와 최선에서 출발하려는 (다른) 시각차를 보여주면서, 이에 서로의 한계(논리의 모순점)에 대한 비판과 보완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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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군주론 - 국민주권시대의 제왕학
양선희 지음 / 독서일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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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란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 '리더란 어떠한 개념과 관점을 지녀야 하는 존재인가' 이처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지니는 세상을 이끄는 존재란 보다 (당시)현실의 한계, 그리고 현실이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는 군주로서, 보다 통치의 기술이 강조되어진 책이라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동양의 전통적인 군주론... 아니 제왕학으로 불리우는 통치와 기술의 내용은 분명 앞서 언급한 (서양)르네상스 시대의 통치와 그 성격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굳이 오늘날 이 둘 가운데서 '리더로서 필요한 자질'을 배워야 한다면? 과연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것을 꼽을까? 이에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학창시절부터 곧잘 권해지고 또 '세계의 리더'로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으로는 흔히 마키아벨리의 책이 압도적이였다. 그러나 이미 세상의 가치는 변화했고, 또 오늘날 필요로 하는 리더의 자질또한 변화한 시점에서, 어쩌면 (지금은) 저자와 같은 또 다른 형태의 질문과 접근을 해보는 것도 나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다면 '제왕이 없는 사회'에서 제왕학의 가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할까? 어쩌면 저자와 독자 모두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답을 구하여야 한다고 생각이 된다. 과거 제왕으로서의 마인드, 그리고 제왕으로서 조직과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론은 이제 더이상 현실에 부합하기 힘든 옛 가치가 되었기에, 이에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가?' 그리고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세상에서 그 주체가 권력을 어떠한 것으로 이해하고 또 활용하려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개념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처럼 책 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 지위에서 행하는 제왕으로서의 미덕(또는 개념)은 결국 국민 하나하나가 국민의 주체라는 것을 이해함으로서 출발한다. 때문에 이에 개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의 실행이란, 첫째로 국가공동체에 큰 관심을 가지고, 또 둘째로는 권력이 위임되는 과정에 참여하고, 진단하고, 감시함으로서, 이후 권력의 남용과 정당성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동양의 제왕학은 먼저 능력있는자, 자질이 있는자를 선발하는 능력과 방법론에서 멈추지 않고, '정치적 인간'의 심리, 욕망, 행동의 까닭을 분석하게 함으로서, 소위 탐관과 간자(간악한 사람) 을 구분할 수 있는 나름의 척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고대 제왕학에서 군주에게 권하는 처세는 '무위'다. 제대로 일할 신하들을 잘 뽑아서 적재적소에 앉혀놓고 그들의 일을 감시하고, 잘 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주는 일. 그것이 왕의 일이였다.

6쪽

물론! 그 척도에는 소위 (고대)중국의 통치술인 '무위'의 개념이 짙게 깔려있는 점은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혼란한 세상, 매번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 그리고 부여된 권력 앞에서 쉽게 훼손되고 위협 받을 수 있는 국가.사회의 의의... 이 모든것을 바로잡는 쪽이 진정 제왕이다. 그리고 제왕이란 그 바로잡음을 무위의 도(개념)에 바탕을 두고, 이를 술(방법)로서 행하는 자이기도 하다.

이에 결국 그 고대의 사상으로 비추어진 현실, 그리고 사람들과 '권력자'의 모습이 이 사상의 렌즈로 비추어 보았을때 어떠한 형태를 드러낼지에 대하여는 결국 독자 스스로가 한비자에 대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려놓는가에 대한 뚜렷한 (지식과) 개념을 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상에 정직하게 살아가고, 욕심없이 살아가고, 악인이 벌을 받는 것이 상식이라 하지만... 결국(대한민국에서) 이를 목표로 인식하고, 또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와 정의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은 분명 앞선 동양의 사상이 그 큰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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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리커버 에디션) - 까칠한 글쟁이의 달콤쌉싸름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1
빌 브라이슨 지음, 김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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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인터넷 시대' 그리고 그로 인하여 역사 속에서의 브리튼과 최신의 영국에 대한 뉴스 등 보다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이 책은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최근의 대세조차도 따르지 않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다. 그도 그럴것이 책 속의 주요한 내용 등이 저자 빌 브라이슨의 개인적인 체험과 이해에 기초하고 있기에, 결국 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정보와 소위 '꿀팁'을 바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이때 그 철 지난(유행이 지난) '여행기'에 개성을 더하고, 또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 이야기 등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쌓아온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 빌 브라이슨의 능력이 지금고 빛을 발하고 있다는 증거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평가에 따르면 이 책은 '영국의 영혼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야말로 어느 여행기행문 이나, 여행정보지의 역활에 머무르는 것에서 벗어나, 나름 '특별한 감각'으로 경험한 사실을 드러냄으로서 결국​ 영국 속의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풍경의 모든 것이 저자의 관찰력과 손 끝 아래서 수려하게? 펼쳐진다는 것이 그 장점이라 불리우는 것일터다.

때문에 각 지방을 여행하며 만난 모든것! 소위 인색하기 짝이 없는 여관주인부터, 우연히 말을 트게 된 열차 마니아에 좁디 좁은 주차타워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교통)할인제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저자를 화나게하고, 지루하게하며, 어쩌면 바가지를 씌우는 등의 모든 경험을 선사한 것에 대하여, 그는 나름의 감각을 동원해 그것을 '유머스럽게 정리하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그가 경험한 영국은 좁디 좁은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역사의 지층에 골머리를 썩히고, 또 그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도 개성없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넘쳐난다. 특히! 영국만의 장점인 돌담의 매력?에 무감각해진 사람들과 오랜 계층의 특권(왕실과 귀족계급)에도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축구에는 오랜 호전성을 드러내는지? 이는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어떨 때는 아주 화가 치밀어 올라 미치겠다. 영국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져 마치 공원 같은 전원 풍경을 누리며 살고 있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런데도 분통이터지도록 그 사실에 대하여 잘 모른다. 한 세대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울타리 담장 대부분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248쪽

허나 결국 그는 그 아이러니와 시대의 변화가 가져다준 수 많은 모순을 안고 있는 영국에 애정을 표한다. 더욱이 스스로가 여행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제2의 조국으로서 영국을 선택한 이유에 있어서도, (나는) 단순히 미국과 닮은 구석이 있어서도 아니고, 또 현재의 영국이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 이에 본래 빌 브라이슨의 (다른)저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스스로가 겪은 삶 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을 표출하는 사람이기에, 어쩌면 영국은 그의 호기심을 채워줄 많은 요소들을 품은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서 눈에 들었을 수도 있다. 때문에 나 또한 역사, 문학, 언어... 그리고 영국 특유의 자연과 농촌(촌락)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단순한 정석이나 지식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재미있는 글을 접할 생각이 있다면? 이 빌 브라이슨의 글을 한번쯤 권할 생각이 있다. 그야말로 한 명의 관찰자?를 사로잡은 영국의 매력, 이에 대하여 그 애정의 원천을 발견하는 시도를 통해서도, 어쩌면 이미 언급한 영국의 영혼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주어지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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