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명작을 통해 답을 얻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구와바라 다케오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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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문학'이란 단어를 통해 이에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고자 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리고 결국 (저마다) 그 이미지를 현실화 하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곧 독서의 성향으로 드러나게 된다면? 이처럼 앞서 언급한 주장에 기대어 생각해보면, 과거 1950년대에 쓰여진 이 논평 뿐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까지의 현상에 비추어 '독서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대한 나름이 기준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론적 지식의 기반이 될 만한 것, 즉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지식을 공급해주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중략- 문학에 대한 실감적 지식은 흥미나 관심을 매개로 얻어진 것이므로 이른바 즐거운 지식이며 동시에 행동을 내포한 지식이다.

36.78쪽

그렇기에 이에 그러한 기준으로 생각보면 적어도 '나' 개인의 독서는 문학에 흥미를 가지고 또 이를 마주하려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과거를 떠나 오늘날의 나 스스로가 하는 독서의 형태는 아마추어적인 학문을 다듬는 것에 가깝다. 물론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오래전의 명저나 18~19세기들 통들어 (무르익은)계몽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같은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작품만을 파고드는 것이 올바른 문학적 접근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반대로 현대의 대중들이 문학을 접하는 모습과 그 현상과 함께, 나 스스로가 진단한 문학의 접근법에 있어서, 어쩌면 이 책은 그 접점에서 진정 마주해야 하는 어느 것에 대한 선배로서의 조언이 녹아있다는 감상을 받는다.

비단 문학서만이 아니라 일본만큼 독서의 난맥상이 심각한 나라도 드물다. 독서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국민이지만,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수많은 책을 읽어가고 있을 뿐 정작 국민적 교양의 기반을 둔 '공통의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62쪽

때문에 비록 타국의 문화를 빌어 온다 하여도, 그 전체적인 주장과 진단속 본질을 파고들다 보면 의외로 독서라는 그 행위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과거 '신의 물방울'을 통해 와인의 소비가 증가했을때, 이에 정직하게 스스로 와인을 즐기려는 사람보다는 보다 소믈리에(전문가) 에 가까운 지식이나 행동 그리고 예의범절에 속박되어 결국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진 사람들이 많았다. ​

이처럼 독서와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드러난다. 그 개인 스스로 문학에 대한 높은 틀을 잡고, 보다 뛰어난 번역과 완역을 고집하고, 더 나아가 보다 그 나라의 언어로 접하는 것이 좋다며 원작를 권장하는 것은 적어도 저자의 입장에 있어선 '문학'이 아닌 '학문'의 영역에 속한다. 그야말로 '톨스토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겠다며 러시아어 학원으로 달려가고, 전문가의 해석에 매달리고, 스스로 톨스토이의 문학적 DNA를 우겨넣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어리석고 불필요하며 또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다만 이 열정의 권장과 실행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 대중적으로 문학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는 현상, 그리고 어마추어들이 모여 서로가 이해하는 문학의 흥미를 공유하서나 토론하는 장이 활성화 된다면, 그것이 비로소 '저자'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문학의 대중화, 그리고 문학의 발전적 모습의 완성이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문학에는 특별함이 없어야 한다. 특히 문학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그것을 특별하게 한다면, 저자는 어쩌면 그 분위기 속의 '동경'에 대하여 크게 비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 문학 교양에서 '공통적인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굳이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다.

178쪽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실제 사회와 국민의 삶에 밑거름으로 자리잡을 '국민적 교양'을 위하여 문학이 해야 할 방향성에 대한 나름의 주장이라할 수 있겠다. 이에 앞서 언급한 권장과 토론, 그리고 과거 (전쟁중의 일본과 한국의 군부 독재 속) 국가의 영향력 아래서 이루어진 문학의 통제와 검열의 문제점을 통틀어, 가장 올바른 형태의 문학의 전파에는 어떠한 방법이 있는지, 그리고 어느 특정 집단의 교양이 아닌 '모두의 교양'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형성되어야 하는지, 이에 독자의 입장에서 서서 그리고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서, 한번쯤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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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역사 - 부자의 탄생과 몰락에서 배우는 투자 전략
최종훈 지음 / 피톤치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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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접해 온 부자가 되는 방법과 그 노하우에 대한 정보를 다룬 책, 그리고 더 나아가 부와 권력의 접점 속에서 큰 성장을 이루거나 또는 비참한 몰락을 맞이한 역사에 대한 책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그 부자라는 단어 속에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에 대한 바램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에 대한 상황과 (개인의)역할 그리고 사회의 인식이 목표로 하는 일종의 '공동의 의식' 또한 녹아들어있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올 때, 외부의 지지를 받을 때 생겨난다.

55쪽

그렇기에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개인의 '부의 축척'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되면, 오래전 전근대적 인물에서부터 현대의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분명 오늘날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도덕적) 품격'과 어울리는 인물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기회주의적인 시도와 함께 이른바 '정의롭지 못한 축척'에 대한 사실들을 정당화 하거나, 또는 단순히 부자의 방정식?을 되풀이하라는 내용이였다면, 어쩌면 이 책은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공요롭게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청렴'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정도의 부정과 관행이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보를 독점하고, 자원을 마련하고, 최대한의 기회를 활용하려 한 그 (부의)시도에 있어서, 결국 그들이 저지른 잘못의 인식과 그 처벌을 주장하는 (사회의)기로에는 이미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한 부자들의 예와 함께 결국 사회적 해악을 (직접) 겪은 인류가 각각의 법률과 도덕적 인식을 통해 이를 금지하려 노력한 (진행)과정이 있다.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마주해야 할 주제는 위의 노하우와 기회주의와는 다른 부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장점, 즉 과정에서 드러난 어려움과, 환경에 절망하지 않았던 가치관, 이른바 수용과 극복 그리고 행동과 책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진행하는 지혜로움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과거 권력자들과 부자뿐 만이 아니라, 어쩌면 사회 전체가 잘 사는 것에는 '타인의 것을 빼앗는 것' 이 사회악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정당화 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존경받거나 또는 지속적으로 부자의 지위를 누리기 위한 과정에서 단순히 개인의 천재적 자질과 능력 그리고 노력만이 요구되던 때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아니... 적어도 오늘날의 부자들은 부를 긁어모으는 능력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 지위와 가치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대한 일종의 의무를 다하고 또 이를 드러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바로 그러한 부자, 진정으로 환영받는 부자가 되기 위한 내용에 대하여, 분명 이 책은 매우 친절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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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 - 모네와 고흐를 사로잡은 일본의 판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쿠보 준이치 지음, 이연식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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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근대화가 진행되어가는 와중 그리고 이에 함께 목표로 했던 '서양화' 등은 분명 과거의 일본과 근.현대의 일본의 모습을 구분짓는 하나의 분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에 (현대)일본인 스스로가 자책한 "스스로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것을 버리려고 했던 시대"에 있어서, 옛 일본의 신분과 생활방식 그리고 수 많은 문화가 쇠퇴하고 또 사라져갔지만, 적어도 이 책의 주제인 우키요에는 반대로 당시 서양에 전해지며 가치를 인정받고, 또 나름 체계적인 정리 과정(재평가)을 거쳐 일본에 되돌아온 문화(예술)로서, 오늘날에도 일본이라는 가장 개성적인 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에도의 유키요에 판화는 축척된 전통을 바탕으로 유명 화가들이 여럿 활동했던 데다 일본 최대의 도시의 풍속과 경관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는 이점 때문에 '아즈마니시키에' 라고도 불리우며 에도의 특산품으로 여겨졌다.

193쪽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에는 먼저 인상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우키요에의 이미지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조금 더 들어가다 보면, 이른바 우키요에는 단순한 미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과거 일본과 일본인들의 삶에 필요한 예술과 오락 그리고 문화의 영역에도 뿌리깊게 관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또 그에 대한 폭넓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적인 부분이 많았다.

(중략) 개성을 과장하면서도 미화라는 조작을 잊지 않는 야큐샤 니가오에의 기본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였는가에 대해서는 도슈샤이 샤라쿠사와 우타가와 도요쿠니의 작품을 비교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67쪽

실제로 오늘날의 인식하에 생각해보면, 우키요에는 유명배우의 브로마이드이자, 어느 장소의 풍경, 그리고 당시 사회의 화제거리를 담은 뉴스의 삽화와 같은 정보를 담은 '팔 물건'에 가깝다. 그야말로 어느 작가와 이미지 등의 인기에 힘입어 대중사회에 (비교적 싼 사격에)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더욱이 지방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기념품이 됨으로서 이후 그 독창적인 이미지는 곧 일본 판화의 개성으로서 자리잡아 발전을 거듭했다.

이처럼 우키요에의 사전적 정의는 '에도시대 말기의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화' 이다. 때문에 이에 그 가치를 알아간다는 것은 자연스레 옛 일본의 가장 보편적이였던 어느 문화의 면면을 살피고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고도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오늘날 일본의 사극 등에서 보여지는 대도시의 에도, 그리고 현대와는 다른 시대의 마인드에도 불구하고, 보다 밀집된 사회의 구성에서 만들어진 어느 소비 문화의 한 면면을 알아가는 과정... 이처럼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분명 낮선 문화였음이 틀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서양의 명화(그리고 명성) 와는 다른 보다 부담이 되지 않는 편안함과 적은 부담감으로 가볍게 감상하고 또 공부하는 소재거리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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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거울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유성애 지음 / 미진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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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강연을 접하다보면, (어쩌면) 그 와중 더 나은 삶과 사회의 방향성을 알게 되는 것 같은 감상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학자들이 제시하는 그 방향성에는 보다 지성적인 인간의 모습과, 더욱 더 진보하는 인류사회의 긍정적인 모습이 비추어지지만, 의외로 이를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스스로가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되어야겠다는 실행에 있어서는 그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반대로 이러한 '철학'을 전하는 철학자들의 입장에 있어서도 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하나의 의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이미지를 빌어, 철학의 진리와 탐구 그리고 인물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그 해답을 표현하려 한다.

17세기 그림 속 철학자는 직업인이 아니다. 철학자는 진실 속 진리를 찾는 사람, 하나의 존재양식이다. 자기와 끝없이 갈등하고 화해를 모색할 때 비로소 도달하는 순간의 인간이다.

326쪽

이처럼 책 속의 내용은 이를 마주하는 독자들에 대한 물음 뿐만이 아니라, 철학을 탐구하는 저자 스스로에 대한 물음도 함께 한다는 감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날 대중들이 원하는 철학의 현 주소, 그리고 위대한 선배? 들이 정립한 철학의 세계에 머물러 더 이상의 전진을 이루지 못하는 학문은 어쩌면 이 21세기의 세상 속에서 동떨어진 그들만의 아크로폴리스를 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오롯이 철학의 나태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흔히 물질사회로 불리우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그나마 철학이 살아남는 방법은 탐구가 아닌 해법을 전하는 것이였다. 인간이 보다 행복하게 살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인간과 인격의 마인드를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에 있어서 철학이 좀더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강연의 주제에 분명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저자가 표현하는 철학과 진리의 길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어쩌면 철학은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여 드높아지는 것이 아닌, 점차 변화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또 이에 대한 최선의 개선점을 발견하는 학문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미지의 미래에 대란 기대감을 동반한 대비가 가능해진 '사치스러운' 현대사회 속에서, 과거 철학의 공허와 허무 그리고 덧없는 끝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속된말로 옛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때문에 현대의 철학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현대의 최선을 주문하는 학문에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분명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화수준을 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회와 인류가 무한한 활력과 도전으로 끝끝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 오만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지혜를 진리라 착각한다. 그리고 현대의 풍요를 보장하는 시스템에 '복종하려한다'. 이에 오늘날의 철학이 할 일은 (가금씩) 그 인간의 한계와 겸허함을 환기시키는... 그리고 그로 인하여 개개인에게 보다 무지와 오만을 깨닫고 고뇌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나름의 역활 또한 수행해야 한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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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식당 개성밥상 - 고려의 맛과 멋이 담긴
정혜경 지음 / 들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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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밥상' 이처럼 책의 제목을 통해 생각해보면, 이 책은 개성의 음식, 즉 오랜 북한의 음식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차차 내용을 들여다 보게 되면, 저자는 그보다 더 오래전의 문화, 즉 고려시대부터 발전하여 이어져 온 것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조선과 강점기, 그리고 분단으로 인하여 좀처럼 접하거나 (대한민국의 문화 속) 계승되어지지 못한 또 다른 한반도의 식문화에 대한 나름의 정리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의 수도로 500년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개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중요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한 역사가 있는 도시다. 이러하여 개성 음식에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궁중음식의 화려함이 녹아있다.

334쪽

이처럼 저자는 비교적 국제적인 입지를 확장한 나라, 그리고 위의 북방의 문화와 중국, 그리고 왜(일본)의 문화의 교류 속에서 만들어진 고려의 문화를 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수 많은 다양성과 특징을 열거하며,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문화로서 계승되어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역사의 시점에서 고려의 맛 그리고 그 맛을 즐기는 다기와 문화에 이르는 그 다양한 지식이 다져지고 또 이렇게 정리 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옛 고려의 보물선을 발견하여 연구한 성과와 더불어, 그 고려라는 국가의 문화에 대한 (남. 북한) 연구와 교류등이 만들어낸 성과이자, 가능하다면 이를 활용하여 고려와 조선... 그 경계와는 상관없이 전통문화를 부흥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여긴다.

물론 위의 주장과 같이 저자 또한 고려문화의 부흥?을 바란다. 그도 그럴것이 과거 6.25 실향민들의 기억과, 탈북(귀순)민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북한 음식의 유행' 그리고 (비교적) 근래 정상회담 와중에 화제가 되었던 '평양냉면'의 유행 등은 이제 점차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결국 평양의 맛, 그리고 그 속의 명물과 귀족, 서민들의 문화뿐 만이 아닌 옛 다문화가 만들어낸, 채식과 육식의 조화에 대한 그 다양성의 매력또한 함께 잊어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이 되어진다. 물론! 현대의 대한민국의 학생들과 교과서, 그리고 역사의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 고려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점차 활자 속의 옛 나라에 머물러, 결국 전통의 계승과 그 연결점이 사라져버린다면? 그리고 결국 대한민국의 입장에 서서 그것을 단순히 평양(북한)의 문화라 가볍게 여기게 된다면? 결국 그렇게 된다면, 평양... 아니 고려의 여러 문화들은 결국 (미래에 있어)하나의 낮선 문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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