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이탈리아 파르티잔이라 뭉뚱그리는 것과는 달리, 이 수많은 편지들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당시의 민중이라 할 만하다. 수리공, 학생, 경찰, 농부, 주부, 사서, 상인, 변호사, 설계사, 군인... 그 다양한 직업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끔 파시스트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에 저항하고, 연합군과 함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에게 저항한 것은 분명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희생을 넘어 바른 헌신의 표상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허나 세상에는 행동하는 것보다 한발 물러서 관전하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욱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이 심히 비난받는 것보다 '힘의 억압과 '역사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일'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음으로서, 방관자(또는 대중)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한다. 이때! 적어도 당시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과 또는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이미 전쟁 이후의 정의가 세워진 이 세상에서 최소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던 과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인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받는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또는 발견해야 하는) 어느 것
이처럼 이 남겨진 글 속에선 그들의 거창한 대의와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도리어 남겨질 가족과 소중한 상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형수와 연관된 자로서,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앞날이 걱정되어 그들의 위로하는 내용이 더욱더 많다. 이때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형수' 라는 오명속에 죽었으며, 그 죄명도 살인과 방화 등 그리 쉽사리 용서하기 힘든 큰 강력범죄가 대부분이다. 이에 적어도 그들의 명예를 되돌려주는 것은 이루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고... 아니 인정해 주는 것이 유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노파심으로 기록하지만 이는 단순한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들이 이러한 유언을 적어야 한 이유, 그리고 사형수로서 처형을 각오하고 행한 행동에 있어서, 이들이 바로 당시 전쟁의 시대와 이탈리아의 미래를 가늠하고 경험하며, 이후 인간의 기본권인 '저항'을 선택한 것임을 알고 또 인정해야 마땅하다. 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후 받은 가장 중요한 감상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