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 장군, 상인, 지식인
미할 비란.요나탄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 엮음, 이재황 옮김, 이주엽 감수 / 책과함께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몽골 유목민족이 제국을 이루고, 또 그들 스스로의 역사 뿐만이 아닌, 세계사의 영역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가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분명 이에 수 많은 사람들은 '피와 정복'이라는 가장 야만스러운? 단어를 (먼저)떠올릴 것이라 생각이 된다. 실제로 동.서양의 실크로드의 주인이자 경영자이며, 특히 교류의 중심 역활을 한 기능을 가능하게 한 원인을 따지자면, 역시나 몽골의 끝없는 확장과(정책) 정복의 에너지(실행)가 없이는 설명 할 수 없다.

몽골인들의 이윤과 사치품에 대한 욕심은 상인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조건을 만들었고, 또한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신분 이동이 일어날 기회를 제공했다.

290쪽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상식을 뒤로하고, 보다 온건하면서도 중요한 것. 특히 몽골제국이 가진 개성이 다른 여느 제국의 모습과는 다른점을 드러내며, 보다 생소한 모습의 제국에 대하여 정리한 내용들이 많아 나 스스로에게 있어석도 유독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기억한다.

예들 들어 각 민족과 국가의 차이점을 품고 그 중심에 서 '대의'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어느 제국에서나 보여지는 공통점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일반적으로 보다 선진적이라 주장하는 법률과 문화, (또는 국력)을 통하여 주변문명과 민족. 사회를 교화시키는 것이 이른바 가장 잘 알려진 '제국체제'의 형성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 속의 제국 몽골은 그러한 것과는 다른 인식과 방법을 통하여, 저마다의 다른 문화와 종교, 그리고 피부색?을 조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본인이 직접 먼 거리를 여행하는 고통과 위험을 떠안지 않고도 이 하나가 된 세계의 많은 부분을 알고 더 나아가 경험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몽골이 지배하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물건과 사상과 종교의 유동성이 전례없이 높아졌다는 진정한 증거일 것이다.

352쪽

이처럼 몽골제국이 가진 최대 특징은 정작 몽골인 스스로가 타국의 것을 받아들이는데 그리 큰 저항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그야말로 '자국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탄압. 절멸시키려는 움직임은 적어도 이 책에서는 보여지지 않는다. 도리어 보다 유용하거나 편리하거나, 또는 앞선 지식을 지닌 인물이 있다면 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또 쓰고자 했다. 그 예로 장군에서 상인과 지식인 (학자와 관료)에 이르는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단어 그대로 다민족이라 칭해도 무엇하나 틀리지 않다. 이들은 각각 이슬람과 불교의 영향을 받고, 중동과 유라시아를 이어 형성된 제국의 지배 속에서 교류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교류는 서방에서 형성되어간 대항해시대와 함께 인류가 (보다 정교한)'세계'를 인식하게 하는데 큰 역활을 했음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소리가 사라진 시골 숲, 그리고 보기에 푸르른 산과 자연환경과는 다르게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산림 노후화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뉴스 등에서 드러난 그 많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소위 인간에 의하여 최적화된 자연의 모습이란? 그저 '인공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또 다른 황폐화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렇기에 크게 '자연속의 대화' 그리고 '인간과는 다른 생물들의 교류방식'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을 접하고 있자면 당연히 보다 바람직한 모습의 환경이란 보다 소란스럽고 또 도시 못지않은 활력이 휘몰아치는 에너지가 느껴져야 할 것이라 여긴다. 실제로 벌레와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저 조용히 성장할 뿐이라 여기는 식물들에 이르는 수 많은 생물의 소통방식에 있어서, 분명 이는 저마다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객채 스스로의 생존방식을 만들어낸 하나의 '경이'라 정의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소통하려면, 둘은 공명해야 한다. 그러니까 '같은' 언어를 써야 한다. 발신자는 자신이 보낸 정보에 맞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수신자에게도 있음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80쪽

실제로 자연의 '공생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식물과 곤충간의 교류(또는 공명)이 필수적이다. 그야말로 저마다의 종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이들은 오롯이 생명체로서의 삶과 번식을 위하여 끝임없이 서로를 이끈다. 물론 그러한 단순한 교류의 장을 엿보고 기록하고 또 데이터로서 정리하고 저장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류는 어쩌면 가장 뛰어난 종족일 수 있다. 허나 적어도 이 책의 주 무대인 자연속에서의 교류에 있어서는 그저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인류만이 그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을 뿐이다.

각설하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대부분은 스스로의 독자생존을 꾀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 필요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하여, 진화는 필요치 않는 부분을 퇴화시키고 또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놀라운 발달을 가져왔다. 때문에 여느 자연 다큐멘터리 등에서 보여지는 생명의 위대함은 때로 생명의 교류가 가져온 기적의 한 형태라 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서가명강 시리즈 17
김광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이 원하는 공간, 또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공간... 이에 그것을 거주지이자 도시라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생각한다면 분명 저마다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건축가와 도시설계자들은 분명 건축이라는 공통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저마다 처한 환경과 한계, 그리고 그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따라 큰 차이점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크게 보면 건축이라는 틀로 바라본 사회학, 아니... 저자의 사회학에 가까운 정의를 다룬것이라 이해하면 좋을 것이라는 감상이 든다. 그야말로 고대부터 시작된 건축이라는 행위와 개념이 현대에 이르러 어떠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단순히 거주와 공동체의 집합지에서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인 폴리스의 개념... 그리고 더 나아가 지나친 집중(수도권 사회)를 인식하고 결국 그 극복을 위하여 건축이 어떠한 역활을 담당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이제 건축은 그저 웅장하고 상징적이며, 그저 튼튼한 공간을 배열하고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점차 변화하고 진보하는 사회의 바구니로서 그 토대를 제공해야 하는 큰 역활을 수행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아닌가 한다.

욕망은 필요보다 먼저 나타나 새로운 필요를 낳는다. -중략- 건축도 마찬가지로 바라고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57쪽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서도 건축이 미치는 영향력이란 거대하고 또 강력하다. 예를 들어 그저 단순한 부동산에서 출발하여 아파트의 프리미엄 전쟁, 더욱이 저마다 살아가는 아파트에서조차도 그 동.층에 이르는 차이에서 드러나는 갈등에 이르기까지 분명 이는 현대사회에서 심화된 현상이자, 각 개인주의가 확립되면서 만들어낸 사회문제라 인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어느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부추키거나 방관한 주체로서 새롭게 성찰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의 주체 또한 '현대의 건축'이 짊어져야 하는 조건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등이 주장되고 또 실행되려 한다는 것은? 분명 이는 건축이 가지는 보다 궁극적인 (개념의) 진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필요성과 인식 그리고 실행은 과거와는 다른 문명의 모습, 즉 현대의 건축물은 첨단의 기술과 미적 감각... 그리고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간 조화와 배려의 가장 상징적인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이제 건축은 국민의 통제수단이나, 극단적인 실용의 영역에 속한 개념이 아니다. 최근 전통적인 미술관을 재단장 하는 것이나, 발전소나 장례식장 주변의 환경을 정돈하여, 시민들의 휴양지로 제공하는 것과 같이, 이에 건축은 목적과 성과만을 쫒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역활을 수행해야 하는 필요성이 주문되어진다. 이때 그러한 현상에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의 모습, 그리고 공동체와 개인의 인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에 저자는 그 방대한 질문과 기대에 대하여 나름의 긍정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43년 무솔리니의 실각과 구금, 그리고 극적인 탈출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RSI)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는 나름 기나긴 세계2차대전사에 있어서 순간의 해프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미 전쟁의 막바지에 든 시기에다 (정작)이탈리아 또한 항복한 이후였으니, 결과적으로 그 괴뢰국의 멸망과 무솔리니의 처참한 최후를 알고 있는 '후대의 사람들'이 이 짧은 순간을 (이탈리아의 역사를) 눈여겨 본다는 것은? 정말 어지간한 역사의 탐구자가 아니라면 그리 쉽게 마주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인 사실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운동이 외세에 대항한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적인 파시즘과의 투쟁이였으며, 이는 곧 파시즘의 회신인 독일군과의 투쟁이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둘을 하나로 일치시켜 사력을 다해 싸웠던 것이다.

서문 24쪽

물론 그러한 이유를 더해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는 위의 문장처럼 나름의 또 다른 의의를 지닌 특별함을 지니고 있기에, 여느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의) 다른 무장투쟁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에 드러나는 수 많은 사형수들의 기록은 RSI라는 괴뢰국의 (비교적) 짧은 역사의 시간 속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이미 이탈리아까지 진격한 연합군을 도운 혐의와 더불어, 후방교란과 테러... 그리고 단순한 독일 파시스트들의 복수심을 이유로 '형식적인 재판'과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희생된 그 수많은 목숨들을 증명하는 이 기록들은 비록 오늘날 파시스트와 (많은 부분)공산주의간의 무력충돌이라는 역사적 정의의 골자, 더욱이 파르티잔 활동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있어, 그 가치에 대해 저울질되어진 적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에 적어도 저자는 이탈리아의 공동체에 중요한 가치 (애국심 등) 그리고 오늘날 역사적으로 나치즘이 과오와 잘못됨으로 정의되어진 세상이 만들어낸 의식에 더해, 결국 그들이 보다 숭고한 의지와 믿음에 희생되어진 존재임을, 또한 그들이 비춘 희생 너머 인간 본연의 고귀함을 엿볼 수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저는 이제 곧 죽습니다. -중락- 태어날 때 첫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의 품에 안겼듯, 순결한 저의 영혼은 오늘 이후로 유골로 남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영원히 보호받을 것입니다.

445쪽 도메니코 과란타 -23세 법대생-

이처럼 이탈리아 파르티잔이라 뭉뚱그리는 것과는 달리, 이 수많은 편지들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당시의 민중이라 할 만하다. 수리공, 학생, 경찰, 농부, 주부, 사서, 상인, 변호사, 설계사, 군인... 그 다양한 직업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끔 파시스트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에 저항하고, 연합군과 함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에게 저항한 것은 분명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희생을 넘어 바른 헌신의 표상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허나 세상에는 행동하는 것보다 한발 물러서 관전하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욱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이 심히 비난받는 것보다 '힘의 억압과 '역사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일'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음으로서, 방관자(또는 대중)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한다. 이때! 적어도 당시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과 또는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이미 전쟁 이후의 정의가 세워진 이 세상에서 최소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던 과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인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받는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또는 발견해야 하는) 어느 것

이처럼 이 남겨진 글 속에선 그들의 거창한 대의와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도리어 남겨질 가족과 소중한 상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형수와 연관된 자로서,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앞날이 걱정되어 그들의 위로하는 내용이 더욱더 많다. 이때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형수' 라는 오명속에 죽었으며, 그 죄명도 살인과 방화 등 그리 쉽사리 용서하기 힘든 큰 강력범죄가 대부분이다. 이에 적어도 그들의 명예를 되돌려주는 것은 이루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고... 아니 인정해 주는 것이 유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노파심으로 기록하지만 이는 단순한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들이 이러한 유언을 적어야 한 이유, 그리고 사형수로서 처형을 각오하고 행한 행동에 있어서, 이들이 바로 당시 전쟁의 시대와 이탈리아의 미래를 가늠하고 경험하며, 이후 인간의 기본권인 '저항'을 선택한 것임을 알고 또 인정해야 마땅하다. 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후 받은 가장 중요한 감상 중 하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틴어 격언집 - 잘난 척 인문학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김대웅.임경민 지음 / 노마드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세계에서 라틴어가 가지는 지위는 어떠한가?' '그리고 한자 문화권인 동양에서의 한문과 비교하여 그 둘(한문과 라틴어)의 공통점과 또 차이점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 책은 (완독 이후 문득 떠오른) 그러한 위의 두 질문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해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궁금증을 뒤로하고 중세의 '아다지아'(에라스뮈스 저) 즉 중세의 격언집이라는 본래의 가치와 더불어, 옛 사람들의 지혜... 흔히 고대와 중세 사이 소위 르네상스 시대를 매개로 한 학문의 변용과 확장의 과정에 대한 '공부 의지' 를 지니고 있다라고 한다면? 이에 이 책은 그 나름의 내용을 빌어 단순히 학문적 가치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라, 과거 고대.중세인이 가지고 있던 광범위한 인식 (세계관과 삶의 지혜 등) 을 접하게 하는 가장 매력적인 길로 독자를 안내 할 것이라는 감상을 가진다.

그러므로 고전.고대의 지혜를 발휘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는 능력이 학문적으로나 심지어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부분이였던 기대에 출간된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가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책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문 6쪽

물론 그 공부를 위해서 우선되어야 할 것이 '라틴어를 배우는 것' 이였다면? 정작 나 스스로부터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내용은 아다지아에 기록된 격언과 함께 역자 나름의 해설 등이며, 이에 결국 독자 또한 그 무엇보다 해당 단어속에 녹아든 뜻과 (문장의)역사성을 발견하고 학습하는데 크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태양의 빛은 모든 곳을 비춘다.

solum ommium lumen 솔룸 옴니움 루멘

실제로 먼 미래에 해당하는 '현대사회' 에 있어서도 이 책 속의 많은 격언들은 사회과 교육의 영역 구석구석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히 아다지아를 원문으로 파생된 격언이 아닌, 오래도록 인류가 축척해 온 격언에 대한 것, 또는 옛 지혜에 대한 것을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라틴어로 그리고 출판물로서 보급하고 전파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일지도 모른다. 이에 예를 들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오롯이 (라틴어의) 발음과 뜻(또는 개념)을 온존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전통적인 속담과 이 아다지아에 수록된 격언에서 보여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면, 결국 이를 마주한 나의 감상은 '다른 문자와 발음과는 달리,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지혜는 의외로 공통적이라는 것'이였다.

"빈통은 쉽게 구른다" 이에 한국의 속담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빈 수레가 요란하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하여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과연 크게 다르다할 수 있는가. 결국 속된 말 이기는하지만 옛 지혜라고 해봐야 '모두가 뻔한 이야기' 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이처럼 오늘날의 현대인들 또한 오래도록 교육과 경험 등을 통하여 깨우친 진리들을 알고 있기에... 이에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서양세계에서의) 과거를 더듬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도 그 (나름)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