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종말 - 대규모 이슬람 이민이 바꿔 놓은 유럽의 현재와 미래
유해석 지음 / 실레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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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와 인종문제를 아울러 가장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는 바로 '이슬람'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아프카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의 경우 특히 이를 통하여 우려되는 문제는 단순한 아프카니스탄 국민들의 안전을 넘어, 국제적 차원의 난민수용과 테러확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이라는 종교.문화권에 대한 커다란 혐오의 기류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저자 나름대로의 분석과 주장을 펴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이를 바라보는 (독자 나름의) 시선에 따라서 내용은 얼마든지 냉정하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존재한다.

유럽에 이슬람이 증가하면서 발생한 최초의 희생자는 유대인들이었다. 유럽연합은 2500만 명 이상의 무슬림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하여 의도하지 않았지만 반유대주의의 급속한 확산을 경험했다.

193쪽 이슬람의 유대인에 대한 박해

실제로 오래전부터 이민자들은 자신들끼리의 문화와 정체성... '민족성'을 구심점으로 뭉쳐진 소수사회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와의 정책과 조화 등에 반하지 않는 이상 이른바 한인타운과 중국의 화교 등은 결국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미국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 크게 늘어나는 이슬람 난민과 이를 수용하는 일부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특히 다른 문화권와 함께 융합되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동돠어가는 현상이 아닌 이슬람 근본주의 속에서 분리되어버린 자국민과 이민자, 그리고 자유와 선진화를 잠식하는 이슬람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결국 유럽의 암으로 발전할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과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저자는 현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에 대한 분석, 그리고 정치.경제에 이르는 다양한 자료들을 내밀었다. 허나 오늘날 이슬람이 위협이 되는 것은 단순히 이슬람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위협이 아니라, 테러와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대거 수용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종의 '혼란'에서 발생한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럽은 (일종의) 전쟁 난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문화와 믿음 사고방식에 대한 경직성까지 고려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유럽의 문화와 이슬람의 문화 사이에 얼마만큼의 조화로움이 가능할 것인지는 이제 미래의 현상을 관찰해 볼 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어도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한 것과 같은 어느 한쪽이 상대를 잠식하는 현상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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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1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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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인류문명의 발달(또는 등장)과 그 '역사'를 접하는데 있어서 분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각(바빌론과 수메르 아카드를 포함한 다양한 도시 문명들) 문명들의 발달된 모습과 함께, 천문학과 수학 그리고 실질적인 법률을 포함한 인간의 삶 전반의 지식과 시스템... 그리고 그 역사 뿐만이 아니라 신화와 종교의 경계를 아우르며 나름의 존재를 남긴 문명의 모습이란, 분명 그 오랜 시간 축척해온 시간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증거라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생각되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바빌론 문명' 또한 오늘날까지 끝임없는 발굴과 정립의 대상이 되어 그 나름의 역사를 축척해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전 걸프전쟁과 이라크전쟁의 진행 과정에서 수없이 연구에 차질이 빚어진것과 함께, 그 무엇보다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 주도로 진행되던 '신 바빌로니아 복원사업'이 좌절됨으로서 생겨난 혼란과 파괴는 결과적으로 바빌로니아의 역사적 탐구를 (도리어) 뒤로 후퇴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기계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진흙벽돌 잔해를 철거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어서 대부분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 중략- 이러한 인공적 둔덕은 중동지역의 전형적인 고고학적 특징이다.

49쪽 바빌론의 쇠락한 폐허와 재발견

그래서일까? 결과적으로 이 책은 '바빌론의 문명사'를 다루는 책 중에서 친절하고 또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까지 고고학적 성과로 축적한 바빌론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또 과거와 비교하여 어떠한 것을 보존하고 또 잃었는가에 대한 내용에 있어서, 분명 이 책은 가장 최신의 자료들을 취합하고 또 정리했다.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 책을 통하여 고대 바빌론의 의식주를 포함한 인간사 가장 밀접한 문화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렵지만, 대신 옛 도시국가로 시작하여 제국을 이루고, 더욱이 옛 로마와 현대사이에 흐르는 '바빌론이 가지는 상징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흥망성쇠의 역사'만큼은 충분히 접할 수 있다.

이 시기 정착층의 고고학적 발굴이 매우 제한적이여서 바빌론의 건축물이 히타이트의 공격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중략- 바빌론은 살아남았으며, 카시트 왕조하에 새로운 삶을 이어 나갔다.

101쪽 패권국의 수도로 떠오르다

이처럼 이 책은 고대 바빌론의 전체적 역사와 함께 그 고고학적 성과를 다루는 일종의 전문 학술서적으로도 평가 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실질적인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의 쇠락과 멸망에도 불구하고 그 문명은 기록과 구전 그리고 다른 문명의 '정치적 혈통'에 이용되어 계속해서 계승 (또는 이용)되었다는 것이였다. 이제 바빌론의 독자적이고 선진적인 문화들은 그 제국의 영향력 (경계)를 넘어, 고대 세계 전역으로 전파되고 또 발달하면서 결국 '바빌론의 유산'을 넘어 '바빌론에 대한 경이'를 낳는 존재까지 이른 것이다.

그 결과 대왕 알렉산더부터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이르기까지, 그 무너진 벽돌담이 남아있는 작은 마을에 들어 '바빌론을 마주했다' 물론 그러한 행동이 당시 어떠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바빌론의 명성에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시의 바빌론은 오늘날의 서양의 그리스 문명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영향력과 상징성을 가진 가치로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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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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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첨단 정보화시대 속에서도 모험가는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험가는 인간이 감히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도전하는... 어쩌면 좀 더 (저마다의) 한계에 도전함으로서 스스로 또는 이를 마주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이 지닌 열정과 경이를 가늠하게 하는 존재로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적어도 이 책의 시대이기도 한 19세기의 세계에는 오늘날보다는 다른 세상속의 무지 또는 모호함이 나름의 낭만으로 다가오고는 했다. 실제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리고 그 뒤를 받쳐줄 스폰서의 지원과 입김이 없어도, 주인공 (알랠 제르보)는 한 한척의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항해했다.

이렇게 진심으로 어울렸던 나라를 떠나는 슬픔과 내게 닥친 작별의 아쉬움을 어떻게 다 설명할까. 아무튼 바다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부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71쪽

이에 이 책은 그 항해일지이자 저자 스스로의 감상이 담긴 자전적 기록으로서, 보다 이질적이고도 사실적인 문화들이 표현되고 있다. 물론 저자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폴리네시아' 의 수 많은 섬들을 방문하며, (서양인들의 기준에서)문명이 여물지 않은 순박함과 천진함을 발견하고 또 그것이 마땅히 보호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은 거의 막바지에 이른 제국주의의 잔재와 당시 시대상의 흐름 그리고 개인의 도전이 가져다주는 고독과 성과와 같은 나름 매력적인 주제와 글을 마주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정리하자면 나는 그 시대상의 독특한 분위기와 사실에 흥미로운 감상을 품었고, 또 그것을 마주하며 나름 만족스러운 독서를 했다 생각한다. 비록 대항해시대와는 다른 형태의 소소한 로망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오늘날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어느 가치에 있어 '오디세우스'의 매력을 공유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에 결국 인간은 보다 무모한 것에 뛰어드는 용기와 만용 사이를 넘나드는 대담함을 꿈꾸고 또한 곧 실현하기도 하는 면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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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의 결전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2
정명섭 지음, 신효승 감수, 남문희 만화 / 레드리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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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자들의 무장투쟁.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군에 의하여) '불령선인'으로 불리우며, 토벌의 대상이 되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결국 후대의 독자들은 어떠한 것을 마주할 수 있는가. 이에 생각해보면 단순히 민족의 이름 아래 안타까움과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립전쟁이 가지는 의의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어떠한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인가? 또는 앞서 제1권(봉오동 전투) 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세계사와 한국사 등의 영역에서 자칫 소홀할 수 있는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나 스스로가 연이어 이 시리즈를 마주하는 이유 또한 '배우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본군은 간도로 출병하기 이전에 이미 독립군뿐만이 아니라 조선인들까지 탄압하여 독립운동을 뿌리뽑아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86쪽

이처럼 제2권은 집요한 저항과 유격전을 벌이는 독립군에 대하여, 일본군이 선택한 대응과 그 실행의 결과 등이 주제라할 수 있다. 물론 상대의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의도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또는 보급과 협력)을 무력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본군이 학살을 선택한 것은 분명 잔인한 일이지만, 반대로 냉정히 전쟁사의 의미에 있어서는 '전무후무' 한 행동을 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이러한 행동에 뒤이어 당시 벌어진 검열과 축소 은폐의 행위 등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부정하거나 또는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독립군을 포함한 수 많은 (독립) 단체들과 언론 등이 저마다의 기록을 남겼기에, 거꾸로 공식문서(당시 일본제국 문서)와 비교할 수 있고 또 비난할 수 있게 (또는 탐구할 수 있게)되었지만 혹여 이 저마다의 기록이 미비했다면? 과연 청산리를 비롯한 독립군의 활약은 어디까지 감추어지고 또 회손되었을지... 그 위기감은 실로 무겁게 다가온다.

실제로 책 속의 내용 중에는 저마다의 숫자와 단어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논리와 의지가 뒤섞인 혼란이 드러난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독립군의 입장, 중국인의 입장, 일본군과 일본제국의 입장과 같은 저마다의 경계에 서서 끝없는 '진실게임'을 벌이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의미한 (이데올로기에 기댄) 팩트체크보다는 당시 독립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한 이유, 그리고 그 실질적 행동에 따른 독립군의 행보와 그 결과의 발현과 같은 나름의 폭넓은 시선을 두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익히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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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들 - 인생의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경주한 삶에 대하여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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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 수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삶의 형태'라는 것은 분명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차이점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단 하나 뭉뚱그려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골인점... 말 그대로 성공의 보상을 받는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존경받는 삶, 또는 안락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살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한다.

이에 그 '욕망'에 비추어보면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제목 그대로의 패배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패배의 결과가 오롯이 그에 걸맞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또는 그러한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행동) 라고 누가 감히 정의하겠는가? 실제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테미스토클레스는 세계사 (또는 서양사)에서 가장 뛰어난 리더로 인정받는 위인 중 하나이며, 이에 뒤따르는 악비조차도 당시 송나라를 뛰어넘어 오늘날 중국에서까지 존경을 받는 무인이자 영웅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들은 수 많은 과정 속에서 목표로 하는 바를 성취하기도 했고, 또 인간사회에서 미덕이라 불리우는 용기와 헌신을 보여주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망명과 처형이라는 개인사 커다란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저자를 포함한 독자들은 그 아이러니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탐구심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저자가 목표로 하는 독자들... 특히 수 많은 직원들과 회사라는 '지켜야만 할 것이 있는 리더' 이라면 더더욱 이 책은 나름의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많은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자신의 반대 의사를 정확히 표시하면서도 윗사람과 계속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악비는 진회와 그런 관계를 설정하는데 실패했다.

137쪽 '악비와 비스마르크의 결정적 차이'

결과적으로 이 책이 가장 크게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유연함'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든다. 예를 들어 경영이라는 가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라보는 이상은 분명 하나이자 두개라는 모순점이 드러난다. 흔히 세상이 말하는 공정과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통하는 공정의 차이... 이에 책임자로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과 필요성에 부합하는 것을 찾아내는 '통찰력'과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결단력'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삶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대의와 목표 속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역활과 한계에 대한 내용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앞서 수 많은 패배의 결과를 통해 독자가 배워야 할 것은 명확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패배의 반대가 승리라면, 이에 가장 승리에 걸맞지 않은 인물 '유방'(한나라 황제)의 성공은 과연 '정확히' 어떠한 조건하에 완성 된 것인가? 포용성? 개인의 매력? 방임주의? 이에 그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있는가?

결국 인생의 교훈이란,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역사는 결국 하나의 분명한 예시와 정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과거의 인간과 환경이 만들어낸 수 많은 변칙 속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과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비추는 작은 등불의 역활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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