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모나 숄레 지음, 유정애 옮김 / 마음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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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속의 내용을 떠나, 나 스스로가 처음으로 생각했던 감상에는 "속았다" 라는 분노가 그 무엇보다 컸다. 실제로 내가 책을 통해 접하고자 '기대했던 것'은 과거 중세와 근대를 떠나, 오늘날의 세상에서 마녀라는 것이 어떠한 현상을 비추는가? 또는 마녀사냥이라는 단어 속에서 현재에도 크게 탄압받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에 대한 나름의 (저자 나름의) 진단을 엿보는데 있었다.

그렇기에 책은 적어도 옛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설득력과 자료 등으로 현대 마녀의 실체를 논하여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두꺼운 분량의 내용 속에는 그저 과거의 마녀로서 탄압받았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차별에 대한 의식과 실체에 대한 무수한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였다.

더욱이 나는 그 수많은 사례들을 마주하며, 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는다. 다만 반대로 오늘날에도 여성혐오가 사라졌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역시나 그 또한 사라지지 않았으며, 점차 사회에도 변화의 인식이 자라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여성 또한 역사 속의 패자이자 이 책이 상기시키듯 매우 폭력적인 역사의 패자들에 속한다. 왜 여성들만이 특정한 관점을 가질 권리가 없는 패자가 되었을까?

312쪽 세상을 정복하라.

허나 그것이 급진적인 사상 '페미니즘'에 온전히 부합하는 주장이라 정의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도 그럴것이 남.녀의 격렬한 (이념 등이) 충돌하는 현 시점이 아니더라도 과거부터 페미니즘의 사상은 급진적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특히 사회 전반에 놓여진 불평등과 차별 또는 다수에 희생된 소수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그것은 너무 이기적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시선 또한 없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주제인 페미니즘의 역활과 필요성에 대한 내용보다는 좀더 다른 시선으로서 과거 여성을 억압했던 법률과 인식, 그리고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비교적)사회적 약자에게 쏟아진 폭력의 역사에서 '여성' 또한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역사적)사실을 떠올린다.

권력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을 그들의 할 수 있는 능력과 분리하는 데 있다. 독립적이면 권력은 있을 수 없다. -중략- 권력은 언제나 특정한 사례를 만들고 자신들 없이는 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재앙이 된 여성 독립

실제로 서양사에 있어서 '마녀'라는 단어에 녹아있는 혐오의 정체는 앞서 언급했던 '여성의 혐오'에 대한 역사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오랜세월동안 여성은 크게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정된 역활을 부여받았고, 또 때때로 시스템의 불안요소 가운데서, 대중의 추악한 공동의식의 배출구가 되어 막대한 희생을 치루기도 했다. 그렇기에 저자가 칭하는 마녀라는 단어 속에는 크게 역사 속 희생되어진 여성들의 흔적 뿐만이 아니라, (이후) 그 흔적이 남아 현대 사회에서도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 그것이 일상의 상식으로 굳어진 예 또한 포함될 것이다.​

이에 현대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 예의 본질을 바라보고, 또 그 문제점의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페미니즘 또한 얼마만큼의 역할 또는 (평등과 같은)이념을 제시하고 또 조정하는 역활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 세상에 온전하고 완벽한 정의가 존재하기 어려운 만큼, 그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나, 다만 이에 무리하여 그 이념을 강림시키기 위하여 무리한 강요와 힘을 빌리려 한다면... 결국 그 정의는 또 다른 이유의 정의와 맞물려 커다란 갈등을 낳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 또한 한번 주장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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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작가의 첫 책
토머스 울프 지음, 임선근 옮김 / 걷는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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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잘 나가는 작가'를 꿈꾼다. 그야말로 자신의 재능과 창의력을 인정받으며, 지성과 문화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이에 나름 생각해보면 1930년대 작가의 꿈을 이룬 저자 '토머스 울프'의 삶 또한 위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분명 동경의 마음을 품게하기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책의 내용을 접하고 있으면, 저자 스스로가 드러낸 내용에는 (그저) 고뇌와 믿음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한 명의 소설가가 드러날 뿐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말 그대로 촉망받는 신인으로서, 그리고 이후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로서, 주변사람들과 가족에게까지 존중을 받았지만, 이에 적어도 저자는 그러한 성공의 이면에서, 오롯이 자신이 행하지 못한 문학... 즉 스스로가 만족하는 집필을 위한 욕구를 계속해서 갈구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예술' '아름다움'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학적 거들먹거림의 단계를 거쳤다. -중략- 세상에서 사는 '부르주아' 속물들과 장사치를 나는 경멸했다.

그러나 그러한 열정과 에너지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히 저자를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니... 지금까지 토마스 울프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작품조차도 접한 적이 없으니, 이 초면에 마주한 뜨거운? 열정은 그저 한 작가의 개인적인 욕구 그 이상 그 이하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후 그의 작품을 접한 이후 또 다시 이 글을 마주한다면, 보다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분명 저자 스스로가 생각한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 와중, 당시의 시대와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이 작가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반대로 작가 스스로가 행하는 창작의 노동이 사회에 얼마나 왜곡되어 이해되고 있는가에 대한 과거와 오늘날... 작가의 이름을 달고 살아가려는 자의 끝없는 고뇌를 엿보는 것에서 이 책의 가치를 평하려 한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을 뿐 아니라 나 스스로 나의 믿음, 확신, 자존심을 검증해야만 했다. -중략- 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139~141쪽 글쓰기, 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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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세계사 3 : 서양 미술편 - 알고 나면 꼭 써먹고 싶어지는 역사 잡학 사전 B급 세계사 3
피지영 지음 / 행복한작업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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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알고 나면 보이는 것이 있다" 그야말로 대상인 서양 미술에 있어서도 단순히 미술이 지니는 아름다움 뿐 만이 아니라, (해당)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인물 그리고 배경에 대한 지식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시선으로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지식의 필요성은 역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부담으로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은 어떠한 기법으로 그려졌는가? 어느 시대에 그려졌는가? 해당 예술가는 어느 학파에 속해 있는가? 그리고 후대에 어떠한 평가를 받는가... 이에 모든 정답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하는가! 결국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저자 또한 나름의 설득력을 넘어, 권위 또한 가질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정규 과정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알아간다면 미술은 어느새 곁을 내어준다. 미술에 무지했던 내가 경험한 일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서문 5쪽

아니... 권위라고 했는가? 그러고보면 나 스스로도 그 권위라는 것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 또한 수 많은 역사를 마주하고 또 나름의 활동을 통하여 타인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자리를 만들어 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역시나 나 또한 (정통?)역사학도가 아니며, 단순히 후학의 길을 걸은 아마추어에 불과하기에, 이 저자와 같이 미술과 역사라는 분야에서 그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는 오롯이 타인(또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때문에 이 책이 전하는 미술에 대한 배경과 지식 그리고 (저자의)주장에 대하여, (독자로서)나는 그 나름 쉽게 받아들였다는 감상을 가진다. 물론! 이를 B급이라 칭한 저자와는 달리 나는 이에 한단계 덜한 지식을 배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서양미술의 대가, 또는 정석을 지향하는 수 많은 전문서와 비교하여 전문지식 또는 세밀함과 섬세함은 덜하지만, 그만큼 아마추어이기에 할 수 있는 것... 때로 저자와 독자가 같은 국가와 국민의 상식 선에 선 눈높이로서, 예술을 논하는 것 같은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책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라 해도 과연이 아니라 여긴다.

그림은 설명하지 않는다. 더욱이 기독교를 모르거나 서양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그림을 보고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울트라마린의 사연을 알면 금세 성모마리아를 찾을 수 있다.

보석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90쪽

어려워 하지 말라!!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책은 현대 대한민국의 일반인에게 있어서 매우 친숙한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과거 고대시대의 미술에서 시작해 르네상스의 미술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연도나 기법보다는 그 미술이 가진 독특함과 배경 등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쉽다. 이에 해당 미술을 통해 바라보는 많은 분야에 대하여, 저자는 분명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손을 내밀었다. 이때 독자 또한 그 손을 잡아 (결과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자신만의 눈높이를 만들어 낼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는 모두 스스로의 의지와 이해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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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문화의 충돌과 융합 - 외래근대주택 100년의 이야기
민현석 외 지음 / 서울연구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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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주거문화는 과거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에 생각해보면 옛 시골집에서 현대의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많은 이들이) 전통과는 다른 형태의 주거지에서 생활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흔히 서구적이라 낮설어 하는 인식은 없다.

그도 그럴것이 겉모습은 국제적인 형태를 띄더라도 내면의 생활상을 비교한다면 분명 한반도의 주거문화는 옛 전통과 융합된 한국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내에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좌식형태가 당연하게 자리잡게 된 것도 (결국) 과거 온돌을 중심으로 한 생활양식이 외래주택과 함께 융화되어 생겨난 덕분이다. 때문에 한반도의 주거문화를 관찰하고 또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외래주택과 한반도의 전통적인 주거문화가 어떠한 계기로 융합했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나, 안타깝게도 그러기 위해서는 근대 개방이 이루어지던 시대, 특히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던 일제강점기를 반드시 들여다 보아야 한다.

한국 주거사에 등장한 주요 외래 주거문화라면 일제강점기 일본의 주거문화와 6.25전쟁 이후 미국의 주거문화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주거문화는 일식주택을 통하여 강압적으로 이식되었고, 미국의 주거문화는 아파트를 통하여 우호적으로 유입되었다.

148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외래주택의 역사에 대하여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다른 면면으로서 부동산과 재산으로서, 주거지의 질을 따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반대로 옛 주거에 가치를 두고 이를 보존하거나 연구해야 한다는 의식은 그리 큰 호응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이야기하는 외래주택은 역사적으로 볼때 상당부분이 파괴되거나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해방 이후 일반인들에게 불하 된 일본인주택들이 과연 온전히 보존되었을까? 아니다. 이후 6.25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현대의 경제의 부흥을 이루고 정비되는 과정에서 헐리거나 재건축 되는 등 대다수가 그 본래의 모습을 잃었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러한 현상을 안타까워 하는가? 천만에! 본래 주거문화가 변화하고 그 모습이 변화하며 정착하는 과정 모두가 역사이자 탐구하여야 할 대상일 뿐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이식당한' 근대 한반도의 문화를 부끄러워하고 또 애써 외면함으로서, 도리어 과거와 오늘날의 연결고리로서의 '근대'를 없는 것 취급하는 오늘날이 상식에 대하여 이들은(저자들은) 나름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물건은 여러 논쟁을 일으키지만 물건이 없으면 논쟁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저 망각의 시대가 되어 버린다. 이는 좋고 나쁨을 떠나 슬픈 일이다.

208쪽

과연 옛 외래주택들은 사라져야 하는가? 그저 과거 일제의 잔제로서 현대의 물길을 통해 씻어내야 하는 얼룩일 뿐일까? 이에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다.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양식을 만들어낸 문화에 대하여, 그 과정에서 변화와 정착의 역사를 써온 증거를 어떠한 시선으로 마주하고 보존하여야 하는가... 이는 분명 소수의 학자와 탐구자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이 곳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많은 이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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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 오니 부인 일기 1 - 요괴 부부는 이번 생에야말로 꼭 행복해지고 싶다, Novel Engine POP
유우마 미도리 지음, 아야토키 그림, 송재희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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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개의 달, 그리고 선택받은 용사에 대한 이야기... 이처럼 오래전 접했던 만화와 경소설(라이트노벨)의 작품세계는 거의 판타지의 세계관 속에서 그 나름의 개성을 뽑내는 것이 대부분이였다면? 이에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든 생각에 따르자면 오늘날의 판타지는 거의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 정리하자면 보다 익숙한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독특한 설정을 즐기는 것이 (나름) 대세가 되지 않았나 하는 감상이 든다.

이처럼 이 소설의 무대인 아사쿠라 또한 나름 옛 전통의 이미지를 오롯이 간직한 장소 중 하나로 손꼽히기에, 이에 옛 기록 속의 요괴가 환생했다는 이야기 또한 그리 뜬금없는 설정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특히 전생에 요괴(오니)로서 약육강식의 세계관에서 살아왔다면, 이제 현생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즐거움... 소위 저자가 표현한 먹거리와 식사에 대한 묘사는 그 이전의 작품세계 (카쿠리요 여관밥)에서 보여진 구루메( しょくつう 식도락)문화가 어떠한 것인지를 나름 간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식도락은 매우 희귀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쉽게 간식거리나 식사로서 즐길 수 있는 간단한 메뉴들이 많다. 더욱이 그녀의 친우이자 전생의 동반자였던 남학생과 함께 어울리는 하루하루는 그저 등하교길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것이기에, 이에 좀 더 요괴의 신비스러움 등을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잔잔한 일상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실성에 대하여 나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면, 분명 그 독자들에게 있어 이 책은 상당히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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