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이야기 - 내 영혼을 위로하는
김현 지음, 조민지 그림 / 오션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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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간간히 이러한 책을 받아들고, "과연

무엇때문에 이 책을 읽어야 하지?"  라는 강렬한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분명 내가 스스로

집어들었고, 또 그 당시에는 어떠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 책을 골랐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 책 같은 경우는 단순히 표지의 고양이가 귀여워서) 일반적으로 소설보다는 사실주의적인

'재미없는?'  전문서만 읽어 내려가는 나의 가치관에 있어서, 이 책과 같은 내용은 분명 그 존재

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이 책의 내용의 '주제'는 분명 추억이고, 그 연결고리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 책에 존재하는 추

억의 먹거리는 무특정 다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저자 개인의 기억과 취향에 걸맞는

것이며, 그나마 공감대를 표시할 수 있는 독자층이라고 해봐야 저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대

에 한정 될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주제가 별나기는 하지만, 단순히 저자의 '자서전'에 해당하

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내가 무엇때문에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

아야 하는 것인가?' '과연 이러한 책에서 어떠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라고...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저자와 같은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와의 조그마한 연결

고리는 가진 세대로서, 조금이나마 저자가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존재'(시대상)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분명 연탄을 간 적도 없고, 88올림픽의 뜨거운 관심을 둔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방공의 날에

학교대표로 표어와 포스터를 제출한 기억도 있다.   (분명 내가 생각하기로는 90년대의 정서는 

80년대 말의 생활상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시기였고, 저자가 놀았던 방식 또한 그대로 전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는 그가 추억하는 수많은 놀이와, 음식같은 주제에 대해서, 그에 조금도 이질적이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가 추억하는 수많은 반찬들과, 그 시대상의 모습이 나

의 어린시절 떠올리는 기억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반갑고 신기했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아버지을 여읜 그 슬픔에 문득 과거의 추억과 맛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

로 점점 맛보기 힘든 추억의 맛을 그리며,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다는 뜻도 적어 넣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젊고, 그 때문에 저자가 생각하는, '추억에 대한 집착?'에 조금 여유로운? 시간

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인가? 나는 문득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어린시절 즐거웠지만, 지금은 잊

고 있는 무수한 것에 대해서 전혀 추억하고 있지 않다. 는 것을 깨달았고, 또 그 기억을 소중하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가족들과 다같이 집 밥을 먹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어

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투정부린 때가 과연 언제까지였던가?"  나는 이와 같은 기억을

더듬으면서, 마침네 이 책의 진짜 '존재의의'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음식이나, 추억은 부분

적인 가치일 뿐.... '앞으로 살아갈 날, 최선을 다해서 가족을 대면하자.' 는 것이다.    그

것이야말로, 이 책의 참된 주제이자, 또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픈 저자의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그러나 과연 그것이 쉬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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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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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에덴동산' 이라는 것은 기독교도들이 '낙원'이라는 성격의 것을 칭하는 단

어. 라는 정의에서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오랜기간 크리스천의 영향력을 받았던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에덴'이란 (제3자로

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에덴이라는 것이 트로이나, 아틀란티스와 비교해서,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느낌이 드

는 것은 어째서 일까? 기독교인들은 에덴이야말로 인류의 요람이자,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라

는 기존의 믿음 (창조론)을 증명하는 최고의 이념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성서에 기록된 그 '낙원'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고, 또 그에 걸맞는 이론으

로 무장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은 에덴 추적자라는 그 제목에 걸맞게, 에덴을 발견하

기 위해서 노력했던,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또 그들이 어떠한 생각과, 이

념적 가치를 가지고 에덴이라는 것을 발견하려고 하였는가? 하는 것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에덴이라는 존재에 대한 증명을 위해서 노력했고, 그 노력의 증거는 수많은 가

설과, 주장으로 표면화 되었다.   에덴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샹향을 칭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지

구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주장 같은, 포괄적인 이념적 가설을 포함해서, 에덴의 존재를 과학으

로 증명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종교와, 과학, 그리고 철학, 역사학 으로 무장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가설.  그리고 에덴이 북극 어딘가, 아니면 아프리카나, 심지어는 중국에 있었다고 믿었

던 지질학적 지식을 지녔던 사람들의 가설에 이어,  심지어는 외계인과 같은 초자연적인 매개체

와 접촉하여, 에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때문에 오늘날 (기정사실로 인식되는) 진화론으로 무장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에덴을 찾아

다닌 그들은 그야말로, 바보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그들이 행동하려는 동기라는것

은 단순히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라는 단순한 그들의 믿음을 증명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다.   진짜로 그들은 아담과 이브라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구상에 실존했

진짜 역사라고 믿었단 말인가?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는 오랜 통치수단이자, 문화&도덕

적 이념의 척도였던 그리스도의 가치를 '불멸' 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러한 연구를 진행할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주장은 마치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태백산 어느부분에 환웅이 내려왔는가? 우리는 정말로 곰의 유전자를 이

어 받았는가?  하는것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의, (비정상적인 노력의 결과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창조론적 믿음은, 이제 진지함을 떠나, 오늘날의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판타

지적 이야기의 주요한 소개로 즐겨 사용되는 문화적 가치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믿기 어렵겠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창조론적 믿음은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

들에게 뿌리깊은 (역사적)사실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지

만, 미국 내에서는 창조론을 주제로 한 '창조 박물관'이 버젓이 운영 되고 있다.)   때문에 성서

와, 에덴의 존재를 발견하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라고 보아도 무방 하다.

 

에덴을 발견하기 위한 이러한 인간의 노력... 과연 그 노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어째서 그들은

'신화'라는 열차를 '역사'라는 레일에 놀려놓기 위해서, 그러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인간

이라는 종족의 우월성을 확립하기 위해선가? 백인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인가?  아니

면, 그저 단순히 그들의 탐구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자위적 행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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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저편 - 페이의 그림자
카렌 마리 모닝 지음, 구세희 옮김 / 제우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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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도록 시리즈물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시리즈만이 지니는 (분량에 비례하는)

재미와 스토리의 견고함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음권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과

더불어, (인기가 없다면) 출판사 사정에 따라서 '중도하차'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완결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러한 노력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의 그러한 심리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등장하는 책들은 예전처럼 1~2권이라는 친절

한 숫자대신, 각 소설에 특수한 제목을 붙여넣는 것을 선호하고, 또 그것은 그 책들이 '단편소설'

인지 '시리즈물'인지 혼한스럽게 하는 원인이 되어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러한 상술에 자주

속은 적이 있고, 또 이 책 또한 그러한 '착각'에 의해서 접한 책으로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겼

을때 적지않게 실망? (낙담 일수도 있다) 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접한것을 어

쩌랴... 이번에는 가능한 빨리 그리고 도중하차가 없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기다릴 밖에...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분명 판타지이지만, 의외로 할리퀸

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조금 끌이는 맛이 있다.  게다가 특히 소설에 등장하

는 '마물'들의 성격이 외설스럽다? 라는 것이 의외로 신선했는데, 이는 드물게 접함으로 인해서,

느끼는 신선함이 아니라, (이러한 설정은 일본판타지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것으로 안다) 의외

로 아닐것 같은데서 등장했다는 식의 놀라움이 더 큰 것이다.   성적인 쾌락으로 주인공 뿐만

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마물... 이러한 성격의 내용을 과연 이러

한 '표지'에서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소설의 매력은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 뿐 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매력에서도 그 진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인 여성 '맥'은 누군가에게 무참

하게 살해당한 언니의 사건에 대한 '재 수사'를 강권하기 위해서,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아일

랜드로 향한다.   그의 손에 쥐어진것은 살해된 언니가 언급한 '시서두' 하는 단어 하나뿐, 이에

그는 아일랜드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이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의 앞에 등장한 남성

배런스와 엮이면서, 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마물 '페이'의 존재와 더불어 '금서'

인 시서두의 본질에 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맥은 어둠의 페이와 빛의 페이 두 마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배런스에게 '생존비법'

을 전수 받게 되고,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페이와 시서두를 찾기 위해서, 자

신과 같은 능력자들과 접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에 나는 흥미진진한 이러한 내용을 접하

면서, 다음권에서는 분명 배런스와 맥이 '시서두'를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금서 시서두는 어떠한 영도로 사용될까?  마물의 봉인?

세상의 멸망? 아니면 개인적으로 단순한 주인공의 타락?... 그야말로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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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소녀와 좀비의 탐험
도마스 아키나리 지음, 박주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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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켜 살아남는 방법' 그것은 주로 어렵고, 일상생활에 그리 많이 쓰이지

않는 '비인기 장르' 에 흔히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중 미소녀 캐릭터를 배경으로, 해

당 주제를 다루는 것은 특히 일본에서 즐겨 사용하는데, 지금까지(개인적으로) 이러한 작품을

다룬 경제, 의학, 교육, 밀리터리 등등의 많은 작품을 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삼 이러한 장

르를 만날 때마다. "과연 일본..." 이라는 묘한? 감탄사를 내뱉고는 한다.

 

이 책은 비록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철학이라는 기본요소가 있는 이상, 그 내용의 질은

전혀 유치하다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존재 이유 때문에 '배경' 즉 작가의 문필력이

라고 부르는 부분은 비교적 실망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철학을 가르치기 위한

본래의 이유에 집착한 나머지, 소설의 아이디어나, 케릭터의 특징과 같은 '소설의 재미'

에 대한 배려가 부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소설의 분위기가 그저 특징없는 하이틴계열에

가까운 것이 실망스럽다고 할까... 

 

그 증거로 소설속의 주인공 '나'는 학생이고, 느닫없이 등장한 소녀 기리시마 3자매 또한 그와

같은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라! 그리고 그들이 활약하는 장소도 고등학교 라는 특정한

장소에 한정되는 것을 보라!   (의외의 것으로) 일명 '사건'에 해당하는 주요 배경만은 그야말로

환타지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어려움과, 난관을 해치고

결국 그들의 정의를 세운다는 '해피앤딩'은 분명 이 소설의 이야기를 전부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

게 그 결말이 그려질 만큼 뻔하다.   

                                                

고등학생이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갑자기 등장한 기리시마 자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의해서 반 강제로 철학 수업을 받으며, 철학전사? 라는 묘한 임무를 부여받기 위한 준비를 한다.

자신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처음에 '나'는 그 자

매들이 정신병자나, 과대망상증에 빠진 중2병? 이 아닐까...(미모는 받쳐주는데 아깝다..라는 낙

담과 함께) 하는 마음을 품으며 일부로 그들을 멀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들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과학기술의 '편리함'  사회시스템이 가져다 주는

'다양한 쾌락' 사회전반에 뿌리박은 개인주의, 허무주의, 상대주의를 이용해 '이데아' (영혼)

을 소멸시켜, '생각하지 않는 인간' 즉 인간을 '철학좀비'로 만들기 위한 아틀란티스 계획의

본거지라는 사실을 발견해 낸다.  

 

아틀란티스 계획의 본질은 말하자면 인간이 스스로 결단하고 모이게 하는 '이념'의 박탈에 있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하고, 그들 멋대로 믿는 정의에 의해서, 세상은 다툼과 전쟁, 그리

고 계층간의 갈등이라는 사회의 문제점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서는 인간이 정의를 내리고, 결단을 내리는 행위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인간을 '상

대주의'의 틈바구니 속에 가두자."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나는 나 너는 너... 그

렇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견고한 성벽을 쌓고 교류 (충돌)을 거부하는 사회를 만들어

내면, 자연스럽게 인간은 서로를 믿고 단결 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을 즐겁게 해주자. 게임, TV, 스포츠, 섹스?(고등학생 이기에 이것은 제외) 음식, 문화 등등..

손쉽고 간단한 '순간적인 쾌락'에 간을 몰두하게 하자, 그러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평

온해 진다.

 

이러한 소수 엘리트들의 믿음속에서, 아틀란티스 계획은 착실히 '철학좀비' 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세상의 '상식'이 되어있는것  (인간은 무엇때문에 사는가? 하는 추상적인 생각보다, 먹

고 살기도 힘든 세상, 진학하고, 취직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스마트' 하다는 사회의 분위기) 또한 철학좀비를 양산하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

여 준다.   때문에 기리시마 세자매와 주인공은, 아틀란티스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서, 학교 뿐만

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싸워야 하는 여러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소설의 결말이 늘 그렇듯 그들은 각각의 철학사상을 무기로 훌륭하게 그 계

획을 저지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 저자는 이 미묘한? 소설의 내용에 약간의 '서비스'를 집

어넣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살짝 그 내용에 웃음짓게 한다.  그 서비스란 과연 무엇일까?  여

러분도 한번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해 봄이 어떠하신가?   물론 이 세자매가 말해주는 철학의 본질

에 대해서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도 잊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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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 그대로 - 사람 관계에 대한 예능 잡설
윤성희 지음 / 네시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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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즐겨보는 오락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당연히 재미에 열중하게 되지만, 최근에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이나마 이러한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예능작가'들의 고충에 대해서 생각

하게 되었다.   예능작가인 그들은 오늘날 대세인 버라이어티를 시작해서, 일반적인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재미 뿐 만이 아니라, 무특정 다수가 지니는 '관심사'를 이용하여 시청자들

의 채널고정을 이끌어야 한다.   이에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예능 작가라는 자신의 일과, 일반

적으로 집필활동을 하는 소설가의 삶을 비교해 자신들의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들은 재미있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이를 실행하는 등장인물들의 캐스팅에도 큰 관심을 가져

야 한다.  게다가 그들은 소설속의 상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실존인물

이기에, 그들의 셩격과 이미지, 그리고 언제 있을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고 대처

해야 하는 세심함도 요구된다.     때문에 여느 유명 작가들은 일반인을 뛰어넘는 폭넓은 '인맥'

을 형성한다.      이는 말하자면 과거 유행했던 '유(재석)라인' 과 같은 의미로 생각이되는데, 이

를 정의하면,예능작가는 배우와, 연예인 같은 특수한 신문을 가진, 사람들과 밀접한 교류를 유지

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기획에 이러한 인맥을 이용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이 책은 이러한 인맥을 관리하고, 유지하고, 형성하는 방법과 더불어 '이사람 저사람' 과

교류하면서, 인간이란 환경과 상황에 의해서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주력한다.   작가는 기획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친구나, 가까

운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전혀 교류가 없는 '다수의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때문에 저자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인간'과 '사회'라는 요소를 연구한다.  저자는

이에 오랜세월을 방송계에 사하며, 몸에 익힌 자신의 성공비결?과 같은 이야기를 독

자들에게 풀어놓는다.

 

그는 유행과 같은 사회의 인식에 민감하다.  오늘날 단순한 재미보다, 멘토가 될 수 있는 '힐링스

토리'가 먹히는 것과 같이 그는 작품을 기획하며, 과거에 먹히고, 오늘날 먹히는 소재와 이미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등장인물을 자신의 인맥을 통해서 골라낸다.  단순히 잘나가는

배우를 쓸 것인가?  아니면 신선함을 살린 신인을 쓸 것인가?  그러한 선택 하나하나가 시청자

의 사랑을 받느냐..아니면 외면받느냐의 갈림길을 결정한다.

 

단순히 공중파에 나간다고 해서, 모든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우

리들은 연예인들이 단순히 공중파에 등장한다는 이유만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

니다. 그 모든것은 '준비된' 노력과 기획에 의한 힘을 얻어낸 결과이다.   우리들이 단순히 '대박'

을 외칠때, 그 대박을 위해서 '죽을만큼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한번 떠올려보자.  그러면 바

보같고, 우습고, 가벼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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