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먹으러 가자 먹으러 가자
까날 지음 / 니들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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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심지어는 제주도 마저 가 본적이 없는 나로서, 세계각국의 '나라'와 '문화' 그리고

'음식'을 소개하는 이러한 책들은 분명 나에게 간접적인 체험을 하게 해줄 뿐 만이 아니라, 그

정보에 대한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시켜준다.    그러나 그 중 일본의 문화는(특히 음식에 대

하여) 대체로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가지 않아도 문제없이 않

겠어?" 라는 마음을 은근히 품고 있었느나, 이번에 손에 든 이 책은 그러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솔직히 일본 문화와 먹거리를 소재로 한 책들은 '여행 안내서'를 비롯해서, 의외로 풍부하다 못

해 '넘쳐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일본 만화와 오락적 성격의 책'등을 전문적

으로 출판하는 것으로 유명한, 대원 씨아이 쪽에서 출판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아기자기 할 뿐 만이 아니라, 읽기에 지루함이 없는 것이 느껴진다.      이에 개인적으로

본인은 이 까날의 '일본에 먹으로 가자' 시리즈를 홋카이도에 이어 2번째로 접하고 있는데, 특히

지금 소개하는 '오사카에 먹으로 가자' 는 과거 2008년에 출판된 책의 개정판으로서, 분명 전작

에 비해서 더욱 더 현대화 되고, 또 내용면에서도 강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더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현역 리뷰어'의 생생한 감상과 정보가 살아있는 본문의 내용!  

내가 지금 당장 행을 떠나도, 나를 그 장소, 그 가게에 그대로 데려다 줄 싱싱한 정보

는 그 분명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이다.

 

 

이제 매력에 대한 예찬은 각설하고, 어디 한번 책의 본문을 들여다 보자...' 홋카이도'와 '오사카

' 이렇게 두개의 지방의 먹을거리를 들여다 본 결과, 나는 개인적으로 오사카의 음식에 손을 들

어주고 싶다.     분명 이 책은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할, 신선한 초밥 등 일본의 느낌이 물씬 풍기

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다양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나의 여행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분

명 튀김, 우동, 장어덮밥 등등 한국에서 한번쯤 맛보았을 것들에 집중된다.      때문에 신선한 해

산물이 유명한 홋카이도 보다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오사카.간사이의 음식평에 더욱 시선이 가

는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가?     달콤한 디저트보다, 짭짤한 맛의 후식을, 깔끔하고 아기자기

한 맛 보다는 진하고 입안가득 맛이 우러나는 맛을 선호하는 나... 아마도 나는 입맛 면에서는 천

생 한국인 인 모양이다.  (그 덕분에 여행에 대한 식비는 상당히 저렴해질 것 같다.)  

 

그렇기에 이번 오사카 편에서 체크한 음식들은  '비프' '야키토리' '롤 캐피지' 오코노미야키' '돈

까스'등의 고기요리들!!  오랜만에 육즙에 풍부한 일본의 요리들에 나의 마음마저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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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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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을 보니 다른 소설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 가 생각이 난다.     그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

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며, 주인공을 걱정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때 어머니는 자신이 죽으

면 진정으로 아들을 위할 사람이 없을 것을 우려하며 눈물을흘린다.     그러나 주인공은 세상이

알아주는 건축가이자, 준수한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  그

는 조금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친구도 있고, 노후걱정도 없을 만큼의 재산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해주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을 제공해줄 사람

이 그에게 없음을 간파하고, 또 그것을 안타까워 한 것이다.

 

아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인간관계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좋다.   "나는 혼자가 좋다" 라고 떠벌

리고 다니지만,  인생을 오래 산 어머니는 인생에 단절된 인간관계가 얼마나 처절하고 외로운 것

인가?  하는 것을 안다.    그 때문에 그는 아들이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를 가지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위해서 남모르게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소설의 주인공과 더불어, 그것을 읽는

나 조차도 "아직 젊고, 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그들의 노력과 우려가 그다지 가슴

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의 나의 어머니도 요즘 들어 '결혼'이니 배우자니 하면서

노래를 부르시는데, 그 마음은 알지만 귀찮기만 하다.)

 

때문에 상실과 소외감을 주제로, 인간의 고독을 그린 소설 이'무게'의 내용 또한 그다지 가슴속

에서 울리거나, 큰 공감을 주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아름답다고 느끼

지만, 눈물을 흘릴수는 없는 책... 나에게 있어서 무게는 그러한 애매한 감상을 남기는 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2명의 남성의 인생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내용이 진행되어 가는

데, 그들은 사실상 연관관계가 없는 남남에 불과하지만, 어느덧 유일한 연결점 (여성)샬

린에 의해서, 점점 상처를 보듬어줄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소설의 초반 그들

은 각각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외로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 든

퇴직교수 '아서 오프'는 폭식을, 어린 샬린의 아들 '켈러'는 운동과 무관심을, 그렇게 그들은 나

름대로 인생의 고독을 극복하지만, 그 방법은 결국 비대한 몸과 더욱 극심한 대인기피증,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조차 단절되고 마는 부작용만을 낳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어머니인 샬린을 병으로 잃어버린 켈러는 지끔껏 꿈꾸었던 야구에 대한 열망과, 여자

친구를 통해서 맛보았던 첫 사랑의 두근거림까지 모조리 상실하고, 허무함과 절망 그리움이 섞

인 복잡한 기분을 맛본다.    주변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애정도 모두 약이 되지 못하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관심을 동하게 한 것은 마지막에 그에게 남긴 어머니의 '편지'  "너의 진짜 아

버지는 아서 오프라는 사람 이란다."  라는 그 내용만이 그에게 절망을 이기게 하는 큰 버팀목이

되어 준다.

 

물론 아서 오프도,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온 샬린의 편지에 흥분하기는 마찬가지, 샬린이 간절하

게 아들의 대학진학을 도와달라는 부탁에 그는 처음으로 그 뚱뚱한 몸을 이끌고 세상 밖으로 나

올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려는 켈리, 제자이자 친구인 부탁을 들어

주려는 아서, 그렇게 그들이 가지는 목적은 다르지만, 그들은 분명 각자 나름대로

'목적'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나갈 용기를 얻었다.    엇갈린 의도, 엇갈인 추억, 그리고 엇

갈린 오해와 진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상극의 관계이지

만,   결국 그들은 거짓과 오해라는 그 상극의 요소 덕분에 로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손에 넣는다.    이렇기에 이 소설은 인간이 진실과 속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정의와 정당한

이유 보다는, 욕망과 관심이 더욱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면이 큰 것 같은 느낌

이 든다.     

 

사람이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는데는 분명 '이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언제

나 '진실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거짓된 관심과 오해로 인해서, 두사람의 은둔자는 스스로

세상에 나와,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세상사가 복잡하듯, 사랑의 형태

도 복잡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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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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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그릇의 밥그릇을 가지고 싸우는 2마리의 고양이처럼, 국가와 국민은 영원히 자신만의 입장

을 위해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요즘 드러나는 시민의식을 돌아

보면, 스스로 국가와 사회시스템에 굴복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또 저항보다는 익숙해지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사람들의 복종

의지... 그러나 이는 과거 군주라는 전제주의 국가의 틀에서 인간답게 살기위해서 피흘리며 저항

한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자, 스스로 시민이라는 지위를 내던지는 무책임한 행위임을 잊지 말았

으면 한다.

 

자유와 귄리, 그리고 의무라는 모순된 가치속에서, 이 책이 등장하는 1762년의 유럽은 우리들이

흔하게 생각하고, 누리고 있는 다양한 가치에 대한 관점이 만들어지고, 또 지식층에 의해서 평가

되고 있는 이념적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과거 종교적 가치를 중심으로 지배권을 확

립한 군주국가, 군주국의 산하 아래 지배권을 인정받은 제후국, 절대왕정, 공화국이 섞여 각 국

가의 고유한 체제를 가지고, 사람과 영토를 다스리던 시기.    이에 그 당시 등장한 '장 자크

루소'의 사회 계약론은 그야말로 신민이 아닌, 시민을 위한 개념을 정리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

해서 어떠한 체제를 지녀야 하는가? 라는 근대 민주주의 이론을 성립한 서적이라는 점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루소는 이 책에서, 가족을 이루는 계약과 국가가 이루는 계약의 차이를 설명하고, 단순히 지배

를 위해서 존재하는 전제주의의 참된 의미를 정리하며, 이를 주의하고 멀리하기를 권한다.    그

리고 그는 과거에 존재했던 국가의 의미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보다는,

각자의 국가가 주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국민의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기보다, 국민 스스로가

그 국가의 정치적 참여를 유도하고, 그에 걸맞는 권리를 지니게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나는, 루소가 그러한 주장을 펼치면서 예를 든 수 많은 사례중, '표트르 대제'의 선진화 정

책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편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잃어

버린 100년을 앞당긴 위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역사적 인물에게서 과연 무엇이 불만스러운 것

일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곧 "표트르 대제는 뭐든지 잘 모방하는 천재적 재능

가지고 있었지만, 무(無)에서 창조하고, 만들어 내는 재능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러

시아 제국은 유럽을 정복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정복당하고 말 것이다."  라는 본문의 내

용과, 현재 러시아의 상황을 겹쳐보고, 그의 놀라운 예견성에 새삼 놀라운 감상을 가졌다.

 

결국 이 책 덕분? 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는 지도자보다 대중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적

이념을 일반화 시키는데 성공했을 뿐 만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정책을 가지고 평가하고, 비난

하고, 참여하고, 일반적으로 공론화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체제를 가진 국가를 만들어

냈다.     때문에 우리들은 이 책을 통해서, 적어도 국가를 운영하면서 가지는 입법, 행정

,신분, 이념, 참정권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숙지 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

다.   단지 명작,고전이라는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계몽'이라는 단어가, 이렇

게 뼈 아프게 와 닿는 것은 어째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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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끼 발효 효소식 - 독소를 배출하고 생체기능을 살려주는
주부의 벗사 지음, 남성은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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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큰 병을 이겨낸 어머니 라는 존재가 있다.    그 덕분에 나는 그 날 이후로, 따뜻한 쌀

밥(아침밥) 대신 녹색이 선명한 걸죽한 주스를 마시고, 어머니가 '효소를 만든다며' 구매하는

다양한 채소와 설탕을 짊어지고 다니는 일을 맡았으며, 심지어는 삶의 즐거움? 중 하나였던 중

국요리와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오로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이리저리 정보를 얻고, 또 이를 실현한다는 어머니의 의지

에는 불만은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자연식의 효과를 눈으로 체험한 것은, 내 몸에

일어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일요일 날 버리는 재활용 쓰레기가 획기적으로 줄었다는(냉동

식품, 보존식품) 나름 엉뚱한 곳이였다. ^.^      그러나 자신의 몸의 변화를 자신이 느낀다는 것

은 반대로 생각하면, 시작부터 몸 상태가 멍망이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그래 나는

처음부터 건강했고, 지금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것이다. !! (그렇게 믿도록 하자)

 

이에 어머니는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앞에서 설명했지만) '효소'라는 존재에 유독

열심히시다.    그 증거로 집에는 효소를 직접 만든다며 구비한 항아리, 설탕, 구기자, 오디와 같

은 다양한 재료가 가득하며, 최근에는 그 농축액 1호? 가 만들어져, 금지된 청량음료를 대신하

는 요긴한 물건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나 그 농축액이 만들어 지기 까지, 그 중간에는 눈물나

는 실패의 역사도 많은데, 특히 간추리자면 벌레, 곰팡이 같은 것들이 그 실패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 실패 때문인가?  어느덧 우리는 무조건 만들어 보기보다는 한번 '레시피'를 접해보자는 당연

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결국 이 책의 존재를 발견하게 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효소는 우리집이 원하는 '장기보존용 효소' 에 대한 내용보

다는, 단기적으로 꾸준히 만들어야 하는 '건강주스'와 같은 내용의 것이 주요하게 다루어져, 조

금 아쉽고 실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또한 책이 원래 일본생활백서와 같은 내용을 그대로 번

역한 번역서라서, 건강 밥상이 '일본식'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망을 뒤로하면, 이 책은 의외로 긍정적으로 보아주어야 할 것이 많다.   특히 책

의 주제인 '어째서 효소먹어야 하는가?' '어째서 소식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내용을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풀이한 것은 어머니의 마음에 딱 들었던 모양인데...   그러나 그 마음에

든 만큼 나의 '미식 라이프' 는 큰 위기를 겪고있는 것이 문제다.  (이제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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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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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지니고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1858년~1875년 사이 발생한 한 사내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실화소설이다.    이 세상에 있었던 일이기에, 이야기의 내용과 묘사는 현실

적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면서, 과연 이러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르시즈 펠티에는, 16살

의 어린 나이에 무능한 선장과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체, 십수년의 세월을 섬의 원주민과 함께 생

활하며, 완벽한 '현지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1875년 다른 선박의 선원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원주민과 같은 문신으로 몸이 뒤덮여있음

은 물론, 그의 모국이던 프랑스에 대한 기억과,상식 심지어는 언어까지 망각한 체 그야말로 원시

인과 같은 수준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예는 과거의 작품 정글북과 같이, 실제로 동물에

게 길러지거나, 인류의 문명을 접하지 못한 부족등을 보면 쉽게 그 예를 발견 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러나 나르시스는 이미 문명인으로서의 자아가 깨우쳐진 상태에서, 특수한 환경에 의

해 자연 퇴화를 했다는 드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십수년의 생활은 길다, 그러나 그렇

다고 그가 어떻게 과거의 상식과,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었을까?  실제로 외부의 환경이란 것이.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내용을 떠난 다양한 생각

과 의문점을 만들었고, 그 내용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 대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

한다.

 

'나르시스는 과연 퇴화 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저자는 책 속에

나르시스의 경험담과 더불어,구조된 나르시스를 관찰하는 학자 옥타브의 견해를 담은 보고서라

는 2개의 시점을 준비했다.     이에 소설속의 옥타브 보고서는 나르시스의 관점이, 현대의 사람

의 시점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비교를 하는데 무척이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나의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나르시스는 단순히 문명인에서, 미개인으로 퇴화 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 환경에 최적화 된 것 뿐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나르시스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 증거로 그는 구조된 이후에도, 과거 섬에서 살았던 그 방식대로 무수한 물

고기를 잡았고, 어두운 곳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사회인으로서는 놀랍기 그지없는) 신체적 우월

성을 보여 주었다.     그가 사회인과 다른 것은, 단지 예의를 차리지 못한다는 것,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 돈에 대한 귀중함을 모른다는 것, 단지 그 뿐이였다.

 

나르시스가 프랑스에 도착했을때,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호기심과 측은함을 표시했다.   그러

나 그 이면에는 미개인의 수준으로 몰락한 그를 보면서, 자신들의 문명과 사회적 우월함을 재확

인 하면서 단순히 우쭐거렸을 지도 모를일이다.  모두가 굴절된 시각으로 그를 판단할때, 심지어

는 그의 친구가 되어준 옥타브조차도 그러할때,  단 한명 나르시즈 만큼은 소설이 끝나는 그때까

지 모든것을 투명하게 보는 깨끗한 존재로 남아있는다.

 

프랑스 황후가 그에게 "내일은 무엇을 할건가요?" 라고 물었을때 그는 "내일은 해가 뜰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야 말로, 인생을 살면서,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 그리고 욕구

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인인 우리들이지 자연인 인 나르시스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며, 그리고 또한 나르시스가 과거와 미래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는 나르시스에게 기억하고, 이해하고, 꿈꿀것을 강요한다.    그들은 나르시르를 프

랑스로 데려왔고, 가족을 상봉시키고, 어째서 섬에 남게 되었는가를 묻고, 나중에는 그가 제몫

을 다하기를 바라며, 등대지기라는 관직까지 하사한다.    그러나 결국 소설의 막장에 들어 나르

시스는 끈질기게 과거를 캐묻는 옥타브에게 '앙고' '말하는 건 죽는것과 같아'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과연 그가 말한 "말하는 건 죽는것과 같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이였을까?

 

혹시 그것은 분노가 아닐까?   과거 자신을 버리고 배를 출항시킨 선장에 대한 분노? 착박한 섬

에서 본의 아닌 미개한 생활을 하게 된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  아니...의외로 섬에서 자신을

데리고 나온 문명인들과 옥타브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른다.    

 

16년동안 섬에서 표류한 나르시스에게, 프랑스의 생활 역시 '귀환'이 아니라, 또 하나

의 '표류'가 아니였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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