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카타르
지병림 지음 / 북치는마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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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때, 나는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카타르라는 나라의 풍속이나, 전통, 생활

상 등을 소개하여 주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 나는 결과적으로 처음의 그 생각

이 틀린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그의 반대로 기대했던 만큼의 '정보'가 나오

지 않음에도 내심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기도 하였다.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 책은 전작 '서른살 승무원'의 뒷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그의 '일기'

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전작에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던 시절에 대한 절망과, 희

망, 욕구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였다면, 이번의 이야기는 꿈을 이루었지만,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새로운 걱정거리나, 의문,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이야기의 관찰자로서 느

끼는 감성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할까?

 

그녀는 비교적 적지 않은? 나이에 먼 타국에서 '항공 승무원' 이라는 꿈을 이루었다는 '인간승리'

를 쟁취하고 또 그 과정을 책으로 엮어내어, 취업과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

를 불어넣어 주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성공' 과 더불어 글을 쓰

고 싶다는 '꿈' 이 두가지 모두를 만족시킨 사람이자, 힘들고, 괴롭고, 방황했던 과거를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뛰어넘은 노력파라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만족'은 없는 법!  분명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고, 멘토로 삼고 싶고, 그 뒤

를 따르고 싶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의 대부분의 내용에서 '생각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이 저자를 고뇌하게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조금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단번에 저자의 상태가 눈에 보인다.   책 속에서의 저자는 낮선 나라

에서 느끼는 '감정' 극한의 서비스를 지향하는 승무원으로서의 삶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리고

책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로서의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는 존재이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지금 저자의 상태는 마치 막 추진로켓과 분리된 우주

선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꿈을 향한 최초의 단계를 넘어, 그 다음'최종적인 목표'를 향해서

항해하는 중인 것이다.      지금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은 꿈꾸었던 삶을 살아가는 과정속

에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마냥 행복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하루하루가 축복과 같다. 라고 생각

하며 감사한다." 라는 메세지를 담았고, 이를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때문에 과거 저자의 저술(서른살 승무원)에서 '용기'와 '희망' 그리고 '도전정신'의 가치를 얻었

다면, 이번 저술에서는 그보다 저자의 감성과, 생각, 믿음에 대한이야기... 즉 저자의 '일기'를 엿

본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도록 하자.   낮선 문화에 놀라고, 타인의 생활과 충돌하고, 진상손님

을 맞이하고, 나중에는 승무원만이 누리는 여행의 삶을 만끽하는 등의 수 많은 이야기들...  그야

말로 이 책은 그녀의 공개된 일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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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유사 - 천년고찰 통도사에 얽힌 동서양 신화 이야기
조용헌 지음, 김세현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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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일반적인 절이라기 보다, 선덕여왕 15년(646년) 창건되어 신라에서 대한민국까지, 오

랜 세월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한 유서 깊은 절이다.       그러나 한국의 '삼보사찰' 이라는 명성

과는 무관하게,  나는 이 책을 읽기 이전에는 통도사라는 절이 있는 줄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

지 않았다.    과연 그것은 어째서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델포이 신전에 대해서는 신비감

과 같은 호감적인 이미지를 품으면서도, 한국의 사당나무에는 단순히 '미신'이라며 하급 취급하

는 편양된 서양 제일주의의 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의 전통보다는 서양의 전통을 배우고, 읽고, 습득한 덕분에, 처음 이 책의 제

목을 읽었을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읽어야만 하는' 상황이 왔고, 그것은 결국, '편식을 하는 아이가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과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위로는 하늘을 동경하고, 아래는 땅을 모시는 농경사회를 이룩했다.    때문에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동식물을 '신물'이라 하여 극진하게 생각했다.   그

러나 이제 과학기술의 능력과, 보이는 것만 믿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에, 더이상 그

러한 사상이 세상을 지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의 생각의 조각들은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살아남아 알게 모르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비록 '불교에 대한 책'을 써 내려가고 있지만, 과거 한반도를 이끌어 가던 무수한

설화나, 전통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우리들은 하늘을 동

경하였는가?  어째서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서까지 나라를 위해서 다른 것도 아닌 '용'이 되려고

하였을까?  책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과 답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그 해석중 일부는 '앞으로의 역사적 시점에서 공감대와 연구가 필요한' 것이 대부분이며,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직 '정설'로 인정 받지 못한, 한 사람의 주장에 불과 한 위치에 있는 것

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연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면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단 이것을 '역사'라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라 생각한

다.)

 

이제 사람들은 전통혼례에 어째서 나무오리를 올려 놓는지, 어째서 고승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

는지, 과거 불교가 한반도의 정신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하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

는다.    저자는 불교의 정신세계를 설명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의 인식차를 설명하며, 과

거의 사람들에게는 '신심'(信心)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깨끗한 세상속에서 귀신을 보았

고, 영적 에너지를 느끼고, 또 그것을 공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앞서 이 세상에는 분명

과학기술과 의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영적인 존재와 그와 관련된 영혼의 질병이 존재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대의 사람의 시점에서보면, 미신이요, 야바위꾼의 사기행각이요, 시대에 뒤

떨어진 옛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 다는 감상을 남길 여지가 있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는

이 내용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답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 책에서 단순히 통도사

의 역사와 문화만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저자가 말하는 동양의 신심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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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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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과 함께, '당연히' 쏟아져 나온 그녀의 '번역 작품들' 미

움, 우정, 구애, 사랑 이라는 다소 복잡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도 그중 하나이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은 나에게 있서 책장을 덮은후 온몸을 감싸는 감동이나, 교훈을 주었던 책이

아니다.   마지막장을 끝내고 이 책을 바라보았을때, 나에게 있어 이 책의 감상은 '물음표' 말 그

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이해하지 못함으로서 생기는 의문이 합쳐진 '당혹스러움' 이였

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남자여서 그럴까?  아니면 번역가의 실수일까?     세상은 저자인 그녀를 북미 최고의 단편

소설가라고 칭송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명성에 대해서 고개를 끄떡일 어느 공감대도 가지

고 있지 못하다.  아... 어쩌면 내가 이 소설을 소화 하지 못할 만큼 문학적인 이해력이 없을 지

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제척인 내용과, 이 책의 제목이 바로, 과

거 존재했던 '여인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여인들이 바라던 대로...

그리고 희생된 대로... 그 모두를 혼합한 스프처럼, 이 책은 인간의 모든 욕망과, 분노, 갈망, 슬

픔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 증거로 소설에는 한명의 중요한 등장인물보다는 각각의 인생을 칠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

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에 나는 소설의 첫 장을 장식하는 등장인물 '조해너'의 이

야기 흐름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는 결코 아름답거나, 교육 받았거나, 안정된 삶을 사

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든것을 정리하면서도 '확실하지

않은' 믿음 하나를 믿고, 그디니아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이야기중 그녀가 말하는 "결혼 할

지도 몰라요" 라는 말이 그녀의 모든 것을 표현하지 않는가?   등장인물 중 하나이지만,  조해너

는 과거 인생을 개척하기 보다는 의지함으로서 살았던 그때의 여성을 대변하는 존재라고 생각

된다.   이제 각자의 삶의 방법이 다양해 지고,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자유를 갈망하는 요즘

사회에서, 그녀의 헌신은 이미 고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여

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한다.     그러나 앞서 고백한 데로, 나는 그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책을 읽었으나, 아니 읽으만 못하다" 라는 말처럼  지금 나의 상태가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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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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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연주곡만 듣고도 '바이에른 교향악단'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이점

을 분별 할 줄 아는가?  당연하게도? 나는 그러한 연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의 특징에 대하여

민감하게 분별 할 줄 아는 지식과 내공이 없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일부 클레식을 사랑하는 사

람들... 그리고 음반시디 뒷면에 부착된 '가격표'는 그 차이점을 매우 정확하게 집어낸다. ^.^

 

같은 곡이라 해도 '카라얀'의 지휘에는 수천, 수십만의 인원과 돈이 몰리고 또 수천 수만가지의

극찬과 관심을 받는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 명 지휘자'의 음악에 강렬한 충격

을 받고, 또 그 감격을 다시한번 느끼기 위해서 그의 음악회를 찾는다.     (지금도 그의 동영상

을 보면 무언가 짜릿한 감상을 받기도 한다.) 음악은 '단순한 음색'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클래

식은 '영혼을 움직인다' 라는 극찬을 섞어가면서, 수십 수백년이 지난 과거의 음악을 스스로 찾

아가는 사람들... 과연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듣는 행위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 드보르 작, 바그너와 같은 인물의 교향곡을 즐겨듣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음악에 대한 유례나, 지식에 대한 분야에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

는 상태이다.   말하자면 나는 현대 음악에서 '비트'를 느끼듯이 단순히 클래식에서도 음색과 분

위기에만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아무리 명 지휘자와 명 오케스트

라의 음악을 들어도, 그 음악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고 부

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인것을 어찌하랴...

 

모든 일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매우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지 않는 이상, A에서 바로 Z

로 뛰어넘는 모험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처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명필의 기본은 지필묵' 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다시 한번 상기하여 본다.    이 책은 분명

과거부터, 오늘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흐르는 클래식의 이야기, 그 중 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를 담은 책이다.      때문에 저자의 글에는 명 음반에 대한 예찬과, 수많은 교향곡, 합창곡

에 대한 정보 보다는, 음악가 라는 명찰을 달고 한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에 대

한 이야기들이 더욱 돋보인다.

 

내용을 보면, 그들은 스승을 찾고, 라이벌과 경쟁하고, 오만하고, 독단적일 뿐 만이 아니라, 원래

부터 음악 '연주'에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음악

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자신의 인생 모든것을 걸고 집중했던 남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  카루소 처럼 가난과, 시기, 착취의 그늘 아래서, 그 모든 악조건을 이기고,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하는 사람사는 이야기와 교훈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보다 고풍스럽지만, 고루한 클래식의 세계에서 벗어

나서, 우리들이 흔히 교과서등장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다양한 음악가들의 인생을

엿보고, 또 그럼으로서 그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애정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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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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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신물나게 접해본 기억이 떠오르지만, 왠지 '익숙함' 보다는 그때 그때마다 엄습하는

'신비감'과 '재미'에 푹 빠지게 되는 것... 그야말로 인류를 소재로 한 '멸망'과 '재난' 의 이야기

는 나에게 있어서, 영원히 질리지 않을 오락적 소재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인류의 위기를

통해서, 인류의 한계와 또 그를 극복하는 과정에 드러나는 희망을 그린다.'    그러한 전체적인

소설의 이야기 때문일까?  그 덕분에 나는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제3인류 또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류와 지구의 관계는 지금의 현실과 매우 유사하지만, 의외로 저자만의 개성

이 넘치는 특별함이 녹아있기도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즉 우리들이 흔히 '지구' 그리고 '가

이아' 라고 칭하는 혹성과 대지는 분명 그 '생명'이 있지만, 희노애락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에

서는 분명 '인류와 같은 동류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차이점이 느껴진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지구도 하나의 '기억력'과 '사고력'을 품은 인격체로서 등장하며, 그 자아는

자신의 털을 밀고, 피를 뽑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신체에 '몹쓸 짓'을 서슴치 않는 인간에 대하

여 분노섞인 감정을 그러내게 한다.     그 때문에 지구는 오늘날 의 인류를 상대로, 자신의 '

감정'을 표현하고, 또 앞으로의 철 없는 행동에 대한 대한 '보복'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지만, 인류는 수 천년전 자신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뜻에 복종하는 '과거의 존재'가 아니였기

에, 지구의 외침은 그가 원하는 바 그대로 인간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는 그 지구와 인간과의 교감이 끊어진 덕분에, 그 상대에 대한 '배

려심 없이' 마음껏 남의 것을 파해치고 사용함으로서, 세상 유례가 없는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

어 낼 수 있었다.     기계문명의 발전, 교통과 물류의 혁명, 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

의 증가.   60만 아니...100만이 넘는 소설속의 인간세계는 그야말로 인류가 감당 할 수 있는 한계

를 넘어선 느낌이다.      

 

세월이 흘러...소설의 지구인들은 지구가 친절하게 '위기'를 알려주지 않아도, 환경오염, 새로운

질병, 자원의 고갈과 같은 위기를 통해서, 인류의 미래는 결코 창창하지 않다. 라는 사실을 인식

한다.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중 '오비츠대령'은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6개의 분기점을 제시하는데, 그 분기점들의 핵심들은 모두 자원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인류 자체의 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전쟁' '질

병' '기계문명' '종교' '정치' '의학' 이러한 무수한 갈림길 속에서, 주인공들이 고른 길은 바로 생

명공학을 이용한 '여성화' '소형화'의 기술을 축척하는 것!    결국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불과 20센티도 안되는 새로운 인간 '에마슈'를 창조하는데 성공한다.   

 

이 획기적인 기술적 성과에 흥분한 주인공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는 '가이아'의 입장에서는 그

것은 단지 굴러가는 수레바퀴 처럼, 언젠가 다가올 필연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그 사건을 계기

로 가이아는 떠올린다.    과거 수천년 전 10미터도 넘는 지적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명찰을 달

고 있었던 시대, 그들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며, '아틀란티스' 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그 시대,

그들도 분명 생존을 위해서 '작은 인간'을 창조했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그 작은 피조물들

의 지배자이자, 신으로서, 군림하다가  최후에는 반항적인 소인(小人) 들의 공격에 의해서 멸망

의 길을 걷는다.

 

그 가이아의 기억처럼, 소설 제2권의 마지막에는, 점차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에마슈'들이

점차 '인간'과의 사이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용하기 위해서 '에

마슈'를 창조한 인간의 오만 앞에서 과연 생각하는 '에마슈' 들은 어떠한 움직임을 보여줄까?  

과연 그들은 '신'을 향해서 칼을 겨눌 수 있을까?    

 

*1권은 한우리 북까페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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