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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평점 :
1910년 8월29일. 과연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국가가 그렇게 허망하
게 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대한
민보와 같은 민족신문들과 지식인들이 나라의 위기를 부르짖고 경고를 해도, 그 속에서 하루하
루를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에는 그 절실함이 그다지 크게 와 닿지는 않는 법이니까.
현대의 우리들도 '언론의 위기' '나라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부르짖는 오늘날의 매체
를 보면서, (속으로는 걱정 할 지도 모르지만) 겉으로는 "뭐야 또야?" 같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
이지 않는가? 아마도 그 당시의 '신민'들도 그다지 절망적인 위기감을 가지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란 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대한제국의 '근대적 언론'은 독립국인 대한제국의 오늘이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 하
는 현실을 비교적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민중에게 끝임없이 알리려고 했다. 때문에 그들
은 '하루속히 문명국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다양한 근대 운동을 벌였으며, 그 운동은 단순
한 '이발' '목욕' '서양문화'와 같은 근대적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시도와 더불어, 서방의 위인
전기와 공학, 인문같은 근대식 교육을 긍정적이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라는 대 국민적 요구도 서
슴치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애국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한.일 병합이라는 최악의 방
향으로 향하고 말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역사를 돌아보며, 과연 그 결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
을까? 당시의 민중과 언론은 그 결과에 어느정도의 책임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독자들
에게 넌지시 묻고는 한다.
근대식 언론의 특징은 앞으로의 국가의 방향을 전망하는 '전문성' 뿐 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형 광고같은 '현실적 정보'에도 충실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문은 그 당시의 문화와 분위기
를 엿보는 최고의 창문이 될 수있는데, 저자는 그 중 주로 만평을 통한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대한제국의 분위기를 엿보려고 한다.
분명 개국은 근대화를 앞당겼다. 남.녀의 데이드, 상회의 발전, 서양식 결혼과 교육, 새로운 목
욕문화와 의료서비스의 등장은 그야말로 근대라는 특혜의 산물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
종종 드러나는 만평들은 보기에 따라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들이 많다. 빠른 근대화를 위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경시함은 물론, 민중들이 느끼는 '을사오적'에 대한 다양한 루머와 분노
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대한제국이 하루빨리 일본과 합쳐져야 한다'는 친일파들의 주장이
대대적으로 신문에 올라왔고, 무엇보다 경품과 화려함으로 무장한 일본사업가들의 상품광고는
그야말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경제를 침식하고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 되어주는 것이
였다. 세상이 그러하기에, 민중들은 스스로 무당과 같은 미신에 빠지고, 삼십육계와 같은 도
박에 빠져 한탕주의에 물들었다. 그 뿐이랴? 일본어,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기교사(지식인이
아니다.)들은 그 지식을 이용해 심지어 임금을 속이기를 주저하지 않고, 또 나라와 돈을 저울질
하여, 결국 돈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대한제국을 증오하였기에
그러한 만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그리고 돈을벌고
살아가기 위해서 나라를 팔았다. 그들에게 '나라는 상품' 그야말로 가장 짭짤하게 팔아먹을
수 있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랏님보다 신하가 더 부유하고, 그 관리라는 부류가 자신의 나라보다 일제를 더 중요
하게 여기니... 이처럼 대한제국의 미래는 그야말로 무기력을 넘어 망국을 향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식있는 지식인들은 신문으로나마 그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며, 나름대로
의 불만을 토한다. 그 예로 위의 만평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이완용이 며느리와 정분을 통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를 '개보다도 못하다' 라고 욕하는 만평을 보라!!! 물론 그것은 사실(진
실)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그 기사야 말로 민중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로서 민중
은 신문을 통해서 처음으로 귀하신 몸, 즉 대신과 왕 그리고 나라의 꼴을 있는 그대로 당당히
지적하고 욕 할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실제로 나중에 이르러 독립신문과 같은 언론이 대한독
립에 있어서 상당한 공을 세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때의 언론은 그야말로 자유는 잃었지만,
대신 대중을 대변한다는 그 본래의 역활에는 (순수하게)충실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1900
년대 민중들은 분명 나라를 잃었다. 그러나 언론에 의해서 비추어진 민중의 정신은 결국 민
족의 나라를 되찾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나라를 생각하는데 양반과 천민이 따로 있으랴
!!! 이 책에 등장하는 기사들이 오늘날의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러
한 언론이 비추어주는 민족의 본 모습(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