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 우주가 만든 생명이야 나는 과학 4
신동경 지음, 김일경 그림 / 풀빛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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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과학시간에 인체에 관해 배우면서 손목에 뛰는 맥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너무 신기해서 친구들과 1분에 몇 번의 맥박이 뛰는지 세어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조금씩 우리의 신체를 배우게 되면서 신기했던 것들이 참 많은데 <나는 온우주가 만든 생명이야>를 읽으며 우리 몸에 대한 더 많은 신기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우리몸에는 어떤 신기한 이야기가 매일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몸에는 큰소리는 아니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몸에서 여러가지 소리가 들린다. 우선 왼쪽 가슴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으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심장이 한 번 뛸 때 우리 손목의 핏줄도 한 번 뛴다. 심장이 뛰면서 온몸으로 피를 밀어내기 때문에 우리몸의 핏줄도 팔딱팔딱 뛰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심장은 1분에 70번 뛴다. 한 시간으로 계산하면 4200번 뛰는데 하루 24시간 100800번 뛴다. 심장이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동안 코나 입으로 숨을 쉬는데 1분에 16번 정도이다. 매시간 느끼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몸은 바쁘고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밥을 먹기라도 하면 위도 움직이고 소리를 낸다.  



이렇게 몸이 바쁘게 움직여야 우리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도 있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출 수도 있고 운동도 할 수 있다. 몸이 바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몸에 에너지를 주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들판에서 자란 벼의 씨앗이고, 바다에서 살고 있는 생선, 농장에서 자란 닭이나 돼지, 소 등이다. 우리만 이렇게 음식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바다의 생선도 더 작은 생선이나 프랑크톤을 먹고 자라고, 농장의 동물도 사료나 다른 식물을 먹고 자란다. 식물도 자연의 햇빛과 바람, 비 등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은 모두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엄마의 배 속에 생겨났을 때 엄마의 세포와 아빠의 세포가 만나 생겨나게 된다. 엄마가 먹는 음식에서 영양분을 받아 자란 우리는 약 3kg이 넘는 아기가 되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엄마 세포와 아빠 세포 하나씩 만나 또다른 세포가 되었는데 우리의 몸속에는 엄마와 아빠의 세포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세포들까지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은 세포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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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몰랐던 꿈 이야기 풀빛 지식 아이
허은실 지음, 김민준 그림 / 풀빛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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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꿈을 꾸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꿈을 꾸면 꿈에서 깨어나도 생생하게 생각나기도 한다. 꿈에 대해 몇 가지 알고 있는 정보가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동물도 꿈을 꾼다고 한다. 그리고 사라믈은 꿈을 꿀 때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컬러로도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흑백으로 꿈을 꾼다고 한다. 물론 꿈에 대해 아직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기도 하지만 <꿈에도 몰랐던 꿈 이야기>를 통해 꿈에 대해 더 많고, 자세한 사실들을 알 수 있다.


나리는 그림책을 읽으며 그림책 속에 나온 생쥐가 그림책에서 노인 부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쥐가 콧구멍 속으로 들락거리는 것은 끔찍했다. 그날 밤 생쥐는 나리에게 나타났는데 나리는 이것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꿈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생쥐와 함께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꿈이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생생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꿈은 가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데 꿈에서도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낮에 겪은 일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리도 낮에 학교 화장실에서 겪은 일이 느날 밤 화장실 꿈을 꾸기도 한다. 또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고양이가 강아지가 자는 동안 배 위로 올라간 것이 꿈에서는 거인 밑에 깔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상상한 일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꿈을 꾸는 것일까? 생쥐는 나리의 질문에 우리 뇌는 자신이 모은 정보들을 꿈으로 보여 주면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을 것을 가려낸다고 한다. 이렇게 가려진 정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게 된다. 우리의 뇌는 낮에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나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우리가 자는 동안 정보들을 조각조각 자르고 섞은 다음 하나하나 붙여 하나의 작품처럼 만든다고 한다. 꿈은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도 해결해 주기도 한다지만 가끔은 아주 무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악몽은 누구나 꾸는데 자다가 악몽을 꾸고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악몽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악몽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악몽을 꾸면서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걸 연습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꿈이든 쓸모없는 꿈은 하나도 없다. 악몽도 우리를 성장시키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꿈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준 생쥐는 떠나면서 나리에게 수염을 하나 뽑아주며 악몽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일이 꿈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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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2 -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 강남 좌파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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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2>를 읽기전엔 '강남좌파'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강남'이라는 지명과 '좌파'라는 정치관이 합쳐진 단어로 '강남 좌파'는 한국 사회의 신계층의 하나로, 몸은 '상류층에 고소득, 고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강남 좌파 2>에서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잘 모르고 있던 단어들이 나왔다. '수구꼴통', '종북좌빨', '진보 코스프레', '도덕적 면허 효과' 등 인터넷에서만 떠돌던 단어인줄 알았다.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에 하나가 아마 '불평등'일 것이다. 이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 대부분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대 99% 사회'라는 말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더 많은 저항을 받고 또다른 불평불만을 낳는다고 본다. 그래서 사회는 더욱 1%와 99%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 대 99의 사회'라는 프레임은 1% 개혁도 어렵게 만드는 함정이며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학벌은 점점 부익부빈익빈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부자들이 SKY대학, 의대, 로스쿨에 자신의 자식들을 보내고 그들이 다시 대한민국의 1%에 속하게 되면서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이러니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보니 강남 좌파가 '1 대 99의 사회'를 왜 외치는지 알 수 있다. 진보는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평등 해소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개인의 능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위치가 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많이 다른 시대라 능력주의가 아니라 세습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불평등을 타도하고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들어 국민들에게 이슈가 된 '조국 사태'를 보면 불평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잔인함을 볼 수 있다. 국정 농단 촛불 혁명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이번엔 반대쪽은 적폐로 보고 자신들은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생각만 있는 선악 이분법적인 생각이다. 이런 사태를 만든 세대들에게서 답을 얻을 수 없다. 이젠 20대가 이런 문제의 답을 줄 것이다. 20대도 정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잘못된 불평등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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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된 남자
샤를 페로 지음, 장소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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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이라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성인 동화이긴 하더라도 내용이 무섭기도 하고 동화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거울이 된 남자>도 성인 동화이지만 '동화'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거울이 된 남자>는 한 모임에서 오고 간 대화 중에 알게 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쓰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포르트레'라고 부르는 것으로 포르트레는 회화에서 파생된 문학 장르로 언어로 대상을 형상화한다. '포르트레'의 뜻을 알고 있으면 이 <거울이 된 남자>의 동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포르트레는 눈에 보이는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것은 흡사 '거울'과 비슷하기도 하다. 거울도 거울을 보는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울이 된 남자>의 주인공 오랑트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거울이다. 오랑트가 어떻게 거울이 되었을까?



오랑트는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의 영혼까지도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게다가 오랑트 역시 자신이 보이는대로 상대방의 모습을 묘사해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랑트에게는 세 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들도 상대방을 잘 묘사했지만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하거나 반대로 축소해서 묘사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수학자가 된다. 많은 여자들은 오랑트의 능력을 알고 좋아했다. 그 많은 여인들 중에 오랑트에게 유난히 애정을 쏟는 우아한 여인이 있었는데 당시 최고의 미인으로 꼽힌 칼리스트였다. 칼리스트는 오랑트의 능력을 알고 점점 더 오랑트와 시간을 보내며 점점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최고 미녀 칼리스트는 오랑트에게 점점 빠져들었지만 당대 최고의 미인답게 칼리스트를 짝사랑하는 남자들은 많았다. 오랑트에게 빠진 칼리스트를 보며 오랑트에게 질투를 느끼는 남자가 있었다. 본래 질투에 눈먼 사람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랑트를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칼리스트의 본모습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어느 날, 칼리스트는 몸이 아팠고 사랑하는 오랑트마저도 만나기 싫었다. 그러는 동안 칼리스트는 점점 더 많이 아팠고 얼굴은 점점 변하게 된다. 그래도 오랑트를 만나고 싶었던 칼리스트는 혼자 있던 시간에 오랑트를 만나러 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칼리스트 때문에 놀란 오랑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습대로 말해버린다. 칼리스트의 아름다움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칼리스트와 오랑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랑트는 어떻게 거울이 된 것일까?  


<거울이 된 남자>는 오랑트의 얘기지만 칼리스트를 보면서 '자기애'에 빠진 모습을 보게 된다. 칼리스트가 자신의 외모에 심취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채 거울만 보거나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오랑트에게 자신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몰려드는 모습은 지나친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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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 밀레니얼과 젠트리피케이션
경신원 지음 / 파람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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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이 있다. 쇠퇴한 지역에 기존 주민보다 부유한 주민이 유입됨에 따라 나타나는 경제적, 환경적인 개선을 뜻한다. 이로 인해 급격한 임대료 상승과 기존 주민들의 비자발적 이주 현상이 동반되는 현상이다. 이는 책에서만 사용되는 전문용어가 아니다. 얼마전 한 유명인의 기사를 읽다보니 14년동안 이태원에서 식당을 했지만 몇 년 전부터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개의 식당을 가지고 있고 식당업으로 성공했다는 연예인이었지만 이태원 골목의 상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좁고 작은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부작용으로 유명 골목이 된 상권을 점점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 2015년 무렵부터 이태원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는 많은 대중매체에서 다루었다. 2000년대초 영국에서도 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났고 한국은 주거지의 고급화, 즉 주거지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대규모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그러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주택은 경제적 자본은 제한적이지만 문화적 자본이 풍부한 새로운 소상공인들에 의해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한때 '0리단길'이라고 하는 골목길들이 유행하면서 매스컴이나 SNS에서 핫플레이스라는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상권이 활기를 띄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뒤엔 꼭 상가 임대료의 상승이나 부동산 가격이 올라 오히려 소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면서 상권이 점점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또다른 '0단길이' 생겨나게 되는 반복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어디든 도시나 골목길은 발전하고 확장되고 축소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상공인이나 소비자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만 번성했다가 이젠 더 이상 핫플레이스가 아니라면 죽은 골목길이 되어 버리는 현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이 비단 이태원에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이태원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를 이끈 직접적인 행위자는 소상공들로 이들은 탈산업화 시대의 새로운 계층이다. 자신만의 자유와 목적을 가지고 자신만의 능력을 펼치던 소상공인들로 제한된 경제적 자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소규모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해외 거주 경험이나 유학 등으로 외국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엘리트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포용할 수 있던 자유로운 장소가 이태원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태원은 약 10년이 지난 뒤 많은 부작용으로 아파하고 있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은 이태원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서울의 작은 골목길의 미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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