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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너무 유명하고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한다. 그런 <안나 카레니나>는 필독서로 꼽히면서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내면엔 1870년대 러시아 사교계의 위선적인 면모를 비판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불륜'이라고 하고 당시 러시아 상류층에서도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안나의 오빠 스테판 역시 외도를 했고 안나와 브론스키가 만나게 된 계기도 오빠인 스테판이 프랑스인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실이 스테판의 아내인 다리야에게 들켰고 나빠진 부부 사이를 중재차 방문해 만나게 된다.
모스크바의 어느 관청의 장으로 있는 스테판 아르카디치 오블로스키 공작은 가정교사와 외도를 했고 아내 다리야가 알게 되면서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 스테판은 며칠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다리야도 냉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스테판의 여동생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오빠의 집으로 방문한다.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카네닌은 유명한 귀족 집안으로 스테판의 관청 자리는 카네닌을 통해 얻은 자리였다. 사실 스테판은 책임감도 없고 도박이나 씀씀이가 커 귀족에 카네닌과 같은 연줄이 없었다면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스테판에겐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레빈이 찾아오는데 레빈은 지방의회 의원이었지만 현재는 그만두고 오랫동안 짝사랑한 다리야의 막내 여동생인 키티에게 청혼을 할 수 있을지 의논하려고 만난다. 스테판은 키티가 레빈에게 관심 있어 한다는 말을 해주며 용기를 주는데 키티는 18살에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를 했다. 그에 반해 레빈은 32살에 직업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키티에겐 브론스키라는 또다른 청혼자가 있었다. 브론스키는 백작의 아들로 페테르부르크의 귀공자로 멋지고 모범적인 청년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굉장한 부자에 교양있고 총명한 청년이라고 했다. 키티의 부모인 공작 부부는 키티의 장래를 진지하게 상의하는데 공작은 레빈을 마음에 들어했고 공작 부인은 브론스키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스테판은 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여동생 안나를 마중나왔고 어머니를 마중 나온 브론스키를 만난다. 스테판에게 여동생 안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시 무도회에서 안나와 브론스키는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은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브론스키는 안나에 대해 이미 유부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호감을 가지게 된다. 기차역에 마중나온 안나의 남편인 카레닌을 보고 안나가 8살 아들이 있고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고위 관료로 사회적 평판에 민간하고 종교에 독실한 신자였다. 종교적 기준과 원리원칙에 맞춰 판단하는 고지식한 성격이다. 안나는 그런 카레닌을 남편으로 존경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브론스키의 눈빛은 잊을 수 없었다. 무도회에서 안나를 보는 브론스키의 눈빛을 읽은 사람은 또 있었다.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는데 마침 그 무도회에서 브론스키가 안나를 보는 눈빛을 보았던 것이다. 키티는 브론스키가 자신을 기만한 것이라며 무척 화를 내고 슬퍼했다.
사교계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세계는 좁았다. 사교계의 부인들은 안나가 모스크바에서 브론스키라는 그림자를 달고 왔다며 말을 했다. 안나의 남편인 카레닌은 정치가로 무척 덕망이 높은 사람이지만 아내인 안나에 대한 못마땅함을 가지고 있듯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안나 카레니나>는 방대한 양의 대하소설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보다 안나와 브론스키 주변의 인물들의 이야기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19세기 당시 상류층의 생활이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상류사회의 귀족들은 오직 중매 결혼이 완벽한 결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이 없는 중매 결혼은 외도를 낳고 애정이 없는 가정이 된다. 그런 시대에 안나와 브론스키는 사랑에 빠지고 이룰 수 없는 그 사랑으로 둘은 불행을 또 낳는다. 안나와 브론스키, 안나와 카레닌, 키티와 레빈을 통해 19세기의 사랑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