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엔 뱅쇼를 집에서 만들지 않았다. 밖에서 딱 한 번 사 마셨구나. 오늘로 3월이 되었고 뱅쇼는 이제 다음 겨울을 기약하자.


박연준 시인이 쓴 단편소설 '한두 벌의 다른 옷'('겨울간식집' 수록)에서 그녀들은 처음 만나 뱅쇼를 마셨었다.

By Loyna - Own work, CC BY-SA 2.5







—영혜 언니와 왜 멀어졌어?

성희가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영혜와 나 사이에 큰불이 일고, 타버리고, 재만 남았을 때. 재 위에서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내 선택은 달아나는 거였다.

그러나 어느 겨울, 카페 앞을 지나다 누군가 유리창에 이렇게 써 붙인 글을 마주하면 울고 싶어지는 건 사실이다.

‘따뜻한 뱅쇼 팔아요. 직접 끓였습니다.’(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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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 '겨울 간식집' 수록작 '한두 벌의 다른 옷'(박연준)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By Sabrina Spotti - Own work, CC0







성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영혜는 우리보다 다섯 살이 많다. 몸이 약해 학교에 자주 못 나온다. 수업 중에 쓰러진 적도 있다. 영혜와 친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혼자 지내고, 신비감에 휩싸여 있다. 부잣집 외동딸이다.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졌다. 진짜 문학도다. 학부 때 시 잘 쓰는 애로 유명했다.

—너가 여름이구나. 이리로 와볼래?

영혜가 웃었다. 웃을 때 코에 주름이 잡혔다. 영혜는 왼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아무렇게나 토막 낸 사과와 배, 오렌지를 냄비에 넣었다.

—너네 오기 전에 완성해 놓으려고 했는데 미안. 뱅쇼를 끓이려고 하거든. 마셔본 적 있어?

영혜는 미리 따놓은 와인 두 병을 과일이 든 냄비에 쏟아부었다. 냄비 밖으로 몇 방울, 붉은 와인이 튀었다.

—사실 나 뱅쇼 처음 끓여봐. 맛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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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1 2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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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1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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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1909년 생)는 '쓰가루'(1944)에 자신의 단편 '추억'(1933)을 인용한다. '추억'은 첫 소설집 '만년'(1936) 수록작이다.

다자이 오사무 탄생 백주년 기념(2009) By Heartoftheworld


cf. '추억'은 '자전적 소설로 엮은 다자이 오사무 자서전'에 실려 있다.

다자이 오사무(1944) By Yoshiaki Watanabe






이번에 내가 쓰가루에 와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만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일생은 그 사람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다음은 소설 「추억」의 일부분이다.

[일고여덟 살 때의 추억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다케라는 가정부에게 책 읽는 법을 배워서 둘이서 함께 여러 가지 책을 읽었다. 다케는 내 교육에 열중했다. 나는 병약한 몸이라 누워서 많은 책을 읽었다. 읽을 책이 없어지면 다케는 마을의 일요 학교 등에서 어린이 책을 연달아 빌려와서 읽게 했다. 나는 묵독하는 법을 알고 있어서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지치지 않았다.] - 쓰가루

1912년 다케가 보모로 들어옴.

1932년 7월 큰형과 함께 아오모리 경찰서에 출두, 좌익 운동에서 이탈할 것을 서약하고 보석됨.「추억(思ひ出)」 집필 시작. 12월 아오모리 검사사무국에 출두하여 좌익 운동과 절연을 맹세.

1933년 3월 동인지 『해표』 창간호에 「어복기(魚服記)」를 발표. 4월호부터 「추억」을 연재.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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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2-28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는 초판본 디자인의 책도 출간된 적이 있었네요. 초판본 디자인보다 문학동네 전집의 디자인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서곡님, 오늘은 2월 마지막 날입니다. 삼일절연휴 잘 보내세요.^^

서곡 2025-03-01 15:05   좋아요 2 | URL
네 ‘여자의 결투‘란 책에도 쓰가루가 실려 있고요 사과가 유명한 아오모리현 지역이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이제 삼월이네요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작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 소파 방정환이 번안한 신데렐라 '산드룡의 유리구두'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방정환 - 산드룡의 유리(琉璃)구두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9029661&menuNo=200019# (전문)




"오늘은 더 예쁘고 옷도 어제보다 더 잘 입고 오셨겠지! 그런데, 오늘은 왕자님하고 친하게 이야기를 하시다가 별안간에 열두 점치는 소리를 듣고는 뛰어 돌아갔는데, 그 신었던 유리 구두가 한 짝 떨어져 있어서 그것을 왕자님이 집어 두셨단다. 에그, 그 유리 구두도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생겼는지 모르겠어……. 필시 왕자님께서도 그 유리 구두 신은 색시를 퍽 좋아하시는 모양이더라……."-《사랑의 선물》19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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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로부터 옮긴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린 시절의 보모를 만나러 쓰가루의 고도마리라는 어촌으로 가는 길이다.

고도마리(2014) By Taken with Canon IXY 430F (Digital IXUS 245 HS) - Own work, CC BY-SA 3.0






나는 다케가 있는 고도마리 항구에 가는 것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 남겨둔 것이다.

"오래간만이야. 어디로?" "이야! 고도마리에." 나는 빨리 다케를 만나고 싶어서 다른 것은 건성이었다. "이 버스로 간다. 그러면 실례."

버스는 꽤 붐볐다. 나는 고도마리까지 두 시간을 서 있었다.

버스는 산길을 오르며 북으로 간다. 길이 나빠서 상당히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선반의 봉을 꽉 잡고 등을 구부려서 버스 창밖으로 바깥 풍경을 본다. 역시 북부 쓰가루이다.

여기는 인구 2500 정도의 보잘것없는 어촌이지만 중고시대*부터 이미 다른 지역 선박의 출입이 있었고, 특히 홋카이도를 왕래하는 배가 강한 동풍을 피할 때에는 반드시 이 항구에 들어와 임시로 정박했다고 한다. *헤이안 천도(794년)로부터 가마쿠라 막부 성립(1192년)까지의 약 400년간. - 쓰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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