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백수린 작가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그해 종이신문으로 우연히 읽었다. 읽다가 안 읽히면 그만 읽었을텐데 끝까지 읽은 걸로 기억한다. 


이 책 '폴링 인 폴'은 등단작 포함 초기작들을 묶은 작가의 첫 작품집으로서 해설을 쓴 평론가 서영채의 표현대로 '신진기예'답게 열심히 쓴 성실한 성과라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며 아주 오랜만에 재독한 당선작 '거짓말연습'보다도, 수록작 중 신춘문예 당선 전에 발표했다는 처음 읽은 '유령이 출몰할 때'에 관심이 갔다. 


서영채 해설자도 이 작품에 주목하여 상세히 독해하는데, 유령이 출몰하는 이 소설 속 고시생 화자가 오래 전 자주 드나들던 '카르페디엠'이란 이름의 카페로 카페지기 J를 찾아가는 모습을 "좀비 되기에조차 실패한 예비좀비가 비-좀비의 세계를 찾아가는 모양새"라고 해석한다.  


안개낀 폐허, 영혼의 고향 같던 그곳, 발설하지 못한 고백, 소중했던 것을 대면하고 자기를 회복하려는 열망과 태도 - 그러니까 백수린 작가 자신에게 소설쓰기는 '카르페디엠'적 행위인 셈이다. 

폐허 속에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르페디엠을 보자 무엇인가가 울컥 내 안에서 치솟았다. 카르페디엠이 이런 난리에도 정말 살아남아 있구나, 하는 데서 기인한 애잔함과 J선배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는 막연한 분노.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뒤섞인 무엇인가였다. - 유령이 출몰할 때 (서영채의 해설 중 인용으로부터 재인용)

백수린에게는 그런 풍경이야말로 소설쓰기나 문학하기 혹은 비-취업권의 마음으로 살아가기의 요체가 아니었을까. 요컨대 그 풍경의 핵심에 놓여 있는 카르페디엠이라는 카페는 인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 신인 작가가 품고 있는 소설쓰기의 지향점을 매우 강하게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목련초 - 범우문고 202 범우문고 202
오정희 / 범우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부터 오정희 작가의 명성에 관해 들었지만 작년에야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작품집 두 권을 읽었다. 올 봄 제목의 목련에 끌려 새로운 마음으로 이 책'목련초'를 읽었다. cf.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오정희론 | 김화영 (문학동네 1996 가을https://www.munhak.com/book/view.php?dtype=magazine&magazine=1&id=84

사진: UnsplashAnnie Sprat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나혜석의 어머니와 딸
나혜석 / 파란꿈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 셋 남자 둘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관찰하고 대화한다. 엿보고 새겨들을 만하다. 읽는 재미가 있다. 대화 비중이 높다. 글이 전개될수록 대화가 더 많아지는 모양새. 이 글이 희곡이 아니라 소설이란 점에서 대화라는 뼈에 살이 더 붙어야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완성이나 습작 같은 느낌이 남아서 그렇다.

["나는 그 잘났다는 여자들 부럽지 않아." "여자란 것은 침선방적을 하야 살림을 잘하고 남편의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야." "왜요? 신녀성은 침선방적을 못하나요? 남편의 밥보다 자기 밥을 먹으면 더 맛있지."

"여자가 잘나면 못써." "남자는 잘나면 쓰구요?" "남자도 넘어 잘나면 못쓰지." "그럼 알맞게 잘나야겠군. 좀 어려운걸."

"주인. 대체 여자나 남자나 잘나면 못쓴다니 왜 그렀소? 말 좀 들어 봅시다." "내야 무식하니 무얼 알겠소마는 여자가 잘나면 남편에게 순종치 아니하고, 남자가 잘나면 계집 고생시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간의 온도 - 나를 품어주는 일상의 사소한 곳들
박정은 지음 / 다온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예쁜 그림이 있어 보기에 편안하다. 저자는 고등학교 자퇴 과정을 차분하고 간결하게 쓴다. 사생대회에 나가 포기할 뻔하다가 다시 완성하여 상을 받은 일화와 더불어 저자의 이 말을 명심하자. "망하기 전까지는 망한 게 아니다."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어떤 것이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선택은 뭔가를 하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그만하겠다는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학교에 가기 위해서 미술학원을 다니고, 때론 매를 맞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나의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늘 비교와 평가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겹게 만들었다. 중학생 때는 괜찮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압박이 심해졌다. 입시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는데, 점점 지겨워하다가 결국은 싫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본 것은 하루뿐이었는데 예술의 전당에 가면 그날 기억이 많이 난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시원하게 실패해버린 10대 후반의 내가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온 30대 초반의 나는 시무룩해 있는 어린 내가 창피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이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사라지지 않는다.

다행히 내가 그림을 그리던 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라 그림은 내가 버린 상태 그대로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그림을 다시 꺼내어 작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에 제출을 했는데, 얼마 후 운 좋게 상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그림이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더니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일은 이후로도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서 어떤 그림도 끝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정말 망하기 전까지는 망한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경희 스마트한 문학관-한국 근대문학 베스트 33
나혜석 / 논리와상상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우 박력있게 썼다. 경희도 사람이라는 문장에 가슴이 찌르르. 최선을 다해 성실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경희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단 말인가. 경희는 쓸모 있는 존재이자 훌륭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여자가 사람이 되려면 마늘과 쑥만 먹으며 백일 동안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이만 생략.

[종일 일을 하고 나면 경희는 반드시 조금씩 자라난다. 경희의 갖는 것은 하나씩 늘어간다. 경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얻기 위하여 자라갈 욕심으로 제 힘껏 일을 한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집 부인의 딸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