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김승옥의 단편소설 '차나 한 잔'의 내용이 나옵니다.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린 적 있는 저자 본인의 경험이 소재가 된 것으로 보이는, 김승옥의 단편 '차나 한 잔'은 어느 날 하루에 세 번 다방에서 차를 마시는 남성 시사만화가가 등장한다. 두 번은 상대가 있고 나머지 한 번은 혼자. 실직과 구직에 관한 만남이다. 혼자만의 차 시간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함이고.
그리고 낮 동안 차나 한 잔 하는 만남 후, 밤에는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설정이 대조되는데 따라서 '차나 한 잔'은 괄호 열고 '술이나 여러 잔'이 된다. 콩트에 가까울 뻔하다가 아내의 존재와 신혼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작품을 복잡하고 어둡게 만들어 궁지에 몰린 남성이 여성폭력에 눈뜨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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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Patrick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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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 할 얘기가 있다는 암시를 그에게 주면서 문화부장은 그의 앞장을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섭섭하게 됐습니다. 퍽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었는데……" 다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문화부장은 그에게 말했다.
문화부장은 주문을 받으러 온 레지에게 말했다. "난 커피. 이형은?" "저도 그걸로……" 찻잔이 그들 앞에 놓여졌다. "자, 듭시다." 문화부장이 말했다.
그들은 뜨거운 차를 홀짝거리면서 마셨다. 예의상 찻잔을 탁자 위에 잠시 놓았다가 다시 들어서 마시곤 했다. "이상하게도 이형과는 차 한잔 같이 나눌 기회가 없었군요. 이게 아마 처음이지요?" "예, 처음인 것 같습니다."
"술이 없으면 말야……" 그들의 뒤쪽에 앉아 있는 패들의 하나가 소리쳤다. "인생이란 말야……" "허, 또 나오시는군." "허, 저 소리 듣기 싫어서 이젠 술 끊어야겠어." 누군지가 소리쳤다.
"차나 한잔, 그것은 일종의 추파다. 아시겠습니까, 김선생님?" 그는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그 속에서 성실을 다했던 하나의 우연이 끝나고……"
그는 두 팔로 아내의 상반신을 껴안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기도 아내를 때리게 될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앞으로 다가올, 아직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무서워져서 그는 울음이 터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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