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릿(1948)

Inscription of Hamlet - Anima Ehtiat - WikiArt.org


사느냐, 죽느냐─그것이 문제구나.
가증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그냥 참는 것이 고귀한 행동일까,
아니면 밀물처럼 밀려드는 역경에 맞서
싸워 이기는 게 더 고귀한 행동일까.
죽는 것은 잠드는 것─그뿐이다. 일단 잠 들면
마음의 고통과 몸을 괴롭히는 수천 가지 걱정거리도
그친다지. 그게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야.

죽는 것은 잠드는 것─잠이 들면─아마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문제로군. 현세의 번뇌를 떨쳐 버리고 죽어서
잠이 들면 그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몰라
망설일 수밖에 없어. 이런 생각 때문에
오랜 세월 지긋지긋한 삶에 매달리지.
그게 아니라면 누가 이 세상의 시달림을 참고 견딜까?
폭군의 횡포, 교만한 자의 무례한 언동,
버림받은 사랑의 고통, 질질 끄는 재판,
관리들의 무례함, 유덕한 자가 소인배에게 당하는 수모,
스스로 단칼에 끝장낼 수 있다면,
이런 괴로움을 누가 참겠는가?
그 누가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살이에 신음하며 땀을 흘리겠는가?

다만 죽음 이후에 겪을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
어떤 나그네도 돌아오지 못한 곳, 그 미지의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알지 못하는 저세상의 것을 향해 날아가기보다
차라리 겪고 있는 괴로움을 견디게 만든다.
이처럼 분별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고
혈기왕성한 결의도 창백한 생각에 가려 병색이 감돈다.
이런 까닭에 거창하게 시작한 과업도
방향을 잃고 흐지부지해져 버린다. 아니, 잠깐,
아름다운 오필리어가 아닌가! 아가씨, 그대의 기도 속에
내 모든 죄를 잊지 말고 빌어주오. - 3막1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쓰메 소세키 평전과 함께, 조금씩 아직 못 읽은 소세키 작품을 읽어나갈 예정이다. 지금은 단편들을 읽는 중이다. 아래 영상은 민음사의 '그후' 역자인 윤상인 교수의 '마음' 강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헨리 제임스의 장편소설 '워싱턴 스퀘어'의 영화화를 다룬 논문을 찾아 읽었는데 원작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많아 일부 옮긴다. 논문 저자 유희석 교수는 창비판 '한 여인의 초상' 공동역자로서 을유판 '워싱턴 스퀘어' 역자 유명숙 교수와 함께 번역했다.


[『워싱턴 스퀘어』가 ‘말없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라면, 진정한 주인공은 캐서린이다.

 

아버지에 대한 의무와 타운쎈드를 향한 사랑 중 어느 하나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그녀의 고통스런 망설임과 기다림이야말로 ‘가정의 서사시’(domestic epic)를 방불하는 ─ 남성작가의 어떤 모험소설에도 못지 않은 ─ 울림이 있으며, 실제로 벌어진 파국도 추호의 감상주의를 허용치 않는다.

 

무엇보다 제임스가 ‘비대중적인 미국작가’로서 멜로드라마 형식을 끌어 들이면서 그것을 창의적으로 변형∙활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감정의 과잉을 부추김으로써 독자의 현실인식을 마비시키는 의미의 멜로드라마 자체를 해체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베네트(Elizabeth Bennet)부터 에마 우드하우스(Emma Woodhouse), 패니 프라이스(Fanny Price), 앤 엘리엇(Anne Eliot), 엘리노(Elinor)와 매리앤(Marianne) 등에 이르는 오스틴 소설세계의 각기 다른 개성인 여주인공들이 상대 남자들과의 이지적∙정서적 교감을 통해 (자기)교육과 배움의 길에 들어선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제임스의 캐서린 슬로퍼가 그런 길과는 다르다는 데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가령『분별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1811)에서 진정한 사랑은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고 믿는 매리앤이나 ‘돈과 사랑’을 저울질하는 세상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엘리노의 ‘교육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기성찰에 근본을 둔 남녀의 상생적 결합을 제시한 오스틴의 성취도 1790~1810년대에 이르는 영국 역사의 ─ 프랑스혁명의 과격한 일탈이 역사적 반면교사가 되어준 ─ 극히 제한된 특정 시공간에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할 터다. 요컨대 두 처녀가 우여곡절 끝에‘올바른 배필’을 만나고 자신의 기우뚱한 기질을 바로잡으면서 결혼에 이르는 도정이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서는 철저하게 차단된 것이다.

 

우선 여주인공부터 순진과 경험의 도식이라는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 가부장적 남성이라는 범주로만 슬로퍼(아버지)를 환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애로가 있다. 반면 멜로물에 어울리는 유형인 모리스(구혼남)가 캐서린에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럽을 두루 돌아본 그가 캐서린에 눈독 들이는 것을 단지 돈 때문이라고 단정해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캐서린은 유럽의 사교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무구의 인물인데, 적어도 그 점을 알아봤다는 점에서(특히 작품 초반의) 타운쎈드 역시 나름의 ‘눈’을 가지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제임스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를테면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으면서 오스틴과 발자끄의 작품을 훔친 것을 인정하면서도, 캐서린을 그리는 데서 발휘되는 제임스 특유의 애매함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가 19세기 미국 남성백인작가들, 특히 호손의 적자임을 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헤스터(:주홍글자의 헤스터 프린)를 급진적 개인주의자에서 여성공동체의 보수적 대모로 변모시킨 호손의 고뇌가 남북전쟁의 전운에서 싹텄다면, 전후 미합중국을 주도한 북부의 정신적 이념이 슬로퍼와 모리스가 (비중은 다르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변하는 남성중심주의에 반영된다. 두 남성의 실체를 깨달은 캐서린의 운명은 결과적으로 제임스 동시대 및 이후 여성작가들이 그려낸 여성주인공들의 삶의 궤도에 근접한다. 19세기 미국문학에서 가장 여성적인 남성작가가 헨리 제임스라는 세간의 평가가 빈말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174072 인문논총 제54집(2005) 유희석

PD-US,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82683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이 정월대보름, 입춘 지나자마자 달이 차오른다. 오늘 밤 올려다보며 결심과 맹세라도 해 보면 어떨까. 뉴스를 보니 올해의 정월대보름달은 '미니화이트문'이라고. https://www.ytn.co.kr/_ln/0106_202302040438573864 참조. 


작고 하얀 둥근 달이 있는 앙리 루소의 그림이다.

La Seine à Suresnes (avant 1911). Par Henri Rousseau — Domaine public, 키미디어 커먼즈

A View of the Ile Saint Louis from Port Saint Nicolas Evening, c.1888 - Henri Rousseau - WikiArt.org




그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1악장. https://youtu.be/xGnsd7aSH5g?si=C7yiQHk5Jot49arb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2-05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데이 아티스트라 불렸지만 스스로를 당당하게 피카소에 견주었던 앙리루소, 현대에 와서 더 재조명되는것 같아요.^^

서곡 2023-02-05 22:35   좋아요 1 | URL
네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귀감이 된 듯합니다 열대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린 화가 일욜밤 조은꿈 꾸시길요!!!
 
사라 베르나르 / 알폰스 무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9b1876b 사라 베르나르


햄릿 중 결투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사라 베르나르(1900)



거의 20년 동안 이 정력적인 여성은 일련의 극장들을 운영했으며, 최고로 성공을 거둔 샤틀레 광장의 나시옹 극장을 서슴없이 사라 베르나르 극장이라 개명했다.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어떻든 자기 극장인 데다가, 그녀 정도의 스타가 되고 보면 극장에 자기 이름을 붙이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인생의 내리막에 접어들 나이에 베르나르는 여전히 새로운 목표에 도전했으니, 햄릿 역을 맡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여성이 햄릿 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거리였고, 젊음에서 한창 멀어진 여성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가 셰익스피어가 생각했던 청년의 곱절은 되는 나이라는 사실을 지적했으며, 여성이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극작가 자신이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공연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녀는 그 작품으로 순회공연 길에 올랐다. - 제2장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2-04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라 베르나르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으로 많이 접했습니다. 프루스트의 잃시찾에도 계속 거론되죠.^^
이 책 저도 시리즈로 4권 사놓고 벨에포크, 새로운세기, 두권 읽었어요

서곡 2023-02-05 10:42   좋아요 1 | URL
네 검색 중에 잃시찾이 뜨더군요 ㅎㅎ 사라 베르나르의 햄릿을 필름으로도 찍었나봐요 짧은 동영상을 추가했습니다 그레이스님 댓글 감사하고요 일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