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사 작곡 노래 '12월 이야기'(2005) https://www.ytn.co.kr/_ln/0106_201605170939130363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 서울의 겨울 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12-10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노래 좋은데요?!! 와..소름 돋았어요ㅋㅋㅋ 작가의 문체처럼 노래 역시 따뜻하면서 울림이 있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강인함이 느껴져요.

서곡 2023-12-11 10:1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ㅎㅎㅎ 노래도 잘 하시고 작곡 작사까지...다재다능 ㄷㄷㄷ 미미님 오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자이 오사무 단편집 '여학생' (전규태 옮김)에 실린 '12월 8일'(1942)을 읽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개시한 날의 상황과 분위기가 기록되어 있다. 연보를 보니 그 해(1941)에 딸('소노코'란 이름도 같다)을 낳은 사실을 포함하여 개인사를 반영하는 내용이다. 혹시 부인 미치코의 일기를 참고한 것일까? 가능한 일이다. 다자이의 '사양'도 당시 만난 여성의 일기를 보고 쓴 것이니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사양' 작가 연보에 이 사실이 적혀 있다. * 사양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12XX8290008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By US Army - Photos of Pearl Harbor Memorial,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7816592


[네이버 지식백과] 태평양전쟁 [Pacific War]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29866&cid=42140&categoryId=42140



오늘 일기는 특별히 정성스레 쓰겠다. 쇼와 16년(1941년) 12월 8일에 이 가난한 가정주부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좀 써두고 싶다.

12월 8일 이른 아침, 이불 속에서 아침 준비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올해 6월에 태어난 소노코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뚜렷하고도 정중한 보도가 들려왔다.

"대본영(大本營) 육해 군부 발표. 일본제국 육해군은 오늘 8일 새벽 서태평양에 있어 미국, 영국과 전투 상태에 진입했습니다."

간밤에 처마 밑에 널어놓았던 기저귀도 꽁꽁 얼어붙었고 안뜰에는 서리가 내렸다. 한기가 정말이지 여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동백꽃은 어엿이 피어 있다. 고요하다. 지금 태평양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이상한 기분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부터는 힘들어지겠네요."전쟁 얘기를 하려 했는데, 이웃 아줌마는 며칠 전, 통장이 된 얘기인 줄로 안 모양이다."아, 아뇨,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질 못했어요."부끄러운 듯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쑥스러워졌다.

이웃 아줌마도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통장의 무거운 책임에 대해 긴장하고 있는 듯싶다. 이제부터 통반장 일도 힘들어질 것이다. 연습 때와는 달라질 테니까. 막상 공습이라도 당하게 되면 그 지휘의 책임은 중대해질 것이다.

목욕탕에 갈 때에는 길이 밝았는데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두컴컴하다. 등화관제(燈火管制)를 하는 것이다. 연습이나 훈련이 아니다. 마음이 묘하게 긴장된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게 아닐까. 이렇게 어두운 길은 이제껏 걸어본 적이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더듬거리듯 나아가고 있지만, 갈 길은 멀고 어둠은 더욱 짙어간다. - 12월 8일

1939년 30세 1월 8일, 이부세 부부의 중매로 야마나시 현 쓰루 고등여학교 교사인 26세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고후 시에 살림을 차림.

1941년 32세 6월 7일, 장녀 소노코가 태어났고, 모친 병문안차 10년 만에 고향 가나기의 생가를 방문함. 11월에 문인 징용령에 의해 징발되었으나 흉부질환으로 면제 처분을 받음. 12월 8일, 태평양전쟁으로 전시체제에 접어듦. - 연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민지 시기 재일 한인 노동운동사를 전공한 정혜경 박사가 지은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인 강제동원'의 2장 '잘못된 출발, 아시아태평양전쟁, 패배를 껴안은 일본' 중 '3 그럼에도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선택했다'의 '1941년 12월 8일, 패배를 껴안은 일본의 선택'을 읽었다.

Poster by Allen Saalburg issued in 1942 by the United States Office of War Information - United States National Archive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 [네이버 지식백과] 진주만 공습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82502&cid=43667&categoryId=43667 공습일은 현지(진주만) 기준 7일, 일본 기준 8일이다.


[80년 만에 가족 품으로…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희생자 영면 2023. 12. 5.]https://v.daum.net/v/20231205170336914



1937년 중일전쟁은 반짝 승리를 안겨주었다. 일본 군대는 상하이를 거쳐 난징을 넘어 중국 내륙과 남부 지방으로 중국을 침공했다.

그러나 길어지는 전쟁은 민중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희생을 요구했다.

식량을 비롯한 각종 일용품의 배급제도는 일상을 조이는 불편함이었다. 배급제도는 먹거리에서 양말, 수건 등 모든 일용품으로 확대되었다.

일상의 불편함이 늘어나자 전쟁에 대한 염증이 높아졌다. 물론 세상이 무서워 드러내놓고 "왜 전쟁을 크게 벌여 이 고생을 시킨담!" 같은 불평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책을 지지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1939년 9월 1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유럽이 움직이자 중국 전선에 갇힌 일본도 움직였다. 1940년 9월 22일, 일본군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북부 지역을, 그리고 이듬해에는 남부 인도차이나를 점령했다. 이제 동아시아를 벗어난 일본군이 갈 곳은 미국의 영토였다.

1941년 12월 8일 오전 6시, 라디오는 대본영육해군부 발표를 보도했다. 첫 문장은 "제국 육해군은 오늘 8일 미명未明, 서태평양에서 미국·영국군과 전투 상태에 들어갔다"였다. 그리고 그날 천황은 선전宣戰 조서를 내렸다.

개전 당시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12배에 가까웠다.

누가 보아도 열세였다. 그런데 군부는 오히려 이 점을 이용해 국민을 결속시키고자 위기를 강조했다.

선동은 통했다. 천황의 선전 조서를 접한 지식인들은 "역사는 만들어졌다. 세계는 하룻밤 사이에 변모했다. 감동에 몸을 떨면서 무지개처럼 흐르는 한줄기 빛의 행방을 지켜보았다. … 일본 국민의 결의는 하나로 불타올랐다. 상쾌한 기분"이라며 감격을 나누었다.* *가토 요코,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서해문집.

국력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일본 군부와 정부 고위층이 전쟁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주 침략에서부터 시작한 잘못된 선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악수惡手였다.

일본 수뇌부는 만주조차 돌려주어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졌다. ‘여기서 후퇴하면 미국의 군사적 지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리해질 것’이므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일본은 패배를 껴안았다. 일본의 민중은 물론, 식민지와 점령지 민중들도 고통을 당했다.

* 일본 학계에서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를 포함한 15년간의 전쟁을 ‘광의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이후를 ‘협의의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 구분하고, 태평양전쟁 이후를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요시다 유타카 지음, 최혜주 옮김(2013), 『아시아태평양전쟁』, 어문학사, 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는 부제가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이고 원제는 'Grandma Moses: My Life's History'다. 아래 발췌글 속 아빠의 꿈이 의미심장하다.


오래전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애나 메리야, 내가 어젯밤에 네 꿈을 꾸었단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좋은 꿈이었어요, 나쁜 꿈이었어요?" 내가 물었지요. "그야 어떤 미래가 펼쳐지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꿈은 우리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운단다." 아버지의 꿈에, 내가 널찍한 홀에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보내더랍니다. 아버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대요. "그런데 돌아보니 애나 메리 네가 남자들의 어깨를 밟으면서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니? 내게 손을 흔들면서 남자들 어깨를 번갈아 밟으면서 다가왔어."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이후 요 몇 년 사이 그 꿈 생각이 자주 납니다. - 3부 이글 브리지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 류승경) 마지막 장 '3부 이글 브리지에서'에 나오는 딸 위노나 부부의 사연이다. 전쟁신경증이 언급되어 관심이 갔다.

Winter - Grandma Moses - WikiArt.org

A Blizzard, 1956 - Grandma Moses - WikiArt.org


1917년, 나의 딸 위노나의 남편 잭이 장교 훈련에 자원했습니다.

잭이 떠날 준비가 되자 위노나는 해군에 들어갔고 잭이 돌아올 때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하지만 잭은 전쟁신경증 환자가 되어 돌아왔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요. 뉴욕 생활을 못 견딜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자기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조금이라도 주위가 소란스러우면 그대로 무너져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위노나는 뉴욕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위노나가 그때까지도 해군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결국 나의 딸과 사위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잭은 시러큐스로 갔는데, 지금도 가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