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평점 :

2019년 12월 31일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횟수로 3년째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역사상 가장 심했다는 흑사병 같은 전염병보다 그 파급지역이 넓고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내 기억에 역사상 어떤 사건도 사람들을 집에 이토록 오래 강제적 또는 반강제적으로 감금시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질병에 대한 사전예고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감기와 더불어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질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일 뉴스기사의 1면은 코로나 확진현황으로 도배 중이다. 대부분은 확진자 신기록 달성에 관한 내용이다.
우울한 코로나 뉴스가 일상인 우리에게 마시모 그라멜리니 작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태리 아파트먼트>의 원제는 '아주 오래 전 그때는'이다. 2080년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 마티아가 손자들에게 코로나 시대의 생활을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잔잔하게 풀어낸다. "옛날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 나라는 팬데믹 상황에 훌륭하게 대처한 K-방역으로 유명하다. 그 당시 유럽 국가들은 빠른 전파력과 많은 사망자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다. 그 중 이탈리아는 고령층의 사망자 수가 많았다. 우리 나라와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특히 언론을 통해 이탈리아의 아파트 거주자들이 테라스에 나와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장면이었다. 어쩔 수 없는 강제 구금 상태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조그마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9살 마티아의 시선에서 풀어낸다. 아마도 우울하고 심각한 문제를 가볍고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주인공 마티아는 팬데믹 상황이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만 엄마와 이혼을 위해 별거 중이던 아빠가 거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할 뿐이었다. 마티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아빠가 갑자기 친한 척 하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우리 나라는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회사들은 출근을 계속 했다. 학교는 확진자와 상관없이 셧다운을 했다가 점점 확진자 발생 학교만 등교를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확산되고, 맞벌이 하는 많은 학부모들이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가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비교적 자유로운 일을 하는 나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로 인해 아내는 새로운 일을 2년여 동안 지속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의 등교는 아내가, 하교와 그 이후 일정은 내가 맡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엘리베이터 문에 누군가 빨간 매직펜을 사용해 대문자로 글을 썼다. 수간호사를 겨냥한 글이었다.
"매일 병원에서 바이러스를 가져다줘서 고맙다!"
팬데믹 상황이 악화되면서 사람들의 고난과 절망은 엉뚱한 곳을 향했다.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너무나 섬뜩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나름 많은 것들을 희생해서 봉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노고보다는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우려로 그들을 멀리하거나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는 이웃 간호사의 존재가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이웃이 이제는 그를 비난한다. 정말 무서운 현상이다.
저자는 팬데믹 상황을 9살 마티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치 가상의 현실인 것처럼 소설의 형식을 빌렸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팬데믹 상황에서 가족과 이웃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볼 것을 이야기한 것 같다. 마티아의 가족이 겪는 상황은 우리 모두가 겪는 상황이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온전히 가족이었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대끼면서 추억을 만들어 본지가 언제였던가?
예전에는 앞 집에 누가 살고, 뒷 집에 누가 사는지 거의 다 알고 지냈다. 옆 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이웃사랑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에 축약되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되고 서로 살아가는데 바빠서인지 2미터 옆에 사는 이웃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코로나는 현재진행형이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아마 끝나지 않고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일상 속에서 공존해야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땡큐! 코로나"라고 한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어떤 사람들은 슬기롭게 잘 극복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사람도 있다.
이 책 <이태리 아파트먼트>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내 가족과 내 이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결국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너무 우울하고 심각하게만 보지 말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 놓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