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생명의 지문 - 생명, 존재의 시원, 그리고 역사에 감춰진 피 이야기
라인하르트 프리들.셜리 미하엘라 소일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장외과 의학박사 라인하르트 프리들과 프리랜서 작가 셜리 미하엘라 소일이 함께 만들어낸 흥미로운 《피, 생명의 지문》샘플북으로 만나보았다. 샘플북이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와 의미를 맛보기에는 충분했다. 의학, 과학이라는 뼈대에 스토리라는 살을 붙여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듯하다. 피가 생명의 근원이고 피가 소중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심장을 다루는 의사가 들려주는 피, 심장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책은 심장외과 전문의의 일상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아들의 축구 경기를 끝까지 응원하지 못하고 응급실로 복귀하는 저자. 그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엄청난 출혈로 "Talk and Die" 증상을 보이는 하미트라는 청년의 심장 수술에 들어간다. 영화를 보면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고 말을 계속 시키던데 출혈 환자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증조가 아니라고 한다.


시작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설마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미트의 심장에 왜 칼이 꽂혔는지 그 까닭을 알려주지 않아 너무나 궁금했다. 정면에서 칼이 꽂혔는데 방어흔이 없는 하미트.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샘플북에는 끝까지 그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심장 수술 장면을 디테일하게 표현해 주고 있어서 마치 의학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안고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짧은 샘플북이 이 정도라면 전체 이야기는 더욱더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심장외과 수술이라는 저자의 일상이 전부라면 이 책의 제목은 조금 더 부드러운 에세이의 제목이었을 것이다. 하미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본격적인 '피'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과학 책으로서의 제목에 다가가고 있다. 피가 고여 울혈이 생겼을 때 거머리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혈액은행에 대한 이야기도 전 세계의 7%만이 O-형이라는 혈액형 이야기도 너무나 흥미로웠다.


샘플북이, 도입 부분이 이 정도로 흥미롭다면 전체적인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로울지 너무나 기대된다. 피가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를 꼭 만나봐야 할 것 같다. 성큼 다가온 가을에 지적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줄 책 같다.


"흐름출판으로부터 샘플북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트로베리 문
아쿠타가와 나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쿠타가와 나오 작가의 데뷔작 《스트로베리 문 ストロベリ-ム-ン 을 만나보았다. 첫눈에 사랑을 직감한 열여섯 소녀의 안타까운 마지막 사랑과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사귀자는 소녀의 미모에 빠진 열여섯 소년의 순수한 첫사랑이 만들어내는 가슴 아픈 소설이다.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눈에 띄는 외모의 이성이 만난 지 3시간 만에 사귀자고 한다면 살아온 날이 길수록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질 것 같다. 의심부터 할 테니 말이다.

제목 '스트로베리 문'은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사용하던 보름달의 6월 이름으로, 평소보다 붉은 보름달이다.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딸기 수확철인 6월에 딸기 풍년을 기원하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스트로베리 문은 '함께 보면 연인을 맺어준다'라는 로맨틱한 소제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로맨틱한 역할만을 하지는 않는다.

지각으로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한 히나타는 교문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잠시 뒤 한 반 그것도 앞자리에 앉은 모에와 재회한다. 썸 타고 밀당할 시간도 아까운 건지 모에는 사토에게 사귀자고 말한다. 만나지 3시간 만에. 그렇게 사토와 모에의 순수함에 눈이 부시는 풋풋한 사랑이 시작된다. 사토는 모에가 평범한 자신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여자 친구라 생각해서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둘이 사귄다는 것을 비밀로 한다. 히나타와 모에의 비밀스러운 연애의 절정은 둘이 함께 '스트로베리 문'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절정은 비극적인 결말로 빠르게 치닫고 만다.


모에가 왜 그렇게 히나타를 원했는지 또 왜 그렇게 둘의 만남을 서둘렀는지 알게 해주는 모에의 일기는 갑자기 눈앞을 흐리게 한다. 가슴 시린 사랑이 이런 것일까? 내일의 꿈이 아닌 어제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오늘을 버텨야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일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모에의 모습도, 사토의 모습도 너무나 안쓰럽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준비해도 죽음이 주는 슬픔의 깊이는 얕아지지 않을 것이다. 예정된 이별의 시간이 둘의 사랑을, 히나타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든다. 피할 수 없는 슬픔의 깊이만큼 히나타의 사랑은 더욱더 깊어진다. 그게 더 안타깝다. 스트로베리 문을 함께 보면 맺어진다며(몇달 만났으니 맺어준건가?)... 맺어지게 했으면 책임을 지셔야지... 오늘따라 달님이 너무나 야속하다. 혼자 남은 사랑은 어떻게 하란 말인지.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채널명은 비밀입니다》『우주로 가는 계단』으로 창비'좋은 어린이책'대상과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전수경 작가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이다. 제목에서 흥미를 끄는 '채널명'은 유튜브 채널이 아니라 TV 채널이다. 유튜브 관련 소설인 줄 알았는데 '멀티버스'를 모티브로 한 다중우주를 그린 흥미로운 청소년 소설이다.


p.13 엄마는 두 세계를 산다. 텔레비전 안과 밖.


주인공 희진은 중간고사가 끝난 날도 독서실을 찾는 '모범생'이다. 전교 1등. 그런 희진의 모습은 희진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존재감 표출 방법이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머무는 엄마의 '은둔'도 자신의 탓이라 여기는 듯하다. 미혼모. 희진의 나이 때쯤 희진을 낳아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는 엄마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희진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다.


이야기는 희진이 엄마의 이중생활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니 보게 되면서 시작된다. 늦은 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야기는 희진의 세상과 또 다른 세상, 엄마의 세상을 오가며 전개된다. 물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다중 세계를 오가기 위해서는 특수한 아이디도 필요하다.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나를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엄마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쯤 희진 앞에 새로운 친구가 나타난다. 소미. 희진의 친구 윤아의 손목 상처를 보며 울먹이는, 윤아의 자주 있는 결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전학생 소미. 희진은 소미를 통해서 행복한 삶에 대해, 평범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녀석 소미도 무언가 비밀스럽다.


p.143. "…많은 경우 우린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야 하죠."


누구나 '나'이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그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멀티버스, 다중우주라는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나 자신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개토태왕 담덕 9 - 5국 전쟁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개토태왕 담덕》의 아홉 번째 이야기《광개토태왕 담덕 9: 5국 전쟁》을 만나본다. 9권의 제목이 보여주듯 이번 이야기의 주요 흐름은 전쟁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왜, 후연의 다섯 나라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전쟁에 나서고 또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배반하고 약속을 어기는 정글의 법칙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우리의 영웅 광개토태왕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 엄광용은 이번에도 엄청난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한 전쟁을 그린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성을 빼앗긴 백제와 왜가 양동 작전으로 고구려의 국내성을 노리고 신라의 금성을 침략한다. 뻔히 보이는 계략이기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던 광개토태왕은 결국 요동성을 지킬 계획을 지시하고 신라를 도울 원군을 보낸다. 당시 고구려의 기마병은 최고의 수준이었기에 결과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고구려 말을 쓰는 포로를 잡으면서 이야기는 조금 다른 흐름을 보인다. 광개토태왕 담덕의 왕으로서의 번뇌가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다.


p.165. '…가공할 무력으로 전쟁을 그치고(武), 인내와 사랑으로 고통을 없애고(無), 모든 이들이 희열로 춤추는(舞),'무무무武無舞'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군주의 도가 아닐 것인가?'


해광은 반역을 도모하다 왜로 달아난 '해평'의 아들이다. 그러니 고구려 장군 중에는 해광을 왜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반역 도모 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담덕도 그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들, 담덕 스승의 원수가 해평인데 그의 아들 해광을 살려보낸다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비나 은혜가 해평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복수심을 잠재울 수 있을까? 제5장 대방 전투의 주인공들이 해평과 해광인 것을 보면 어쩌면 광개토태왕의 자만일지도 모르겠다. 그릇된 판단은 고구려를, 광개토태왕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우리 역사의 자랑 광개토태왕 담덕은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역사소설은 언제 만나도 재미나고 흥미롭다. 전편들에서의 전쟁들이 지략 대결 양상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창과 창이 부딪치는 불꽃튀기는 기마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다. 선선한 날씨가 가을을 알리는 요즘 넓은 요동 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의 기마군단의 위상과 함께하는 것도 좋을듯하다. 지축을 흔드는 힘찬 말발굽 소리가 지친 일상에 엄청난 에너지를 선물해 줄 것이다.


"새움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불교음악회 학술위원장 윤소희 교수의 엄청난 책을 만나보았다. 음악 특히 불교 음악의 역사를 만날 줄 알고 가볍게 만난 《음악 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는 폭넓은 접근만큼이나 깊이도 상당했다. 첫 챕터의 제목이 '범패의 원음 석가모니의 음성'이다. 범패부터 막혔다. 험난할 것 같았던 만남은 저자가 조절해 주는 난이도로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학문적인 접근도 쉽게 풀어쓰고 있어서 편안하게 접할 수 있었다. 불교음악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인듯하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1장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다)에서는 불교음악이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에 이어지는 길을 따라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 장(2장 이슬람·기독교·불교를 통섭하다)에서는 불교음악과 다른 세계적인 종교들의 음악을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 중국 불교음악의 시조라는 천재 시인 조식이 조조의 아들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됨을 시작으로 정말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이 율정 천재라는 데 율정이 무엇일까? 이런 식의 만남이 참 많다. 친숙한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은 책이다. 물론 낯선 불교음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더 많았다. 정도전이 작곡가였다? 어떤 음악을 작곡하였을까? 코리안 떼창의 진원지가 불교음악? 명상음악으로 사용되는 사찰 음악이?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가 결혼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결혼과 불교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저자가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으니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이 정도 이야기는 스포도 아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관세음보살과 성모마리아는 누가 만들었나'였다. 불교라는 종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이 책에 담긴 많은 사진들과 자료들을 접하면 불교음악의 매력은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찰들이 산속으로 들어간 까닭으로 다소 왜곡된 불교음악의 멋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민족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