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건 이래서 좋다.
비기독교인 나도, 도올의 해석을 읽다 보니, 공자,노자 같은 선현의 말씀처럼
진정한 예수의 말씀이 와닿는다.
솔직히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중에는
교회와 예수, 그리고 목사들, 신도들에 대해서 뿌리깊은 편견이 있다. 나도 그 중에 한명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종교의 ˝배타성˝일 것이고, 또 하나는 이웃사랑에 대한 신도들의 공염불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도 공감할 것이다.
물론, 일부 교회나 신도들의 행태로, 전체를 속단해서는 안되겠지만...또, 모든 종교들이 갖고 있는 숙제지만 말이다.
˝종교적 계율을 빙자하여 인간의 복속을 강요하는 모든 독단은 사기꾼의 폭압에 불과한 것입니다˝-111쪽
이 책은 마치 뿌리깊은 편견으로 완고하게 굳어 있는 나에게 도올은 공부하라고 호통치고, 겸허하게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무지의 편견이나 식자의 편견이나 편견은 편견이지만, 글쎄? 이왕이면 제대로 알고 나서 판단은 그 다음 하는 것이 공부하는 이의 자세가 아닐까..
같은 직장에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분이 계셔서 이 책을 보여주며 요즘 읽는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한다.
이렇게 세세하게 공부하지는 않는다고.
그러며 하시는 말씀이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고 한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도올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비판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며 역시 ˝책은 도끼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도올은 이 시대의 일부 기독교 행태와 그릇된 목사들의 욕심, 정치세력이 된 신도들을 비판한 것이지, ˝예수˝라는 메시아에 대해 비판한 적은 없었다는.
내가 기독교, 특히 ˝복음서˝에 대해 백지상태라서 좋다.
아무것도 모르니 어떤 사고의 틀안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물론 도올의 깊이를 좋아해서 ˝도올선생의 사고의 틀˝안에 갇히는 것도
생각해 볼일이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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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갈릴리와 나, 세례요한과 나
마가는 개칠을 한 마태나 누가와는 달리 내 인생을 나의 공생애의 출발시점, 그러니까 내가 세례 요한을 만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때는 내가 나이 서른 두세 살 정도였고,(...)
그러니까 서른 두살 이전의 나의 삶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정보를 수집할 길도 없었다는 뜻이지요. - 44쪽
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매우 평범한 여인이며, 결코 성모라고 컬트화 될 수 있는 그런 여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중동 지역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까만 보자기를 쓴 보통의 여인,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의 엄마 마리아는 나의 아버지 요셉과 결혼하여 아들을 다섯 명, 딸을 셋 낳았습니다. 나는 8남매 중 둘째입니다.
- 45쪽
나의 아버지 요셉을 목수라고 하지만, 당시 목수에도 여러 급이 있었고, 나의 아버지는 매우 고매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목수 carpenter라는 말은 아람어로 ˝나가르 naggar˝라고 하는데 그것은 장인을 의미하는 동시에 학자, 지식인, 유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46쪽
나는 유대인이라고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나는 갈릴리 사람입니다.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아주 엄밀하게 따지자면 야곱의 열 두 아들중에서 넷째 아들(레아의 소생) 유다 Judah의 소생들을 가리키며, 이 지파는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 가나안땅에 들어왔을 때 예루살렘과 유대광야를 분배받았고, 이들이 12지파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세력이 왕성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벤야민 지파와 함께 남유다왕국을 형성하였고, 예루살렘성전중심주의를 지속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갈릴리 사람들은 유대인 역사에 있어서 독자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빌론유치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바빌론 생활을 하지 않았고, 또 그러기에 바빌로니아의 종교에도 노출되지 안았고, 유대민족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힌 적도 없고, 따라서 시오니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토라(율법)의 권위로 갈릴리 민중에게는 별 의미 없는 염불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개념은시온주의와 관련되어 강렬하게 부각된 것이며, 사실 여러분이 새각하는 유대인의 개념은 20세기 히틀러 덕분에 선명해진 시온주의적 개념입니다. - 47~48쪽
내가 말하는 하나님은 구약에서 말하는 ˝야훼(=여호와)˝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
야훼는 어디까지나 유대인종족의 하나님입니다. 유대인에게 선민의식을 불어넣고 유일한 선택과 경배를 강요하는 질투하는 하나님입니다. - 51쪽
요한복음의 과도한 언사들은 초대교회의 절박한 요청에 의한 시대적 언사일 뿐, 나의 언어가 아닙니다. 나의 진실은 오직 마가에 담겨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나를 믿으라고(숭배하라고) 개인을 설득하거나 조직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 52쪽
복음서를 읽는 사람은 나와 세례 요한의 관계를 정반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복음서의 주인공이고 세례 요한은 괜스레 끼어든 잡역인 것처럼 이해하죠. 그러나 내가 살던 시대의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세례 요한이야말로 내가 살던 시대에 민중의 소망이고 구심체였고, 유명하기로 말하면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안는 자이언트였고,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막강한 세기적 거물이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갈망하는 모든 이상을 구현한 새로운 가치관의 프론티어였습니다.- 63쪽
세례 요한이야말로 구약과 신약의 가교였다. - 65쪽
제3장
나의 공생애의 출발
마가는 내가 요한에게 세례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9)
신학자들은 이 장면을 놓고 왈가왈부하지요. 예수는 죄없는 하나님의 친아들인데 어떻게 사람 요한에게 죄사함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세례 자체가 모순적 개념이 아닐까? - 69쪽
내가 갈릴리로 돌아와서, 갈릴리의 푸른 벌판 위에서 외친 최초의 대각의 선포,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The time is ful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1:15)
사실 나의 사상은 이 한마디에 모두 구현되어 있습니다. 나의 공생애 전체가 이 한마디의 구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나라˝에 해당하는 ˝바실레이아˝의 의미를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지요.(...)
바실레이아가 왕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실제적 의미는 추상적 통치, 지배를 의미할 뿐이며, 더 쉽게 말하면 질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 다시 말해서 세속적인 통치질서가 아닌, 이상적인 하나님의 질서가 곧 도래했다. 코앞에 닥쳤다. 그러니 정신차려라! 그 타이밍을 붙잡아라!라는 뜻이 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말이 ˝회개하라˝라는 말입니다. 그 원의는 ˝메타노에오 metanoeo˝인데, ˝메타˝는 ˝바꾸다˝라는 뜻이고 ˝노이아 noia˝는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생각을 바꾸라˝, ˝인식을 전환하라˝ ˝달리 생각하라˝라는 뜻이지 ˝회개하라˝라는 뜻은 없습니다.(...)
나는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생각을 바꾸어라.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새로 태어나라!˝ 이 이상의 간결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이 선포에 나는 나의 전 생애, 아니 전 생명을 걸었습니다.˝
- 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