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2007년판에 들어있던
<쁘로하르친씨><아홉통의 편지로 된 소설><뻬쩨르부르그연대기><여주인> 4편이 빠지고,
2010년 개정판에는 7편의 단편 <남의아내와 침대밑 남편><약한마음><뽈준꼬프><정직한도둑><크리스마스트리와결혼식><백야><꼬마영웅>만 담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평판을 누려온 <백야>.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다소 지난했던 단편들의 늪속에서 허우적댔었다.
녹록치 않은 그 과정의 시간들을 백야가 한꺼번에 보상해주었다고 해야할까?
서로 간에 기꺼이 주고받는 사랑조차 때론 고통의 시간을 통과의례처럼 지나쳐야 할진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운좋게도 그 사랑의 대역을 맡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을때, 질투와 외로움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옛사랑에게 등을 돌리고 마는 여자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 순간조차 신성한 약속을 단숨에 저버린 나스쩬카를 축복하는 대목. 그녀의 가슴이 전 생애에 걸쳐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흔히들 얘기하는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나스쩬카,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祭臺)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서 단 한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 300쪽
데이트 폭력으로 얼룩진 집착과 욕망도 처음엔 사랑이라 그랬을테고, 그 후에도 사랑이라 부르리라.
그들의 천박한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다시는 사랑하지 말지어다.
당신이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한다면,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내 사랑이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당신이 느끼지 못하도록 그렇게 사랑할 겁니다. -28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