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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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사람이 죽었다. 세사람 모두 고용인이었다. 한 사람은 국가에 고용된 사람. 나머지는 망한 기업에 고용된 사람.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에 눈을 감았다. 그들이 죽음을 향한 그 길고 긴 계단을 한걸음씩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의 죽음은 대단치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나타난 고통. 그들이 부닥쳐야 했던 아픔. 그들을 마침내 죽음으로까지 내 몰았던 그 모든 일들은 그저 하찮은 것들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기에. 그들의 죽음은 그저 일상적인 것일 뿐이기에...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1.2권을 합쳐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그럼 그런 쓸데없는 내용들을 담았을 뿐이란 말인가. 그저 흔하디 흔한 일상을 담았을 뿐이란 말인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부딪히는 아픔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다. 지극히 덤덤하고 무뚝뚝한 필치로. 그러나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삶이 과장되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강한 책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경제원리는 보편적이다.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가 강요하는 것에 더 잘 순응하는 것만이 우리가 택해야할 가장 탁월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것에 적응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반발하는 사람은 대체가능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아프다면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아픔을 선택한 게으른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성장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휴식하고... 조그만 지방마을에서 대를 이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공장이 있기에 그들이 삶을 살고, 그들이 있기에 마을이 번창하고 경제가 움직인다. 책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저 평범하고,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들.

그들에게 닥쳐오는 재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해 경쟁력이 없어진 공장의 폐쇄이다. 공장 자체가 경쟁력을 잃은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적 시각에서 볼때 경쟁력이 없어진 것이다. 브랜드가 팔리고, 공장의 특허권이 팔리고, 이제 남은 것은 구식기계와 가격이 없는 공장부지 그리고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공장이 그렇게 이사람 저사람의 손으로 넘거가는 과정에서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해고를 당한다. 그들 귀중한 사람의 아버지와 어머니, 귀중한 사람의 아들과 딸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때 가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제원리는 사람의 삶을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베트남의 노동자와 비교해서 얼마나 낮은 임금에 동일한 가치를 생산해내는가만 본다.

공장이 옮겨가면서 사람들의 가치는 더욱 줄어들고, 마침내 공장은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결국 노동자들은 빈공장만을 지키는 내팽겨쳐지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의 절규, 내 팽겨진 자들의 절규는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들은 대체가능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극단적인 존재의 외침은 폭력적인 대응을 맞게 된다. 아픔을 겪는 사라들에 대한 사회의 대응은 효율적인 진압뿐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더 많은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서 노동의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결국 우리가 오늘날 흔히 부딛치는 바로 그 일들이다. 늘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일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 그러나 그들 한사람 한사람은 아름다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대체가능한 존재로 만든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가슴 아픈 도전장. 혹은 시퍼렇게 날이 선 생에 대한 아름답지만 허무한 연가. 아름답지만 지독하게 가슴 아픈 서사시.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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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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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출간된지 10년도 더 된 책에서 오늘을 설명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슬람에 대해. 세계화에 대해. 미국의 위치에 대해 수많은 책들이 œR아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뒤늦게 읽은 이 책에서 이미 10년도 전에 지금의 현실을 놀랄만하게 정확하게 예언한 책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 그럴것이다. 바로 그 단어가 이 책에 대한 설명에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10년이나 전에 쓰여졌기에 사소한 디테일에선 오늘날의 현실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 책이 말한 거의 모든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을 설명한 것이다. 9.11이 생기기도 전에, 2차 걸프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프랑스의 이주민 폭동이 발생하기도 전에... 이 책은 그런 일들의 원인에 대해 이미 다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헌팅턴이 후꾸야마에게 가려져 있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뛰어난 혜안의 소지자가, 역사의 종언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휘광에 밀렸는지... 우리는 너무 낙관적인 것에만 몰두한 것은 아닌지. 소위 민주진영의 승리에 너무 도취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대가의 책을 접하는 기분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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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과의 만남 - Post-Human 1세대를 위한 안내서
도미니크 바뱅 지음, 양영란 옮김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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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과거의 우리들이(조상들이 아니라) 생각했던 10년후의 미래인 오늘. 우리는 10년 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과학적으로(사회전체가 아니라) 훨씬 더 발전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의 세상은 어떨까. 혹시 10년 후의 세상도 지금의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달라진 세상이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미래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달라진 모습을 가지고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20년후, 그리고 50년 후의 세상은? 그 때의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 인간의 삶의 조건들은 크게 변하지 않다러도, 인간이 이룩한 기술적인 발달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을 것 같은 세상의 모습. 그런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이 책은 바로 그런 것을 상상하는 책이다. 기술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혹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간다면,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인공장기의 발달, 나노공학과 생명공학의 발달, 그것에 더해 인공지능의 발달이 온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다 합쳐진다면... 그때가 바로 포스트 휴먼의 시대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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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 프랑스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이야기
신이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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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알자스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변두리에 위치한 한 작은 시골마을. 그곳의 이름이 알자스입니다. 알자스는 그 마을에 있지만, 그 마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읽고 알자스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알자스는 또한 존재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요. 이 책속의 알자스는 너무나 멋지고, 너무나 아름다운, 그래서 꼭 한번은 그곳에 가보고 싶은, 아니 그곳에서 꼭 한번은 살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곳입니다. 이 책은 알자스를 그만큼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네요.

넓적한 훈제고기 다리 요리. 포도주. 느긋하고 온화한 삶. 자전거를 타고 지나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기에 딱 좋을만한 평화로운 풍광. 알자스는 혹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 마음속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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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임팩트
오마에 겐이치 지음, 정유선 옮김 / 청림출판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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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거대한 나라다. 거대한 만큼 복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중국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오지만, 그 책들이 제각각 다른 주장을 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중국의 다양함 중 어떤 부분을 더욱 크게 보는가에 따라서 중국의 모습은 달라보이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다양한 중국의 여러 모습들 중 전체를 다 본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몇가지 점에서 중국을 보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신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어떻게 달리 보는가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왜 이 책의 시각은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미국보다 더 절박하게 경계해왔었다. 그러나 일본은 아이사 국가들 중 가장 서구화 된 국가이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일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사이의 일원인 일본인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기에, 서구적인 시각으로 중국을 서구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인들이 쓴 책들은 말한다. 중국이 얼마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충실하고, 중국이 얼마나 효율성이 떨어지는가를. 또 서양인들은 말한다. 중국은 여전히 민주화 정도가 약하므로, 경제성장에 따라서 중산층이 성장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불안정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서구인들의 근본적인 시각은 세계를 자신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세상은 크다. 세상은 다양하다. 오늘날 세상의 지배적인 문화가 서구적인 근대화라면 중국은 중국적인 근대화를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겠는가. 그것은 더 이상 서양에 반하는 중국의 치기어린 민족적 감정의 허황된 생각이 아니다.

오늘날 중국은 실존하는 힘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중국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의 발언을 높여가고 있다. 어쩌면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의 민주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서구화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제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일 뿐일수도 있다. 그러한 서구적인 시각이 엷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책을 다른 중국에 대한 책들과 달리 신선하게 느껴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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