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의 영어회화사전 (테이프 별매)
이보영 지음, 스캇 피셔 외 감수 / 두산동아(참고서)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영어가 싫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안한다. 그러다 할 수 없이 영어책을 하나 잡았다. 바로 이 책이다. 완전히 우연이다. 사실 눈에 띄는대로 아무거나 골라잡은 것이다. 표지가 깔끔하고 예뻐서였다. 다른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를 댄다면 책이 두툼했다. 책 욕심이 많은 나는, 영어를 싫어하면서도 이왕 책을 살 바엔 두툼한 책을 사자는 심사였다. 또 이유를 대야한다면, 붉은 색깔이 지배적이고, 여자 얼굴이 있었다는 정도일까. 아!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비닐커버가 있었다. 난 책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비닐커버... 그건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책을 읽어본다. 읽는 것이 아니라 외워야 하는 책이다. 외우긴 싫다. 페이지도 너무 많은데 어떻게 다 외운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왜운다. 처음부터 왜우기도 하고, 아무 페이지나 펴고 아무 문장이나 외우기도 한다. 어차피 다 외울려면 어리가 파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문장이라도 얻으면 기특한 것이다. 굳이 다 외울것은 기대하지 않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무모한 욕심을 낸다. 내 기필코 이 책을 다 외울 것이다. 왜우기 위해 우선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이 책. 왠지 느낌이 좋다. 영어 책.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인생을 제일 많이 갉아 먹은. 내가 평생에 친 시험중 가장 성적이 잘 나왔던. 그러나 말 한마디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우스광스러운. 영어. 그래서 난 영어가 싫다. 영어에 바친 시간이 싫고,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I히 싫다. 그런데 이 나이에 또 영어책을 보아야 하는 내가 싫고, 그러고도 너무 영어를 못하는 내가 참 싫다. 그런데 이 책. 뭔가 이상하다. 그 싫은 영어를 좀 덜 싫게 만든다. 약간의 내가 꼭 집어서 말하지 못하는 매력이 있는. 그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에 읽었다. 상당히 조숙한 아이였다. 나는. 그래 수업시간에 몰래 책상아래에 숨겨놓고 이런 책들을 읽곤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내가 이 책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었겠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 책을 딱 한번 읽었다. 이 좋은 책을 한번 밖에 읽지 않았다는 것이 불행이고, 한번 밖에 읽지 않았기에 그 감성이 아직도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당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슴한 기억에 의존해 이 책을 추억하면서, 나는 이제 머리로 이 책을 이해한다. 정확한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심리상태에서, 어떤 상황에 의해서 그가 해변으로 나갔는지... 그까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지독한 기억력 상실에 걸려 있다. 햇빛 때문이다. 너무나 햇빛을 보지 모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찔한 햇살아래에 서면, 어지럽다. 불안하다. 나의 공간이 아닌것 같기에... 마찬자기로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살아있고 나는 고독과 자신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애환과 연민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내 존재감이 너무나 현실감이 없다. 얼마 안되는 남는 시간에 글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존재의 확인이다.

리뷰를 쓴다는 것은 나의 존재확인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나 '푸른하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푸른하늘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거의 없는 나에게. 너는 지금도 살아 있는 거야 라고 확인시켜 주는 행위이다. 어느 짜증나는 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권총을 겨누는 나를 말리는 행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교자
김은국 지음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책의 표지인지, 속지 어디인지에 쓰여 있던 뉴욕타임즈인지,,, 다른 미국의 어떤 언론사가 썼다는 이 책에 대한 평이.

"욥 과 (  )의 전통을 잇는 실존주의 작품." 나는 우리나라 문학에 실존주의라는 말이 붙은 것을 그때 처음으로 보았었다.

실존. 그 당시 한창 실존주의적 지적 허영에 빠져 있던 내가 이 책에 단번에 빠져들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숨이 턱 막히고, 책장을 넘기는 손이 벌벌 떨리는 독서경험. 그런 것이었다.

짧다. 이 책은 중편 소설정도의 분량이다. 내가 너무 급하게 읽어서 짧게 느껴진 것일까. 그러나 그 여운은 길다. 이 책을 읽은지 2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그 경험은 너무나 생생하다.

"나는 역사의 절벽에 매달려 왔다. 이제 그 손을 놓으려고 한다." 상당히 기억력이 나쁜 내가 이렇게 책에 나오는 문장까지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준 책이다.

책의 줄거리,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뜻밖의 상황설정. 그런 것보다 더 강하게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강한 주제의식이었다.

순교. 신에 대한 순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순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순교. 거룩한 희생.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숙에 대한 거룩함.... 이런 이율배반적인 단어가 한권의 책에서 녹아나는 그 멋들어지고 숨막히고 강렬한 도전을 느끼게 하는 책.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토록 강하게 남아있는 책.

수십년이 지나도 이 책은 여전히 내 일생의 책 몇권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책이다. 아마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종: 철학적 입문
폴 C. 테일러 지음, 강준호 옮김 / 서광사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대면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학문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인종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보기 힘든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인종은 물론 종족문제에 대해서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올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계는 세계화된 세계이다.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다른 인종들과의 교류에 부딛히게 될 것이다. 그런 인종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 책은 그런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철학적인 접근을 하는 책이다.

 

인종의 차별은 없어져야 하지만, 인종문제는 실존하고 있다. 따라서 일시적으로는 인종문제가 존재한다는 인정을 하여야 인종문제의 종식에 다가설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실존하는 인종적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여야 할지를 설명하는 지적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들 사이의 차이점인 인종은 존재한다. 실제하는 문제이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존재하는 문제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나쁜 방식이다. 문제에 당당하게 맞서서 문제와 대면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첫걸음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말한다. 여기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이 책은 인종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어느 누가. 어떤 책이 감히 해결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단지 이 책은 인종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론에 대해 정교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인도하는 방식에 따라 인종적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이지 좋은 지적 도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쿤/포퍼 논쟁 -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
스티브 풀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포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일반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더욱이 과학철학에 관해 문외한인 나는 포퍼에 대해 그 이상을 알지는 못했다. 더욱이 포퍼와 쿤 사이에 1965년에 있었던 한차례의 만남을 기점으로 팽팽한 과학철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였다. 더욱이 나는 쿤이라는 사람의 이름조차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포퍼라는 이름은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의 적들’에서 사용된 ‘열린사회’라는 단어의 매력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일부분만이 받아들여졌었다. 포퍼는 나찌독일의 전횡을 보면서 제기한 개념 ‘열린사회’를 통해 그가 망명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개념으로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대하는 균형 잡힌 진정한 포퍼의 모습은 상당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의 과학발전 개념에 대응해서 소개된 쿤의 과학발전 개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은 자세히 읽어보면 그다지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이 책이 가지는 난해한 문체와 난삽한 개념의 과잉사용이 책을 쉽게 읽히지 않게 만들지만, 포퍼와 쿤의 개념이 가지는 차이와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 쿤을 권위적으로 포퍼를 실증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쿤을 시류에 영합한 성공적인 학자와 포퍼를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매인 고답적인 학자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두사람을 보는 서로 다른 입장의 다양한 관점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면을 대비 시키면서도 주로 포퍼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저자는 그토록 쿤과 포퍼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비교와 분석을 통해서 더 선명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논쟁을 선점하고 잊혀진 이슈를 세상에 부각시키면서 그들에 대해 더 나은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구축한 사회를 보는 인식의 방법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는 명백하고 뚜렷해 보인다. 과학을 긍정하고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더 튼튼한 뿌리를 내려가는 학문적 방법을 지지하는 것이 포퍼의 입장이라면, 쿤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전재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 전재(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가 오면 사람들이 과학을 탐구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외한인 내가 보이기에는 쿤과 포퍼 두 사람의 관점이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관점은 서로 양립할 수 있으며 상호보완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포퍼의 과학발전론은 쿤이 말하는 정상상태에서의 과학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이 될 수 있으며, 포퍼식의 발전이 이루어지다 여러 가지 근본적인 오류가 생겨 과학적 방법론 자체가 비판을 받게 되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과학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후에는 다시 포퍼류의 과학의 자시 비판이 통용되는 정상상태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나는 오히려 저자의 지나치게 복잡한 관념의 희롱이 거슬리게 느껴진다. 오늘날은 자연과학의 빠른 진보를 인문과학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연과학철학이란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인문학의 비판과 감시를 통해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자연과학 단독의 발전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과학철학의 첨단에서 일하는 인문학자들이 내놓은 책이 이렇게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관념들로만 짜여져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을 듯 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려운 국내 독서시장의 여건에서도 이 좋은 책을 소개한 출판사에 감사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책이 소개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도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고, 인문학내에서 과학을 받아들이고 감싸고 비평하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과학과 인문학적 저작 모두가 대중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여지게 될 것을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