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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의 트럼펫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74
레이첼 이사도라 글.그림,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평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는 자신 스스로가 갈망과 열정에 차서 하는 연주일 것이다. 그 연주가 아무리 엉터리 연주일지라고, 그 연주가 비록 악기조차 없이 손짓만으로 하는 연주일지라도.
오페라 ‘레미제라블’의 미제라블(가난한 자)들이 부르는 그 희망의 노래는 그래서 그토록 감격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그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그들의 합창에 힘과 감격을 자아내는 음악적 장치를 넣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오페라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서사의 힘이 그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감동할만한 준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벤에게도 악기가 있다. 벤이 즐겨 연주하는 악기는 트럼펫이다. 재즈클럽에서 흘러나오는 멋진 음악소리에 도취된 밴은 자신만의 악기를 가지고 자신의 노래를 연주한다. 비록 손으로 연주하는 트럼펫이지만, 그 연주를 통해 벤은 구원을 받는다. 그는 그 음악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그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특한 감정을 표현해 낸다.
트럼펫은 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힘든 세상에서 탈출해서 저 바깥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달콤한 위안들이 사소한 일에 쉽게 무너져버리듯이, 그토록 벤에게 의지가 되던 트럼펫은 지나가는 소년들의 비웃음에 그만 사라져 버린다. 벤이 그렇게 사랑하던 악기는 그냥 평범한 아이의 때 묻은 조그만 주먹 두개로 순식간에 변해버린 것이다.
세상을 바르게 본다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며 세상을 알고, 그 모질고 힘든 세상을 이겨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낼 멋진 악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하루의 삶을 힘차게 살아내야 한다. 그 하루하루의 삶의 무게에 하나하나의 꿈이 차례로 무너지는 것이 삶이지만, 아름다운 소년시기에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꿈 하나쯤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될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기만 했던 그런 날들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