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 

 

[묘선법사에게 가보시게. 그가 요괴들을 사역한다고 하던데..팔색조가 거기 한 마리 있다고 들었다] 

그는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듯이 손을 한번 흔들고는 검은 색의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나도 깨끗해진 새지를 품에 안고서 다시 오솔길을 찾아 움직였다. 좀 전의 요괴처럼, 바른 생각을 하고, 인간이랑 공생하고자 노력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을 사납고, 위험하게 만든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다는 특별함에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행동이 똑같았던 걸 보면, 우리나라에 있는 법사들이나 몇 몇의 특별한 이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추측한다.  

작은 피조물이나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거대한 피조물들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아나가야 할 존재들임을 오늘 처음 만난 요괴에게서 배웠다. 새지가 깨어나면 나의 결심을 꼭 말해주어야겠다. 

그가 말하는 묘선법사가 내가 아는 사람과 같다면, 그는 옆 마을에 있다. 그의 집에 사당을 지어 놓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기도를 해서 제법 유명하다. 게다가 귀신을 퇴치해 준다는 명성도 높은 법사다.  

밤낮없이 가면 수도까지는 앞으로 4-5일이면 도착하지만, 피에 절은 옷과 만신창이의 행색이라 낮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분명히 관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낮에는 숲을 통과해 가는 좀 먼 길을 선택하고 밤에만 인가를 지나갔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많다보니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어 존재한다. 이런 모습은 험한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평소에는 평지에 있는 마을에서 생활을 하다가, 외적이 침입하면 산성으로 옮겨 문을 잠그고 대항했기 때문이다. 수도 역시 같은 방식임으로 전쟁에서 몰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현재는 아마도 산성으로 피신을 해서 궁궐 안은 비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법사가 집에 있을지 역시 알 수 없지만, 그 곳에 가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무작정 가보는 수 밖에..

우리 마을에 들어선 것은 달이 환한 밤이 되어서였다. 거리는 조용했고 불빛 하나 없을 만큼 적막이 흘렀다. 전쟁의 패전이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사람들은 안심이 될 때까지는 밖을 나다니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그나마 꼭 움직여야 할 때도 소리 없이 뭉쳐서 다니느라 이런 위험한 밤에는 아무도 없다. 이웃 마을로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집에 잠시 들르기로 결정했다. 집은 재로 가는 도중에 있어 아버지가 잘 계신지 확인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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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어..] 

흙바닥에 등을 부딪히며 그대로 뻗었다. 하늘을 향해 맥 놓고 있던 내 몸 위로 몇 초 후에 고양이가 착지했다. 두 손으로 확 잡자 고양이는 손을 또 핥는다.  

[내가 누군지 알기는 하니?] 

이 고양이는 다른 놈들처럼 최상위 포식자인 뱀파이어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이 없다. 내 손에 잡혔을 때 그것이 늑대든, 쥐든 덜덜 떠는데 이 놈은 안 그런다. 게다가 어찌나 간지럽게 핥는지 뜨뜻해진 손가락에 침이 잔뜩이다. 오른 손으로 고양이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벌릴 수 있는 한 최대 크기로 입을 열어 고양이를 머리부터 넣으려는데, 이걸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 와중에도 앞발로 내 손을 툭툭 치며 웃는다. 고양이가 웃는다는 건 입 모양이 스마일로 보인다는 뜻이다. 배고프지 않다면 나는 상당히 인도주의적인 뱀파이어라 가지에 올려놓던지, 다른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겠지만 지금은 배가 등가죽에 붙었다. 이대로 몇 시간만 흐르면 나는 아사할 것이다. 하여 미안한 마음을 접고 고양이 머리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살짝 물어 피를 마시려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알싸하고 매캐한 냄새가 내 몸 주변에서 피어올랐다.  

[푸에취...에취..에취..] 

폭풍 같은 기세로 재채기를 하느라 고양이가 내 입에서 튕겨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도 몇 번 쯤 허리를 꺾으며 심각하게 콜록거렸다. 

[날 먹으려고 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눈물이 어릴 정도로 거센 재채기의 후유증일까..내 눈 앞에는 고양이가 남자로 변해 자기 손을 혀로 핥으며 사람처럼 말을 했다. 이상한 냄새의 근원이 바로 이 사람인듯 끊임없이 묘한 향기가 발산되어 재채기를 유발했다. 

[저리 좀..에취..가면 안 돼요? 에취] 

그는 웃으며 몇 발짝 물러났다. 냄새는 발이 없는 대신 속도가 빨라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결국 나는 창틀 위로 물러나고 그는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서야 냄새가 다른 곳으로 퍼졌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남자와 마주보고 있노라니 눈이 갈 곳을 잃었다. 그는 내가 민망해하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 이제는 다리를 긁으려는 포즈를 취했다.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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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물론, 나도 간간히 보기는 하지. 하지만 넌 어떻지? 새지가 위험할 때 대신 죽을 수 있겠어?] 

 그럴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전쟁터에서 나는 죽는 것이 두려워 울기만 했다. 화살이 날라올 때, 그것이 무기 직공이나 새지를 향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그들처럼 뛰어들을 수 있을지 진실로 모르겠다. 나의 두려움이 발을 묶어 그들이 죽는 걸 보고 있는 게 평소의 나랑 어울린다.  

[이 세상은 인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곳이지만, 인간을 제외한 존재는 어느새 이용해야할 것과 없애야할 것만이 있을 뿐이다. 특히나 우리는 두려움을 키워주기 위해 활용되지. 처음처럼 우리가 친근하거나 함께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불충한 무리들로 전락시키고, 이제는 보이는 몇 몇 이들을 중심으로 이용하고 사냥할 뿐이다. 우리를 보는 그 순간에도 너 역시 그랬을 것이다] 

요괴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 나 역시 그들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나쁜 무리라 단정지었으니까. 

[넌 이미 우리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너의 조상들이 심어준 잘못된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를 보고 있으니, 너 역시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너를 위해 목숨을 걸어주는 팔색조가 의미없는 행동을 한 것 뿐이지] 

새지를 살리려고 하는 지금의 내 행동이 나를 위한 것임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알고 있다. 새지가 살아야 내 마음이 편하고, 죄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나는 노력할 거다. 내 두려움을 이기고, 내 허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적어도 나 하나라도 요괴를 바르게 본다면..그것이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요괴는 깨끗해진 새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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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있었어요] 

[몇 개?]

[한 개요]  

 

 스승님은 마지못해 말하는 나에게 이가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뱀파이어는 두 개의 송곳니를 가져야 하지만, 나는 부정기적으로 나타나고 그 마저도 한 개였으니 장애도 이런 장애가 없다. 그게 뭐가 웃기냐는 생각이 들면서 심술이나 발로 찼지만 그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뱀파이어라 그 정도의 공격은 바로 피했다.  

 

 [그 남자의 목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어, 기억나니? 너는 송곳니가 한 개 뿐이라 그런 상처를 낼 방법이 없지]  

[아! 그래요. 두 개였어요]  

 

 눈을 감고 어젯밤의 그 남자를 떠올렸다. 그 피, 살짝 입술에 닿았던 신선하고 맛있던 혈액. 순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저기..]

[좀 더 자라. 아직 몸이 고단할거다]  

 

 그는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지 방을 나갔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는지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지금이 밤이라는 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보통은 이렇게 오래 자지 않는데, 구타당한 게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마치 찜질방에 들어가 땀이라도 쫙 뺀 것처럼 몸이 나른하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지만, 복잡한 기분과 꼬리를 무는 생각에 정신이 갈수록 반짝거렸다.  

 

  막 의문을 떠올리려는 찰나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창문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피에 대한 기억과 흥분이 남아있어, 고양이라도 한 입 먹고 싶다는 본능 때문이었다. 살금살금 창문가로 다가가 문 사이로 밖을 보았다. 건너편 나무 위에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다 큰 놈이라면 내가 창문을 여는 순간 뛰어내려 도망가겠지만, 새끼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경향이 있다. 지난번에 한 입 마셨던 고양이가 그랬다.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창문을 밀었다. 고양이는 귀를 쫑긋했지만 내 쪽을 쳐다보지 않고 계속 울음소리를 냈다. 그에 용기를 얻어 몇 초 만에 창문을 타 넘어 나뭇가지 쪽으로 점프했다. 한 번에 착지 성공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고양이가 있는 나뭇가지에 못 미치게 도착하는 바람에 간신히 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하지 마! 간지러워]  

 

고양이는 내가 잡은 가지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와 손을 핥았다. 간질간질, 간질간질..이러다 가지를 놓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고양이는 여전히 같은 행동이다. 멍청한 고양이가 손가락을 살짝 깨무는 순간, 가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몸이 흔들렸고, 몇 초가 흐른 후엔 내 팔뚝 정도 굵기의 가지가 부르르 떨리며 툭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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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소리 

 

 

엄마가 나를 부른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첫째 언니와 막내 놈이 밥을 먹고 있었다.   

 

 

 [너는 먹지마라]  

[왜?]  

[못 생겼으니까]  

[먹을 자격이 없어]  

 

 형제들이 한 마디씩 하며 내 앞에 놓여있던 밥과 국을 치워버렸다. 너무나 서러운 기분이 들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수저와 물그릇도 치우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  

[쉬, 쉬. 괜찮아]  

 

 북극의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이마에 닿았다. 엄마의 손은 따뜻한데, 너무 추워.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빨간 꽃무늬 파자마 차림의 스승님이었다. 창피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옷 매치를 보고야 그가 진짜 스승님이고, 좀 전의 일은 꿈이었음을 느꼈다. 얼마 만에 흘린 눈물인지 깨닫자 어색함에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후다닥 닦았다.  

 

 [꿈을 요란하게 꾸길래 깨웠어]   

 

 허리를 살짝 들어보았더니 말짱하다. 어젯밤에 일방적으로 구타당한 것마저도 꿈같다. 팔, 다리 역시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니 뱀파이어의 재생력은 정말 훌륭하다.  

 

 [어제 일 어떻게 된 거에요?]  

[네가 한 일이 아닌거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라]  

[제가 안 했다고 스승님도 믿으세요? 진심으로?]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뱀파이어는 현혹시킬 의도가 아닐 때는 가능한 한 상대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는데, 지금은 그가 나를 믿는 건지 너무 궁금해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내가 눈을 뜬 이래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넌 송곳니가 없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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