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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 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이동기.이재규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2월
평점 :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외 한나 아렌트 관련 저작물 리뷰+ 온라인 독모후기
베티나 슈탕네트 / 글항아리, 한나 아렌트/ 한길사
위 내용을 한 피드에 압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가끔 불가능 한 시도는 해봄직하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한나 아렌트 읽기, (봄이 온 줄도 모른 채) 2025년 나의 봄을 다 바친 한나 아렌트 읽기! #그믐 #독파 #온라인독모 #카톡방 등 다양한 채널에서 한나 아렌트와 관련된 책을 진행했다. (하나에 꽂히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습성) 어쩌면 한나 아렌트에 대한 관심은 훨씬 이전 2021년 봄 한길사의 《한나 아렌트 정치사상 전 3부》 이진우 교수님 번역으로 접하면서부터다. 미국인들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는데 이런 말 하면 독일에서 공부한 철학자 일부가 입에 거품을 물기도 하는^^ 참 매력적인 한나 아렌트 선생님이다. ( 존경하는 분께는 작가 철학자를 떠나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은) 한나 아렌트가 만약 남성으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보기도 했다. 실제로 당대 수많은 여성들이 차라리? 남성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박경리 선생님 같은 분들이 남성이었다면? 아마 처우가 약간?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나아렌트정치사상3부작 으로 시작한 이 독서는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으로 또 세창출판사 윤은주 선생님의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세상》으로 이어졌고 중간에 《극우 권위주의 독재》로 하이데거와 마침내 야스퍼스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지금은 #제발트 에 빠져있다. 그리고 유대인 출신의 철학자들, 작가들이 최근 관심사다. 딱 3년만 하고 접겠다고 약속한 책스타그램이 2년 연장되었다.
20세기 정치 철학에 관해 한나 아렌트의 역할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기존 남성 중심의 지식사회에 이런 여성 철학자가!! 더군다나 유대인 여성이라는 점 내겐 마음을 뺏길만한 중분한 존재 그 자체였다. 심지어 한나 아렌트가 책을 통해 틀린 말을 해도 그 말조차 사랑할 만큼 그만큼 좋았다 ㅎㅎㅎ ( 이러면 안 됩니다. 이건 광기!!)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책 선정 이유:
한나 아렌트 저작물 중 ( 일부 미출간된 에세이나 서신 집을 제외하면) 70% 정도가 국내에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더 많은 저작물이 번역되기를 바라는 마음. 기존 리뷰에서 오독을 접하며 왜 한나 아렌트의 전작을 1권도 읽지 않은 채로 이렇게 용감한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택한 책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나는 사유하지 않는 자보다, 잘못 사유한 자가 더 두렵다.”
— 이 책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물을 집필하신 베티나 슈탕네트 저자님 말씀에 공감 또 공감한다! 특히나 지식인들이 이런 경향이 많다. 자기가 잘못한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주면 없는 학설이라도 기꺼이 만들어서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태도 참으로 놀랍다. 한나 아렌트도 비슷한 오류를 범했다. ( 실생활에서 수없이 경험)
베티나 슈탕네트 책의 저자님 :
독일의 철학자이자 현대 사상사 연구자. 칸트 윤리학 전문가로 출발했으나, 이후 나치즘과 인식론에 집중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그녀가 8년에 걸쳐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물로, 아이히만 관련 구술 자료를 독일어권 최초로 본격 분석한 책이다. 학문적 치밀함과 문학적 필치, 철학적 관점을 함께 지닌 독특한 저술가로 평가되며 내가 가장 높이 생각하는 것은 용기다!!
vs ( 양대 구도는 싫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베티나 슈탕네트 vs 한나 아렌트 ) 두 분은 같은 대상을 다른 렌즈를 통해 보신 것. 그런 의미에서 두 시각을 다 존중한다. 이런 시도조차 못하는, 심지어 덮으려는 인간들 훨씬 많기에 ㅠ
한나 아렌트 선생님 :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하나. 유대계 독일 출신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도덕적 판단에 대해 깊은 성찰을 남겼다. 한 사람의 여성이 이렇게 많은 저작물을 출간하다니 기록에 남을만한 일이다.
아렌트는 나치즘을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인간 실존과 정치, 사유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철학자의 언어로 정치를 해석했고, 악을 일상 속에서 찾으려 했다. 그녀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이후 윤리학, 법철학, 대중문화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위의 베티나 저자님께 하고 싶은 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철학적인 사유에서 접근했다는 점이다. 사회학자의 관점이 아니라는 점
생각하지 않음이 악의 시작이라고 본 관점!!
두 분이 아이히만을 바라본 관점이나 접근 방식이 달랐으니 같은 인물이 전혀 다른 해석을 지닌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중 본질보다는 후킹 하는 단어, 기사가 될 만한 용어에 관심이 많은 듯싶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 이후, 우리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본 아이히만 혹은 제2, 제3의 아이히만을 다시 보게 하는 책이다. 이 방대한 저작물 후반부에 비로소 아이히만이 졌다고 썼으나, 과연 그는 진 것인지 의문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의문이 있는데 유대인들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아이히만 자녀들 중 생존자인 막내아들에 대해 추적해 보고 싶은데, (그건 이미 독일인도 용서한 개인적인 삶인데 웬 관심이냐고 ㅎㅎ??)
그의 삶을 추적하는 이유? 평범한 독일인 사람들의 범죄에 대한 관점, 전쟁범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친일파 후손에게는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는데 과연 독일들은 그들의 전범 후손들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 했는지 궁금하고 그 관련 자료도 꽤 많이 모아둔 상태다. 과연 독일이 나치 청산을 제대로 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총리가 무릎 꿇는 퍼포먼스를 통해 반성의 제스처 하신 점은 훌륭하다. 그조차 안 하는 나라(일본)도 있으니 ㅠㅠ
♣ 책 요약 혹은 핵심 개념을 쓰자면? ( 추후 정리한 것 업로드 해 볼게요)
망명 중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이 남미에서 남긴 육성 자료는, 그가 얼마나 교조적인 인종주의자였는지, 나치 이념을 지금까지도 신봉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말투, 어휘 선택, 사상적 태도는 그를 단순한 ‘명령 수용자’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왜곡된 재판과 대중 이미지의 관점!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 작성한 보고서는 그가 보여준 태도만을 바탕으로 그려진 단선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슈탕네트는 재판 당시 이스라엘 당국이 아이히만의 일부 육성 증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전 세계가 그의 본모습을 오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유의 역할과 철학적 책임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였고, 인간의 사유 능력과 도덕 판단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슈탕네트는 철저한 역사학적 탐구와 정치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악의 얼굴’을 구체적이고 복잡하게 그려낸다. 이런 점이 두 분의 차이점!!!
베티나 슈탕네트 저자님의 책을 한나 아렌트의 시선에서 『전체주의의 기원』과의 연결해 보면? ( 너무나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이전에 쓴 #전체주의의기원 리뷰 3500자 다 열어서 다시 검열해 봄 )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가 군중의 고립, 사유의 단절, 자발적 동의를 통해 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인간은 ‘사유하지 않음’ 속에서 전체주의적 악을 수행하게 된다. 아이히만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but 슈탕네트의 연구는 아렌트의 이 이론적 구조에 균열을 낸다. 아이히만은 단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충분히!! 명확하게 생각했고, 그 생각이 전체주의적 체계에 깊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전체주의 분석 틀 안에서도, 아이히만은 군중의 일원이 아닌 ‘선동자’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결국 슈탕네트는 아렌트의 철학적 인간관, 특히 인간의 자유와 사유를 중시하는 틀 그 자체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이것이 포인트다!! 아이히만은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 사유했고 그 사유가 악했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이 있는 이유다!!
이 기념비적인 저작물은 아이히만이라는 한 인간을 분석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한나 아렌트를 저격해서 인기몰이하고자 한 책이 아니라는 점!! 물론 마케팅 관점에서는 용이하겠으나, 슈탕네트 저자님은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대표로 내세워 전체주의적 인물의 본질을 재정의하고자 한 것이다. 두 지성인의 충돌이 아닌 전체주의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죄를 실현하는가? 그 본질을 다시 묻는 책이다. 아마도 이번 세기에 다시는 이런 책이 나올지는!!! ( 이 시대를 허락하시고 이 시대에 태어나 이런 책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 초, 중, 고를 포함 무려 12년간의 서열 체제! 1등급 제외하면 거의 99% 아이들이 패배자로 살아간다. 1등만 해온 아이들이 다시 파시스트로 자리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ㅎㅎ 교실이 성숙하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교사들, 우리 오늘 대한민국!
신자유주의, 엘리트주의 ... 소수의 엘리트들 이 세계의 언어와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 이는 문화 파시즘과 권위주의를 가속화한다. 이전에 리뷰에서 수없이 반복적으로 쓴 문장이다. 전체주의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이행한 우리 사회!! 독재는 그 모습을 수없이 탈바꿈하므로 다만 우리는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연대, 사랑, 대화다. 한나 아렌트 관련 저작물에도 같은 문장이 있다. 반대편을 향해 손을 내밀어 새로운 파괴의 굴레를 멈추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대하고 사랑하고 대화 마침내 화해하는 것, 어쩌면 '독재의 반대 모습'은 '여성'을 닮았다.....
→ 각 챕터별 내용정리+ 독모의 미션 발제문, 책을 읽으며 떠올린 수많은 질문들은 추후 기회?가 되면 공유해 보겠습니다
도서를 지원해 주신 #글항아리 출판사, #한길사, #세창출판사 감사합니다. 플랫폼을 허락해 준 #문학동네 #독파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토론에 열심히 참여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덧: 더 앍아보고 싶은 내용 1
나치 집권 후 하이데거는 총장 연설에서 “국민 공동체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강조하며, 대학이 민족과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나치 이념에 부합하는 발언을 한다. 그는 자발적으로 히틀러의 ‘국민정신’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려 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총장직은 1년 만에 사임했지만, 이후에도 하이데거는 나치당원 신분을 유지했다. 전후에는 자신이 단순히 “독일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려다 이용당했다”고 해명했지만, 결코 공개적으로 자신의 나치 협력을 명확하게 반성하거나 철회하지 않았다 ( 이것이 지식인의 모습이라니 ㅠㅠ)
but 야스퍼스는 어떤가?!!!!!
“우리가 몰랐다는 것은 죄악이다. 왜냐하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카를 야스퍼스 ( 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야스퍼스 선생님)
야스퍼스는 나치 집권 후 철저히 나치 이념에 반대하였으며, 아내가 유대계였던 이유로도 지속적인 감시와 강의를 금지당했다. 1937년에는 강의 자격을 박탈당했고, 나치가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혼인도 불법화하려 하자 자살까지 각오했다고 전해진다 ㅠ
야스퍼스는 전후에 독일인의 죄책을 발표하며, 나치 시대의 독일 국민 전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함.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신 분이다.
정신 차려보니 여름이다 ㅠㅠ 여름엔 놀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