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폴 고갱 
 
​ 
 
193.
"우리 왕국은 정말 아름다웠어. 사람들은 이 땅에서 풍족했고, 우리는 일 년 내내 노래했어." 늘 배부르고 행복했던 매미들의 노래를 중단시킨 것은 누구인가? 
 
 


스스로를 야만인이라고 지칭하면서 제국주의와 문명 세계를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고갱의 그림에는 무의식적으로 원주민을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제법 긴 세월동안 '야만인'과 생활했지만 여전히 백인 남성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던 고갱의 한계를 비난할 수 없다.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찾고자 노력해야하는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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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폴 세잔 
 
 
단조롭고 자신의 과제에 집중하는 삶을 산 세잔.
애써 '삐뚤어진 삶을 살테다' 작정한 사람마냥 은행장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초기의 작품은 살인, 납치같은 우울하고 기괴한 주제를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봄으로써 어둡고 섬뜩해 혹독한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그의 인간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 친구인 에밀 졸라와도 절교했고, 사실혼 관계였다가 16년만에 법적 아내가 된 오르탕스는 초상화에서조차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도 못했던 세잔은 회화의 본질에 몰두했다. 소설가 로런스는 "40년 동안의 긴 분투 끝에 세잔은 한 알의 사고를 충분히 아는 데 성공했다"라는 말을 했다. 수많은 사과를 그린 세잔은 사과 그 자체만을 직시하고 그에 관련한 실용과 허구성, 고정관념을 모두 걷어냈다. 즉 한 개체의 고유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보이는 그대로 살려낸 것이다. 
 

세잔, 자신만의 감각적 세계를 구축한 그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되었다. 
 

세잔의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는 예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도 통용된다. 인종, 연령, 성별 등 각각의 카테고리로 묶어 동일시해 개개인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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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일리야 레핀 
 

 
​165.
어떤 예술가도 재능만으로 예술을 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이 가진 재능은 시대적인 요구와 당대에 주어진 예술적인 가능성 속에서 다양하고 굴절되면서 표출된다. 
 

 

일리야 레핀은 알레산드로 3세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피의 정치를 고발하기 위해 1581년 차르 이반 뇌제가 자기 아들을 죽인 사건을 예술로써 소환했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차르 이반 뇌제의 공포와 자책과 후회의 눈빛과 속수무책 체념한 듯 죽어가는 아들의 공허한 눈동자는 안타깝다. 그런데 이 작품 이후 톨스토이를 만나 그의 비폭력 무저항주의와 무소유 정신에 영향을 받은 레핀의 작품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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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조르주 쇠라 

 
 
생명력은 없지만 순간, 찰라를 예술로 승화시킨 신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린 조르주 쇠라가 지향하는 바는 조화였다. 저자는 과학과 체계에 의존하는 회화가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물음과 비슷한 이유로 쇠라의 그림에 감흥을 받은 기억이 없다. 조금더 솔직해지자면 그림이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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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임스 휘슬러 
 


색채와 음악이 더해진 탐미주의자 제임스 휘슬러. 잭슨 플록을 연상시키는 (블랙과 골드의 녹턴 : 떨어지는 로켓>은 추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였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재판으로 경제적.정신적 타격을 입은 휘슬러는 초상화에 몰두하지만 초상화 역시 전통적이지는 않았다. 끝없이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탐미주의자,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휘슬러가 (블랙과 골드의 녹턴>이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면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인생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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