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구스타프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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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아르누보운동의 대표 주자, 구스타프 클림트.
주로 여인을 그렸던 그의 그림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두 개념이 다 존재한다.
미술 역사상 가장 완벽한 사랑의 표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키스> 에서조차도 사랑에 의한 절정의 순간에 드리운 죽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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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을만큼 행복한 사랑의 순간이라...... .

왠지 경험해보고 싶지 않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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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오귀스트 로댕 
 

예술(art)이라는 말보다 작(work)라는 말을 더 좋아했을만큼, 여러 의미에서 관념이 아닌 육체 예술가였던 로댕은 얼정적인 창조가였고 일중독자였다. 욕망도 쾌락도 삶도 모두 일에 쏟아 부은 예술가였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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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수잔 발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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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수잔 발라동이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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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문화예술 작품에서 '성장'의 주체가 남성이었고 여성은 사랑의 대상이었다면, 수잔 발라동은 여성을 수동적 인형같은 존재에서 성장의 주체로 끌어온다. 그리고 '죄'의 원인을 여자에게 두었던 기존의 관념에서 그림을 통해 죄의 동등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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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같은 수잔 발라동. 지난한 삶에 노년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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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생각해 보면 마녀와 마법사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남자는 마법사인데, 여자 마법사는 굳이 마녀인가. 그리고 남성의 노화는 연륜이 쌓여 존경의 대사잉 되지만, 여성의 노화는 미의 퇴화로 여겨질 뿐이다. 최근들어 이러한 시선은 점차 달라지고 있지만 글쎄 여전히 어려보인다는 말이 칭찬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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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228.
어디에나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려질 가치가 있는 삶이 있었다. 

 

귀족에서 보헤미안이 된 화가 툴루즈로트레크. 물랭루즈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다시피한 그의 모델은 당대의 뒷골목을 주르잡던 예인들이었다. 다만 화려한 모습이 아닌 쇼가 끝나고 고단한 삶으로 돌아온 순간들을 포착했다. 저자는 루즈로트레크의 느슨한 붓질은 삶의 공허함, 외로움 등 정처 없는 보헤미안의 멜랑콜리를 전한다고 썼다. 
 

어떤 삶이 멜랑콜리가 없을까. 그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삶이 가치가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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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빈센트 반 고흐 
 

"파랑과 노랑의 심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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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예술과 삶의 이상을 찾아 떠났다면 고흐는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에서 감동을 찾아냈다. 저자와 말과 몇 년 전 읽은 고흐 평전에 따르면 고흐는 고독을 즐긴 광기어린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염치와 책임감을 알았고, 누구보다 자신의 그림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또한 친구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했던 독서광이었다. 평범함의 위대함을 깨닫고 화폭에 담았던 고흐였다. 
 

색채 예술을 꿈꿨던 고흐의 작품에서 사용되는 색은 파랑과 노랑이이다. 가난해서 물감을 맘껏 쓰지 못했던 그의 애타는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작품도 팔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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