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재회한 마슬로바와 네흘류도프. 네흘류도프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그의 모습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고, 자기 같은 존재들을 필요한 만큼 이용해 먹는 부류의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마슬로바는 용서를 구하겠다고 찾아온 남자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네흘류도프 역시 사랑스럽던 그 옛날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는 마슬로바를 가까이에서 보고 마음이 흔들렸으나 그녀에게 자신을 향한 적개심과 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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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마슬로바를 마주한 이후 네흘류도프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그는 자신의 지난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 러시아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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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문장을 기입하지 않아 마슬로바가 유죄를 선고받은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네흘류도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변호사 파나린을 찾아가 상담한 후 꼬르차긴의 집으로 향한다. 호화로운 분위기와 상류층 집안의 서로를 향한 아첨은 언제나 그의 기분을 유쾌하게 해주었지만, 그날따라 그가 유쾌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거슬릴 뿐만 아니라 초라하고 어색하며,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식탁에 둘러앉아 떠드는 그들이 말투와 태도들이 천박하고 불쾌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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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슬로바와 한 감방에 갇혀있는 여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왜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간다. 물론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거나 귀족들은 이와같은 벼랑에 내몰리지 않거니와 유사한 죄를 저지르더라도 '벌'은 늘 가난한 평민이 몫이다. 딸을 겁탈한 재혼한 남편을 살해한 여자, 강제로 결혼한 남편을 독살하려고 했으나 재판을 기다리는 8개월 동안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가족의 호소에도 선처의 여지 없이 시베리아행을 선고받은 여자, 자식들을 굶겨죽일 수 없어 술을 밀매하다가 체포되었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일곱 살 딸까지 수감된 여자 등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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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앙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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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부터 가장이 되어 22년간 말단 세관원으로서 일요일에만 아마추어 화가로 살았던 루소는 마흔아홉 살인 1893년에 공직에서 은퇴하며 전업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정식으로 회화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소박파 미술로 분류된다고 한다. 즉 미술계의 아웃사이더였던 것. 덕분에 그간의 강요와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 루소는 르네상수 이후 정립된 회화에 대한 기본 관념을 자연스럽게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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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루소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글 그림이다. 그가 그린 정글숲은 풍경화가 아닌 상상화다. 앙리 루소의 그림은 <꿈>을 처음 접했을 때 그가 정글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왜 정글을 상상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있는 시대와 아웃사이더였음에도 스스럼없이 부자가 되고 싶었다는 루소의 발언, 그리고 저자의 설명이 보태져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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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박해서 위험하고'라는 표현이 납득이 된다. 개인적으로 '무의식의 평범성이 갖는 위험'이라고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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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뜨리 이바노비치는 배심원으로 참석한 한 법정에서 마슬로바와 재회한다. 마슬로바는 마브리따냐 여관의 숙박객을 독극물로 살해하고 돈을 빼돌린 범죄의 용의자로 법정에 섰다. 한때 비열했던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자 고통스러운 내면의 갈등이 시작된 네흘류도프는 10년 전 순결하고 매혹적인 소녀였던 마슬로바의 현재 모습에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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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반강제적으로 마슬로바와 성관계를 맺고 바로 다음날, 귀대하면서 그나마 일말의 죄의식은 있었던 네흘류도프. 그러나 그 죄의식은 순결한 처녀를 겁탈하다시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쏟아질 비난에 대한 걱정을 앞서지 못했다. 심지어 마슬로바와의 사랑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것과 돈으로써 죄의식을 상쇄시켰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법정에서 마슬로바를 알아 본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하 하기 위해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자신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p104)는 네흘류도프. 그게 말이니, 당나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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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죄의식을 버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주 손쉬웠다. 마슬로바를 포함한 모든 일을 기억에서 지우는 것. 그리고 법정에서 마슬로바를 다시 만난 네흘류도프는 오직 오래 전 그 사건으로 자신이 창피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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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파울라 모더존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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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3K(교회, 아이, 요리), '여성다움'을 강요하던 시대에 정체성에 갈등하던 파울라. 거기다 화가인 남편까지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마침내 "나는 나입니다"라는 선언으로 사회적 통념과 관슴에 저항한 파울라는 관습적인 결혼생활을 파기하며 개성과 자아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림이 팔리지 않아 돈이 없는 화가에게 자유도 없었다. 서른두 살에 아이를 낳고 산후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파울라. 저자는 파울라가 "진정한 여자가 되기 위해"아이를 가졌다고 썼는데, 파울라가 이런 생각을 하계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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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스물여섯 살에 그린 자화성 / (아래) 서른한 살에 그린 자화상 <동백나무 가지를 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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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에 그린 자화상과 서른한 살에 그린 자화상의 모습에서 보이는 차이는 놀랍다. 지병도 없는 파울라가 불과 5년의 간격을 두고 자신을 이렇게 다르게 그리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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