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루트 클뤼거 지음, 최성만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는 193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이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방되기

전 나치의 지배하에 있었던 때부터 게토와 수용소를 거쳐

죽음의 행군 도중 탈출한 후 미국에 정착한 이후의 삶까지를

회고한 자전 문학이다.

홀로코스트 추모 문화에 거부감을 가졌다는 저자는 1988

자전거와 충돌해 머리를 그게 다친 사고가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쓴다. 저자는 글에서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 홀로코스트를 대면할 때 제3자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 그리고 지나온 역사의 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상황을 겪지 않은 이들과 사이에

다리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자신이 가스실에서 살해당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리가 존재한다고 인정한 것처럼.

 

p180

여러분은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적어도 자극을 받기를 바란다. 성벽 안에 진을 치고 앉아

있지 말고. 이것이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러분이

자와 컴퍼스로 미리 깔끔하게 그어놓은 어떤 틀 안에서만

여러분과 상관이 있다고. 이미 시체더미 사진들을 견뎌

냈고 공동의 책임과 동정심에 관한 여러분의 책무를 다했

노라고 덮어놓고 말하지 말라. 난 여러분이 논쟁적인 태도

로 대결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나치의 살해를 넘은 넓은 범위를 얘기한다.

이데올로기와 폭력, 나치의 억압은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와 본질을 같이한다.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기

까지의 본질에 대해 논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p106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비호를 받는다는 오래된 관념

또는 편견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내면화해 가장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다.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건 노

약자들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라는 것 말이다.

나치가 여자들까지 심하게 다루지 않으리라는 말은 인종

주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었다. 말도 안되는 가부장적

단견으로 기사도 정신 따위를 믿었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미국에 정착하기까지

곁에서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고 힘이 되었던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사고는 현재에도

많은 부분 잔존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성별, 민족 간의 화해와 조화를 이뤄내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280

개개의 성원들이 입신할 기회를 미처 얻기도 전에, 마치

특정 외국인들은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 특정 인종을 폄하

하는 것이 거슬렸다. (...) 여기서 '자유로운 나라'란 어떤

이상주의적인 것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누가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처지에 있어도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는 곳

이라는 뜻이다 

 

1부에서는 수용소로 끌려가기 열 살 전 빈에서의 시절

을 회고한다. 여기에서 내가 인상적이였던 건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다.

 

p43

아버지는 드랑시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수용소로 압송되

었고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간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이 생각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는 압송 중에

자살할 수 있었을테니 분명히 자살했을 거라고, 의사니까

알약을 갖고 다녔을 거라고 믿었다. 이 이야기가 내 희망

사항 더미에서 자랐다는 것을 깨닫는데 반평생이 걸렸다.


저자는 왜 아버지의 죽음이 차라리 자살이기를 바랬을까?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 것 같아서 였을까,

아니면 자살하지 않았다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수용소

가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라는, 무의식 중에라도 자기

세뇌를 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유년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어머니. 빈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두 모녀에게는 서로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딸에게 모진 말을 일삼았고, 딸은 어머니를 대결의 상대로

여겼다. 저자는 이러한 모녀간 신경증이 전혀 치유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도 다정한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니...

 

p72

나는 다정다감한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 아마도 내 어머니의

추근거리는 다정함, 예상치 못한 부당한 벌이며 꾸중과 번갈

아가며 내린 어머니의 다정함이 역겨웠기 때문일 것이다.

 

p91

아우슈비츠는 무슨 교육기관도 아니고 인간성과 관용을

기르는 곳은 더더구나 아니에요. 강제수용소에서는 어떤

좋은 곳도 나오지 않았는데 당신은 하필이면 윤리적인

정화를 기대했단 말인가요? 강제수용소는 하나같이 비루

하기 짝이 없고 쓸모없는 기구들이었어요. 강제수용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어

야해요.

p92

살아남은 건 실로 우연이었다.

 

p100

바로 순례온 유대인, 특히 미국 유대인 덕분에 폴란드에

유입되는 외화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의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생각.

 

2부에서는 게토와 수용소의 생활, 그리고 죽음의 행군

당시 탈출한 이후에 대해 쓰여 있다. 현재 수용소 문학에

있어서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있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

에서 쓰여 지고, 여성 수용소에 대해서 서술한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서 십대 소녀는 유년시절 가부장적 제도에서 여자

이기 때문에 거부당했던 경험들이 수용소 생활에서는

인간으로서 거부당하는 경험까지 더해진다.

이는 어린 소녀가 자신이 거부당하는 이유가 자신한테

있으며 ,세상에서 존재하지 말아야할 대상으로 생각 하

게끔 한다. 그런 와중에도 소녀가 발견한 아이러니.

군인과 수용자들은 국가가 정해놓은 옷을 입는다.

군인은 자랑삼아 문신을 하고 수용자들은 수인번호를

새긴다.

 

p146

명예도 치욕과 같은 수법을 동원하니 말이다.

 

p106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비호를 받는다는 오래된 관념

또는 편견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내면화해 가장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다.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건 노

약자들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라는 것 말이다.

나치가 여자들까지 심하게 다루지 않으리라는 말은 인종

주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었다. 말도 안되는 가부장적

단견으로 기사도 정신 따위를 믿었단 말인가?

 

p115

나중에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제일 속상했던 것도

수용소마다 가장 잔인한 이기심이 작동했으리라는 추측,

그래서 수용소에 있다 나온 자는 도덕적으로 무너진

자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내 눈에는 전부 오해고 편견이었다.

 

p120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남편과 아들 두 사람이 대량학살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해버리는 한정된 양의 액체와 같았다.

 

p133

희망은 기실 불안의 이면이니 삶을 지탱해 주는 건 불안

일지도 모른다.

 

p162

아무런 운율도 사유도 없이 체험만 하는 자는 내 어머니의

품에 주저앉은 그 나이든 여자처럼 이성을 잃을 위험에

놓이고 만다. (...) 공감하고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는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사건 자체만으로

는 충분하지 않다.

 

p183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아우슈비츠는 낯선 행성이 아니라

저기 우리 앞에 보이는 쭉 계속되었던 삶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 내가 겪은 것은 저기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혀 닿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뭔가 헤아릴

수 없는 것, 무한성이나 영원성과 유사한 것이라는 이

동시성의 비밀을 발견했다.

 

p240

정당하지는 않지만 동부전선에서의 독일군의 폭력성을

감안하면 어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강간은 남성의

소유권에 대한 침탈로 여겨진다. (...) 전쟁은 남자들에게

속한다. 심지어 전쟁의 희생자들을 두고 이야기할 때도

전쟁은 남자들의 것이다.

 

p251

여러분은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은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여러분은 나를 두고 이야기

하는 듯하지만 실은 여러분 자신의 감정만 이야기한다고.

    

p298

사람들이 강제수용소 수인들이 받은 번호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이 맥락에 속한다. 능욕의 상징인 지워버리라고들

한다. 나는 생존증력의 상징이라고 응수한다. (...) 디타도

그 번호로 다른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려 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번호를 보면 왜 공격적으로 변하

는지를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비교적 많이 다루어진 부분은 저자와 어머니의

관계였다. 어머니의 신경증과 강박증, 남편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 거기에 자신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존재인 딸에

대한 소유욕까지.

처음 수용소에 도착해 딸에게 전기담장 근처로 가자며

동반 자살을 하려했던 어머니. 이후 저자의 어머니는

딸을 위해 희생하고 용기를 끌어 모은다. 하지만 저자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본인의 소유물로 생각

하기 때문이니까. 이는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저자가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머니에게

벗어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겠구나라고 생각될

만큼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자는 어머니를 때론 이해하고, 다시 부딪힘을 반복

하면서 대립의 관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소개를 읽었을 때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의 에리카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제어하며

심지어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

물론 클뤼거의 어머니가 에리카의 어머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 것도

흡사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낱낱이 파해친 보고서나

기록이 아니다. 종교, 인종과 성차별, 비뚤어진 이념,

거기에 과한 민족주의 사상이 개인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한다. 위에서 말했듯 홀로코스트를

문화관광 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고, 지난 역사에

인정과 반성, 그 벽 너머의 본질적 문제를 짚어

나가기를 촉구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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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6월1일.
연방 범죄수사국 요원인 로어벡이 아우토반에서 역주행으로 자살한다.
사망 직전, 로어벡의 어린 아들은 집에서 살해 당한다.
사건을 맡게 된 수사국 요원 자비네.
사건을 추적하면서 로어벡의 동료였던 하게나를 찾아가지만 그 시각
하게나도 자살하고 그녀의 언니 역시 살해 당한 채 발견된다.
그러던 중 로어벡의 핸드폰에서 찾아낸 문자 한 통.
문자의 수신인은 현재 수사국에서 정직 처분 중인 
마르틴 S. 슈나이더. 
 
'당신 말이 맞았소.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6월1일은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거요. 잘 지내시오!' 
 
사건은 20년 전 마약  전담 비밀 수사팀인 VED 6그룹을 가리키고 있다.
당시 6그룹 멤버는 로어벡, 하게나, 로만, 팀볼트, 헤스, 아이스너. 
 
 
5월26일.
자신의 마약 제조실과 창고, 자택을 방화하고, 아내와 쌍둥이 자녀 둘을 집 안에
가둬놓고 방화살해한 혐의로 20년간 복역을 끝낸 하디가 출소한다.
방화 뿐만 아니라 가족 살해 혐의까지 모두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하디는 자신과 가족의 복수를 다짐한다.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전 6그룹 멤버들의 가족이 살해 당하고 수사의 촛점은
하디에게로 향한다.
동료와 하디를 좇는 자비네. 그녀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슈나이더.
그는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자비네에게는 수사 자체에서 손을 떼라고 조언한다. 
 
사건의 핵심으로 근접한 자비네에게 연방 범죄수사국은 수사에서 제외되었음을 통보한다.
하지만 자비네는 수사를 멈출 수 없음을 직감하고 다시 슈나이더를 찾아간다. 
 
 
근래에 읽었던 범죄소설 중에 가장 재미었다.
(해리 홀레 빼고.)
그동안 독일책이라면 딱딱한(?) 사회철학만 읽어서 뇌가 각이 질 지경이였는데,
조금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ㅎㅎ
독일 범죄소설이 이렇게 재밌다는 사실을 넬레 노이하우스 이후로 잊고 있었다.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도 대여섯권 읽고 난 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지네.. 
 
까칠 츤데레인 슈나이더의 캐릭터도 꽤 매력적.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반전과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끝까지 흥미도와
흡입력은 떨어지지 않는다. 500쪽이 넘는 두께를 하룻밤에 읽어내려 갈 만큼 재미지다.
작가의 소설을 몇 편 더 읽어봐야겠다. 
 
사족.
왜 제목이 하필 '론도'였을까? 라는 궁금증이 컸다.
읽어보니 알겠더라는...
처음 하디 가족의 죽음과 본인의 복역.
그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어진 6그룹 요원들 가족의 죽음과 댓가.
하디가 의도한 바는 아니였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인과응보가 된 셈이다. 

 
235.
페이스북은 자신이 바보 같다는 걸 알리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니까. 마치 냉장고 같아. 10분마다 들어가
보거든. 뭐 새로운 게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야.
(노라) 
 
340.
걱정하지 마. 우린 지옥에 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옥 한복판이니까!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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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클로저 (COME CLOSER)>

  - 일자 샌드

 

 

나의 감정을 진솔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 만든 자기보호를  벗겨냄으로써

지금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됨과 동시에 주변인들과 관계 또한 다시 돌어볼

수 있는 심리학 책이다.
자기보호란 무엇이며 연인, 부부, 부모와 관계에서 원활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있어서 어떠한 자기방어 기제가 작용한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스스로 인식조차

못했던 쌓여있는 내면의 감정과도 직면하도록 한다. 그래서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 사람들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떠한 행동을

보일까?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을 받기 뒤해서, 혹은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기 불편해

외면하기 위해서 등이 있다.
p38
대인 간 자기보호는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

핵심은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의식할 수 있느냐이다. 내가 자기보호를

쓸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론 감정적으로 받는 압력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차라리 내적

자아로부터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할만큼 자기 보호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자기보호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을 너무 많이, 또는 너무

적게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의

행동에 대한 인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p54
자기보호 행동이 자동으로 튀어나오고 무의식적인 수준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길을 잃는다.

우리는 상실의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애 인색하다.
p66
슬퍼할 줄 알고 슬퍼한 시간을 충분히 갖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감정 인정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이들은 소위 교환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적정선까지만 관계를 맺는다. 서로의 기쁨을 축하해 주고, 상한 기분을 풀어주고,

서로를 즐겁게 해주기는 하지만 이는 주고 받는 '단순한' 관계,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이러한 교환 관계가 자기보호로 작동하면, 따뚯하고 충만한 경험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급급한 일차원적인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이성으로부터 자신이 구원자가 되거나

혹은 앉아서 이상형을 기다리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군가의 구원자도 될 수 없고,

내가 쫒는 이상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취향과 삶의 방향은 언제자 바뀔 수

있다.
p87
우리는 언제나 삶의 흐름에 맞춰 현재의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어쩌면 변호하지

않을 떄 관계에 더욱 문제가 생긴다.

종종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 어긋날 때가 있다. 이제는 부모님도 매일매일이

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시절, 우리는 그들도 부모 노롯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생각치 못했다. 저자는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사람이니까....  자신의 어린 시절이 완벽하다고 기억한다면 그 또한 자기보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아마도 개개인이 내면 깊은 곳에 갖고 있는 어린아이를

꺼내 보내라는 뜻일게다.
p116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 내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로 혼자가 된다.

나조차 내 편이 아니라면 너무나 외로워진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 힘들다.
호감이나 분노 등도 밖으로 표출하기에 부끄러워질 때가 있는데, 하물며 욕망이야....
p143
많은 욕망들이 의식의 차원으로 충분히 떠오르지 못하고 억압된다. 부끄러운 욕망을
온전하게 느낄 때까지
용납하면 자신이 자제력을 잃고 이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길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것과 관계된 판타지를

자신에게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다. 나의 욕망과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수록 그것을 잘 다룰 수 있고, 잘못되거나 당황스러운 행동을 할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든다.
불안이나 두려움이 커지면 우리는 퇴행을 한다. 어린 아이가 동생을 보게 되면

겪는 것처럼.
나 역시 한 때 많이 울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울음은 견디기 벅찬 현재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차라리 미성년 시절로 돌아가 누군가가의 나의 힘겨움을 대신해

주기를 바란건 아니였을까싶다.
저자는 퇴행이 몇 달, 평생가기도 한단다.

퇴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p156
인생은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과 이제는 생존하는 것이 크게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봐야한다.
이 장에서 내가 새로웠던 것은 '일반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은 곧장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고 참는 편이 최선이다.' 였다.
분노를 터뜨려 상대에게 짐을 지우기 전에 우선 자기 안에서 마음을 정도하는 과정을

거치는게 좋다는 것이다. 화를 참을 에너지를 모으며 기다리는 것이 좋단다.
(문득, 화가 차 오르고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을 때 크게 호흠을 하라는 어느 책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났다.)
분노가 감정의 최종 목포가 아닌만큼 분노 밑마닥에 자리한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친밀감과 유대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책을 덮으면서 그간 나를 거쳐갔던 수많은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퇴행, 분노, 균형, 조화 등 사실 무엇도 수월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비교적 잘 넘긴

것 같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완벽하지 못한 내 자신을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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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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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어했던 이유도 서장의 제목과 같다. 김정희에 대해서는 추사체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가 명문가의 귀하게 자라고 영특한 신동이였다는 것, 유배을 갔다는 것,

세한도를 그렸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추사체에 대해서도 추사체가 어떤 형태의

글씨체인지, 추사체가 왜 그토록 유명한지도 잘 모르는 바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이제사

김정희에 대해서 읽는다.
p13
추사는 본디 시와 문장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명성을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는 서체는 말할 것 없이 회화, 종교, 답사, 학문에까지 아우르는 천재적 학자였다.

<제1장  월성위 집안의 봉사손 : 출생~24세> 
추사 김정희는 1786년(정조10)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예사롭지 않은 출생의 설화를 시작으로 백부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조부, 양부, 양모, 친모,

어머니를 잃고 생부와 다시 함께 살게 된다, 북학의로 유명한 박제가를 스승으로 두면서 그는

북학에 눈을 뜬다. 생원시에 합격하면서 그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게 된다.
추사의 어린시절은 엘리트로서 명문가 교육을 받고 성장하지만, 가까운 가족을 이른 나이에

잃음으로써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장  감격의 연경 60일>
북학파 학자들의 학문 개척기를 들여다 보자.
한중 문화 교류의 시작은 홍대용에서부터 시작한다. 1765년 첫 연행을 떠난 담헌 홍대용.
그곳에서 그는 음악, 천문 등에 대해서 지식을 얻고 엄성, 반정균, 억비 등을 만나 학문을 나눈다.
'천애지기'를 나눈 엄성의 죽음에 홍대용이 추도사를 보내면서 한중 교류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다. 홍대용의 연행 이후 13년이 지나 박제가와 이덕무가, 2년 뒤에 박지원이, 그로부터 10년

뒤에 유득공과 박제가가 연행길에 올랐다. 이때 박제가는 연경에서 자신의 제자인 김정희에

대해서 자랑 했다고 한다. 네 번이나 연경에 다녀온 스승 박제가의 영향을 받은 김정희는 24세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게 된다. 연경에서 조강, 완원, 옹방강 등과 교류하며 견문과 학식을

넓혔고, 주학년처럼 빼어난 예인들과도 사귀었다. 청조 학술 연구에 평생을 바친 후지쓰카는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는 추사 김정희이다.'라고 단언했다.

<제 3장  학예의 연찬 : 25~34세>
추사의 학예 연찬은 옹방강과의 깊은 사우 관계로 이어진다,
옹방강은 추사를 지극히 사랑했으며 그의 아들 완상생 역시 추사와 교류를 이어갔다. 또한

추사는 금석학의 제일인자로 손꼽히는 섭지선과도 교유도 긴밀했다.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유는

추사 뿐만 아니라 추사 주위의 문인들 사이에도 펴져나갔다. 그로인해 무수한 책과 서화 작품,

금석 탁본등이 두 나라를 오갔다.
내가 이 장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추사가 답사와 여행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추사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새로이 발견한 장본인이고, 무장사비, 진흥왕릉 고증까지

고고학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단양과 금강산 유람도 다녀왔다.
P101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이다, 병자년 7월 김정희.김경인이 오다.
정축년 6월8일 김정희.조인영이 함께 와서 남아 있는 글자 68개를 면밀히 살펴 보았다.
추사는 불과 서른의 나이에 문장과 글씨로 이름을 얻었다.
31세 때 남한산성의 '이위정기', 32세에 '송석원' 암각 글씨. 33세에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사의 글씨를 얻기를 원했다. 추사의 장년의 글씨는 매우 매끄럽고

윤기나는 글씨라고 한다. 훗날 추사체는 방정한 방피을 기본으로 금석기를 보이며 획의 굵기에

변화가 많지만, 장년의 글씨들은 오히려 유려한 원필이 많고 리듬이 다채롭단다. 본격적인

추사의 장년 서예 작품으로는 옹방강의 석묵서루에서 본 것을 본받아 썼다는 '상견엄연

(想見儼然)'이다.

<제 4장 출세와 가화 : 34~45세>
추사가 41세 되던 1826년 즈음이 경주 김씨 월성위 집안의 권세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고 한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에게 꾸준히 배움을 구했으며 평양의 조광진, 한양의 조성기, 홍현주 등

지식과 글을 교유하며 지냈다. 평양에서는 묘향산에 들러 용연폭포 위쪽에 위치한 상원암에

들러 현판 글씨를 써주었다, 이 현판은 현재도 상원암에 걸려있다. 홍현주의 '운외몽중첩'

앞장에 쓰인 표제글씨는, 구성은 예서체를  따랐지만 필획의 운용에는 해서법이 들어 있어

정중한 가운데 멋스러움이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멋스러우면서도 단정함이 깃들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도 쏙 들어온 글씨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현대에 추사체라고 일컫는

글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1830년 김우명의 상소로 시작된 모함은 결국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유배된다. 차후 추사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두 번 상소를 올렸지만 소용 없었다. 김노경 65세, 추사 45세였다.

<제 5장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 45~55세>
추사는 가문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연경 학계와 계속 교류했다. 추사는 50대에 학문과 예술

모두에서 대가의 위치에 있었다. 1833년에 아버지 김노경이 해배 됐지만 1년 후에 다산 정약용이,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 김노경이 서거했다. 그로인해 추사는 가정에서나 사회

에서나 어른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추사의 중년 글씨에는 동시대 청나라 서예 사조가 그대로 나타난다. 이는 스승인 옹방강아 완원,

등석여, 이병수, 건륭 4대가인 옹.유.양.왕의 글씨를 열심히 본받아 썼기 때문이다. 추사가 54세

때 쓴 <옥산서원> 현판 글씨에는 그의 글씨가 무르익어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서예가의 글씨가

변해가는 과정은 무엇보다 편지 글씨와 해서 작품에 가장 잘 나타난다고 하는데, 추사의 50대

글씨에 이르면 우리가 추사체의 멋이라고 생각하는 획의 굳셈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능숙하게

구사됨을 알 수 있단다. 책에 실린 자료들을 열심히들여다 본 노력으로 글씨체의 변화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추사는 난초 그림에 애착을 보였는데, 명작으로 손꼽힌다는 <산심일장란>은

아는 게 많지 않은 내가 봐도 글씨와 그림의 멋스러움을 느끼겠다.
1840년 천적과 다름 없는 김우명이 대사간이 되면서 김정희는 10년 전 사건으로 다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벗, 조인영의 도움으로 죽음만은 피하고 제주도로 유배된다.
p216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떄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

(...) 인정에 어긋나지 않나니 묵소(默笑)의 뜻이 크도다. 말하지 않고 깨우쳐줄 수 있다면 침묵에

무슨 손상이 있겠으며 중용을 얻어 말한다면 웃는다 하여 무엇이 걱정일까. 그것에 힘쓸지어다.

/ 묵소거사 자찬

<제 6장  세한도를 그리며 : 55~59세>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 된 추사. 그가 인덕이 남달랐다는 생각이 드는 건 바로 이 제주 유배

이후부터이다. 물론 연경까지 두루 뻗친 그의 인맥은 감탄스럽지만, 사람이란 고난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맥락에서 추사는  학문과 예술에서만

경지를 이룬 것이 아니라 제자를 아낀 것에서부터 그간 주변 사람들을 살뜰하게 보살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잘 나가던 명문가에 태어나 귀한 공자로 키워져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

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식과 환경에 적응하는데 꽤 고생했던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지인들이 돌아

가면 찾아와 머물고 서신으로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추사는 외롭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배 기간이 길었던 만큼 양아들 입양, 아내의 죽음 등 집안의 경조도 많았건만 그것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음을 많이 애석하고 서글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는 유배기간 동안

독서,그림, 글씨 등 다방면에서 원숙함과 완성도를 쌓아나갔다고 한다. 그 유명한 세한도 역시

유배지 제주에서.

<제 7장  수선화를 노래하다 : 59~64세>
이 장에서는 추사가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 글씨(현판), 답사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한라산 답사, 추운백수도, 낙선재 현판 등 꾸준하게 쓰고, 그리고, 읽는데 게으름이

없었고, 사람을  사귀어 제자를 삼음에 신분을 크게 따지건 같지는 않다. 스님 초의를 비롯해

필장(붓 만드는 사람( 박혜백), 전각가 오규일이 그들이다. 무엇보다 추사 글씨의 변화에서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동주 이용희 선생이 하신 말씀이 가장 와 닿는다.
P349
많이 썼을 거예요. 아마 심심해서 쓰고, 화가 나서 쓰고, 쓰고 싶어 쓰고, 마음 달래려고 쓰고,

(...) 그 실력과 그 학식에 그렇게 써댔으니 일가를 이루지 않고 어떻게 되겠어요. (...)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었다는 계기가 추사체의 비밀이겠죠, (...) 즉 자기 멋대로, 맘대로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특이하고 괴이한 개성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제 8장  강상의 칠십이구처당에서 : 64~66세>
여기서 부터는 추사의 만년기다. 제주 귀양에서 돌아온 추사는 '강상'이라는 곳에서 잡리를

잡았다.
P364
추사체가 제주도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정작 추사체다운 본격적인 작품이 구사

되는 것은 해배 이후 '강상시절'부터라고 해야 더 정확할 정도이다. 추사 글씨 중 최고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잔서와석루>, 거의 신의 경지로 평가받는 <불이선란>, 제자들이 벌인 서화 경진

대회의 출품작 비평서인 <예림갑을록>등이 모두 이 시절 소산이다, 사실상 이 시절에 추사의

예술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청년기를 보냈던 추사는 강상에서 무척 곤궁했다. 그러나 추사에게는

벗이 있고, 시와 그림, 글씨가 있어 마음이 궁핍하지는 않았다.  추사는 지인들과 쉼없이 서신을

주고 받고, 글을 나누어 주며, 현판을 쓰면서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P412
추사의 글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를 참으로 꺠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
글자의 획이 혹은 살지고 혹은 가늘며 혹은 메마르고 혹은 기름지면서 험악하고괴이하여 얼핏

보면 옆으로 삐쳐 나가고 종횡으로 비비고 바른 것 같지만, 거기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 (...)

마음을 격동시키고 눈을 놀라게 하여 이치를 따져본다는게 불가하다. (유최진)

서법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은 글씨,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괴이하나 본질을 보면 내면의

울림이 있는 글씨,그것이 추사체이다. (...) 추사체의 본직은 형태의 괴가 아니라 필획과 글씨

구성의 힘에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후에 흥선대원군이 된 석파 이하응과 추사의 관계. 이하응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신을 바닥까지 낮추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추사에게 난화를 배우고

논했다는 사실, 단순히 알고 지낸 사이일 만 아니라 이하응과 신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뜻밖이

었다. 이것도 잠시, 추사는 다시 북청으로 유배된다.
이번에는 그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 나중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지기인 권돈인까지.

<제 9장  북청의 찬 하늘 아래 : 66~67세>
따뜻한 제주와는 달리 추운 북청. 이곳에서도 추사는 벗을 사귀며 제자를 찾아 가르쳤다.
(제주에서는 소치요, 북청에서는 요선이다.)
변함없이 시를 쓰고, 답사를 하고, 책을 읽고, 서신을 주고 받았다. 이쯤되면 공부의 달인이다.

그는 제주에서나 북청에서나 마음만은 외롭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거듭든다.

<제 10장  과지초당과 봉은사를 오가며 : 67~71세>
북청에서 해배 된 추사가 집으로 삼은 것은 과천의 과지초당이다. 현재 과천 경마장 뒤쪽이란다.
P484. 485
추사는 장기. 바둑. 술 같은 취미나 잡기의 맛은 알았지만 거기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추사에게 진짜 취미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독서와 글씨 쓰기였던 것이다.
칠십이구초당 시절 쓴 글씨 중에 '일독 이호색 삼음주 (一讀二好色三飮酒)'라는 재미있는 현판이

있다.
첫째는 독서(공부), 둘째는 여자, 셋째는 술이라는 뜻이다. (...)
추사의 만년을 지켜준 것은 공부하는 행복,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 예술에 전념하는 열정이

었다, 그중 공부하는 행복이 제일 컸다고 한다.
눈을 감기 3일 전, 병든 누구의 몸을 세워 썼다는 봉은사 현판, [판전 板殿]
저자는 추사가 생의 마지막 힘을 이 두 자를 쓰는데 바쳤다고 말한다. 그 말이 나에게는 무척

감동으로 들어왔다.
추사가 71세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제자들과 지인들의 영전 앞에서 통곡

했고, 애도의 제문들이 답지했다고 한다. 얼마나 애석했을까...
진실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예술과 학문은 높고 깊기만 하다. (p571)
산숭해심(山嵩海深)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내 머릿속에서의 추사 김정희는 '추사체'가 아니라 '세한도'였다. 우연찮게 세한도 모사품을

보고 그림이 이렇게 외로워 보일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에 학교에서 배웠던 '추사체'라는 단어

대신에 '세한도'가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 문인이라는 것과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던 김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전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궁금했다. 물론 나의 궁금증의 그의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였지만.
추사의 연경 탐방기, 청의 문인들과 끊임없는 교류, 당대 최고의 명문 사대부 집안의 아들임에도

사귐과 제자를 삼음에 허물이 없었던 열린 정신. 다른 책을 들고 있는 줄 알았다. 이거 연암

박지원 평전이야? 하면서....
또한 다산 정약용과 석파 이하응과의 교류, 당시에는 천인 신분이었던 스님들과의 대화와 서신, 남다른 제자 사랑까지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어디까지인건지... 읽으면서 추사 김정희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또한가지 더 입을 벌렸던 것은 역사 답사. 지금도 역사(문화) 답사는 쉽지

않다. 그나마 평지에 있는 절터나 유적지들은 다닐만 하지만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답사는 극기

훈련인데, 조선 후기에 답사라니... 그의 문화에 대한 열정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관심있게

보았던 그림 부분. 세한도의 외로움에 이끌렸었더랬는데, 지금봐도 다르지 않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추사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의 감정과잉이였나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머나먼 외지 섬에서 무거운 고립감이 없지 않을 수 있었겠나하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석파 이하응이 추사에게 배움을 청할 정도로 능했던 난화.

그중 <향조암란>은 난화에 대해서 아는게 없는 내가 봐도 공간의 멋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리고 작정하고 그릴 수 없는 작품이라는 <불이선란>은 <향조암란>보다는 진중한 맛이 크다.
예서체, 해서체 등 말로만 들었던 글씨체들을 자료를 통해 보고 구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었다. 독서와 예술, 예인과 장인 그리고 제자를 사랑했던 추사 김정희.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다재다능한 천재였다.

* 추사는 청나라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자신의 아호를 완당이라 했고, 연행 후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추사보다는 완당이라는 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좀더

널리 알려진 대로 계속 추사라고 칭하겠다고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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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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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출판사 홍보에서 보았던, '그가 제시하는 대안' 이라는 문장

 때문이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가 무엇이며, 무엇이 결여 되어있는지 국민은 정치인,

그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내 놓은 이도 없고,

누군가 내놓는다고 해서 수용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20년 이상 언론인이였던 저자가 내놓은 대안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책의 '책머리에'와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떨렸다.

인간미가 넘치고 꿈을 꿀 수 있으며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세상.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를 그는 첫머리에서 부터 던져놨다.

그런 그가 말하는 대안, 너무 궁금하다.

1969년생인 저자는 격동의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MBC에 입사한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는 골수(?)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년이었다.

그 고민을 안고 입사한 방송사.


박정희 시대를 시작으로 전두환, 김영삼의 독재 정권.

좋은 기회를 맞았지만 절반의 성공도 어렸웠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민주주의의 퇴보로 다른 형태의 독재가 시작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자유롭지 못하고 획일적인고 일방적인 방송사 시스템.

'삼성공화국'에 맥없이 꼬리를 내려야 하는 정부와 검찰.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외교.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엘리트 관료 집단.


방송사 기자로서 그가 지켜보고 겪었던 숱한 일들에 대한 보고서다.

언론사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검찰, 재계 등 각 분야의 민낯을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보수, 진보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있는 사실만을 얘기했기에 이 책에 더 믿음이 간다.


그가 말하는 선진국이란, 정직이 통하는 사회.

그가 말하는 언론의 객관성이란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

거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이것이 객관성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라고 말한다.


P206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 프란치스코 교황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대안과 방향은 무엇일까?

경제 성장은 기업의 이윤 창출과 경제성장률이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닌,

월급쟁이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는 경제 성장이다.

OECD 국가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는 경제성장.

검찰과 언론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대리인단 제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나 언론사 사장을 임명하는 상황에서 검찰이나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리고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헌법이나 법률을 원칙만 지킨다면

사회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우리나라 공영방송사에 이런 기사가 있었나 싶었다.

있었겠지만 우리가 알기도 전에 모두 내쫒았겠지만....

읽는 동안 속이 시원했고, 일반 독자 뿐만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이 본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임을 자각 하고, 그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들들이 스무살이 될 때,

이 책을 읽는 모습을 그가 지켜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투병 중인 저자의 건투를 빈다.



 

P176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체제를 말한다. 공동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P359

상식에 입각한 대중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P17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 모두 하늘로 돌아간 뒤에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이 즐거웠다고 자신있게 말 할 것이다.

/ 프롤로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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