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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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이

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고고학입니다.

작가 서문에서

서문을 읽고 나니, 내가 고고학의 정확한 개념정의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용어부터 확인해야 했다.

(왜냐하면 역사학, 인류학 등의 학문과 구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 의심?이 들어서... .)

인류가 생활의 증거로 남긴 일체의 유적.유물의 발굴, 수집과 분석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문화.생활방법 등을 연구, 복원, 해석하는 학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뭔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펼쳤는데 전혀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 안동의 '원이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 자궁을 의미하는 항아리관, 배 모양의 관 등 옛사람들이 죽음과 관을 어떤 의미로 받이들이고 상징했는지를 시작으로 불, 음료, 음악, 색채, 문신, 젓갈 등 다양한 소재로 흥미롭게 접근한다.

지금은 금기로 되어 있는 마약을 고대에는 음료나 약으로 사용했다는 점, 3천년 전에도 침을 놓았다는 사실,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미라의 몸에 새겨진 섬세한 문신, 특히 동양에서 더 발달된 귀이개, 고고학을 이용한 억지로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일본, 토양에 따라 유물의 보존 여부 등등.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장 이후부터는 고고학의 입장과 관점에서 보는 전쟁과 제국주의, 문명, 그리고 미래 등을 무겁지 않게 다룬다.

무엇보다 공감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아쉬웠던 부분은 과거를 밝히기 위해 유적을 파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책에서도 석굴암에 대해 언급하는데,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납득이 된다. 우리의 호기심과 욕구는 끊임없이 보고픈데, 그러면 그럴수록 유적지와 유물은 손상되고, 보존하기 위해서 파헤쳐야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고학 발굴이란, 일종의 유적 파괴 행위이다."

(김원룡)

책에서 저자는 '고고학자에게 진실은 유물에서 시작해서 유물로 끝난다'고 말한다. 최대한 상상력을 억제하고 논리적으로 증명된 근거에 의해서 결과를 내놓아야하는데, 현실은 적잖이 왜곡되는 부분들이 있다. 학자 개인의 명예욕과 국가의 이기는 한걸음 뒤로 물려놓고, 자료에 의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면 분쟁도 한결 덜 할텐데, 안타까운 점들이 많다.

앉아서 손가락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고고학은 고리타분할 수 있다. 그리고 유물의 진실에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빠름빠름'과는 정반대의 학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역사와 유물을 애정하는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미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말은 제쳐놓자. 그저 수 백, 수 천년 전의 사람들이 걸었던 땅을 내가 걷고, 그들이 세워놓은 돌벽을 만질 수 있고, 그들이 남겨놓은 시대를, 2019년을 살고 있는 내가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하고 경이롭지 않은가.

이 돌이 수백년 전 그 돌이라니... 이 나무가 교과서에 나왔던 그 할배들이 지나쳤던 그 나무라니... 산성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찌릿함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건 좀 다른 맥락이지만 지인이 중국을 통해 북한의 국경? 경계선? (용어를 정확히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을 살짝 밟은 경험이 있다는데,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어떤 감정인지 알겠더라는.

여튼 나는 그렇다는...

고고학 에세이를 읽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쉽고 재미있다!

 

[책 속 문장]

 

44.

영원을 향한 인간의 마지막 바람과 체념이 녹아 있는 기념물이 바로 무덤이다.

87.

지혜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라는 것에 사유, 성찰, 그리고 자기의 절제가 더해져야만 지혜는 생겨난다.

210.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개개인 학자의 성격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바로 국가 권력에 앞장서서 다른 사람을 억압할 때에 암묵적인 동조를 하고 따라갔던 그 모습을 비판해야 한다.

235.

이어져야 하는 건 이어져야 할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의미는 퇴색되고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새로워야 한다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접할 때면 괜히 씁쓸해지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전쟁 같이 소비하는 요즘이라 그런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 또한 절실해진다.

277.

많은 사람들은 고고학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를 밝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목적은 역사 기록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30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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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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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독이였어."

 

이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독이다.

아름다움, 글, 술, 성, 눈물, 욕망, 이기심, 증오심, 분노, 공포, 탐욕, 교만, 호색, 나태, 시기, 거짓된 신념, 진부하고 편협한 사상, 심지어 사랑조차도.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독을 품고 살았던 조몽구의 이야기.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던 부패한 음식을 먹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하게 된 '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몽한 시간을 보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창가 쪽에 누워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낮은 소리로 읊조리 듯 기괴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그 남자는 자신, 조몽구의 삶을 들려준다.

독과 친화력이 있는 아버지와 독에 취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정체모를 이마의 두통은 어린시절부터 그에게 낙인처럼 박혀 평생을 괴롭힌다. 초등학생 시절 만난 윤자경. 몽구의 두통이 어머니의 옻 알레르기와 임신 중 정서적 고통에서 기인했다면, 소녀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 농도가 짙어 병에 걸렸다. 사람은 산소 없이 살 수 없지만, 산소도 과잉이면 독이 된다는 사실.

99.

독을 뿜어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여자가 있다면 타인의 독을 흡수해서 살릴 수 있는 여자도 있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독이 없는 청정한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여 몸속에 독성이 전혀 없는 여자, 다른 사람의 독을 제 몸으로 흡수하여 살리는 단 한 번의 용도로 길러진 여자, 타인의 독을 흡수한 뒤 그 여자는 어떻게 될까. 자경은 그 여자에 가깝지 않을까.

자신을 독이라 여기는 수호. 한때는 직장인으로, 사회운동가로, 예술가로 살았지만 결국 자신은 독으로 인해 보통의 삶이 가능하지 않음을 받아들인다. 수호의 몸은 점점 독에게 잠식되어 갔고, 독과 하나다. 그의 마지막 사명은 사랑했던 연인 소화를 되찾고, 조카인 몽구를 정화시키는 것.

467.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자기 스타일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제 스타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스타일이라는 게 네가 선택하거나 바깥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야. 네 태어난 모습 그 자체가 취향이고 스타일이지. 벌독에 특별한 항체가 있어서 아나팔락시스 따위를 엿 먹이는 게 네 스타일이야."

강력한 힘을 갖고 싶었던 광수. 군 시절, 몽구로 인해 동료들이 광기로 날뛰던 그 밤. 광수는 몽구가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에 매료되었다. 아니 압도되었다. 그래서 독을 욕망했고, 수호를 찾아갔다. 독 때문에, 수호 때문에 인생을 잃게 될 거라는 몽구의 조언은 부질없기만 하다.

510.

"(...)독이 약을 사랑하고, 약이 독을 사랑한 거야. 그래, 그렇지, 독과 약 사이에 사랑이 있는 거지. 그걸 이제야 알게 된거야."

늘 평범함이 싫었고 존재의 증명을 하고 싶었지만 충분한 역량이 없어 주위의 것을 무엇이든 이용했던 영로. 그것이 그에게는 독이였고, 그 독을 정화시켜 주었던, 사랑하고 신뢰했던 아내의 죽음으로 스스로를 버린다. 수호는 몽구를 정화시켰고, 자신이 사랑했던 소화 곁에 눕는다. 몽구 또한 정화된 자신의 몸을 자경을 구하기 위해 온몸으로 독을 빨아들이며 기꺼이 내놓는다. 그것이 비록 죽음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작가가 몽구를 빌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결국 독에 대한,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56.

마치 내 이마에 낙인이 찍힌 것 같았어. 그리고 낙인이 찍히는 그 순간 정체 모를 독이 몸속으로 들어와서 나를 괴롭혔어. 그 때문에 두통이 생기고 그 두통을 누르기 위해 끊임없이 이마를 만져야 했는데, 손이 늘 청결한 상태가 아니어서, 나의 손독이, 그리고 내가 만진 모든 것이 독이 되어 이마를 통해 내 속으로 스며들었어. 나는 손과 이마로 온갖 독성을 흡수하고 있었어. 그건 그야말로 독이 독을 부르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이었어. 그런데 낙인은 대체 누가 찍은 것일까. 나 자신이 찍은 건 결코 아니니, 그렇다면 세상이, 어쩌면 우주가 그 낙인을 찍은 것일지도 몰랐어.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낙인을 찍는다는 건 뭔가를 끊임없이 상기 시키기 위해서잖아.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상기시키려 하는 거지? 상기시켜서 뭘 어쩌려는 거지. 어쩌면 나로 하여금 싸우라고 하는게 아닐까. 버티고 저항해서 마침내 이겨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닐까. 그런데 무엇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일까. 나 자신에 대해서? 아니면, 세상의 독에 대해서? 그렇게 내 생각은 내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어.

355-356.

그러던 어느 날 비로소 깨달았지. 그동안 나는 독에 취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그들에게 내 속의 독을 뿜어내는데 급급했고, 그러면서 그 모든 게 두통 때문이라고 정당화했던 거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내 한 몸 건사하면 살아간다면, 나는그저 한 마리의 독충에 불과한 것이었어. 이제라도 나 자신을 찢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했어. 그 순간 에나폰정이 든 약통을 휴지통으로 던져버렸어.

에필로그에서 '나'는 괴물에게 말한다.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나'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말하지만 곧 자신은 치유될 것이라고 한다.

"삶의 의미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 있어. 기쁨은 두려움에 대면할 수 있도록 삶이 제공하는 몇 움큼의 에너지일 뿐이지."

하지만 우리는 슬픔과 두려움이 만연한 인생일지라도 몇 움큼의 기쁨이 삶의 가치와 즐거움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고통이 일상이 되어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슬퍼할 줄 모르는 것이 더 두려운 일 아닐까. 수호와 몽구, 수호와 소화, 그리고 몽구와 자경. 인생은 고통스럽고 외롭다. 하지만 타인과 고통을 교감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독, 견뎌볼 만 하지 않나!

소설을 읽다보면 몇몇의 문학 작품들이 생각난다. 내용은 다르지만 독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로 상통한다. 욕망의 근간이 무엇이든 그 욕망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잠재된 힘이 바로 약(해독)이 아닐까?

사족.

읽던 중에 기록해 놓았던 미겔 데 우나무노의 <안개>의 글이 떠올랐다.

'인간은 병에 걸린 동물이다. 항상 병들어 있다. 단지 잠잘 때만 건강을 누리는 것 같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잠을 자면서까지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과 매락은 차이가 있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안개>의 주인공과 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호가 함께 떠올랐다.

[소설 속 문장]

44.

"어머니에게 독은 악이었고, 어둠이었고, 병이었어. 그런데 독을 이기려면 그 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독이 필요했어."

78.

"(...)비로소 나는 내가 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다른 존재에게 독이라는 것도 알았어. 하지만 또한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의 삶과 세상의 독이 서로 침투하는 음침한 세계를 보았던 거지. 그 두려운 세계에서 내내 살아가야 하는 운명,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서 격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어."

97.

"독은 위험하지만 무척 흥미롭거든. 사람들이 독을 가지고 온갖 일을 벌이는 것도 그래서지. 독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이야."

185.

우리가 독을 가지고 노는 동안, 독도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어. 우리야말로 어떤 아이들보다 더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어.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나 자신이 더 두려워지기 시작한 거야.

196-197.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기 위해 매 순간 자기 내부의 독성으로 외부의 독성과 싸우고 있어. 그러나 대부분 자기 내부의 독성을 의식하지 못하지. 의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말 그대로 깨어 있으라는 게 아닐까. 일상의 마비에서 벗어나 있으라는 게 아닐까. 고대 인도의 한 철학자가 말했지. 우리가 진실로 깨어있는 때는 꿈꿀 때의 그 짧은 순간 뿐이라고. 우리가 깨어 있다고 믿는 시간은 단지 마야, 곧 미망과 환영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무엇이 미망이고 무엇이 실제인가. 독도 따지고 보면 미망이고 환영이 아닐까.

199.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329.

우리는 둘 다 저능아고 백치였던 거야. 우리는 서로에게서 자기 모습을 보았던 거야.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 (조영로)

348-349.

"그 사람은 가장 먼저 네 잠을 빼앗을 거야. 그러고 나서 네 웃음을, 네 자존심을, 네 친구들을 빼앗아 갈 거야. 아무도 너를 존중하지도 알아보지도 못하게 할 거야. 네가 실망과 외로움 속에서 시들고 색이 바래다가 결국 너 자신을 죽이게 할 거야." (몽구)

"나는 네게 실망했어. 너는 너무 평범해져 버렸어. 아니, 나약해져 버렸어." (광수)

467.

대체 독이 뭐야? 그 물질이 무엇이든 간에, 몸 안에 들어와 생체의 리듬과 균형을 무너뜨리면 그게 독이야. (수호)

 

 

 

 

지난해 겨울, 유난히 혹독하게 추웠던 어느 날 새벽에 나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구급차에 실려 북한강 변의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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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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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DANT IN THE KITCHEN》

이렇게 허당기 가득한 까칠함이라니...... . ㅎㅎ

줄리언 반스 작가의 사진을 보면 꾹 다문 입에 옅은 미소를 띈, 적당한 이마의 주름은 영국 신사 느낌이 가득하다.

그동안의 글들도 그렇지만 이 책도 썩 말랑말랑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투덜거림 작렬하는 이런 유쾌한 내용은 내가 읽어본 작가의 책 중에서는 처음인 듯 하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다시 보자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의 불평이 들리는 것 같다.

31.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것과 쓸 만한 요리책을 집필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후자는 소설처럼 창의적인 공감 능력과 정확한 표현력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는 소설로 쓸 만한 내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요리사들에게는 요리책으로 쓸 만한 것이 없다.

레시피에서 계량이나 (과)채소의 크기를 언급할 때 한 '덩이'라든가 포도주 한 '잔', 혹은 '중간' 크기의 양파에 대해 불만스러워(불안하니까)하는 부분에서는 폭풍 공감을 할 수 밖에. 엄마나 할머니께 요리(라고 하기엔 심하게 민망함)를 배운 나로서는 늘 불만이였던 것이 계량이었다. 한 국자, 한 컵 등 기구의 사이즈도 모두 다르건만 두 분의 계량법은 늘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럴 수 밖에. 두 분은 부엌과 부엌 내 모든 용품을 공유하셨으므로.) 그 애매한 계량이 내 요리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둘러댔기에 작가의 불만에 동의!를 외친다.

의외이고 조금 놀라웠던 건 작가가 백 권에 육박하는 요리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무엇 때문에? 심지어 주스기도 없는데 주스책은 왜? 읽다보니 요리책을 선택함에 있어 실패를 많이 한듯 하다. ㅎㅎ 그래서 독자들에게 요리책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74.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디저트가 위의 사항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빵이 그렇다. 익숙한 두세종류를 제외하면 빵이 아니라 떡이 되어버린다.

78.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시간도 문제다.

내 말이...... . 레시피대로 시간을 맞춰도 늘 넘치거나 모자란다. 그래서 감으로 하면 또 폭망. 결국은 내가 왜 이걸하고 있나. 이 시간이면 책 두 권은 읽었을 것을... 이러고 있다.

101-102.

요리책의 책장들에(...) 가지각색의 잡다한 자국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 책에는 명예다.

나의 요리책 책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소박한)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 요리의 흔적이 남아있을 만큼 명예로운 책은 얼마나 되려나? 작가가 소장한 요리책의 1/10 정도만 가지고 있는데도 나는 크게 활용을 못하고 있다.

110.

최고의 책은 저자를 알지도 못하는 독자들까지 저자의 친구라고 믿게 만드는 책이다.

138.

요리한다는 것은 법석 떠는 과정을 거쳐 불확실성을 확정성으로 변형시키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요리를 한다고 부엌에서 한참 분주하게 움직이다 뒤를 돌아보면 뭔가가 한가득 벌려져 있다. 정리를 하고 완성품을 식탁에 올리면! 애걔...... . 이 노고의 과정을 먹는 이들이 알아줘야하는데 말이다. ㅎㅎ

164.

요리는 즐거움이 전부여야 하지 않을까?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할 기대감에서 오는 즐거움, 지나치게 자축하지 았는 흐뭇한 회상의 즐거움. 하지만 그런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가.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놓고 메인 요리인 포르치니 라자냐를 를 식당에서 주문 후 굽기만 한 후 자신이 요리한냥 시치미 떼는 줄리언 반스는 상상이 안된다. 심지어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친구에게 자신만만하게 알려주는 모습이라니......

또한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할 예정도 명확하지 않은 주방용품을 버리지도 못하고 창고에 던져놓는 모습과 요리도 요리지만 아름답고 효율적인 주방을 꿈꾸는 작가의 모습은 여느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난다.

꿈의 부엌을 소망하지 말라. 그러한 부엌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는 요리를 해야한다는 스트레스와 요리를 망쳐도 변명거리가 없어 곤란할 것이니. 큭큭

줄리언 반스가 요리라니...... . 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포개졌다. 요리를 통한 사람에 대한 애정, 도덕성, 추억, 소통 등 오래 전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안에 나와 함께 했(었)던 이들이 떠올랐다. 이번 주말에는 '그들'을 초대해 오븐에 닭이라도 구워야겠다.

좋은 요리란 일상생활의 간단한 음식을

성실하게 만드는 것이지,

뚜렷한 목적이 없는 진수성찬이나

진기한 요리를 전문가처럼

훌륭히 조합해내는 것이 아니다.

조지프 콘래드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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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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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소유하려 한다.
/ 마이클 소마레 (파푸아뉴기니 총리) 
 
 
책의 뒷표지에 보면 김중혁 소설가는 도서관 사서가 이 책의 분류 작업을 할 때 고생깨나 할 것 같다고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윈과 월러스를 언급하며 진화론과 새를 통한 인간의 사회 변천사를 다룬 인류사, 플라이 타잉이라는 한 분야의 오타쿠들의 세계, 명망있는 음악학교 학생이자 플루트 연주자인 19세 청년의 범죄, 그에 대한 진실과 회수되지 않은 새를 찾기 위해 모든 것들을 쫓는 미스터리 탐정물 등 이 책에는 여러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은 에드윈 리스트라는 19세 청년이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299점의 새(박제)를 훔쳐갔다는 사실과 1년이 지나서 체포됐지만 집행유예 12개월에 그친 그의 재판, 이후 에드윈의 범행과 재판에 대한 진실이 큰 줄기다. 
 
에드윈은 어린시절 우연히 플라이 낚시 타잉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에 매료된다. 타고난 재능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플라이 타잉에 점점 깊이 빠져들면서 '진품(깃털)'을 향한 욕망은 커져만 간다. 그러던 중 트링박물관에 가장 많은 수의 조류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급기야 박물관 유리창을 깨고 훔쳐 내기에 이른다. 
 
먼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박물관의 소장품을 훔친 에드윈을 논하기 전에 인류의 탐욕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사람은 여러 이유로 자연을 그냥 두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발전, 지적 호기심,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 상업주의 등 명분도 각양각색이다. 장신구를 치장하기 위해,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 한겨울 따뜻함을 위해, 이제는 취미를 위해서 가죽을 벗겨내고 깃털을 뽑아댄다. 그렇다면 에드윈에게 거리낌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자신의 잘못은 박물관 유리창을 깬 것 뿐이라는 그의 말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으려나. 
 
열대에서 사투를 벌여가며 수만종 표본을 수집한 월리스 조차도 '살아있는 생명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인지도.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2007년이다. 그런데 박물관 유리창이 깨져도 달려오는 경비원 한 명 없고, 심지어 다음날 깨진 유리창이 발견됐음에도 소장품 분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는 박물이라니! 에드윈은 절도 후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그것도 박물관에서 사용한 학명 그대로.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를 하고 연주 연습을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어 벽장에 깃털을 보관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읽는동안 복장이 터진 건 나만일까. 
 
에드윈 리스트. 이 사람에 대한 진실 여부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다. 다만 5년간의 정황으로 유추만이 가능할 뿐.  
 
시작은 플라잉 타이였다. 진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래서 싹튼 탐욕. 
 
"가짜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맥이 빠지잖아요. 여기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예요. 저도 그렇고요.(p349)" 
 
하지만 에드윈은 그 외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정 상황과 새로 구입해야 하는 플루트 등 돈이 필요했고, 깃털을 판매한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여행 등 여가를 즐긴다.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에드윈은 절도 직후에도 잠시나마 경찰에게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 '훔쳤다'는 행위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 덕분에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아 집행유예를 받아냈지만. 
 
297.
"저는 제가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저는 도둑이 '아니예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요. 지갑이 떨어져도 저는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지갑에 신분증이 들어 있으면 어디 찾아줄 만한 곳에 갖다줄 거라고요." 
 
318.
에드윈은 자기가 물건을 훔쳐 온 곳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고, 그 기관은 이제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 발생 5년 후, 저자와 에드윈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 사람이 플라이 타잉과 플룻 연주에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듣는 사람은 납득이 안되지만 자신만의 논리가 구축되어 있고, 타인을 읽는 눈이 남다르다. 첫 만남에 자신을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가 유도하는 질문에 맞는 행동을 즉흥적으로 해낸다. 뿐만 아니라 사교성이 부족하고 친구가 없는 롱의 심리를 이용해 그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가담시킨다. 경찰이 현장에서 찾아내어 회수된 새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에드윈. 그는 어떤 사람일까? 에드윈과의 인터뷰와 롱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훅 올라 온 분노는 내 몫인가 보다. 
 
189
그가 훔친 새들의 가치는 거의 100만 달러에 달했다. 게다가 그는 밀거래로 멸종 위기에 처한 새들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 협약을 어겼다. 

 
이제 남은 이들은 구매자요, 방관자였던 사람들.
그들은 에드윈이 온라인에 깃털 판매를 올리자 고가로 구매를 했다. 그를 칭송해마지 않던 이들이, 그가 체포된 후 비난의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저자가 남은 깃털 회수를 호소하기 위해 글을 올리자, 불편함을 드러내고 게시한 글은 삭제한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사람들. 결국 내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행동을 누군가 대신해서 거기에 결과물만 득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이들의 행동이 불편한 건, 그저 나쁘다고 생각해서만 일까? 
 
318.
플라이 타이어들은 자기들이 가진 가죽이나 깃털이 박물관 것이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큐레이터들이 주장하는 사라진 가죽의 개수는 허수에 불과하다며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나는 누군가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해 주기를 바랐다. 
 

 
 
저자는 이 사건을 지식이냐 탐욕이냐로 정의했고,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지식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 중 하나이지싶다. 호기심이 남달랐다는 월리스. 그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그를 말레이제도로 향하게 했고, 학자로서의 욕망이 살아있는 생물을 표본화 시켰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알 수 있다는 오만함.
그 한계의 끝이 있기는 한건가......?

 

 

 

 

 

 

 

 

출판산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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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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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성의 고리>
- W. G. 제발트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함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퍽주로 도보 여행을 떠났다.
(첫 문장)

공허함을 달래고자 떠난 여행. 1년 후 화자는 그 여행에서 여러 파괴의 흔적들을 보고 먹먹한 전율로 인해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그가 전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대인 학살,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전쟁과 폭력, 그로인한 도시 파괴. 문명화라는 명분을 내세운 침략, 사유재산과 자본주의가 장악한 대규모 산업에 의한 영세 산업의 몰락, 그리고 자연(생태계) 파괴.

205.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소리도, 어떤 날도 없었다. 그리고 들릴락 말락한 작은 소리로 장송행진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밤은 끝나가고, 여명이 다가온다. 저 멀리 창백한 바다 위의 섬에서 싸이즈웰 발전소의 묘처럼 보이는 마그녹스 원자로의 윤곽이 드러난다. 도거뱅크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 오래 전에는 라인강의 삼각주가 있었고 범람된 모래 위로 푸르른 초지가 자라나던 그곳에서.


소설에서 화자는 이러한 사건들에 실존 인물을 기억 속으로 또는 현재에 불러들여 허구의 인물들을 만나게 함은 물론 사용된 사진 또한 실제와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

뼈단지와 관련해 매장 형식을 논한 토마스 브라운을 비롯하여 콩고강을 왕래하는 기선의 선장으로서 제국주의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던 작가 조지프 콘래드, 권력의 늪에서 끝까지 헤어나오지 못했던 서태후, 시인 엘저넌 스윈번과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낭만주의 문학가 프랑수와 샤토브리앙까지. 작가는 화자가 되어 이들을 통해 지나온 역사를 비판하고 성찰한다.

96.
토마스 브라운은 유골단지 매장에 대한 그의 논문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 무렵 미국의 사냥꾼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난다고 썼다. 브라운은 이어서, 질질 끌리는 긴 옷자락처럼 밤의 그림자가 지구를 쓸고 지나가고, 해가 지면 세상이 한 구역씩 줄줄이 드러누우므로, 지는 해를 계속 따라가면 우리가 사는 행성이 언제나 사투르누스의 낫이 쓰러뜨리고 거두어 들인 시신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썼다ㅡ그런 지구란 간질병에 걸린 인류를 위한 끝없이 긴 묘지일 것이다.

145.
코르제니오프스키는 그가 겪어야 하는 고생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단지 그가 거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콩고에 저지르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46.
이곳의 모든 것이 싫습니다. 사람들도, 사물들도 모두 싫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싫군요. 아프리카 상인들과 거래업자들은 비열한 본능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 온 것이 후회되는군요. 그것도 아주 비통하게. (코르제니오프스키)


화자는 길을 잃기도 하고 멜랑콜리해지는 여행을 하면서 역사는 힘의 과시와 파괴로 점철되어 있으며, 다수는 이를 묵인함으로 동조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또한 문명과 진보라는 명분 안에서 자행되는 행위는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묻혀진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172.
그들(영국)이 원명원을 불태운 진정한 이유는, 중국인이 미개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주는, 현세에서 창조된 이 낙원이 고향에서 끝없이 멀리 떨어져 강요와 궁핍과 갈망의 억압 밖에 알지 못하는 병사들에게 어처구니 없는 도발로 비쳤던 데 있었을 것이다.

278-279.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벙커 안의 원시적인 장비들과 천장 아래의 철제 궤도들과 아직 군데군데 타일이 붙은 벽에 걸린 괭이들, 쟁반 크기의 물뿌리개, 승강장과 하수구 따위들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점점 더 눈을 파고드는 역광 속에서 문득, 사라진 지 오래인 풍차들이 어두워져가는 풍경 속 여기저기서 무겁게 진동하며 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감정이 격하지 않은 절제된 문장으로 내용을 펼쳐 놓는다. 이러한 역사가 새로울 것 없이 늘 그래왔다는 듯이. 제국주의에 의한, 개인의 삶을 연소시켜 이뤄낸, 문명의 발전과 풍요가 과연 올바른 길인지 생각해 보라고 독자에게 툭! 던진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서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
/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

역자는 토성의 고리가 토성의 힘에 의해 파괴된 달의 잔해들이 듯, 화자가 여행했던 폐허의 잔해는 힘에 의해 파괴된 것들임을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잔해들로 이뤄진, 그래서 얼만큼이나 두꺼운 고리에 둘러쌓여 있을까.


처음 접하는 작가다.
찾아보니 1995년 출간된 작품이고 우리나라에는 2011년에 처음 출간됐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작품을 몰랐을까? 1944년 독일 출생이지만 1966년에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독일문학 교수였고 작가로서 십여년 동안 글을 써서 작품은 많지 않다고.

청소년 시절에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침묵하는 부모 세대에 분노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전쟁과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대한 그의 성찰이 남다르다.
다른 작품도 찾아서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사족.
소설, 토성의 고리!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소설 속 문장]

31.
병이 들어 기형적으로 성장한 것들이나 병적이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뒤지지 않는 왕성한 발명 능력으로 자연이 자신도 자신의 지도 안 모든 빈 곳에 채워넣은 온갖 기괴한 것들에 우리의 관심이 주로 쏠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낙원을 꿈꿀 용기를 읺어버린 것이다.

43.
한 시대가 끝나는 건 한 순간의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60.
(독일 출신 수공업자는) 가끔씩 자신은 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도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될 때마다 거대한 저택과 호화로운 배를 가졌지만 결국 비좁은 무덤에 묻힌 그 암스테르담 상인을, 마지막 가는 길을 자신도 함께 배웅해주었던 그 상인을 떠올렸다.

70.
여자들이 청어의 내장을 빼내고 크기에 따라 분류한다. 다음으로 바다의 쉴 줄 모르는 방랑자들은 열차의 화물칸에 실려 지상에서의 마지막 운명을 완수하게 될 곳들로 수송된다.

180.
열심히 일하고, 기꺼이 죽고, 짧우 시일 내에 마음대로 번식시킬 수 있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목적에 맞게 활동하는 데만 열중하는 누에들이 황태후에게는 이상적인 백성들로 보였던 것이다.

182.
되돌아보면 역사란 해변으로 거듭 몰려오는 파도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운과 시험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 가운데 어느 한 순간도 진정으로 근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태후)

200.
나는 검게 반사되던 노간주나무가 차례차례 불의 혓바닥에 닿자마자 마치 부싯깃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둔탁하게 폭발하듯 순식간에 불길을 일으키고, 곧이어 고요하게 흩날리는 불꽃 속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309.
나무들은 아직 너무 작아서 내가 나무와 태양 사이에 서면 나무에 그림자를 드리워 준다. 하지만 후일 다 자라고 나면 나무들이 내게 그림자를 돌려줄 것이며, 내가 나무들의 유년 시절을 돌봐 주었던 것처럼 나무들은 나의 노년시절을 돌봐 줄 것이다. 나는 나무들에 결속감을 느끼고 있고, 그들에게 소네트와 비가와 송시 들을 바친다. 나는 아이들의 이름처럼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고, 언젠가 나무들 아래에서 죽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282.
끝없이 직선으로 뻗어나간 길을 걷는 동안 자동차라고는 한 대도 보지 못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외로이 걷는 것이 즐거웠는지 고통스러웠는지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때로는 납처럼 무겁고 때로는 새털처럼 가벼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그날, 구름이 가끔 약간씩 틈을 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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