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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ㅡ 마이클 로보텀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그 영예는 잭과 결혼한 매그에게 돌아가야 한다. 두 사람은 완벽한 두 아이를 둔 완벽한 부모다. 남자아이 하나, 여자 아이 하나.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꿀 케이크보다 더 달콤한 아이들. 메그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나는 흥분의 도가니다. 나 역시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애거사
애거사의 아빠는 그녀가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집안의 모든 돈을 가로채서. 엄마는 여호와 증인에 몸담았고 재혼했다. 열한 살에 함께 등교하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 새아버지와 엄마는 그녀를 원망한다. 왜 동생의 손을 잡지 않은 거냐고. 열세 살에 함께 방문 전도를 다녔던 중년의 남성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열다섯 살에 임신했다. 그 남자의 거짓 증언으로 종교 집단으로부터 비난 당했으며, 출산한 딸은 즉시 입양 보내졌다. 그 아이가 유일하게 살아난 애거사의 자식이다. 이후 결혼 했지만 사산한 후 불임과 이혼을 거친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다. 제대로 된 완벽한 가정을, 간절하게 갖고 싶다. 그러던 중 메간을 알게된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나도 그녀처럼 살 수 있다. 아이만 있으면. 어차피 여호와는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 이제 애거사는 가족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지속적으로 몇 년간 성폭행을 당하고 열다섯 나이에 출산 후 아이를 뺏기며, 결혼했지만 사산으로 이혼까지 하고 불임이 된 여자. 두 번의 유괴를 감행했지만 데려온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이쯤되면 이 여자가 왜 이토록 아이에, 항복한 가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애거사가 그토록 로망하는 메간의 가정은 완벽한가? 부부싸움 후 찾아간 전 남자친구와 실수로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 아이가 남편의 아이인지, 사이먼의 아이인지 확신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메간이나 임신한 아내를 두고 섹스 파트너를 두고 있는 잭은 또 어떠한가.
소설에서는 애거사의 성장과 결핍, 집착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이먼 또한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으로부터 오는 친부에 대한 부재를 메간의 태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누구도 완벽한 삶은 없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중산층의 잣대에 맞춰 그 안에 들어가려 아둥바둥하는 사람들, 그리고 양쪽 부모가 모두 있어야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어야 하는, 간혹 가족여행은 다녀야하는 삶이 그래도 남만큼 사는 거라고 되어버린 인식. 그래서 SNS에 행복을 과시하는, 내가 나로 사는 삶이 아닌 보여지는 삶에서 사람은 과연 평온할까.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것이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울고 싶어질만큼 애쓰지 말자고.
애거사의 비참할 만큼 불운한 시절은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건 전 남편 니키와의 이혼이다. 그 위기를 서로 보듬어 가며 넘겼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한' 가정은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의 마지막, 정신병원에 입원한 애거사가 열다섯 살에 낳아 강제로 헤어져야했던,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딸을 기다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딸이 저를 보러 올 거예요. 그애는 리즈에서 먼 길을 와요."
"따님 이름이 뭔가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애는 무척 예쁘고 영리해요. 여기 도착하면 자기 이름을 말해줄 거예요."
177.
내 안에는 시계가 설정되어 있다. 모래가 똑똑 떨어지는 모래시계. 내게 남은 시간은 2주도 안 된다. 그때가 오면 나는 내 아기를 잃어야 할 것이다...... . 아니면 찾아내거나.
(애거사)
289.
내일이면 로리를 집으로 데려가 헤이든에게 보여줄 거고, 헤이든은 내가 얼마나 완벽한 엄마가, 그리고 얼마나 완벽한 아내가 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내게는 이제 가족이 있다.
565.
참 이상도 하지, 삶이란. 우리는 행복을 찾지만 생존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존재. 우리는 기대를 너무 높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제자리걸음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는 없었을까하는 헛된 생각에 빠져 있다. 곧 우리는 모든 남들과 똑같이 신을 모르고 돈에만 혈안이 되어 남의 등에 칼을 꽂는 지치고 질투심 강한 인간들이 될 것이다. 돈이 더 많았으면, 더 예뻤으면, 더 젊고 더 운이 좋았으면, 또는 그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헛된 희망으로 가득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