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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암'이라는 소재는 자꾸 뒤로 미루고 싶어진다. 슬프고, 무겁고, 아프고, 속상한 느낌일 듯해서, 어떤 것이든 감당할 상태가 되었을 때 접하려고 한다. 안 그러면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니까. 몇 년 전,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안녕, 헤이즐>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참 지난 지금에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언젠가는 읽으려고 했던 책, 2012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2016년 봄날 이 책《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존 그린.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마이클 L. 프린츠 상과 에드거 앨런 포 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여럿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한해 가장 뛰어난 청소년 교양도서를 선정, 수여하는 프린츠 상과 가장 뛰어난 미스터리에 수여하는 에드거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존 그린이 순문학과 장르 소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재주꾼임을 증명한다.
이 책의 맨 앞에는 '작가의 말'이 있다. 보통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허구를 담은 것으로 소설가는 독자가 진실처럼 느끼도록 유도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픽션이다. 내가 만들어 낸 내용이다. 이야기 안에 뭔가 사실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찾아내겠다고 노력해 봐야 소설에도,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시도는 우리 인류가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가공의 이야기도 현실적일 수 있다'는 개념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이 신선해서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헤이즐은 말기암환자다. 다른 십대와 달리 화장품 대신 산소탱크를 상비해야 하는 소녀이다. 엄마는 딸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주치의인 짐 선생님에게 데려갔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서포트 그룹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포트 그룹 모임은 따분하다. 그 날도 마지못해 서포트 그룹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서. '세상에서 나이 열여섯에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지랄맞은 일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암에 걸린 자식을 갖는 거다. (12쪽)' 그렇게 헤이즐 그레이스 랭카스터와 어거스터스 워터스는 만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니 암환자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십대 암환자에게도 첫사랑이 있고, 둘이 주고 받는 대화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이 소설이 주는 강약조절인 셈이다. 암이라는 소재자체가 주는 우울하고 어두운 상황을 이들의 알콩달콩한 대화로 분위기를 살린다. 생명력을 불어넣어 두근두근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우리의 손이 책을 건네는 동안 살짝 엉켰고,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갑네." 그가 내 창백한 손목에 손가락 하나를 얹은 채 말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졌을 때만큼 차갑진 않아."
"네가 의학용어를 말하는 게 정말 좋더라."
그는 일어서서 나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고, 계단에 도착할 때까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40쪽)
이 소설을 읽으며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틈틈이 웃다가도 먹먹해진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속이 답답하기도 하고, 어거스터스 워터스의 죽음 후에는 쿵 하고 내려앉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장을 덮으니 비까지 내리는 바깥 날씨가 한몫 더해서 한없이 가라앉는다. 작가가 왜 이 책을 픽션이라고 강조했는지 어렴풋이 알 듯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의 뒷날개에 있는 추천사를 읽어보았다. 나의 느낌과 비슷한 것을 골라본다.
-"매 페이지 독자를 매혹시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신중하게 짜인 대사와 생생한 캐릭터 속에 순수한 지성과 유머가 묻어난다." _커커스 리뷰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관한 가벼우면서도 긴 명상록 _혼 북
이 책을 읽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것이 다른 입장에서 보면 불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되는 부분이 많다.
넌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야, 훌륭한 친구야.
(이 문장이 특히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는데, 이 말은 살아 있는 사람들은 불멸이라는 주장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넌 내 기억 속에서 영원할거야, 왜냐하면 난 영원히 살 거니까! 난 이제 너의 신이지, 죽은 놈아! 내가 널 소유했어!'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죽음의 도 다른 부작용이다.) (276쪽)
여운이 남는 책이다. 다 읽고나니 머리가 무겁고 멍한 느낌이 지속된다. 소설 속에 푹 빠져들어버린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 그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할 일이 많은데 복잡한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때 그것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 감흥이 없는 소설보다 이렇게 일상에 지장을 주는 소설을 읽고 싶다. 리뷰를 쓰는 손이 떨리고 먹먹하게 만드는 이 소설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