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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습니다 - 때론 솔직하게 때론 삐딱하게 사노 요코의 일상탐구
사노 요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1월
평점 :
에세이를 읽을 때에 꾸밈없이 솔직담백한 것이 좋다. '나도 이런 생각 해본적 있어'라든가, 어디 이야기하기 구차해서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이야기를 누군가의 글에서 읽었을 때 소리없이 엄지척 해줄 수 있는 그런 글이 좋다. 사노 요코의《문제가 있습니다》는 속시원한 에세이다. 나는 과연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면서, 저자의 솔직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사노 요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세하게 살피는 자세가 드러나는 사노 씨 글의 그 세세한 부분이 좋다. 하고 싶은 말 사이에 끼어 있는, 리듬을 주기 위해 넣은 듯한 그 세세한 부분이 내겐 거의 본체다. (270쪽 해설 中 나가시마 유)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뉜다. 하지만 장의 나뉨은 별 의미가 없다.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 '의외로 근처에…', '책 처리법', '절규하지 않는 '절규'', '냉이는 저리 비켜', '고양이한테 금화', '나는 몹쓸 엄마였다' 등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그에 대한 생각을 담백하게 표현해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노 요코의 에세이가 더 마음속에 파고든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저릿한 무언가를 느낀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보는 가족이 아니라, 현실의 가족을 맞닥뜨리는 느낌이다. 생생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재작년 여름, 향년 93세의 나이로 엄마가 죽었다. 죽기까지 10년 이상 치매였다. 엄마가 병에 걸리기 전엔 나와 엄마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치매란 생과 사를 잇는 다리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는 점점 다른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걸 인격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정신을 놓은 후 우리는 평생의 갈등과 화해했다. (40쪽)
저자는 말로 내뱉기는 민망한 무언가를 시원하게 풀어낸다. 독서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고, 풍족하게 사는 누군가가 생각없이 하는 행동에 대해 속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내비쳐질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진솔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저자의 글에 믿음이 간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민망해하며, 글을 읽어나간다.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55쪽)
어느 날 그 여자가 도시락을 열자마자 "엄마는 참.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하고 닭고기 오븐구이를 쓰레기통에 던졌을 때 나는 달려가 주워 먹고 싶었다. (153쪽)
절규하지 않는 '절규'라는 글에서는 저자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저자는 20년쯤 전에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의사가 이름 붙인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귀신 들렸다거나 미쳤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근시인데도 멀리 있는 물체의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 가을 산의 수많은 단풍잎이 한 장 한 장 보이면 정말 피로하다. 피로하지만 아름답다.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는 경험한 적도 없으리라. 노송나무가 있었다. 그 노송나무를 봤을 때 '앗, 고흐는 노송나무의 굴곡을 가옺하여 그린 게 아니라 자기 눈에 그렇게 보엿떤 거다'라고 깨달았다. 노송나무가 내 눈에 고흐가 그린 노송나무와 똑같이 보였다. (184쪽)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뭉크의 <절규>. 그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제목은 <절규>인데 절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몸속에 묻어두기 위해 목소리를 외계에서 빨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186쪽)
산다는 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그러니,
걱정일랑 하지 말고
오늘도 느긋하고 박력 있게! (책뒷표지 中)
이 책을 읽다보면 사는 것이 거창하지 않게 느껴진다. 다 자신만의 소소한 일상이 누적되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때 그 때의 생각을 놓치지 않고 글로 잡아두는 것,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무언가 생각하게 만든다면 커다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들려주는 것으로 오히려 커다란 의미를 던져준다. 세상 일이 주는 문제의 크기는 그날 나의 마음에 있지 않겠는가. 저자의 글을 읽으며 힘을 얻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드는 책이다. 솔직담백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