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리 여행에서는 미술관 박물관 방문을 원없이 하려고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다. 파리에 가기 전에 이 책 저 책 뒤적여본 것이 영향을 주었다. 예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미술 작품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실물을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별로여서 실망한 곳도 상당수. 그래도 그 중에서 가보길 잘했고, 다음에 또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였는지 생각해보니 세 군데로 압축된다. 그 중 오늘은 '퐁피두 센터'의 추억을 되살려본다.

 

1. 퐁피두 센터

1969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퐁피두가 파리 중심부 재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지은 건물이다. 설계는 국제 설계 공모전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건축가, 피아노와 영국의 로저스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들이 맡았다. 색색의 파이프와 유리로 이루어진 기묘한 외관에 지상 7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립 근대 미술관을 비롯해 도서관(BPI), 현대 음악 연구소(IRCAM), 영화관, 창조과학센터가 들어서 있다. 미술관에는 마티스, 피카소, 미로, 레제, 자코메티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저스트고 프랑스 89쪽)

때마침 마그리트 작품전이 열리고 있어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퐁피두 센터는 M11 Rambuteau역에서 내리면 된다.


퐁피두 센터
M11  Rambuteau역에서 바로
11:00~21:00  (화요일 휴관)
매월 첫째 일요일 무료
 
파리에는 화요일 휴관인 미술관 박물관이 많으니 일정을 짤 때 꼭 참고해야 한다!!!!!!


퐁피두 센터의 외관


퐁피두 센터의 외관
'아직 공사 중인가?' 라고 생각되는 외관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뼈대를 투시해서 보는 느낌이 들어서, 독특한 개성에 푹 빠져 한참을 밖에서 바라보게 된다. 외관 자체로도 기존의 건물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밖에는 줄이 길지 않아서 안심하고 바깥 구경에 시간을 더 보냈지만, 바깥의 줄은 첫 번째 관문일 뿐이다. 파리 테러 이후에 점검이 강화되었는지, 입장하는 문 앞에서 가볍게 짐 검사를 한다. 나중에 안으로 들어가보니 안쪽에 줄이 훨씬 더 길었다. 30분 이상은 기다린 듯.
 
내부에 있는 짐 맡기는 공간에도 줄이 늘어서있다. 미술관 관람을 할 때에는 맨몸으로 다니더라도 나중에는 지친다. 여기까지 왔는데, 작품 하나라도 더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마련이니, 숙소에서 최대한 가볍게 하고 나오는 것이 필수. 클락룸 앞의 줄 또한 상당히 길어서 결국 포기하고 그냥 들고 다니기로 하고, 표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섰다. 사람이 별로 없는 때였는데도 30분 이상 소요. 볼만한 전시가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입장할 것.
 
 

    
  퐁피두 센터 입장권 앞면 
      



                                           
      입장권 뒷면 
 
 
 
내부에서 구할 수 있는 퐁피두 센터 지도




지도를 보며 어디부터 관람을 할지, 어느 곳을 중점적으로 볼지, 동선을 정해놓고 다니면 유용하다. 보통 맨위 층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식으로 관람한다.
 
다음에 간다면 기획전이면 기획전, 상설전이면 상설전. 목표를 하나만 정해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시 조금 넘은 시간부터 4시까지, 강행군을 하고 나니 완전히 지쳐서 숙소에 돌아왔다. 하지만 과연 다음에 또 간다면 전시 하나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가면 욕심이 드는 곳이니......
 
기억에 남는 전시 컷 1


전자제품을 사면 흔히 볼 수 있는 상자를 이렇게 모아놓으니 작품이 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현대미술은 지금껏 흔히 보던 것을 낯설게 하며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집에도 이렇게 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표절이니 그냥 감상만 하는 걸로~!
 
기억에 남는 전시 컷 2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조명이 감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
다른 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퐁피두 센터 안에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는다면. 
 
 
*** 마그리트 특별전
 


퐁피두 센터에 갔을 때에 마그리트-이미지의 배반이 열리고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1898-1967)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예기치 않은 공간에 나란히 두거나 크기를 왜곡시키고 논리를 뒤집어 이미지의 반란을 일으켰다. 장난기 가득하고 기발한 상상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관습적인 사고의 일탈을 유도한다. (두산백과)
 
마그리트 작품 1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 그림을 보며, 파이프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인 이 작품은 '이미지와 대상, 언어와 사고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전복시킨다.'라고 누군가가 설명한다. (네이버 검색)
설명은 나중에야 찾아본 것이고, 작품 앞에서의 느낌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파이프 보고 파이프가 아니라니. 인식의 세계를 교란시키는 작품이다. 파이프인데, 파이프가 아니라니 아닌 것도 같고......

마그리트 작품 2


철학자의 등불
이런 그림 좋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처럼 초현실주의 특유의 늘어지는 그림.
 
마그리트 작품 3



사람들이 많아서 떠밀리듯이 작품을 감상하다가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으로 담았다. 
<붉은 모델>이라는 작품이다. 1935년作

<붉은 모델>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인간의 벗은 두 발 혹은 발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한 짝의 변형된 신발이다. 신발이기도 하고 발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양가성을 두고 정신분석학자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체험한 마그리트의 유년과 연관 짓는다. 즉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인정과 부인을 오가는 어린 마그리트의 집착이 그림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붉은 모델>은 1937년 원작보다 더 잘 그려진 <붉은 모델 Ⅱ>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사실 마그리트는 이후에도 수차례 이것을 변형한 후속 작을 내놓을 만큼 신발과 발의 합성 이미지는 그가 애착을 보인 모티프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붉은 모델 [Le modèle rouge] - 르네 마그리트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마그리트 작품 4


제목은 모르겠지만, 컵 안에 든 기린이 마음에 들었던 작품.

 

마그리트 작품 5


<데칼코마니> 1966년 작품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작품에는 중산모(꼭대기가 둥글고 높은 예장용의 서양모자)를 쓴 남자의 이미지가 중앙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칼코마니 기법을 통해 만든 모습과는 다르게, 이 작품의 대칭적 이미지는 그 형태만 같을 뿐 서로 담고 있는 내용에는 차이를 보인다. 화폭의 오른편에 그려진 바다와 하늘의 모습은, 왼편의 남자가 자신의 몸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을 그대로 가져와 그려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남자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모습보다도, 커튼 가운데 기묘하게 남아있는 바다 풍경은 더 밝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백지위임장(Le Blanc-seing)>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역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물에 대한 개념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캔버스 속 남자와 커튼, 바다와 하늘 중 어느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며,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앞에 놓여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결국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그림이 가지고 있는 ‘모사’라는 속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며, 이는 일상적인 경험에서는 얻기 힘든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 르네 마그리트 (ADAGP Banque d'Image, 지엔씨미디어)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2016년 11월 21일 월요일 퐁피두 센터 마그리트 특별전. 지금 생각해보니 작품 사진을 좀더 찍어왔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살짝 느껴진다.


 

마그리트 작품 감상을 마치고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기 전, 파리 전경을 감상하고 비둘기 떼거리도 바라본다. 비가 내려서 조금은 음침했던 바깥 풍경.



​밑의 층으로 내려와 감상을 계속했다.

퐁피두 센터에서 작품보다 더 시선을 끈 것은 단체로 학습 나온 어린이들.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선생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무언가 적어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마티스의 작품 앞에서!

그 모습이 기특하고 부러워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시끄러운 것만은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조용히 경청하는 학생들.

불어를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되던 순간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 앞에서




이브 클랭의 블루 앞에서 한참을 설명 중이다.



 

퐁피두 센터 관람은 두 번째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따라다니기만 했고, 이번에는 조금은 공부하고 방문했다. 특히 이번 방문은 현대미술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를 전달받는 느낌,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기분이었다. 다음 번에 다시 파리에 가도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되는 곳이 퐁피두 센터. 사진을 보며 그곳의 기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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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1 - 팥알이와 콩알이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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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충동대출(?!)한 책이다. 오랜만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만화를 보며 안구정화를 하고자 빌렸는데, 몽글몽글 귀여운 팥알이와 콩알이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 두 마리! 팥알이와 콩알이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콩고양이1》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5권까지 출간되어 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마음이 무거울 때, 기운이 빠질 때, 고양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며 기운을 차리는 나의 성향에 걸맞은 보약같은 만화다.

 

 

저자는 네코마키. 저자 소개를 보니 고양이 사진이 떡 하니 올라와있다. 아이치 현 나고야 시에서 애묘 '냥코'와 알콩달콩 동거 중인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블로그 자기소개에 따르면 만화, 일러스트, 플래시애니메이션 등 뭐든 하는 자칭 잡식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한다. 손그림부터 디지털 작업까지 워낙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먹고사는 문제까지 해결하다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즐겁게 분투 중이다.

 

* 팥알(♀) : 사고뭉치 말괄량이지만 나름 요조한 새침데기
* 콩알(♂) : 둥글둥글 순둥이이지만 식탐만큼은 일등 먹깨비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두 마리의 고양이 콩알이와 팥알이는 30대 직딩에게 입양된다. 원래는 한 마리만 데려가려 했으나, 나머지 다섯 마리 모두 졸졸 따라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두 마리를 입양한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그려내는 에피소드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고양이의 몽글몽글한 감촉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런 고양이 정말 키우고 싶다, 생각하면서…….

 

 

고양이 말고 어떤 인간들이 등장할까. 고양이 두 마리 콩알이와 팥알이를 입양한 고양이 주인님, 고양이 주인의 할아버지인 내복씨, 고양이 주인의 엄마인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마담 북슬, 고양이 주인의 아버지인데 집에서 존재감 제로인 집동자귀신 아저씨, 고양이 주인의 오빠인 안경남, 안쓰는 고양이 하우스에 살게 된 암탉이 나온다. 평범한 가족인 듯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 강해서 아마 이 캐릭터는 다음 권에도 계속될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글과 그림을 썼기 때문에 일상에서 건질만한 독특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표현된 듯 하다.

 

키득키득 웃다보면 금세 한 권이 다 끝난다. 복잡한 마음일 때 아무 생각없이 집어들어 웃으며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처음에는 그림이 단순해서 기대를 안 하고 그저 고양이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선택해서 읽은 책인데, 뒷 이야기가 무지 궁금해진다.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만화다. 다음 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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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땡기는 날
다케노우치 히토미 지음, 김진희 옮김 / 애니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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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밖에서 술을 마시면 편안하게 마시기 힘들다. 게다가 집까지 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밖에서 마시게 되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맛있는 술과 안주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 조용히 편안하게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다. 특히 '혼술 땡기는 날'에는 말이다. '편안하게 맛있게, 집에서 한잔해요!'라며 이 책은 나를 유혹한다. 게다가 부담없이 만화로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계절별 마시기 좋은 술 18종 및 각 술에 잘 어울리는 안주를 소개하는 이 책《혼술 땡기는 날》을 보면서 다채로운 음주의 세계로 초대받는다.

 

 

이 책의 저자는 다케노우치 히토미. 도쿄 도 스미다 구 출신 만화가이다. 만화가라서 집에서 일하는데, 마감이 되면 좋아하는 술 마시기도 보류하고 일을 해치운다. 올빼미형이라 일은 대개 새벽에 끝나는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기는 정말 귀찮을 것이다. 마감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 한 잔! 처음에는 캔맥주를 냉장고에 사다 놓기 시작하면서 집에서의 혼술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에 다양한 술과 안주를 구비하며 즐기다가 이 책을 출간했다.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술 마시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직접 실행해가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이 책에는 술과 함께 그와 어울리는 안주, 잔 등이 오밀조밀 담겨있다.

 

이야기는 '최고의 한 잔'으로 시작되는데, '술 마시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최고의 한잔'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맥주 맛있게 먹는 법을 보면서 머릿속에는 시원한 맥주를 떠올린다. 잔 준비부터 적정 온도, 따르는 법까지 신경써서 벌컥벌컥 쭈욱 들이키면, "이 맛에 마신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다들 아는 맥주맛에서 시작해서 상상해야 알 듯한 술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술에 대한 것만이 아닌 그와 어울리는 안주까지 더해져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365일이 '혼술 땡기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스파클링 와인과 로스트비프, 하이볼과 크로켓, 파나슈와 샌드위치, 럼코크와 치킨, 막걸리와 펜로 전골, 간자케와 전갱이 다타키 등 잘 어울리는 술과 안주를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일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품과 벚꽃떡 같은 것은 그저 상상만 할 수 있는 맛이지만, 어묵, 치즈, 두부, 샌드위치 등 가능한 안주류를 먼저 찜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사람 잡을 새콤달콤함일세!", "그냥 막 들어가~"(63쪽) 이들의 감탄사에 입맛을 다신다.

 

술을 떠올리고 직접 어울리는 안주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려냈기에, 마음에 드는 부분에서는 따라해보며 그 맛을 직접 느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계절별로 마시기 좋은 술도 알려주고 있으니, 특히 여름이 되면 9화 '한여름의 수박 칵테일'을 시도해야겠다. '수박 한 통을 전부 다 먹을 수 없어 곤란했던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수박 칵테일을 만드는 법이 생각보다 쉬워 보였기 때문에 여름 날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꼭 기억해두어야겠다.

 

술은 맥주와 소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보며 다채로운 음주의 세계로 성큼 들어가본다. 술잔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 책도 다양한 술과 안주를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금세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된다. 나만의 술과 안주로, 편안하게 집에서 한 잔 하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연스레 오늘의 혼술 메뉴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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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파리
목수정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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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파리를 저자인 목수정의 시선으로 훑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자는 여기 모아놓은 장소들이 12년 동안의 파리 생활에서 마주친 위로와 떨림, 환희와 기쁨의 공간들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가본 곳과 가보지 못한 곳 모두, 그녀에게 어떤 시선으로 그려질지 궁금해서 이 책《당신에게, 파리》를 읽어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목수정. 첫 책이《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

긴 호흡으로, 파리란 도시를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 직접 내발로 가지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거기'를 그리며 여행하고 싶으신 분들 앞에 드리고 싶다. 변신을 위해선 두 개의 세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건너갈 '저기'가. 변신을 꿈꾸는 분께, 당신의 '거기'를 선사한다. 2016년 8월 22일 목수정 (7쪽_프롤로그 中)

 

이 책에는 파리의 마흔 가지 장소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그녀의 글은 좀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다. 글을 읽다보면 가본 곳도, 가보지 못한 곳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천천히 산책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듯, 어쩌면 내가 직접 갔더라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런 소소함이 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짚어주어야 비로소 보이는 상세함이 있다. 글에 몸을 맡기고 집 앞에 마실을 나선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면, 마술램프의 요정 지니가 보물창고를 보여주기도 하고, 바스티유 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상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일요일 오후의 햇살 내리쬐는 정원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파리 여행 때 숙소를 잡은 곳이 보쥬 광장 근처였다. 그래서 그런지 보쥬 광장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유명하다는 다른 곳에 애써 찾아가기보다 내 방식대로 그곳에서 조용히 산책하던 시간을 좀더 가졌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은 그런 시간이니 말이다.

낮에 이글거리던 해가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포도주빛의 달짝지근한 흥분을 전할 무렵, 우리 일행은 이 신비스런 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가로질러갔다. 사각으로 된 광장을 둘러싼 아치형 통로가 마치 궁전 안쪽의 긴 회랑처럼 걸쳐 있었다. 그 아래를 휙 지나가는 동안 어디서도 마주친 적 없는 매혹적 아우라에 사로잡혔다. 여러 세기에 걸쳐 묵직한 역사를 켜켜이 쌓아왔을 법한 이 공간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겹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47쪽)

저자는 불어,한국어 회화 교환 모임에서 사람들과 파리 시내 곳곳을 산책하던 중 보쥬 광장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곳에 다시 가게 된 것은 9년 뒤였다고 한다. 공부를 마친 후 파리를 떠났고, 한국생활 5년 만에 다시 세 살배기 딸아이와 함께 파리로 돌아왔는데, 아이 아빠가 살던 집이 보쥬 광장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고. 아이는 3년 간 보쥬 광장에 있는 공립유치원에 다녔고,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광장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한다. 때로는 강렬한 느낌과 함께 기억속에 남은 듯한 공간이 애써 찾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 글을 읽으며 나만의 기억속에 있는 어떤 공간을 떠올려본다.

 

테러에 관한 파리지앵들의 생각도 인상적이다. 또한 그에 대한 생각을 술술 풀어내는 저자의 글도 전해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힘이 있어서, 어느 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적어내려가기가 고민된다. 뉴스로만 만나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테러가 벌어진 골목골목들이 인산인해가 되어 넘쳐나고 테러현장은 금세 초와 꽃다발들로 둘러싸였다. 거리에 나온 그 어느 누구도 증오를 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사랑'이라고 모두가 입 모아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면, 일어나리라. 그러나 우린 그때까지 우리의 삶을 즐기리라." 파리 사람들의 머릿속을 관통한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해도, 난 다시 카페 테라스에 가 앉는 걸 포기하지 않으리라.…(중략)…두 번째 테러가 파리를 휩쓴 뒤, 석 달 동안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책은 젊은 날의 가난한 문학청년 헤밍웨이가 쓴 '파리는 날마다 축제'였다. 카페 테라스에 가기, 다시 극장에 가기, 다시 거리를 활보하기가 파리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미션이 되었다. 2016년 2월, 86퍼센트의 파리지앵들은 테러 전과 테러 후의 삶에 아무런 태도의 변화도 없었다고 답했다. (309쪽)

 

시적인 문장이 시선을 끈다. 표현력이 좋아서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게 한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술술 읽게 표현해낸 글을 읽다보면 파리에 가고 싶게 만든다. 물론 이미 갔던 곳이어도 새롭게 보여서 또 가고 싶게 만든다. 공동묘지마저도 가보고 싶게 하는 책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파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다른 책들과는 또다른 감성을 얹어주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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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비움 - 차근차근 하나씩, 데일리 미니멀 라이프
신미경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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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 어딘가 잘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한 시간 여를 뒤적인 적이 있다. 분명히 거기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장소에는 없었고, 그 부근을 찾아보며 '이런 것도 있었구나!' 생각했다. 늘 신경 쓰는 곳이 아닌 장소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정리를 할 때에나 발견하게 되고, 발견하면 언젠가 쓸 것이라 생각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잊곤 한다. 많이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존재조차 잊고 있던 물건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이런 때에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갖고 비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 차근 하나씩' 비우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어떤 것들을 내 주변에 남길지 생각해본다. '물건은 치우고 취향은 채운다' 이 책《오늘도 비움》을 읽으며 데일리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신미경. 패션에서 시작해 생활에 관한 여러 주제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리빙센스> 에디터로 활동했다. 패션에 심취했던 20대에는 쇼퍼홀릭이자 워커홀릭으로 살았지만, 현재는 쇼퍼홀릭 라이프를 청산하고 미니멀 라이프에 입문한지 4년차가 되었다. 삶을 우아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시도와 생각을 담은 글을 개인 블로그인 '우아한 탐구생활' 및 슬로우뉴스 '가볍게 살기' 칼럼을 통해 소개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단순히 집만 깨끗해진 것이 아니라 비움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게 했고, 남기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으며, 마음속으로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 준다. (7쪽_프롤로그 中)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절제된 차림', '심플 미용법', '작은 식생활', '집에서, 슬로 라이프', '생활철학을 소유하다'로 나뉜다. 데일리 백, 만능 에코백, 원목 옷걸이 50개, 화장품 대신 피부과, 홍차의 시간, 기념 수건 받지 않기, 지구를 지키는 미니멀리스트, 추억의 유효기간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여성으로서 미용에 대한 생각 및 '노 브라'로 살기는 인상적이다. 또한 식생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것을 짚어보며 생활철학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물건을 곁에 두고 싶은지, 어떤 것들은 필요 없는지 생각해본다. 무조건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꼭 가지고 있고 싶은 취향을 남기기 위한 과정으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기에 더 와닿는다. 저자는 한때 100켤레가 넘던 구두 중 20켤레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며, 사실 문어발이 아닌 이상 많은 구두를 갖고 있다 한들 흡족한 만큼 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신발은 신는 것만 신게 되기 때문에 20켤레도 많다고 생각되지만, 저자가 쇼퍼홀릭 라이프를 거친 여성임을 감안할 때 그 정도면 엄청난 변화이긴 할 것이다.

 

또한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식재료에는 분명 건강한 기운이 있다. 먹을 기회가 얼마든지 널려 있는 세상이니 조금만 먹어도 좋다. 대신 만족할 만한 것을 먹고 싶다.(89쪽)'라며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도 일상에서 충분히 변화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이다. 누군가 대단한 결심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것도 한때 쇼퍼홀릭이던 친구가 심경변화를 일으켜 삶을 바로 세우고 있는 모습이 보여 절로 응원하게 된다. 함께 하고 싶고 격려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기념품에 대한 생각이었다.

 

브랜드가 커다랗게 새겨진 컵과 캘린더, 다이어리는 전혀 탐나지 않고, 특히 기념 수건은 걸레로도 쓰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경사스러운 날은 일상에서 계속 떠올려야 할 만큼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대신 아무런 무늬가 없는 품질 좋은 수건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한다. 남과 자신으로부터 거절하지 못한 물건들을 끌어안고 지내는 것은 거절하는 일보다 훨씬 쉽다. 다이어트를 실패하는 이유도 음식을 거부하지 못해서고, 내가 떠맡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도 안 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다. 그러면서 언제나 인생은 힘들고 나만 피해자인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다 거절하지 못해서 생긴 일일 뿐. 그러니까 제발 사소한 물건부터라도 "아니오, 괜찮습니다. 고맙지만 저는 필요 없어서요"라고 해보는 건 어떨까? (157쪽)

 

이 책은 극단적인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정도는 나도 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건의 가짓수가 많냐 적냐가 아니다. 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를 짚어본다는 점이다. 물건은 모두 치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진짜 소중한 것을 살려낼 수 있을만큼 필요없는 것을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한 마음가짐을 상기시켜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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