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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법칙 -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피에르 가니에르.카트린 플로이크 지음, 이종록 옮김, 서승호 감수 / 한길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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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 끼의 식사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만든 이의 정성, 식당의 분위기, 함께 식사를 한 사람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추억이 되어 남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셰프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삶과 철학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궁금했다. 이 책《감정의 법칙》을 읽으며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에 귀기울여본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1950년 프랑스 출생, 현존 세계 최고의 그랑 셰프 중 한 명이다. 파리와 전 세계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요리의 혁신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담자 카트린 플로이크는 프랑스 아르골 출판사 대표다. 2010년 이후 유명한 셰프뿐 아니라, 주목받는 젊은 셰프들에 대한 책도 지속적으로 출판하면서 요리의 미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장소에서 대담을 진행했고, 이 책을 통해 한 셰프의 삶과 창작을 볼 수 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요리의 거장이면서, 개성이 넘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결코 조용하지 않고 타협할 줄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제가 아는 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_카트린 플로이크
이 책은 피에르 가니에르와의 대담으로 구성된다. 1부 '요리의 광인 피에르 가니에르', 2부 '레스토랑', 3부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 4부 '감정의 법칙', 5부 '거장이 되기까지'로 등 총 5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가니에르에 대하여, 셰프로 산다는 것'을. 2부에서는 '메뉴에 관한 짧은 대화, 요리 분대, 레스토랑 사업, 레스토랑의 조건'을. 3부에서는 '단품 요리와 코스 요리, 요리의 발견, 요리의 미학'을 다룬다. 4부에서는 '결핍의 시절, 산다는 것, 분자 요리에 관한 오해, 감정의 주변'을, 5부에서는 '인생, 아름다운 폐막'을 들려준다.
프랑스 아르골 출판사 대표인 카트린 플로이크가 대담을 진행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인간 피에르 가니에르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요리의 철학자, 평범함을 벗어난 개성, 거장, 요리의 피카소, 강심장을 가진 화덕의 시인 등 성공한 셰프임을 가늠할 수 있는 수식어를 접한다. 레스토랑에서의 일과는 혼자만이 아닌 팀을 이루어 해야하는 법. 홀과 주방의 모든 과정이 잘 맞아떨어져서 요리가 성공적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메뉴, 레스토랑 관리 등 실질적인 정보도 제공해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느냐는 질문에 피에르 가니에르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권태에 빠지지 않는거죠. 주방은 다른 작업장들과는 달라요. 모든 일은 저녁에 완전히 끝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하루의 일이 그날 저녁에 모두 마무리된다는 사실이 요리사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죠. 오늘 잘못되면 내일을 더 나은 하루로 만들면 되요. 똑같은 날은 하루도 존재하지 않아요. (92쪽)

이 책은 생각의 영역을 넓혀주는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특히 '메뉴를 만드는 작업이 교향악을 편곡하는 작업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생각에 머릿속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울려퍼진다. 신선한 느낌이다.
카트린 플로이크: 지금까지는 당신이 만든 요리의 독특한 구성이나 맛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당신만이 가진 남다른 특징이 하나 더 있죠. 바로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식사의 주문 체계와 요리들 간의 관계입니다. 가니에르 레스토랑의 메뉴는 예외 없이 당신이 세운 원칙에 따라서 작성되잖아요. 메뉴 안을 살펴보면 각각의 메뉴마다 전개되는 방식, 속도의 변화, 절정이 되는 부분 그리고 요리를 대할 때의 자세까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메뉴 속에는 메뉴를 작성한 사람의 의도와 개성이 분명하게 보여요. 예술성이 느껴지죠.
피에르 가니에르: 그 부분까지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군요. 저는 메뉴를 만드는 작업이 교향악을 편곡하는 작업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나 작곡가가 음악 작업을 하는 것과도 다를 게 없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것까지 비슷하죠. (227쪽)

또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을 보며 한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사진작가 프랑수아 플로이크가 찍은 생생한 사진들은 풍성함을 더해주어 현장감 있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을 통해 피에르 가니에르의 생각을 엿본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질서, 철저함,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의 말을 마음속에 담아둔다.
이 책이 제 인생을 되짚어 보게 하는 확실한 기록이 됐으면 합니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잖아요. 저는 이 책이 유명 인사의 자서전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해요. 독자들에게 정말로 쓸모 있는 책, 그저 닮고 싶은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어떤 증거를 보여주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쯤 되면 인생과 사상을 책에 담는 작업이란 마치 인생의 마지막 막을 내리는 느낌이에요. 이제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것들을 마무리해야죠. (50쪽)
마지막으로 피에르 가니에르가 40년 이상 마음속에 간직해왔고, 현재를 이해하게 해준다고 믿는 문장을 남기는데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자신이 마음먹은 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명이 정해준 역할을 실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_얀 파토카 (1907-77, 체코의 철학자) (337쪽)
이 책을 처음 펼쳐들 때에도 나와있는데, 다 읽고 마지막에 보니 피에르 가니에르가 마음속에 간직한 문장이다. 처음에 접한 것과 느낌이 달라진다.
이 책을 통해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을 큰 틀에서 살펴보는 시간을 보낸다. 대담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틈틈이 첨부된 사진들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어떤 일을 하든 대가의 반열에 오르면 모든 것을 통합하는 힘이 있는 것인가. 그 자신의 삶 자체가 이미 한 권의 책처럼 자리잡고 있음을 감지한다. 읽는 이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책이다. 요리에 관심이 있든, 그렇지 않든, 피에르 가니에르라는 셰프의 이야기에 매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