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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트레일스 - 길에서 찾은 생명, 문화, 역사, 과학의 기록
로버트 무어 지음, 전소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온전히 내 두 발로 세상에 던져지는 것, 걷기의 묘미이다. 걷는다는 것은 내 존재 자체를 일깨우는 시간이다. 걷는 여행이 유행을 타며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등 다양한 길이 생겨나고 있다. 걷기는 이제 우리 삶에 의미 있는 시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걷는 인간을 위한 21세기《월든》'을 표방하는 이 책《온 트레일스》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길에서 찾은 생명, 문화, 역사, 과학의 기록을 이 한 권을 통해 만나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로버트 무어. 저널리스트이다. 환경 저널리즘 부문 미들베리 장학금을 수상했으며, 비소설 부문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책은 '길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물음을 바탕으로, 5개월간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하이킹에 이어 대륙을 넘어 모로코까지 이어지는 국제애팔래치아트레일의 대장정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걷는 방랑자로서의 경험과 길 위에서 '길의 의미'를 찾는 경험을 문학적인 필치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또 한편,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자취로서, 사회적 구성물로서 길의 의미를 과학, 역사, 철학, 고고학, 지리학 등 다양한 맥락에서 심도 있게 풀어냈다.
트레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거대하고 이상하고 변덕스러운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런 지역들은 사람에게 길들여진 부분도 있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여전히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지구 위 생명의 전 역사에 걸쳐 우리는 여행을 안내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복잡성을 정제하고, 지혜를 보존하기 위해 트레일을 만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트레일은 우리 신체의 형태를 결정하고, 우리 지형의 모습을 조각했으며, 우리 문화를 변화시켰다. 현대 세계라는 미로 속에서 트레일의 지혜는 그 어느 때보다 필수적이다. 미궁 같은 기술의 네트워크가 점점 더 확대되어감에 따라 트레일의 지혜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속을 능숙하게 누부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트레일을 만들고 트레일이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41~42쪽)
이 책은 총 여섯 챕터로 구성된다. 챕터 1 '길의 기원을 찾아서', 챕터 2 '맛, 냄새, 그리고 집단지성의 길', 챕터 3 '길들여지는 동물, 가축, 야생동물에게서 배운 것들', 챕터 4 '인생과 역사와 이야기가 얽히는 길', 챕터 5 '걷는 자들을 위한 길', 챕터 6 '길이 다시 야생 숲이 될 때: 정보망과 국제애팔래치아트'로 나뉜다.
길에 얽힌 집단 지혜를 탁월하게 탐험한 책이다. 따뜻하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서사라인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
_윌리엄 피네건,《바바리안 데이스》저자
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보며 그의 박식함에 놀란다. 읽다보면 '로버트 무어는 몽테뉴처럼 한 가지 주제를 100가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작가다.'라는 <이코노미스트>의 추천사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특히 '트레일'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조차 세밀하게 분석한 부분에서는 지식을 새롭게 채우는 계기가 된다. 숲이 아니라 나무를 현미경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것도 다양한 수종을 말이다.
트레일의 기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들을 자세히 분해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trail과 path가 내포하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path는 품위와 위엄이 있고 당당하면서 약간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반면, trail은 무계획적이고 단정하지 않으며 제멋대로인 느낌을 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자들은 트레일을 "대충 만든 path"라고 다소 교만한 태도로 정의했다. 그들이 지적하듯, 트레일은 오직 야생의 지역에만 존재할 뿐 문명화된 지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 가령 '정원의 트레일'을 따라 산책하고 있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trail과 path의 핵심적인 차이는 방향성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path는 앞으로 뻗는 반면, trail은 뒤에 남겨진다.… (88쪽)
저자는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그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면서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의 방대한 지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탐험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리는 매일 어디론가 향해가며 걷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길에 대해 생명, 문화, 역사, 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며 사색에 잠겨본 적이 있었나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새로운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한다. 평소와는 다른 넓이와 깊이로 길에 대해 사색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