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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 보이지 않는 것에 닿는 사물의 철학
함돈균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3월
평점 :
예전에『사물의 철학』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사물의 철학』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사물을 모아놓았는데, 가로등, 거울, 달력, 립스틱, 명함, 버스, 생수, 선글라스, 연필, 의자 등 항상 내 주변을 맴돌았지만 나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던 다소 사소한 것들에 대해 세세하게 살펴보며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매일 이용하기도 하는 물건들에 대해 재인식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번에는『사물의 철학』이 2015년 출간된 후 3년이 지난 후에 이 책『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이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함돈균. 2006년『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이래 문학 고유의 정치성과 예술적 전위를 철학적 시야로 결합시키는 이론, 문학사연구와 현장비평에 매진해 온 문학평론가다. 인문정신에 담긴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사물을 다룬 이 두 번째 책에서 계단, 칫솔, 스쿨버스, 단추, 사다리, 좌변기, 텀블러, 콘센트 등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인공 사물들에 대해 또 한 번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화의 목표는 역시 새로운 시각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마치 낡은 사물에서 빛나는 비유를 창조하는 시인처럼 가장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질문을 발명할 수 있다면, 이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지적 여행이 될 것인가. 내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도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외양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실은 '코끼리를 삼킨(숨기고 있는) 어떤 것들'임을 볼 수 잇는 눈을 갖게 된다면 참 좋겠다. (12쪽_저자의 말 中)
사물들의 순서는 기역니은 순으로 되어있다. 가위, 계단, 고궁, 고글, 교과서, 구루프, 귀도리, 나무 펜스, 노란 리본, 다이어리, 단추, 드론, 등산 스틱, 라디오, 마우스, 만년필, 목욕탕의 탕, 무대 조명, 묵주, 바둑알, 박스, 방제복, 밴드, 베개, 벤치, 비누, 비자, 빨대, 사다리, 센서, 손톱깎이, 숟가락, 스쿨버스, 스툴, 스피커, 실타래, 쓰레기통, 아파트, 액자, 에어컨, 에코백, 열쇠고리, 인형뽑기 기계, 정수기, 조리, 좌변기, 주유기, 지갑, 참빗, 책, 철조망, 칫솔, 코인, 콘센트, 타일, 텀블러, 트렁크, 티백, 파티션, 포스기, 핫바디, 핫팬츠, 향, 헤어드라이어, 형광등, 화분, 확성기 등 67가지 익숙한 일상 사물들을 가장 힙하고 낯설게 사유하는 인문적 훈련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순서대로 보아도 되고, 이들 사물 중 관심 있는 사물부터 펼쳐 읽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읽어나가도 좋을 것이다. 짤막한 글 속에서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고 새롭게 사유의 오솔길을 거니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이 생각에 이어서 펼쳐나갈 수도 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밴드_상처 난 자리가 중심이다.
몸이란 참으로 예민해서 아주 작은 상처, 아주 작은 통증만 생겨도 신경은 그 자리를 향해 쏠리고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이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배꼽일까, 심장일까, 얼굴일까, 아니면 허리일까. 혹시 중심은 고정적인 특정 자리가 아니라, 이 작은 사물을 붙여야 하는 그 상황에서 발생한 바로 그 상처의 자리가 아닐까. 상처에 몸 전체의 신경이 집중됨으로써 육체와 정신도 꼼짝없이 그 자리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작은 밴드란 결코 만만한 사물이 아니다. 몸의 '중심'을 긴급히 돌보는 사물이니 말이다. 이런 사고를 확장시켜보자. 사람의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중심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각 아픔을 호소하는 곳이 있다면, 그런 존재가 있다면 거기가 바로 사회의 중심이요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자리가 아닐까. (111쪽)



세상을 우주적인 시야로 보는 법도 있고, 미세한 부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보는 방법도 있다. 이 책은 짚어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가도 이상할 것 없는 물건들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살펴보게 하는 책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사소한 듯한 사물들에도 할 말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때로는 지금과 다르게 사물을 인식하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