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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그림 -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
김한들 지음 / 원더박스 / 2019년 12월
평점 :
이 책은 김한들 큐레이터의 첫 산문집『혼자 보는 그림』이다. 먼저 큐레이터의 산문집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일어났고,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한 때는 작품 감상도 틈틈이 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작품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일상에서 그런 것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찬찬히 고독을 씹으며 혼자 보는 그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저자는 김한들. 큐레이터이다. 학고재, 갤러리현대 등에서 전시 기획을 해왔다.
십 년간 수많은 그림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중 발걸음을 잡는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드문 만남은 저를 오랜 시간 머물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옆의 그림으로 옮겨 갈 때도 저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혼자 보는 그림이었습니다. 혼자 보는 그림은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음이 어딘가에 다다르면 안정을 얻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스스로 정박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봤던 네 작가의 작품을 함께 실었습니다. (9쪽)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좋은 그림을 마음껏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 바다 냄새 나지 않는 바다로의 여행, 풍경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우리 나이여서 힘들 수 있는 일, 기억의 벽, 작은 죽음을 맛보는 경험, 문득문득 떠올려 보는 것, 사람도 그립지 않은 밤, 따뜻하기도 서늘하기도 쉬운, 진실하며 필요 불가결한, 팔월을 기다리는 시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바다 같은 사람, 꿈에 관하여 등의 글이 담겨 있다. 나오며 '창가에서 햇빛을 맞는 일'과 그림 출처로 마무리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여행 중에 만났던, 혹은 작은 갤러리에서 보았던,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한참을 작품 앞에서 서성였던, 그 작품들이 떠올랐다. 잊고 지내던 것들인데 기억에서 소환해냈다. 작가의 이름도 구체적인 작품의 모습도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내가 만약 내가 큐레이터였다면 나는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꿈꿨으리라. 이 책을 읽으며 한 큐레이터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삶은 항상 짐작도 예측도 불가능한 지점에 인간을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맞이한다. 안정된 일상으로 향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때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작가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전시를 했다. (23쪽)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을 때에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느낌이 든다면 그 책과 멀어진다. 나와 전혀 다른 직업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이지만 공감하게 되고 접점을 찾게 될 때에 이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글을 바탕으로 독자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뿜어낼 수 있도록 그야말로 멍석을 깔아주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공감을 하거나 '나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지' 같은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재잘재잘 과거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을 담은 것이고, 어찌 보면 깃털처럼 가벼운.
일상을 돌이켜 본다. 우리는 그것을 의미 없는 것처럼 치부해 버린다. 방에 놓여 있는 물건들 곁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씩을 채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44쪽)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_문소영 (미술 전문 기자, 작가)''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어쩌면 앞에 말한 두 가지 경우의 책이었다면 뻔하다는 생각에, 나는 이 책을 선택한 이후부터 만족감을 떨어뜨리며 읽어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에세이였다. 한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로서는 소소한 일상부터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근사한 시간이었다. 꾸미려고 하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에 투명하게 와닿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