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왕 읽는 소설이라면 아예 '이 책은 소설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몽환적인 느낌,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 내 빈약한 상상력을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이소설에서 박물관을 만들고자 하는 노파의 캐릭터도 신비감을 더한다. 도대체 무슨 박물관을 만들려고 하는 건지 궁금해져 계속 읽어나간다.
어떤 종류의 공간이든 수장고는 나에게 친숙한 곳이다. 관람객은 들어올 수 없는 그 고요한 방에 혼자 틀어박혀 사료와 마주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그곳은 내가 가본 그 어떤 수장고와도 달랐다. 수장품 하나하나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참기 어려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수장고라고 해도 같은 박물관에 수집된 물건들 간에는 어떤 연대 의식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일말의 유대감도, 단합도 없었다. 주변을 살피는 배려심도 없었다.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물레, 금니, 장갑, 그림 붓, 등산화, 거품기, 석고 붕대, 요람…….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유품이야." 노파가 말했다. "전부 마을 사람들의 유품이지." "이걸 전시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을 만들어주었으면 해." (45쪽)
노파가 열한 살 되던 해 가을부터 모았다고 한다. 계산하기 귀찮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수집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수집할 거란다. 마을에서 누가 죽을 때마다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하나씩 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파가 모으는 물건은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다.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여기에서부터는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어 읽어나갔다.
박물관이라는 공간, 거기에 이 세상에 존재했던 자의 유품을 전시한다니, 그 발상이 신선하다. 유품 하나하나마다 엄청난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 풀어내도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소설. 거기에 무슨 '사건'이 더해져야 완성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매력적인 소재를 탄탄하게 구성해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