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축제 -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8020 이어령 명강
이어령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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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보고 나는 미키마우스 손가락부터 생각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몇 개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미키마우스는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으면서도 왜 구체적으로 떠올리려니까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인가. 거기에서부터 이 책이 무척 궁금해졌다.

이 책은 2030 젊음에게 바치는 이어령 지성의 빛나는 향연이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띠지에 '20대 젊은 날의 이어령'이라는 설명이 달린 사진이 담겨 있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8020 이어령 명강 - 생각의 축제'는 사람의 두뇌를 좌뇌, 우뇌로 가르고 어느 한쪽을 판단 기준 삼아 다른 한쪽을 따돌리고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쏠림 사회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실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창살 속에서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기수들을 해방시켜서 자유로운 초원의 노마드가 되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겁니다. (책 속에서)

돌아가셔서 이제 책을 볼 수 없는 건가 생각했는데, 오히려 엄청나게 출간되고 있으니, 우리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계신 듯하다.

어쨌든 미키마우스에 대한 궁금증은 일단 한 템포 쉬고, 그리고 옛날이야기보따리를 풀어서 수리술술 들려주는 듯한 기대감은 최대한으로 하면서 이 책 『생각의 축제』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도 결국 미키마우스 손가락부터 찾아보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어령.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20대부터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으며,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이야기 속으로 '수의 비극', 첫째 허들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_ 수의 탄생', 둘째 허들 '이름의 세계', 셋째 허들 '숫자와 이름이 혼융하는 세계', 넷째 허들 '0의 발견', 다섯째 허들 '질서와 균형의 숫자 8', 여섯째 허들 '상대성과 관계성의 숫자 2', 일곱째 허들 '8020 이어령 명강', 여덟째 허들 '새 문명의 모델 초합리주의', 숫자의 허들을 넘어 푸른 바다로 '자크 플레베르의 「작문 노트」'의 차례로 진행된다.



이 책은 정해진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공간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 그렇네'라며 신기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가 술술 줄줄 이어져서 무엇 하나 언급하기에 정말 길다. 그런데 그 길이가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오~오~오~'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쳐야 할 시험은 달라요. 연필이 아니라 자유롭게 머리를 굴려야지요. 독을 독으로 없애고 열을 열로 다스리듯이 시험으로 시험지옥을 없애는 것이지요. 공부를 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시험문제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바로 "'8020 이어령 명강 - 생각의 축제'에는 '0'이 몇 개 있는가" 같은 겁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풀 수 있는 문제죠. 누가 보아도 8020에는 0이 2개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그렇게 대답하겠지요. 그런데 맞나요? 정말 0이 2개 있어요? 한 번 더 잘 보세요. 아라비아숫자의 8자에도 분명 0 모양이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0은 4개라야 맞겠지요. 하지만 80에 20을 더하면 100이 되니까 8020에는 6개의 0이 숨어 있는 셈이지요. 어때요. 0이 여섯이면 자릿수로 10만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삽시간에 0은 10만대로 늘어나게 되는 거죠. 이런 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보는 힘이지요. 그러나 상상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 끝이 없어요. 이번에는 8자를 옆으로 눕혀보세요. 8자가 무한대의 기호로 뜹니다. 갑자기 0은 은하수처럼 빛나면서 무한대의 수로 돌변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8의 아라비아숫자는 안이 바깥이 되고 바깥이 안으로 바뀌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리사이클의 아이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0은 춤을 추고 마술사의 검은 보자기처럼 무한한 둥근 원들을 뽑아냅니다.

그런데 아직도 끝난 게 아닙니다. 0이라고 하면 숫자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한글의 글자에도 0자가 있지 않습니까. '8020 이어령 명강' 글자마다 0이 한 개씩 들어있으니 말예요.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0만 쳐도 한눈에 9개가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시험문제를 풀어가는 동안에 지금까지 정지해 있던 선풍기에 스위치를 켠 것처럼 상상력이나 창조력의 날개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바람이 일기 시작할 겁니다. (5~7쪽)

결국 먼저 찾아서 읽어본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나는 먼저 이 부분부터 읽었지만, 그래도 다른 독자들은 순서대로 읽어보며 그 의미를 파악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사실 이게 궁금한 건 나뿐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펼쳐들면 신나는 경우가 있다.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고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짚어주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경우 말이다. 이 책이 그렇다. 특히 이야기 하나하나가 새롭고 새록새록 내 마음에 들어온다.

지금도 살아계시며 어디에선가 강의를 해주시는 듯한 목소리를 이 책에서 들을 수 있다. 세대불문,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며 수의 세계에 초대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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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른을 위한 에세이 - 세상의 모든 좋은 어른을 위해 김현주 작가가 알려주는 ‘착한 척’의 기쁨
김현주 지음 / 읽고싶은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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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세상의 모든 배려가 친절한 척이고, 누군가를 위해 저절로 우러나온 마음이 아니라 예의를 지키는 것뿐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 보고 싶었다, 예뻐졌다, 좋아 보인다, 너의 삶이 부럽다는 형식적인 칭찬을 하듯 인사를 주고받는 게 전혀 공감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하다고도 했다. 콜센터 직원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당연히 빈말이고 음식점에서 '어서오세요'하고 인사하는 건 수익의 대상, 즉 고객이기 때문이고 잘해주는 사람은 무언가 원하는 게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프롤로그 4쪽)

저자는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살면서 받았던 배려가 모두 갑과 을에 의해 약속된 태도일 뿐이며 착한 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콜센터에 전화했을 때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좀 오버라고 생각했다. 언제 봤다고, 아니 본 적도 없는데, 아무한테나 그런 말을 하지는 말지,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콜센터 전화해서 제일 먼저 그 말을 들었을 때였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부터 내 마음은 쑥덕쑥덕 말이 많아진다. '수단이긴 하지'와 '그러면 음식점에서 인사조차 안 하면 어쩌라고?' 같은 생각과 함께 엄청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착하게 산다는 건, 욕심나는 순간에 타인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건, 그 순간은 속상할지도 모르지만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는 그렇게 손해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착한 일을 했을 때의 뿌듯함과 따뜻함은 착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평생 모르고 살아갈 보람과 꽉 찬 다정함 같은 것. 욕심인지 몰라도 착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7쪽)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된다. 1장 '착한 사람', 2장 '그래서 착하게 살아갑니다', 3장 '그래도 착하게 살아갑니다'로 나뉜다. 착한 척하지 않고 호구도 되지 않게, 현실적 착함, 착한 척하다 지친 거잖아, 인생은 노력에 약간 비례하는 랜덤 선택일 뿐, 착한 사람과 쉬운 사람의 차이, 스스로를 착한 눈으로 바라보자, 착한 사람을 착하게 대할 용기가 있는가?, 나의 착함이 타인에게 주는 기회, 옳은 선택 말고 좋은 선택, 거절만 잘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착하게 살아야 한다 착한 척이라도 하자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심지어 요즘은 이렇게 마음이 고운 사람을 '착하다' 하지 않고 '호구'라고 부른다. 착한 사람을 너무 쉽게 호구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도 하고.

"네가 그렇게 착하니까 너를 호구로 보는 거야" (24쪽)

요즘은 착한 사람은 호구 취급을 하는 게 당연한 듯 되어버려 이 책을 통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보는 것도 영 어색했다. 아무래도 착한 사람은 사라졌나보다. 그래도 '호구님은 도대체 언제부터 활동하셨는지, 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신다'와 같은 말을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그 마음을 함께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긴 요즘에는 착하다는 것이 칭찬 같지 않고 '바보'나 '멍청이'와 동의어 같다. 그래서 비비 꼬인 부분에 대해서도 이 책을 읽으며 짚어보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좀 더 넓고 크게 착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착한 사람에게 착한 마음이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자신도 불편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다. (25쪽)

착한 사람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있지만 무언가에 가려져 숨어 있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착한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착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착한 사람의 편에 서서

착하고 따뜻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는

작지만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155쪽)



나쁜 사람이 되기보다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렇다고 호구가 되기는 싫은, 적당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리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착하다는 것에 더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생각했던 '착하다'의 개념을 넓히며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한다.

꼭 착해야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재밌는 사람도,

잘 들어주는 사람도,

매력 있는 사람,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기억된다. (176쪽)

기존의 고정관념과 함께 그것을 깨보기도 하고, 갖가지 생각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에세이다.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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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아
채희선 지음 / 부크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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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조회수 1억 2천만 유튜버 채채TV 채희선 에세이.' 그렇다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만큼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 나도 그 매력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살짝 책 뒤표지에 있는 글을 보니 이 책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토닥토닥 나를 토닥여주고 힘을 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내 인생, 어떤 일이 펼쳐져도 오히려 좋아!

어제 넘어지고 오늘 멈칫했어도 내일은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을 테니까.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고민했지만, 결국엔 알 게 뭐야.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은 바로 어제의 내가 모인 오늘의 나인데. (책 뒤표지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오히려 좋아』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채희선. 콘텐츠가 좋다는 이유로 MC, 모바일 쇼호스트, 유튜버, 1인 미디어 강사,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생, 수필작가로 활동 중인 자칭 건강한 또라이. 지금까지 유튜브 채널 '채채'에서 1억 2천만 조회수를 달성하며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전했고,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하고자 한다. 기쁘고 슬플 때마다 눌러 썼던 나의 문장이 당신의 하루에 위로를 건네고 힘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날개 중에서)

그런데 살다 보니 나쁜 일이 있으면 곧바로 뒤이어 좋은 일이 저를 깨우더라고요. 나쁜 일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으면 '야, 정신 차려! 옜다 긍정!'하고 좋은 일이 계속 나타났어요. 나쁜 일 이후에는 무조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규칙을 경험하고 나니까, 이제는 나쁜 일이 일어나면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해요. 다음에 어떤 좋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길래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거지? 라고요.

여러 길에서 넘어져 본 저는 이제 어떤 길이든 잘 달려나갈 수 있고, 많이 울어 본 저는 웃음이 소중해서 남들보다 더 크게 웃을 수 있어요. 인생은 매 순간마다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내 인생, 어떤 일이 펼쳐져도 오히려 좋아!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슬픔을 갈고 닦아 웃음을 만드는 감정 연금술사(16쪽)'라고 말이다. 무조건 긍정긍정의 글들이 아니라, 웃음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근원에 담긴 우울과 슬픔까지 담겨 있어서 더 힘을 얻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마음에 콕 들어온다. 소소한 일상에서도 남다른 시선으로 건져낸 의미를 전해 들으니, '나는 이렇게 생각 못 했었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구나' 느끼면서 무언가 힘을 얻는다. 긍정 에너지를 전달받는다. 힘이 난다.

뽑기를 하면 '다음 기회에'라는 말이 쓰여 있을 때도 있다. 비슷한 의미로 '꽝'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왕이면 '다음 기회에'라는 말이 더 좋다. 어찌 됐든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당첨이 될 거라는 기대감,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희망의 뉘앙스가 좋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평생 뽑기를 반복해야 한다. 인생 뽑기에도 1등이나 당첨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꽝'도 있다. 우리들 인생에는 '꽝'보다는 '다음 기회에'가 많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여러 선택이 '꽝'이라면 슬프고, '다음 기회에'라면 씩씩하게 뽑기를 또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24쪽)



포도알 스티커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처럼 그날 그날 셀프 칭찬을 하며 포도알 스티커를 채우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는 다른 데에서도 들어본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거기에 대한 의미를 짚어주니 더욱 특별해 보였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평범하고 소소한 포도알 하나에 불과한 일상이지만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들이 모여서 삶이라는 포도송이가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아침부터 밤까지 해 온 모든 것들은 이미 하나의 포도송이로 완성되었는지도 모른다. (76쪽)



당신이 넘어졌다면 혹은 지금까지 많이 넘어져 봤다면, 많이 넘어진 사람은 어떤 길도 잘 갈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이든, 다음에 펼쳐질 길에 희망을 품고 걸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지금의 길은 어찌 됐든 지나가는 길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이 길을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268쪽)

이 책을 읽다 보면 마냥 긍정 만인 것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진한 긍정이어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오호라', '어허' 등등 감탄사가 나오며 문득 마음을 쿵 치고 들어오는 문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일단 펼쳐서 보면 첫인상과 느낌이 좀 달랐다. 처음에는 가벼운 힐링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법 묵직하고 든든하다. '오 ~ 요것 봐라!' 느낌이랄까. 그냥 고만고만한 국물 맛 생각하고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는데 제법 진한 진국임을 깨달았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오~'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일상 속 소소한 단상에서 시작해서 마무리가 깔끔하게 전달되어 메시지가 담긴 글이다. 문득 펼쳐들어 읽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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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은 파란색으로 기억된다 - 예술과 영감 사이의 23가지 단상
이묵돌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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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감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감에 대해서는 일반인으로서 로망이 있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언급해 보자면, 예술가들은 "오, 나 영감 받았어"라면서 갑자기 일필휘지로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고 그러는 장면은 천재 예술가라면 능히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도 적어도 천재 예술가라면 그런 식으로 뚝딱 뚝딱 길이 남을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내게 있어 영감이란 번개처럼 '쾅'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것이 아니라 -이건 상상해보면 좀 아프다- 스웨터를 입고 벗을 때 나오는 전기 따위로 전지를 충전하는 일에 가깝다. 언젠가 하루키가 언급했듯 '서랍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것'이다. 더구나 언제 어디서 받은 영감이 어떤 글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 시점에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짧게는 몇 주나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러고 보니 그땐 그랬군' 하고 문뜩 떠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류의 영감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느낀 영감 비스무리한 것들을 글로 정리해봐도 꽤 재미있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10~11쪽)

이 책 《천재들은 파란색으로 기억된다》를 읽으며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을 엇비슷한 눈높이로 마주하는 법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이묵돌. 이씨 성은 본관이 영천인 어머니의 성을, 묵돌은 흉노족 족장의 이름을 땄다. 굳이 그 의미를 찾아보자면 몽골말로 '용기 있는 자' 정도가 된다. 다수의 소설, 시집, 수필집 등을 썼다. (책날개 발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 보고 기억하는 것들, 더 잘 알고 싶은 것 -에 대해 조금씩 기록해놓을 작정으로 짧은 글을 정리해 올리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인물 23인을 테마로 삼아 기묘한 기전체 스타일의 책을 내게 된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곳에 수록된 글들의 원제목은 《영원에 관하여》였다. 여기서 '영원'이란 영감의 원천을 두 글자로 줄인 것이고, 뭇 수완 없는 예술가들의 명목상 통장 잔고이며, 그 대가로 말미암은 창작의 수명이다. (13쪽)

이 책에는 도스토옙스키, 쳇 베이커, 미켈란 젤로, 윤동주, 스탠리 큐브릭, 스콧 피츠제럴드, 마일스 데이비스, 서머싯 몸, 오타니 쇼페이, 카라바조, 렘브란트, 클로드 모네, 어니스트 헤밍웨이, 빌 에반스, 마틴 스콜세지, 무라카미 하루키, 데이브 샤펠, 제인 오스틴, 토리야마 아키라, 프리다 칼로, 에밀 졸라, 존 레논, 이창호 등 총 23인이 소개된다.




이 책은 특이하다. 주변에 그런 지인 하나쯤 떠오를 것이다. 술 마신 것도 아니고 물만 마시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를 해나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추임새처럼 들어가는 비속어 단어가 영 걸리기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말 다 빼고 바른말만 예의 갖추고 다소곳하게 한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말이다.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비속어에 철컥 걸린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이 책을 통해 모르던 사실을 얼마나 많이 알게 되었냐, 핵심을 잘 짚어봐라, 등등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도 꼰대가 되어버리는 느낌도 든다.

저자는 눈치 안 보고 거침없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것을 글로 남기다니 엄청 당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그 말투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 책이다. 그리고 그렇게 읽다 보니 진솔하게 속을 확 털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얼마나 남다르게 특출난 인물이었는지 올려다보기보다, 엇비슷한 눈높이에서 인사하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나는 배웠다. 그제나 이제나 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그들과 나는 함께 교무실에 끌려가는 느낌으로, 담뱃값이 아까워 꽁초를 찾는 기분으로,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가 하루 만에 관둬버린 자괴감 같은 것으로도 연결될 수 있었다. 내 이런 시도가 우리 세대에게 자그마한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안 쓰니만 못한 문장은 접어두기로 하고, 제각기 염병할 삶으로 돌아갈 때는 책 한 권 결제에 아까워하지 않는 쿨한 독자가 되어 있기를 희망해본다. (310쪽)

말이 짧다? 왜 그런 단어를 쓰지? 왜 이렇게 비아냥거리지? 등등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이 책에 실린 '예술과 영감 사이의 23가지 단상'에 주목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풀어놓을 작가가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엔 '뭐지?'라는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하나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며 흥미롭게 끝까지 읽어나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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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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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유를 이야기하기도 좀 민망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기를 잠깐, 곧 절판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때로는 이런 단순한 이유로 책을 읽더라도 괜찮다. 어떻게든 책과 만나는 건 엄청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설을 일상에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 그래도 바쁜 일상에 소설을 들이는 것은 큰맘 먹고 해야 할 일인 데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만나면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가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빠져나오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내가 소설을 읽을 때에는 기대 없이 우연히 툭 펼쳐들었다가 마음에 훅 치고 들어오는 경우에 뿌듯하다. 이 책도 다행히 그랬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도박 이야기인가 하여 관심이 덜 갔는데, 막상 책장을 펼쳐 드니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통해 잘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인 '자이니치'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보고 생각에 잠긴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장장 30년의 세월이 걸린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 《파친코》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나라 잃은 유랑의 후예로서 뼈아픈 학대를 무릅쓰고 피어난 처절한 망국민의 애처로운 역사 《파친코》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책의 저자는 이민진. 한국계 1.5세대로서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명성이 자자한 이민진은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지내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 1970년대 중반에 이민을 결행했다.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던' 가난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민진은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런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녀는 기업변호사로 일하며 한인 이민 사회의 성공 모델로 성장했다.

하지만 B형간염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잘나가던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고교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민진의 소설적 뿌리는 이민이라는 소재를 자양분으로 뻗어나간다. 막연한 호기심만 품고 있던 재일교포에 대해 직접 알게 된 계기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난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도쿄의 금융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그녀는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하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소설 《파친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책날개 발췌)



고향은 이름이자 강력한 말이다.

마법사가 외우는, 혹은 영혼이 응답하는

가장 강력한 주문보다 더 강력한 말이다.

-찰스 디킨스

가장 먼저 고향 이야기가 나온다. 1910년부터 1949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산의 작은 섬, 영도라는 공간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해하면서 읽어나간다.

이 책의 책날개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이 부분을 읽고 보면 본격적으로 작품의 내용에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소설 《파친코》는 내국인이면서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이민진의 혼이 담긴 이 대작은 그녀가 1989년 예일대 재학 시절 참석한 강의에서 느낀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다 자살한 어느 일본 중학생의 이야기는 선천적인 이유로 상처 받아야 하는 이들에 대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분노와 슬픔에서 탄생한 소설 《파친코》는 단순한 도박 이야기가 아니라, 멸시받는 한 가족이 이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투쟁적인 삶의 기록이며 유배와 차별에 관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부산 영도의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핏줄의 역사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일본에서 가혹한 차별과 가난을 견디면서 이방인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도전에 맞서 살아간다. 이들은 정체성에 관한 의문과 끊임없이 마주하면서 필사적인 투쟁과 힘겹게 얻은 승리를 통해 깊은 뿌리로 연결되어 하나가 된다. (책날개 중에서)



역사가 우릴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11쪽)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만만치 않은 현실이라 생각되며, 어쩌면 생각보다 더 처절하리라 여기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그 시절의 삶을 눈앞에서 보듯이 읽어나간다. 굶주림과 차별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안쓰럽고 먹먹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읽어나갔다. 그들의 처절한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소설은 나를 그 상황에 몰아넣고, 나라면 어떤 삶을 살아낼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단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67쪽)

얼마나 현장감 있게 표현을 했는지 내가 그 시대를 살고 나온 것 같았다.



이 책은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힌다. 몰입도가 뛰어나다. 두 권짜리 두꺼운 소설이라고 해도 읽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게 들 것이라고 계산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몰입하면서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일단 이 책은 소재 자체가 꼭 짚어보고 들여다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새로이 알아가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2권까지 한달음에 달리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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