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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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나 그 책 별로였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그때는 왜 별로였지? 이렇게 괜찮은데……. 정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 말이다. 그때의 나도 나, 지금의 나도 나인데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른 건지?

소설 중에는 특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그렇다. 그동안은 나에게 극과 극의 느낌을 주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와 맞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그 시기를 잘 맞추어 만나면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이 나의 시간대와 잘 맞아떨어진 듯하다.

옮긴이의 말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는 유독 일상의 범주를 벗어난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것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더 나아가 '이것도 뭐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니, 매번 당황스럽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로서의 능력이 얄미우리만치 부러울 따름이다. (314쪽)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나 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나 보다.

그리고 이 책은 2008년 3월에 초판 1쇄를 발행했는데, 이번에 2022년에 개정판 1쇄를 발행한 것이다. 그 당시에 이 책을 읽었는지 읽다 말았는지 건너뛰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볼 기회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제목부터 일상적이지만 독특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에쿠니 가오리,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3),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 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책날개 저자소개 전문)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단편소설집이다.

러브 미 텐더, 선잠, 포물선, 재난의 전말, 녹신녹신, 밤과 아내의 세제, 시미즈 부부,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기묘한 장소 등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는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후에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데, 여기에 실린 아홉 편 가운데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소설의 뒷이야기입니다. 「포물선」은 처음으로 문예지에 소개되어 기쁨을 주었던 소설이고, 「선잠」은 그림이 많이 실린 문예 무크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313쪽)




첫 작품은 짧고 강렬하다.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혼'이라는 단어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다니 참신한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그런데 '어,어,억'하면서 한 작품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는 독특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라는 생각 말고, '이런 사람들도 다 있군'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동조한다. 그렇게 그들의 생각에 들어가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인간과 불량한 인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간.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미치도록 선량을 동경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불량에 이끌리고, 그리하여 결국, 선량과 불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평생 선량을 동경하고 불량에 이끌리면서 살아간다. (61쪽, 「선잠」 중에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반짝반짝 빛나는』 소설의 뒷이야기라고 하여 더욱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보통은 소설 하나가 끝나면 그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끝나고 말지만, 그 인물들을 제대로 살려낼 사람은 그 소설을 쓴 작가뿐이니, 더욱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이 책은 1989년부터 2003년까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쓰인 단편들을 한 권으로 묶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묶어놓았느냐도 감상의 느낌을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그녀만의 작품이라고 느껴지는 단편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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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음, 송이루.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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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것을 좀 알고자 이 책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선택했다가 두 가지에 놀랐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시작해야겠다.

첫 번째로는 이 책의 인기.

2022년 6월 1일에 초판1쇄를 발행했는데, 6월 17일에 초판 14쇄를 발행했다. 오우~ 인기가 상당히 있는 책을 선택했다는 점에 뿌듯하기를 잠시,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하다. 그것이 두 번째 놀란 점이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이 책의 10페이지에 보면 '이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1. 이 책을 쓰면서 완본과 요약본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주요 내용을 굵은 글씨로 강조해서 둘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요약본을 읽고 싶으면 굵은 글씨로 된 부분만 읽기 바란다. 아니면 전체를 다 읽으면 된다. (10쪽)

2. 또한 독자들이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법칙은 앞에 붉은 원으로 강조하였고 굵은 글씨를 사용했다. (10쪽)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읽기 시작하면, 부담스러운 무게감을 덜고 훨씬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레이 달리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원칙》의 저자이자, 세계 경제와 시장을 연구하며 반세기를 보낸 전설적인 투자자.

《변화하는 세계 질서》는 역사상 가장 격동했던 경제 및 정치적 시기를 조사해 전 세계의 미래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를 밝히고, 변화하는 세계 경제 및 정치 질서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몇 년 전, 레이 달리오는 그로서는 처음인 일련의 거대한 현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관찰했다. 막대한 빚과 제로금리로 인해 전 세계 3대 기축통화국이 엄청난 양의 화폐를 발행하는 현상 등이었다. 레이 달리오는 역사상 이런 격동기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500년간의 역사를 통해 세계 주요 국가들의 성공과 실패를 이끈 '빅 사이클'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레이 달리오는 미래의 시대가 지금까지 경험해온 역사와 비슷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변화의 배후에 있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힘을 드러내고,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경제의 격동기를 조사하여 '빅 사이클'을 보여주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실용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100여 년 이상 가장 큰 부, 정치, 가치 차이로 인한 세계, 특히 미국 내에서의 큰 정치적, 사회적 갈등도 다루고 있으며, 기존 세계 강대국(미국)과 새로운 세계 강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도 포함되어 있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세상의 작동 원리' 2부 '지난 500년간 세상의 작동 원리', 3부 '미래'로 나뉜다.

1장 '빅 사이클 개요', 2장 '결정 요인', 3장 '통화, 신용, 부채, 경제 활동의 빅 사이클', 4장 '통화 가치의 변화', 5장 '내부 질서와 혼란의 빅 사이클', 6장 '국제 질서와 혼란의 빅 사이클', 7장 '빅 사이클로 판단하는 투자', 8장 '지난 500년의 요약', 9장 '빅 사이클로 본 네덜란드제국과 길더화의 부상과 쇠퇴', 10장 '빅 사이클로 본 대영제국과 파운드화의 부상과 쇠퇴', 11장 '빅 사이클로 본 미국과 달러화의 부상과 쇠퇴', 12장 '빅 사이클로 본 중국과 위안화의 부상', 13장 '미·중 관계와 전쟁', 14장 '미래'로 나뉜다.



이 책은 굵은 글씨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만 읽어도 요약본을 읽은 효과를 주는 것이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든다.

굵은 글씨로 강조된 부분은 요약본을 읽은 효과를 주며,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도 챙겨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에 독서를 훨씬 수월하게 해준다.

게다가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를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니 더욱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를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과거 같으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무언가를 더 이루겠다고 혼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의 작동 원리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지난 500년간을 다룬 알기 쉬운 이야기를 통해 과거에 발생한 일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금 '반복'되는지 독자들과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30쪽)

이런 이야기를 알고 이 책을 접하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꽤나 두꺼운 책인데 재미있는 편이다. 방대한 근거 자료는 물론이고, 도표나 과거의 구체적 사례 같은 것이 포함된 종합적인 방식을 원하는 독자라면 웹사이트에 가서 이 책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도 두껍지만 이 책이 전부가 아니며, 더 많은 근거 자료가 있으니 궁금하면 함께 더 보며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미래에 관해서 어떻게 대처할지 그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나는 과거에 대한 추론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논했지만, 내가 모르는 것을 바탕으로 인생과 시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것은 아마도 더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가능성을 파악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 생각한 다음 극복할 수 없는 시나리오를 제거할 방법을 찾아라. (571쪽)



지난 500년의 역사를 견인한 인과 관계와 그것이 현재 어떻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에 대처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그의 설명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올해의 가장 중요한 책일 것이다. 꼭 읽어야 할 책.

-아리아나 허핑턴

처음에는 굵은 글씨만 읽으려고 했으나, 이 책을 일단 집어 들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속도를 조절하며 읽어나간다. 굵은 글씨는 천천히 짚어보며 읽어나가고, 다른 부분은 속도를 좀 내면서 읽게 된다.

좁은 곳만 바라보던 시야를 확장시켜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저자가 건네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니 많은 것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특히 미래 부분까지 달려가며 '이 모든 것을 혼자만 알려고 하지 않고 누구든지 공유하도록 이끌어주니 참 고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폭넓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경제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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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신예희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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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니 문득 약간 뭉클하고 서럽고 오묘하고 그렇다. 나도 약간의 타령 비슷한 걸 하고 싶어졌다.

나도 한때 여행을 꿈꾸며 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작 무렵만 해도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여행 떠날 수 있는 기회도 곧 오겠지~ 생각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파리에 한번 가볼까' 생각했다가, 때마침 검색해 본 항공권이 엄청 저렴했고, 그렇게 예약해서 다녀왔던 그때의 그 여행이 해외여행의 마지막이었으니…….

내가 꿈꾸던 즉흥여행을 실행에 옮긴 게 그때였는데, 아, 그전의 여행도 참 좋았는데, 아득한 먼 옛날, 아니 전생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그냥 책을 읽으며 이 타령에 동참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아, 나도 그랬는데…. 그때 좋았지. 나 때는 말이야 등등 제대로 라떼 타령도 해보고, 기억을 더듬으며 여행을 떠올려본다.

"여행 썰을 풀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구글 지도를 열고, 이 모든 게 끝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표시해본다." (책표지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신예희.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책날개 중에서)

쌓이고 쌓여 사리가 될 지경이라 일기라도 써보기로 했다.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잔뜩 쓰고 나면 속이 좀 풀리지 않을까? 워드 프로그램의 빈 문서를 열어놓곤 하소연이나 다름없는 문장을 마구 뿜어냈다. 한두 장쯤 쓰면 적당히 마무리되겠지. 그런데, 어라? 냅다 시작된 글이 끝날 줄을 모르고 술술 풀려나온다. 끝내야 할 마감이 있는데도, 한참 작업하던 책 원고가 있는데도 못 본 척 슬쩍 미뤄놓곤 정신없이 글을 썼다. '여행'이란 2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할 말이 너무 많았다. 내 속 어딘가에 이야기가 웅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서어서 꺼내주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6쪽)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여행'이라는 2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를 시작으로, 1부 '낯선 곳에서는 사소하지 않은 용기가 생긴다', 2부 '그곳이 어디든, 난 내 삶을 잘 살고 싶다'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나는 내내 여행을 생각했다'로 마무리된다.



첫 이야기는 기내식부터 시작된다. '기내식 카트가 다가올 때의 그 기다림, 정말 길지. 그래서 나는 채식 메뉴를 미리 신청하고 갔지.' 이러면서 읽는다.

언젠가 인도행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채식메뉴를 주문해서 받은 사람들이 먼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면서 '먹는 거 쳐다보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흘끔흘끔 군침흘리며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아예 채식 메뉴로 신청하고 갔다. 단지 밥이 빨리 나온다는 점에서.

하지만 베지테리언식은 아침 메뉴에 오믈렛을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으니…. 아참, 아이스크림도 안 주려는 걸 괜찮다고 하면서 받기도 했다.

그리고 호기심에 힌두교 식사를 신청했다가 난생 처음으로 강하고 낯선 향 때문에 남기고 말았다. 저자는 그저 호기심에 유대교 식단을 신청해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맛은, 음, 좋은 경험이었다.(17쪽)'라고 한다. 무척 반갑게 리액션을 뿜어내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통통 튀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나도~'를 외치며 내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너도나도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여행 이야기도 꺼내들며 회포를 풀 수 있겠다.



기내식부터 공항에서 숙소까지, 짐 꾸리기, 여행의 취향, 기록, 혼자 하는 여행과 동행인이 함께 하는 여행, 책 이야기 등등 들려주는 이야기에 쉴 새 없이 동조하며 읽어나간다.

또한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하게 내뱉는 이야기에 '우리 끼린데 뭐' 하는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요즘 나의 관심은 책이니 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는다. 여행에 가져갈 책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 우선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책은 집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읽기 싫다. 아마 수감 중이어도 그럴 것 같다(겪어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심각하게 재미있는 책은 또 그 나름대로 곤란한데, 왜냐고요? 도에 지나치게 재미있는 나머지 읽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지기 때문이다. 후루룩 뚝딱 한 권이 끝나버린다. 여행 초반에 가져간 책을 다 읽어버리면 큰일이다. 남은 시간은 뭘 하라고! 게다가 책 내용에 몰두하느라 여행이고 나발이고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추리소설만 잔뜩 챙겨갔다가, 숙소에서 밀실 살인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재미는 재미대로 있으면서 읽는 속도는 너무 빠르지 않을 만한 책이 좋겠네요. 그런데 그런 책이 과연 있을까요? (165쪽)

아 그러고 보니 전자책. 이제는 전자책이 있으니 책의 무게 같은 것은 상관이 없겠다. 이런 거 보면 나도 옛날에 여행을 즐긴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다는 기적, 그러고 보니 지금껏 여행을 떠났다가 집까지 무사히 와서 잘 살아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기적이다.

난 사실 여행 전에 책상이든 방이든 어디 한 군데 어지럽혀놓고 출발하곤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직접 치워놓을 수 있도록.

무언가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면 불안한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날 때 두근거렸던 것은 어쩌면 겁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보험이란 현대인의 샤머니즘이니까.(198쪽)' 그 말처럼 여러 장치를 해놓았고 무사히 다녀왔고, 지금은 그런 기억도 희미해져버렸지만,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리라 꿈꾸고, 여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뭉클한 그런 시간을 보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내내 여행을 생각했다. 이 모든 게 끝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꼽아보았다. 좋아, 여기에선 이걸 하고, 이걸 먹을 거야. 저기에도 가야지. 정말 정말 재미있게 놀 거야. 구글 지도를 열어 그리운 장소를 살살 훑어 나가기도 했다. 즐겨찾기에 등록해 초록색 별표가 생긴 곳들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즐거워했다. 아휴, 이 골목 기억나. 이 가게 정말 귀여웠다고. 물론, 모두 여전한 건 아니었다. 길어진 팬데믹 때문인지 폐업을 선언한 가게도 여럿이었다. 클릭 한 번이면 즐겨찾기를 삭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장은 힘들어도 곧 다시 문을 열 거라고 생각해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우리 모두 그리운 장소에서, 꿈꾸던 장소에서, 곧 다시 만나요. (203쪽)

여행을 떠올릴 때에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말이다.

그럴 때에는 여행에세이를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여행 '타령' 에세이도 괜찮겠다.

오히려 여행하면서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 나의 여행은 어땠는지, 기억을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해서 더 읽는 맛이 있었다.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될지 알 길은 없지만, 지난 여행을 떠올리는 것은 당장이라도,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 한참을 생각에 잠겨본다. 꽤나 괜찮은 시간을 선사해 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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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아이온총서 1
박인성 지음 / 경진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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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는 늘 호기심 대상이었다.

내가 읽어보았을 때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이 화두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들 하지 않던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언젠가의 나는 그 화두를 듣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지 않을까.

사실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그냥 궁금했다. 그리고 이렇게 화두를 모아서 책에 담았다고 하니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현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화두를 해설하는 방식이 궁금했으니, 결국 이 책을 소장하고 읽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조 선사의 화두 7칙, 남전 선사의 화두 10칙, 조주 선사의 화두 82칙을 붓다가 양 극단을 타파하는 방식과 현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화두를 해설하는 방식에 의거하여 해독하다. (책표지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며 화두를 접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박인성.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고,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명예교수이다.

이 책만의 장점과 필요성은 책 뒤표지에 있는 글을 보면 인식할 수 있겠다.

불교는 크게 중관, 유식, 인명 등의 인도불교와 선, 화엄, 천태 등의 중국불교로 나뉠 수 있다. 이 두 유형의 불교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중국불교 중 선불교는 차이 그 자체를 활구를 통해 철저하게 드러내려 했기 때문에 다른 중국불교와도 사뭇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차이 그 자체를 철저하게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선불교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과 가깝다. 들뢰즈가 그의 저서 『의미의 논리』에서 신라의 파초혜청 선사의 화두를 다루고 있는 데에서도 선불교와 들뢰즈 철학의 친연성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책 『화두』에서 필자는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에서 전개되는 들뢰즈의 언어철학이 선사들의 화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참조하여 『선문염송집』에 실린 화두 중 마조, 남전, 조주의 화두 99칙을 해독하여, 선사들이 양 극단을 타파하는 붓다를 따라 심원한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또, 이 책은 때로는 활구, 사구, 방행, 파주 등 선불교의 용어를 써 가며, 때로는 무의미, 의미, 사건, 대사건, 수렴, 발산 등 질 들뢰즈의 용어를 써 가며 조주의 화두를 중심으로 99칙의 화두 하나하나의 독특한 성격을 밝혀놓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고대 인도의 붓다에서 중국 당송대의 선사들로, 중국 당송대의 선사들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로 가는, '차이의 철학'의 계보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책 뒤표지 전문)

한 번만 보아서는 모르겠고, 그렇지만 각종 책에서 조금씩 접하던 화두를 한꺼번에 한 권의 책에서 접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이 책에는 마조 선사의 화두 7칙, 남전 선사의 화두 10칙, 조주 선사의 화두 82칙이 수록되어 있다.

99칙의 화두가 한 권의 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한꺼번에 읽어나가려면 다소 난해할 수 있겠다. '뜰 앞의 잣나무'라든지, '죽을 먹었는가?' 등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책을 읽어나가다가 만나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담긴 화두들을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부담 없이 이야기만 일단 읽어보아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중 한 가지만 언급해 보아야겠다.

뜰 앞의 잣나무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뜰 앞의 잣나무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언제 부처가 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허공이 땅에 떨어질 때이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허공이 언제 땅에 떨어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잣나무가 부처가 될 때이다." (259~260쪽)

단순히 언어에만 휘말리지 말고 그 의미를 파악해본다. 의미가 막연하니 해설을 읽어보며 조금은 이해의 폭을 넓혀본다.

저자는 유사한 공안들이 보여 처음에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해독할까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하면 어떤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순서대로 해독해 나가는 방향을 택했다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그렇게 했기에 순서대로 읽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자칫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잘 간파하여 수록하였기에 읽어나가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소장해두고 또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화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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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살자 - 더 열심히 놀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법
노선경 지음 / 떠오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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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다르게 말한다.

'열심히 일한 만큼 열심히 놀자'라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

일단 열심히 인생을 조져놓아야 열심히 살 수 있다.

행복한 방탕을 즐기고 나서야 비로소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연료를 얻게 된다. (책날개 중에서)

일리가 있다.



이 책의 소제목들만 보아도 무언가 시원시원하다. 돌직구 발언이다. 센언니 느낌이라고 할까.

노는 것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 제 장래희망은 '미친년'입니다, 일단 인생을 조져놓자, 더 열심히 놀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법,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차는 '고장 난 차'이지 '잘 달리는 차'가 아니다, 보장된 미래라는 허황된 말,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놀아도 멋있어 보이는 10가지 방법 등 제목만 보아도 산뜻하다.

그리고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니 남 이야기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바쁠 때 오는 특유의 우울감이 있다.

산더미같이 쌓인 일을 보고 있자면 방탕하기만 한 내가 과연 이 일을 끝까지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 이 일을 수행할 만큼의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마저 든다. (책속에서)

아니, 이 느낌은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방탕한 사람이나 누구나 쌓인 일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조금 더 완벽하고 싶고, 완벽할 때 해야겠다고 미뤄둔 일들이 있고, 그게 잘 안되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등등등.

우리는 어쨌든 인생에서 만족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짤막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임팩트 있게 들려주고 있다. 시원시원한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에 미쳐보았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해본다.

미친 듯이 일하며 놀기를 반복하는 이게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제대로 놀 줄 아는 나이기에, 무언가에 빠질 때는 미칠 줄도 아는 나였다.

노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준비단계 같은 것이었기에. (17쪽)

이왕이면 놀아도 멋있어 보이도록 신나게 놀자. '놀아도 멋있어 보이는 10가지 방법'을 하나씩 짚어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다.

놀아도 멋있어 보이는 10가지 방법

  1. 노는 것에 대한 나만의 신조를 가진다.

  2. 노는 것을 절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 애매하게 놀지 않는다.

  4. 할 일은 또 열심히 한다.

  5. 법을 어기지 않는다.

  6. 남에게 피해를 주며 놀지 않는다.

  7. 노는 것과 회피를 잘 구별한다.

  8. 노는 것에도 배울 게 있다는 걸 기억한다.

  9. 늙어서는 할 수 없는 놀음을 택해 논다.

  10. 그 추억을 절대 잊지 않는다. (122~123쪽)



정말 우리는 휴식이 중요한 것을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알면서도 잘 놀 줄을 모른다. 무언가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하고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오히려 그런 시간이 필요한 데 말이다.

그래서 노는 것, 휴식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 무언가 열심히 하자는 것과는 또 다르게 중요한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차는 '고장난 차'이지 '잘 달리는 차'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본다.

그냥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경험한 데에서 느낀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더욱 호소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열심히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방황하는 청춘이라면 삶의 방향 전환을 해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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