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블랙북 - 여행스토리가 있는 아티스트 컬러링북
손무진 지음 / 글로세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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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이 유행을 탈 때, 색연필과 책자를 세트로 마련하여 한동안 색칠삼매경에 빠져 지냈다. 색칠공부는 어린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색연필을 쥐고 빈 공간을 채워가는 동안,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기분이 상쾌하게 변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후련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머릿속이 정리되며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복잡했던 마음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개운하게 결론내기도 했다. 무작위로 그림에 색칠을 더하다보니 이제는 살짝 욕심이 났다. 내가 칠하고 싶은 작품에 손을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이 여행이라는 스토리가 덧입혀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찾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 블랙북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호기심은 책장을 열자마자 책날개에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일급비밀'이란 뜻을 지닌 '블랙북'은 작가적 의미로 '작업초안 에스키스 및 스케치'를 뜻합니다. 

 

 

 

이 책을 보기 전과 후의 내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책소개만 보았을 때에는 마음껏 칠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책을 소유하고 보니 손을 대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 관한 글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다. 여기에 색칠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여행 스케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아직 색칠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그림을 보면서 무한대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어느 색상을 선택해서 칠하고 나면 감흥이 반감되리라는 느낌은 도대체 무엇인지. 어쨌든 이 책을 펼쳐들면 기분이 좋다. 글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위의 세 그림은 작가가 직접 색칠한 것이다. 그렇게 살짝만 칠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을 직접 보게 된다. 그동안 색연필을 집어들고는 꼭 전체적으로 색칠을 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생각을 바꿔야겠다. 포인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컬러링 TIP 이렇게 해보세요.

-발색도에 따라 대비를 주면서 명도와 채도를 조절해 주세요.

-아크릴, 과슈, 수채화, 색연필, 파스텔 등 자유롭게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보세요.

-입체감 있는 표현을 위해 명암이 들어간 드로잉에는 단순한 투톤으로 채색해 보세요.

-전체 캔버스를 다 채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세밀한 묘사를 강조하기 위해 포인트를 정해 부분적으로 채색해 보세요.

 

도움이 되는 컬러링 팁이다. 포인트를 딱딱 짚어주는 느낌이다. 좀더 자유롭고 창의력 있는 작품을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창조적인 에너지를 전달받는 느낌이 들고, 직접 스케치북을 펼쳐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무수히 많은 병들이 품은

제각각의 맛과 향.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

당신만이 가진 그 무엇이 있나요? (책 속에서)

 

그림 옆에 짧은 글귀에도 눈이 간다. 글이 함께 있어서 그림이 더 돋보인다. 글자가 많지는 않아도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전체적으로 이런 짧은 글들이 여행을 가고 싶게 하고, 여행을 가면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고 싶도록 유도한다. 이 책의 작가 손무진은 아프리카 4개국, 유럽 14개국, 남미 5개국, 동남아 4개국, 호주,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느낀 감정과 경험을 자신만의 감성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페인팅 작가라고 한다. 컬러링북이 아니라 다양한 여행지를 담은 책을 출간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색칠하기보다는 바라보고 싶고,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도심 속에서도 충분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나온 산토리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하얀 벽과 파란 지붕, 푸른 하늘이 잘 어우러지도록 색칠하면 뿌듯할 것 같다. 색상을 상상하는 것도 꽤나 괜찮은 시간이다.


 

 

 

팔딱 팔딱 뛰는 생선들, 상상은 되는데 직접 칠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상상과 현실이 많이 다르리라 생각된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그만큼 그려보고 싶은 곳도 많다. 얇은 책이지만 상상 속의 여행을 꿈꾸게 해주는 힘이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꽤나 긴 프로젝트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일단 펼쳐들면 두근두근 설레게 된다. 지금껏 접했던 어느 컬러링북보다 내 마음을 들뜨게 하는 책이었다. 컬러링북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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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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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에 미리 스토리를 알고 읽는 것만큼 김빠지는 일은 없다. 스포일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소설이 있으면 되도록이면 책 정보나 서평을 읽지 않는다. 그래야 소설의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제목에 있는 '고양이'와 '여행'이라는 단어, 사랑스럽게 고양이를 안고 있는 표지 그림이 읽기 전에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고양이와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었고, 고양이의 입장에서 이야기 전개가 되기에 흥미롭게 몰입하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라고 말씀하신 훌륭한 고양이가 이 나라에 있었다고 한다. 그 고양이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르지만, 이름이 있다는 점 하나만은 내가 그 고양이를 이겼다고 본다. 물론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여부는 별개 문제다. 내 이름은 성별과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6쪽)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첫 문장에 나오는 말을 시작으로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차장에 서있는 은색 왜건 보닛 위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는 길고양이는 사토루가 주는 간식을 먹으며 지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토루는 길고양이를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몸이 나을 때까지 그의 방에서 지내도록 해주었다. 다시 길고양이로 돌아가려는 찰나, 교통사고의 트라우마는 둘 사이를 이어주었다.

"너, 내 고양이가 될 거야?"

그래. 그렇지만 가끔 산책 정도는 같이 가자.

이렇게 나는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었다. (17쪽)

 

사토루에게는 '하치'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얼굴에 얼룩이 여덟 팔자 모양이어서 이름이 하치였다. 이번에는 갈고리 방향이 하치하고 반대여서 위에서 보면 숫자 7로 보인다며 '나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엄연한 수고양이에게 여자 이름 같은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잖아. 아니라고 야옹거리는데 "너도 마음에 들었어?" "역시 마음에 들었구나, 그렇구나."란다. 사토루는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이사도 가고, 그 이후 5년 동안 사이좋게 잘 지냈다. 나나는 고양이로서는 완전히 장년이 되었고, 사토루는 서른을 넘었다. 그 둘은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고, 사토루는 나나를 맡길 만한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떠났다. 고양이 나나를 맡길 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나나를 맡기지 못하고 나오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옛 친구를 찾아다니며 예전에 사토루에게 있었던 일들, 어린 시절의 친구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 적당히 웃음 코드도 있고, 첫사랑의 어긋남, 우정과 아픔도 느끼게 된다. 고양이의 몽글몽글한 촉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양이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기분 좋게 그들이 길을 떠난 이야기를 읽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 이 책이 이런 이야기였구나! 가슴이 답답해지고, 난데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먹던 과자가 어딘가 걸린 듯한 느낌이다.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한 느낌이었다. 사실 어제 서평을 남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그대로 두 번째 독서가 시작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 웃고 넘어갔던 부분이 다시 읽으니 죄다 마음을 긁어놓는다. 세상 일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이 180도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옮긴이의 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이 책 『고양이 여행 리포트』를 읽은 독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전철에서 읽지 마세요"다. 아, 정말 혼자 있을 때 읽기를 권한다. 나는 마침 외출하는 길에 책을 택배로 받아서 잘됐네 하고 들고 나가 지하철 안에서 읽다가, 아무 예고 없이 주루륵 흘러내린 눈물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원서 표지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었던 게 함정이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처음에 읽을 때 울고, 번역하면서 울고, 교정 보면서 울고. 하여간 진이 빠지는 작업이었다. 눈물샘을 쥐어짜는 신파 스토리도 아닌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문장 한 줄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샘이 풀어졌다. (321쪽)'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문장 한 줄에 눈물이 주루륵 흐른다.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읽었다면 느낌이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나 책 또는 영화같은 매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심리만을 생각했었다면, 이 책을 계기로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인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기억하고 보호하고 즐거움을 주는 모든 행동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면, 그 동반자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에게 '함께 한다'는 기억이 남는 것이다. 그런 것이 '생'이리라.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을 꽤나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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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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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얹은 채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감정의 여운이 오래 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손은 떨리고 가슴은 콱 막힌 듯 하다. 이런 기억은 몇 년 전에도 똑같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은『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의 개정판이다. 처음 읽을 때에도, 다시 읽어도, 개정판으로 또 다시 읽어도, 가슴먹먹한 감동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반복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환자의 입장에서 점점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을 몰입해서 바라보게 된다.

 

앨리스 하울랜드 박사는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의 저명한 교수로 심리언어학 분야에서 훌륭한 시금석을 마련한 뛰어난 경력의 소유자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여성이 일상에서 자꾸 깜빡깜빡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폐경기 증상으로 치부했다. 블랙베리를 어디 뒀는지 깜빡 잊고, 할 일을 메모해두고 그게 뭔지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늘 다니던 하버드 광장에서 길을 잃은 일이 조금 걱정스럽긴 했기에 병원에 가보았다. 의사가 방향 감각 상실이 마음에 걸린다고 할 때만 해도 설마했지만, 결과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그 증가세는 피치 못할 결과일 것이다. 주변에서 치매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주로 치매 환자의 수발을 드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이 책 『스틸 앨리스』에서는 치매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쩌면 이리도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표현이 되었나에 대한 의문은 옮긴이의 말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스틸 앨리스』는 하버드 대학 신경학 박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 리사 제노바의 처녀작이다. 리사 제노바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신경학을 바탕으로 수년 간 알츠하이머병 질환의 증세와 진단, 치료, 환자, 보호자에 대해 연구하여 정확하고 명쾌한 알츠하이머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 소설은 앨리스 하울랜드라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2년 동안의 병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앗아가는 병인 알츠하이머에 관한 작품으로는 유례없이 환자 자신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앨리스가 알츠하이머병의 희생자가 되기엔 너무도 젊은 쉰 살인데다 지성의 최고봉인 하버드 심리학 교수이기에 몹시도 비극적인 동시에 감동적이다. (413쪽_옮긴이의 말 中)

 

앨리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기에 그녀의 심리를 따라 읽어나가며 공감하게 된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을 밑바닥까지 쫓아가며 나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니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특별히 감성을 자극하거나 눈물 코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앨리스가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아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독자에게 억지 감동을 떠먹여주는 것보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법도, 신발 끈을 묶거나 걷는 법도 잊게 될 것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아밀로이드의 축적으로 쾌락 신경이 파괴되어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즐길 수 없게 되리라.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리라. 차라리 암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츠하이머병을 암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리라. 앨리스는 그런 생각을 품는 게 부끄럽고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계속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암이라면 적어도 싸울 상대가 있는 것이다.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 요법도 있다. 이길 수 있는 확률도 있다. 가족과 하버드 사람들도 용감한 투병에 응원을 보내며 그 과정을 고귀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설령 암과의 싸움에서 패한다고 해도 그들 모두 알아보며 작별을 고하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암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었다. 그걸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168쪽)

 

집에서 화장실에 가는 길을 잃는 장면, 현관문 바로 앞의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고 묘사된 장면 등은 실제 치매 환자들의 입장에서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누구든 그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약을 찾겠다고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나중에는 무엇을 찾겠다고 한지도 잊어버리는 장면,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장면을 보면 치매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가족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상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가족이고, 가족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게 된다.

"넌 참 아름다워. 널 보면서도 네가 누군지 모를까 봐 두려워."

앨리스가 말했다.

"언젠가 엄마가 저를 몰라보게 된다고 해도 제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건 알 거 예요."

"너를 보면서도 네가 내 딸이란 것도 모르고 네가 날 사랑한다는 것도 모르면 어쩌지?"

"그럼 제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거예요. 엄만 제 말을 믿을 거고요."

앨리스는 마음이 놓였다. (323쪽)

 

앨리스의 임상 실험 약의 효과는 어땠는지, 병증의 진행은 어디까지 진행되는지, 이런 결과는 덮어두더라도, 과정 하나하나에 눈길이 가는 소설이다. 앨리스의 입장에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며,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들의 이야기를 계기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우리의 삶에는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나는 법이니, 한 번쯤 자신의 치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도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이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아닌, 자기자신의 입장에서 치매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꼭 한 번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치매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고, 상상치도 못한 상태에서 당황할 수 있다. 소설을 매개로 한 번쯤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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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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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를 읽고나서 이 책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를 읽어보았다. 개인적으로 이 순서로 장석주 시인이 선별해놓은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편을 담은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가 1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는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편을 담은 제2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시인의 시를 선별해서 워밍업부터 절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맛보는 시간을 보낸다.

 

폴 발레리는 "시의 첫 줄은 신이 주는 것"이라 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침묵이 무언지를 안 뒤 다시금 말하는 힘을 얻은 입들"이라고 쓴다. 이 침묵의 언어는 시인이 아니라 자연의 입, 신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시인은 다만 그 침묵의 언어를 받아 적는 사람이다. (6쪽)

시는 시인의 입에서 나오지만, 신과 자연의 메시지가 시인의 감성을 거쳐 표현되는 것이다. 그 행간을 읽는 것이 시를 읽는 묘미다. 깊이 있게 시를 해석하며 우리의 삶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얕은 사색의 깊이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항상 진지하고 사려 깊은 모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시 속에서 삶의 철학을 읽어내는 데에 소홀하게 마련이다. 장석주 시인이 짚어주는 철학적 이야기로 시를 더 깊게 읽으며 사색에 빠져드는 시간을 보냈다.

 

깊이 있게 시를 감상하며 행간을 읽는 맛의 절정은 이수명 시인의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를 읽으면서였다. 불과 6행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시에 담긴 철학적 깊이를 장석주 시인이 짚어주고 나서야 문득 깨닫게 된다. 아마 나혼자 이 시를 읽었다면 그냥 그런 시라고 생각하며 흘려버렸을 것이다. 흘러가는 수많은 시를 잡아 끌어 각인시켜준다. 이수명이 '우연'과 '시간'이라는 우리 생을 지배하는 두 독재자를 '도끼'라는 은유에 쓸어담았다는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 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본디 도끼와 번개가 포식자고, 나무는 피식자일 텐데, 이 시에서는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나무는 도끼와 번개라는 타자를 자기 속에서 포용해 냄으로써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대립 구도를 무너뜨린다. 나무는 피해자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도끼와 번개가 가진 파괴의 에너지를 생성의 에너지로 바꿈으로써 상생의 꿈을 오롯하게 품는다. (97쪽)

6행의 짧은 시에 우리의 삶을 담았다는 것은 해설을 본 후에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라는 문장도 이 시에대한 해설 속에 나와있다.

누구나 가슴에 벼랑을 하나쯤 품고 산다. 나무가 제 속에 도끼를 품고 번개를 품고 살듯이. 벼랑을 품은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낫냐는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내는 것이다. (98쪽)

 

삶과 죽음, 인생의 시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포괄적인 우리의 생 자체이다. 우리가 항상 진지하게 삶에 임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쉼표를 찍고 삶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시간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했다.

 

이 책 역시 시인 장석주가 『톱클래스』라는 월간지에 연재했던 글들 중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배한봉의 「육탁」을 시작으로 나희덕의 「물소리를 듣다」까지 총 30편의 엄선된 시를 소개해준다. 다양한 삶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시인은 세상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으며 삶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장석주 시인이 중개자가 되어 자칫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의미를 내 안에 던져준다. 이 책을 읽은 봄날, 시가 내 마음으로 들어와 조용히 침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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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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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이 부러울 때가 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시인들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읊어내는 시를 보고 나서야 내 안에도 존재하는 시의 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내가 그것을 먼저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시인이 되었겠지? 부럽고도 아쉬우면서도 여러 감성이 교차한다. 장석주 시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시인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에 귀기울여보고 싶어서였다. 행간에서 어떤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을지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시인은 궤도에서 이탈해 우주를 떠도는 혜성, 늦여름의 매미, 가을의 숲을 보고 뜻없이 짖는 개다. (5쪽)

그가 말한 시인에 대한 글이 먼저 나를 사로잡았다. 장석주 시인은 아직도 시가 뭔지 모른다고 한다. 시는 전적으로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우연의 산물이기에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인이 시를 잘 모른다고 하니 왠지모를 안도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살면서 시를 읽지 않아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감수성과 취향의 세계가 풍성해져서 결과적으로 삶이 윤택해진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의 문장들은 시인 장석주가 『톱클래스』라는 월간지에 연재했던 글들 중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이 책에는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시작으로 고영민의 「오늘 한 일이라곤 그저 빗속에 군자란 화분을 내놓은 것이 전부」를 마지막으로 총 30편의 시를 소개해준다. 먼저 시의 전편을 읽으며 그 시 자체를 음미해본다. 그 다음으로는 시인 장석주의 시 해설이 이어진다.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편이 식재료라면, 각각의 시를 잘 꺼내 다듬고 요리해서 독자의 앞에 한 상 음식으로 차려낸 것은 장석주의 몫이다.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맛보는 시간이다. 제대로 요리할 줄 모르는 식재료를 완성된 요리 형태로 맛있게 먹어보는 시간이다.

 

눈에 익은 시인보다 낯선 시인이 많은 것은 내가 시인에 대해 잘 모르고 시를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일테다. 낯선 느낌으로 시작해서 익숙한 듯 하다가 다시 낯선 느낌으로 마무리한다. 시인으로서 다른 시인의 시를 소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반 독자들이 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이 각각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어느 시인의 시가 가슴을 툭 치며 마음을 울릴 것이며, 누군가는 장석주 시인의 해설을 보고 공감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느 부분에서인가 휘감아도는 감상에 빠지게 되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느끼는 나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를 읽으며 여전히 시는 시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왜 이런 시를 진작 알아보지 못했는지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시인들의 다양한 소리를 접해볼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 책에 수록된 시만을 읽으라고 했다면 어쩌면 자꾸 뒤로 미루다가 결국 여전히 읽지 못한 상태로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나같은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요즘들어 누군가가 골라준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 술술 풀려있을 때, 결국 나도 나만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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