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 당신의 감정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
가보 마테 지음, 류경희 옮김, 정현채 감수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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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아픈 적이 있다. 정신없이 일을 하면서 몸을 혹사했고 스트레스로 마음을 다쳤다. 열을 받더라도 불의를 보더라도 꾹 참는 것이 습관화 되었고, 그것이 나를 서서히 망가뜨려가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내가 극복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들은 더 바쁘게 지내는데 나는 나태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 내 몸은 수시로 신호를 보냈지만 내가 무시했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정지해야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많은데,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책은 제목부터 나를 끌어들인다.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라는 제목에서 주는 메시지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강력히 공감하게 한다.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무시하고 외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책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내면과 신체와 정신의 작용을 통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들었던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라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내 몸이 스스로 파괴해버리고 모든 것을 멈추라는 신호를 준 것이었던 셈이다. 여러 의학적인 견해를 뒤로 하고 보면 내 마음 상태가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으니 말이다.

모든 자가면역질환들의 공통점은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신체를 공격하여 관절과 신체 결합 조직을 손상시키고, 더 나아가 눈, 신경, 피부, 내장, 간, 뇌 등 거의 모든 신체 기관들을 손상시킨다(13쪽)

 

이 책의 저자는 게이버 메이트. 밴쿠버의 내과 전문의다. 오랫동안 <밴쿠버 선>지와 <글로브 앤 메일>지의 칼럼니스트였다. 20년간 통증 완화 의료 전문의로 일했으며,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노숙자 시설 담당의로 일하기도 했다. 이 책은 천식에서 암까지 수백 명 환자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마음과 몸, 그리고 트라우마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환자들의 삶과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그리고 질병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다층적 시선으로 통찰하면서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변화의 힘을 일깨운다.

 

이 책의 장점은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가 담겨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읽어나가면서 이들의 상황과 질병의 연관관계를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치유의 시작이 된다. 또한 이 책의 도움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을 위한 것인지 파악하게 된다. 늘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암 발병 사실에 당혹해하며 말했는데 저자는 심각한 낙관주의의 해독제로서 부정적인 사고의 힘을 권장해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긍정의 힘에만 의존하다보면 감정 억압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외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기에 적당히 해소하는 방법도 함께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박적인 긍정주의가 아닌 부정적인 사고의 힘을 모으는 것이 치유의 또다른 방법임을 인지한다.

 

이 책을 보며 암, 과민성 대장 증후군, 알츠하이머, 강직성 척추염, 천식 등 질환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현대인에게는 이 책에 담긴 사례 중 어떤 것 하나 이상은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해당되는 곳을 찾아 읽어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글이 시원시원하게 담겨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목을 보고 막연히 예측했던 내용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 느낌이었다. 읽고 나면 앞으로 내 몸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이런 신호를 보낼 때 어떤 심리가 그 밑에 깔려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은 결코 떨어져있지 않음을 이 책을 보며 생각해본다.  

 

과학적 발견의 본질은 대상을 가장 먼저 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사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의 관계를 굳건히 정립하는 일에 달려 있다. 진실한 이해와 진정한 발전을 가장 촉진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결속 과정이다. _한스 셀리에, 의학박사, 《인생의 스트레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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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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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5년 상반기 서점가에 베스트셀러 열풍을 몰고 왔던『허즈번드 시크릿』의 리안 모리어티 후속작이다. 그런 점 만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고,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현재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현재까지 1만 건에 가까운 아마존 독자들의 리뷰와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어떤 사소한 거짓말이 커져버렸을까? 제목에서 주는 궁금증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어떤 매력이 있는 책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리뷰와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안심하고 이 책을 선택해서 읽어볼 만한 이유가 되었다. 맘에 드는 소설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설은 읽다가 재미없으면 중간에 끊기도 그렇고, 계속 읽는 것도 시간낭비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이미 접한 독자들의 반응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책은 모처럼 맘에 드는 소설읽기 시간을 선사해주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책 읽기에 적당한 가을이 되었다. 날씨가 좋은 만큼 책보다는 다른 일들의 유혹에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린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죄다 쏟아부어서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야하는 일이기에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사실 그렇기에 한 번 읽어보겠다고 결심만 하고 미뤄둔 작품 중에 리안 모리어티의 『허즈번드 시크릿』도 포함이 된다. 여기저기에서 극찬을 하고 판매량도 많기에 궁금해서 읽어보아야겠다고 찜해놓았지만 바쁜 일상에서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 연휴에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을 먼저 읽고 보니 작가의 전작에 대한 궁금증도 극에 달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나 사소한 거짓말 정도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가벼이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소재로 이렇게 두꺼운 소설을 써나가는 것도 대단하고, 독자를 끌고가는 필력도 감탄할 일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퀴즈대회의 밤으로부터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가 전개되고,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 하는 형식이 양념처럼 중간중간 뿌려져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인터뷰만을 따로 읽어나갔을 정도로 적절히 섞인 두 가지 형식은 매력적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전체적인 흐름에 맡겨 탐정이 된 듯이 추리해나가기도 하고, 예측했던 일이 여러 번 어긋나면서 궁금한 생각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같은 상황을 보아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사람들의 말이 제각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라는 소설속 문장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그런 목적에도 부합한다. 비록 살인사건은 어쩔 수 없는 소설 속 장치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사소하게 떠벌린 거짓말들이 어떻게 부풀려지고 왜곡되며 사건화되는지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싶다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두껍지만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필력에 리안 모리아티라는 작가의 위력을 실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리안 모리아티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음 소설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허즈번드 시크릿』도 꼭 봐야겠다. 이 소설은 2015년 하반기 리즈 위더스푼과 니콜키드먼 제작, 주연이 확정된 HBO 미니시리즈 미국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어보니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손색없고 반응이 뜨거우리라 예상된다.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눈을 뗄 수 없는 뛰어난 풍자 소설이 탄생했다. -허핑턴포스트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는 충격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USA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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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싶은 토끼
칼 요한 포셴 엘린 글.그림, 이나미 옮김 / 박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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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잠재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 것이다. 피곤한데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옛날 이야기를 해주면 잠들기는 커녕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잠에서 깨어나니 실패하고, 자장가를 불러주어도 생글생글 웃고 있으면 대략 난감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의 고민은 클 것이다. "잠들어라. 얍!" 한 마디 만으로도 잠에 콕 빠져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하면 보다 수월하게 꿈나라로 빠져들 수 있을지 이 책에서 해답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칼-요한 포셴 엘린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의 모든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언니 오빠, 이모 삼촌들께.

이 책을 선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잠자고 싶은 토끼》를 쓰면서 제 이야기가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책이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부모님, 선생님, 보호자분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한 기분이 듭니다.

저 또한 한 아이의 부모로서 아이들이 평화롭게 잠들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그리고 평안한 저녁 시간을 보내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국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잠자고 싶은 토끼》를 적절히 활용하고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 책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잠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집이나 학교, 유치원 등에서 더 쉽게 잠들 수 있도록 하고, 수면 부족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어른들에게도 효과적인 책이다. 이 책의 '일러두기'에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어주면 더욱 효과적일지 낱낱이 알려주고 있다. 글자의 색깔과 하품이나 몸동작 같은 행동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그저 눈으로 쓱 읽을 동화책이 아니라 잠자리에서 최대한으로 활용해야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권장 사항을 따라 읽어주면 더욱 효과가 있다는 점을 보면 이 책은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편안한 상태로 휴식에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출판사의 도움없이 저자가 직접 출판하여 입소문만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화제의 책

이 책의 띠지에 있는 문장이다. 직접 읽어보니 요가나 명상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동작을 할 때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으면서 아이는 긴장을 이완시키고 편안한 휴식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이 책은 문장 구성과 단어 선택에도 특별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심리적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라는 뜻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어 주는 순간, 안 자려고 떼쓰던 아이가 잠에 빠져드는 놀라운 마법의 동화'

오디오북으로도 이 책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아이에게 읽어주기 버거운 사람은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아이와 함께 잠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 책이 아이를 재우는 데에 정말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고, 때로는 오디오북으로 모두 함께 긴장을 이완시키며 잠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는 책, '순식간에 아이를 잠재우는 기적의 책'이라는 점에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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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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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이 책의 부제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라는 것을 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두툼하면서도 읽어나가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시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리라는 거창한 생각을 나도모르게 했나보다.

 

우리가 시를 모른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이 우주에서의 행복을 방해받았을 것이다_이병률(시인)

띠지에 있는 추천사까지 내 마음을 끌지 않은 것은 없었다. 막상 이 책이 시를 쓰는 법이 아니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인터뷰를 담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1931년 도쿄생인 시인이다. 1950년 『문학계』에 시를 발표했고, 1952년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을 출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시작 외에 그림책, 에세이, 번역, 각본, 작사 등으로 폭넓게 작품을 발표했고, 수상 내역도 화려하다. 근년에는 장남 겐사쿠 씨와 함께 연주와 낭독 콘서트를 열고 있고, 인터넷에서 시를 낚는 아이폰 어플 '다니카와', 시를 독자에게 매달 우편으로 보내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메일' 등으로 시의 가능성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 글을 보며 다니카와의 시세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열일곱 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어느덧 60년이 넘었고, 젊은 시절 사진이나 이혼 경험 등의 사생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의 시 세계를 접하게 된 점이 상당히 아쉬웠다. 좀더 익숙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낯선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고, 번역으로만 접할 수 있는 그의 시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래도 그가 말하는 '시가 태어나는 순간 '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게 보았다. "원고 의뢰를 받으면 시가 금방 샘솟듯이 솟아나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샘솟듯이(웃음)......샘솟듯이 솟아나지는 않습니다만......실은 '내 안에 언어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는 솔직한 답변을 보게 된다. 자신의 안에 있는 언어가 매우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휘도 얼마 안 되고 경험도 적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그것은 참 거대하고 엄청나게 풍부한 세계로구나 싶었다고 한다.

'모든 일본어의 총체'라는 걸 떠올리면 참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풍부하고 거대한 세계지요. 거기에서 말을 길어올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한 겁니다.(42쪽)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버리지만, 가능한 한 텅 비우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어온다, 그런 느낌입니다. 호흡법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45쪽)

 

마감 한 달 전에 원고가 완성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 다음에 마감 직전까지 퇴고를 거듭하며 수정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마감 직전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곤란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점이 아니카와 슌타로에게서 보게 된 부지런한 시인의 모습이었다. 일흔여덟이라는 나이의 시인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저에게는 특별히 '젊게 살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이 없는데도 왠지 나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듭니다.(132쪽)'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시와 함께 한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인터뷰를 통해 시와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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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
팀 라드퍼드 지음, 김학영 옮김 / 샘터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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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들만 바라보며 아등바등 살아가게 된다. 가끔 보다 멀리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여행을 떠날 때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삶의 무게나 걱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좀더 범위를 넓혀 우주적인 시점으로 본다면 어떨까. 책을 통해 다른 관점으로 현실의 나를 바라보고자 이 책 『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도 익숙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질문, '나는 어디에 있을까?'에 대해 미시적인 시각에서부터 거시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팀 라드퍼드. 처녀자리 초은하단, 국부 은하군, 은하수은하, 태양계, 지구라는 행성의 북반구, 유럽,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 서식스 주, 헤이스팅스 마을의 웨스트 힐에 위치한 18세기 주택에 거주한다고 적혀있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을 때 보면 좀더 넓은 부분은 당연히 잘려있는데, 이렇게 보니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살고 있는 같은 부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 반갑다. 팀 라드퍼드는 《가디언》에서 예술, 문학, 과학 분야 편집자로 32년간 근무했고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과학저술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재해 감소를 위한 국제협력기구의 영국 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번지와 거리에서 시작하여 마을, 주, 지역, 국가, 대륙, 반구, 행성, 태양계, 은하, 우주로 시각이 점차 넓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의 내용도 마찬가지로 미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흘러간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해서 장소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독자들을 동참하게 한다. 물론 처음부터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공유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만의 장소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장소를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라온 환경,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전혀 다른 나라의 사람인 저자와 교차점이 없을 듯한 느낌도 들지만, 크게 보면 우리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고, 같은 은하계에 발붙이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교집합을 찾아가게 된다. 앞부분을 읽으며 들었던 낯선 느낌이 점차 익숙함으로 뒤덮이며 이 책의 가치를 새로이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안경이 되어주는 책이다.

우리는 차용 기간이 제한된 가건물에 살고 있다. 이 건물은 짓는 데 1억년 이상이 걸렸고, 앞으로 수십억 년 후면 부모별의 열기로 바삭하게 구워져서 파괴될 운명이다. (263쪽)

안드로메다는 우리의 과거 속에서도 구름 같은 존재였듯, 우리의 미래에도 구름을 드리운다. 안드로메다는 우리에게 가까운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항변하고 있었다. (335쪽)

가장 최근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빛들이 실은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살아 있는 별들과 죽은 별들, 아직 형성되지 않은 별들의 구름, 오래전에 폭발한 별들의 먼지, 이것들 사이에는 또 다른 형태의 우주 건축 자재, 즉 신기하고 희박하면서도 탐지되지 않는 검은 물질이 존재하고, 이 물질이 은하의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357쪽)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나면 '감사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을 묘사한 글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을 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일상속의 일을 처리하느라 하루 24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나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이 글은 회고록이 아니다. 한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을 묘사한 글이다. 비록 수대에 걸친 과학적 연구들을 바탕으로 쓰긴 했으나, 과학책을 쓰려는 의도는 없었다. 주소의 본질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이 공간을 나와 공유하고 나와 더불어 가족을 이루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 더욱이 작은 방에서 시작해서 우주에서 끝나는 이 작은 주소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실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398쪽)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생각부터 정립해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누군지 알려면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에 귀기울여보는 시간이다. 이 책이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해 눈뜨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 풍경 사진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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