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민예원 편집부 엮음 / 민예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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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 가을, 마지막으로 장식할 시집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이다. 오늘보니 기온이 뚝 떨어진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밖에서 시를 읽든 책을 읽든 을씨년스러운 느낌만 가득할 듯하여 그냥 이 책을 올해 마지막으로 읽는 시집으로 정했다. 그 다음에는 평소 하던 대로 다른 책 위주로 읽어나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동안에는 가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나에게 시를 읽도록 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이 담겨있다. 교과서에서 보았든 개인적으로 보았든 유명하고 익숙한 시들이 가득하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현대시를 보면서 다소 낯선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있는 시를 보며 '그래, 이런 맛이 있었지.' 감탄을 자아낸다. 마치 클래식 음악이 낯선 사람들도 누구나 아는 곡을 들을 때 안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처럼,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유명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김현승의 눈물, 천상병의 귀천, 정지용의 향수,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조지훈의 승무, 이육사의 청포도, 김춘수의 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 외우던 시를 비롯하여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신경림의 목계장터 등 시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았을 때 보게 되는 시를 더해 100편의 시가 담겨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한 시의 맛을 느낀다. 뜻도 모르고 달달 외우던 학창시절의 마음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때에 외웠던 것이 지금도 떠오르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시를 외우는 것이 지금은 낯선 일이지만 이 시들 중에 암송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요즘에 손글씨로 시를 필사하는 것도 유행이니 이 시들을 가지고 자신의 글자체를 담아 꾹꾹 눌러 쓰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아직은 가을이라고 할 수 있는 계절에 시를 마음에 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곁에 두고 계절에 따라 시를 감상하는 자신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여러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를 모아 100편으로 엄선한 것이 마음에 드는 시집이다. 또한 야생화로 깔끔하게 그려진 표지도 마음에 든다. 누군가에게 시집을 선물한다면 이 책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품절이라는 점이 아쉽다. 서울에 한 대형서점에 갔을 때 쌓여있던 책인데 이미 품절이라는 것은 어쩌면 개정판이 나온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시를 읽는 사람들은 더욱 줄어드는 현실이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시심이 약간의 자극에 불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시집을 만났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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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5-11-0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라니... ㅜㅜ 아쉽네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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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TV프로그램 '비밀독서단'에서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소개된 시집이다. 평소에 시집을 즐겨읽지 않아서일까. 방송에서 접한 이 시집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가을을 맞이하여 시집을 읽겠다며 선택한 책 중 한 권이다. 방송 직후여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품절상태였고, 주문한지 좀 지나서야 이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누구든 시심이 마음에 불타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지펴준다면 읽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타당한 소개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냥 선택하기에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제목과 표지였지만, 방송에서 예지원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싯귀에 작가의 다른 시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제목부터 서정성의 극치를 달리는 이 시집은 가을이기에 충분히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이 시집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벤치에서도 먹고 버스정류장에서도 먹었다. 그래도 방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조용히 목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 가장 맛있었다. 이 시를 맛있게 지어 먹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이미 접해서 알고 있던 시가 가장 많이 다가왔다. 또한 상황이 그려지는 <눈썹>이라는 시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많은 엄마들이 눈섭 문신을 하던 모습을 얼핏 떠올린다. 유행이라는 것은 나중에 볼 때 낯설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썹

-1987년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마지막 연의 내용이 없다면 살벌한 분위기로만 기억될텐데, 마지막에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는 말이 붙어서 그 시절의 풍경 하나로 그려진다.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상황이다. 그때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후회했을까, 속상했을까. 


시집 속의 시가 모두 가슴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시인의 시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몇 편이 강하게 마음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시집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을이기에 시를 읽는 맛이 더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좀더 다양한 시집을 접하고 싶다. 다양한 매체로 읽을만한 시집을 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 시를 잘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바라는 바이다. 휴대하기 좋고 읽는 데에 부담이 없으며 가끔씩 공감할 만한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집은 좋다. 시 읽기 좋은 가을날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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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게릴라 - 변화하는 기업 비즈니스 환경에 대처하는 혁신적 방법
게리 해멀 지음, 이동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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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시키는 일만 하는 꿀벌이 될 것인가, 창조하고 혁신하는 게릴라가 될 것인가?

이 책의 띠지에 있는 글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이 질문은 비단 비즈니스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 자신에게 자주 던지며 삶의 주인이 될 것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창조와 혁신의 게릴라가 되고 싶지만 창의적 사고를 배제하는 교육 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노력도 중요한 것이지만, 세상 일은 노력만으로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지는 않는다.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성실과 근면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라는 말에 무언가 씁쓸하면서도 결국에는 동의하게 된다. 일반적인 생각에 파장을 일으키는 글을 보며 혁신적인 방법을 배워보고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프레스 스테디 셀러,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아마존 추천 올해의 책, 일본,유럽 등 전 세계 서점가 베스트 셀러이다. 2001년에 발간된 책인데 이번 2015년에 신판 1쇄를 발행했다. 꾸준히 사랑받고 여전히 유효한 책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보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 게리 해멀이 그리는 급진적 혁신의 청사진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은 신경제의 혁명가들, 즉 한때 그들을 성공시킨 전략을 다시 한 번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리더들을 위한 책이다. _마이클 델(델 컴퓨터 회장)

- 다가오는 혁명의 시대에는 무한대의 상상력과 창의적 본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_매일경제

 

이 책의 저자는 게리 해멀. 세계를 이끄는 경영전략의 대가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코노미스트」「포천」등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이 시대 최고의 경영 전략가로 불리는 창의 경영의 대가. 런던 경영대학원의 전략 및 국제경영학 교수이자 컨설팅 기업 스트래티고스, 인터넷 솔루션 개발업체 캐드리의 설립자이다. 또한 세계적인 주요 기업이나 정부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며 세계경제포럼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전략적 의도','핵심 역량','원정 마케팅','스트레치 전략' 같은 경영의 이정표가 된 다수의 비즈니스 개념을 고안하여 전 세계적으로 현대 경영 기법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기업들로 하여금 상상력과 미래의 산업 풍경을 정의할 새로운 룰,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하도록 독려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나는 다른 학자가 이미 만들어낸 개념을 연구하고 싶지 않았다. 당대에 유용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싶었다. (13쪽)"라는 게리 해멀의 말은 이 책의 들어가는 글부터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은 단순히 현재의 상태에 대한 점검과 적당한 미래 제시를 위한 책이 아니다. 안락한 경영묘책을 뒤집어엎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시대로부터 살아남은 늙은 생존자들은 물론이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모든 기업들을 위한 것이다. 혁신을 위한 선언서이자 매뉴얼임을 재차 강조한다. 미래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만들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창의적인 시각을 요하는 책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총 4파트로 나뉜다. Part 1 혁명의 시대, Part 2 혁명의 발견, Part 3 혁명의 시작, Part 4 혁명의 유지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어서 낯설지 않고 현실적이다. 그런 점이 자칫 피상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다양한 방면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책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적절히 활용하거나 다른 기업의 사례를 보며 배울 점이나 버릴 점 등을 찾는 등 단순히 책의 내용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저자의 글에 대화하고 생각하며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유용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 성장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 책 속의 글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을 보는 법을 다르게 하라는 점, 항상 새롭게 보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틀에 박히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내는 데에는 가장 먼저 자신의 행동이 중요하다.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고, 다르게 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이 그것을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은 그것을 이루어낼 것이다.(219쪽)' 그동안 비즈니스와 달리 생각했었는데, 너무 좁은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낡은 생각을 갈아엎는 시간을 보낸다.

당신은 선례라는 것에 의해 희미해진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다시 한 번 배워야 한다. 친숙하고 단조로운 것은 놀랍고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장의 목표는 당신이 순수함을 되찾도록 돕는 것이다. (260쪽)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당신은 혁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라며 10가지 질문을 보여준다.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많으리라 짐작했는지 저자는 말한다. "예스"보다 "노"가 더 많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새로운 혁신해법을 구축하는 데 모든 열정을 바친 기업은 100개 중 1개도 안 된다. 문제는 당신이 지금 그것을 시작하려고 하는가이다.(528쪽)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마음을 견고히 하며 변화에 몸던질 각오를 하며 지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적당히 고무되며 혁명의 시대를 시작할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책,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는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의도의 책인지 낯선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리 해멀이라는 저자가 세계경제포럼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세계적 경영전략의 대가라는 점에서 한 번 더 시선을 두고 눈여겨 보기를 바란다. 또한 비즈니스 철학서라는 점에서 볼 때 단순히 비즈니스에 대한 현상을 바라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고찰을 통해 보다 폭넓은 시선으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내내 알을 깨고 나와 다른 세상을 열 수 있기를 선동하고 있다. 틀에 갇힌 생각을 깨부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이다. 경제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일반인이 읽기에도 생각의 틀을 깨고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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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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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시인 20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시를 담은 책 『시인으로 산다는 것』을 읽다가 손택수 시인을 알게 되었다. 시를 읽다가 작가가 궁금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시인의 이야기를 보다가 작품이 읽고 싶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손택수 시인의 『호랑이 발자국』을 읽고나서 내가 찾던 시를 발견해낸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 책을 읽을 무렵에 그의 새로운 시집이 나왔다는 것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가을을 맞이하여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마음에 그의 시를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의 최근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를 읽으며 또다시 마음에 시를 담아본다.

 

책의 뒷면에 보면 함민복 시인의 글이 있다. 독자로서 그의 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그의 시가 명징해서였을 것이다. 무작위로 읽어본 요즘 시집들 중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무슨 문제풀이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난해함을 섬기는 작금의 유행 시'라는 표현을 보니 이해가 간다. 이런 세태가 일반인에게 시를 멀리 하게 하지만, 그래도 내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내가 보는 세상을 좀더 깊고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시를 볼 때 계속해서 시를 갈망하게 된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읽는 데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담고 추억을 어루만진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일단 명징해서 좋다. 무슨 문제풀이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난해함을 섬기는 작금의 유행 시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탁월한 중매쟁이다. 그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 관절 튼튼한 접속사로 존재한다. 그를 만나면 세계는 벽을 벗고 경계 이전의 알몸을 허한다. 서로 영통하는 길들을 내어놓는다. - 함민복 시인'

 

손택수 시인의 시는 종합선물상자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웃음이 푹 하고 터지기도 하고 아득한 옛날을 회상하게 되기도 한다. 다양한 감정의 포인트를 짚어준다. 강약조절을 해가며 독자를 끌고나가는 느낌이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한 권의 시집 속에 인생사의 각양각색의 색깔로 칠해진 총천역색 꿈을 들여다보게 된다. 시를 읽으며 손택수 시인에 대해 짐작해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서 그의 시가 더욱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그의 시는 제목에서 주는 독특함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녹슨 도끼의 시','구두 속의 물고기','가자지구 당나귀의 얼룩에 관하여','지렁이 성자' 등 제목만 보아도 궁금한 생각이 든다. 또한 그 내용도 스토리가 있어서 흥미롭다. '김수영 식으로 방을 바꾸는 아내'를 읽다보면 그의 생활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야구공 실밥은 왜 백팔개인가'라든가 '주먹밥' 같은 경우는 일상적인 소재에 담겨있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읽은 『호랑이 발자국』과 이번 시집『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를 읽으며 그의 시 패턴이 마음에 들기에 다음 시도 궁금해진다. 일상적이면서 우리 삶에서 끌어내는 소재에 시인의 감성이 덧붙여져 색다른 맛을 낸다. 부담은 갖지 말고 지금처럼만 삶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시가 낯설게 느껴지거나 요즘 유행하는 시에 편승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 이 책은 '이런 시, 정말 좋다'라는 느낌을 갖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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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제2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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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일까. 가을에는 시를 읽고 싶어서 시집 몇 권 주문했다. 살랑바람부는 나무그늘 밑에서 펼쳐들었는데, 난해하다. 나의 언어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좌절하게 된다. 나는 진정 시의 언어와는 별개의 사람인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스며들 수 있는 시집 한 권 건져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함민복 시인의 시집을 건져내게 되었다. 시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는 시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함민복 시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이 나에게 위안과 시 감상의 시간을 전해준 책이다.

 

함민복 시인은 시집으로『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출간했고, 산문집『눈물은 왜 짠가』『미안한 마음』등이 있다. 오늘의젊은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 책 『말랑말랑한 힘』은 2005년 1월 초판 1쇄 발행 이후 2015년 8월 2판 6쇄 발행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공감한 시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보면 '시인의 말'부터 깔끔하다.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이 책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말

달밤

눈 밟는 소리는

내가 아닌

내 그림자가 내는 발자국 소리 같다

 

내 마음이 아닌

내 시의 마음이 활자로 돋아난 날

멀어

여기 짐을 덜어 놓는다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을 때에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우울에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시집은 다른 느낌이었다. 압축된 언어에 의미를 담아 한참을 곱씹으면서 읽으니 읽는 맛이 더해진다. 이런 것이 시집을 읽는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가을날에 읽기에 좋은 시집이다.

 

긴 시와 짧은 시가 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시를 읽어나가는 속도가 정돈된다. 짧으면서도 의미를 담은 시는 오래 읽게 된다. 내가 찾던 시라는 생각이 든다. 깔끔한 느낌이 좋다. 그러면서도 시적인 언어는 여러 방면으로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한다. 이래서 시를 읽게 되나보다.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식물은 살아온 몸뚱이가 가본 길이다' 같은 표현에 마음이 간다. 이 책의 제목 '말랑말랑한 힘'은 「감촉여행」이라는 시를 읽으며 공감하게 된다.

 

감촉여행

 

도시는 딱딱하다

점점 더 딱딱해진다

뜨거워진다

 

땅 아래서

딱딱한 것을 깨오고

뜨거운 것을 깨와

도시는 살아간다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며

살아가던 농촌에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

척척 접히는 계단 길 에스컬레이터도

아파트 난간도, 버스 손잡이도, 컴퓨터 자판도

빵을 찍는 포크처럼 딱딱하다

 

메주 띄울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쇠기둥 콘크리트 벽안에서

딱딱하고 뜨거워지는 공기를

사람들이 가쁜 호흡으로 주무르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며 점점 굳어가는 도시의 감촉을 느껴본다. 점점더 딱딱해지고 굳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시인은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가쁜 호흡으로 주무르고 있다는 마지막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에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와 어울리는 계절인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좀더 시를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시집 중 하나가 이 책 『말랑말랑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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