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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 2 -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뚫고 피어난 불멸의 예술혼 ㅣ 살롱 드 경성 2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조선일보』 화제의 연재 칼럼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그 두 번째 이야기!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려왔다.
1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2권을 펼치는 순간부터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전작이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도 꿋꿋하게 붓을 들었던 화가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이번 2권은 그들의 예술혼이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었는지를 더욱 섬세하게 짚는다.
낡은 흑백 사진 속으로 성큼 들어가, 숨결처럼 살아 있는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느낌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한 인물의 예술이 또 다른 인물의 열정과 맞닿고, 그 열정이 시대를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번 책은 김종영, 유강열, 이응노, 전혁림, 변관식, 고희동 등 한 시대를 이끌었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그들은 화가이자 조각가였고,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으며, 무엇보다 예술로 생을 증명했던 인물들이었다.

특히 한국 근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조각계의 대부 같은 존재 김종영의 이야기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가 3.1독립선언기념탑을 제작했지만 1979년 군사정권 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삼청공원에 버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91년에야 서대문독립공원에 세워졌다는 사실에서, 예술이 가진 회복력과 진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삶이 무너져도 예술은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이었다.
유강열 화백의 삶은 한편의 영화 같았다. 광복 후에도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생전의 작품은 물론 3,300여 점의 자료까지 후대에 남겼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유강열의 염색화 <작품 A>는 생의 마지막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가장 열정적인 붓질이 느껴졌다. 색이 응축된 그 한 폭에서, 끝까지 화가로 살고자 했던 그의 결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이응노였다. 초기에 '죽서'라는 호를 쓰며 대나무를 즐겨 그렸던 그는 <대나무>라는 수묵화를 통해 생명의 긴장감과 사유의 깊이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여정은 그 후에 시작되었다. 그는 전쟁과 분단, 망명과 투옥이라는 굴곡진 인생 속에서도 예술로 저항했고, 프랑스 파리에서 동양화를 알리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남겼다.
"난 파리에서 싸우러 가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가 무기로 삼은 단 하나의 언어가 붓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환쟁이로 시작해 화가로 격상된 시대의 증인이자, 예술가의 권리를 직접 쟁취해낸 선구자였다.
이 책의 특별함은 단지 유명 화가의 이야기만을 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간 시대와 인간적 고뇌, 그리고 예술을 향한 집요한 헌신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고희동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감정이 더 깊어진다.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로 개벽 창간호 표지그림을 남긴 그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 그의 선명한 붓끝은 시대의 시선을 꿰뚫었고, 그래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김동성과 노수현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이 그린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유쾌한 시대 풍속을 보여준다.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그림이지만, 거기엔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읽을수록 감정의 결이 더해졌다. 특히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은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삼천리에 금강 아닌 곳이 어디인가"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국토를 그리는 일에 애정을 넘어 숭배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그의 그림은 풍경을 넘어서 사색과 철학이 깃든 정신의 산수화였다.
전혁림 화백의 <새 만다라>는 목판에 유채로 빼곡히 그려 넣은 1,050개의 형상으로 일생을 예술로 채운 한 화가의 고백 같았다. 병상에서도 붓을 들고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는 그는, 95세까지도 그림을 그렸다.
『살롱 드 경성 2』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예술가들의 혼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붓을 무기로 삼아 시대에 맞섰던 사람들, 가난보다 예술을 택했고, 침묵보다 기록을 택했던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은 화폭 위에서만 위대했던 이들이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예술이었고, 지워지지 않을 한 줄의 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