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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평점 :
<용의자 X의 헌신>은 정말 최고의 작품이다.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그 범행을 밝혀 나가는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범인에게 빠져들어 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는 그런게 있었다.
범인을 미워할 수 없게, 상황을 몰고 간다는 점.
오히려 범인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
추리 소설치고는 그렇게 감정에 많이 호소를 하는 작품이 많다.
그런데 이 책 <성녀의 구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지녔다.
나만의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많이 객관적이 되었고, 감정보다는 사실에 충실하려 애쓰고 있는 듯 보였다.
거기다가 유머까지......!
가오루가 ‘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노래를 MP3로 듣고 있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조금 경악을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금... 개그를 하려는거야?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사람은 지금 영화와 드라마에서 ‘갈릴레오’라 칭해지는 물리학자 ‘유가와’역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하여튼 이 책은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보통 결혼한지 1년째인 부부의 모습은 어떠할까?
물론 정해진 틀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모습이라면,
아이가 생겼을 수도 있고,
생기지 않았다 해도 ‘깨소금 냄새가 솔솔나는’, ‘ 여전히 닭살스러운’ 등의 표현이 절로 떠오를만큼
행복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 부부, 마시바 부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작부터 ‘라이프 플랜’이 어쩌고 하더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는 쓸모없다, 그러니 미련 없이 내다 버리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새 여자를 들인다’와 같은 대화가 나온다. 이 부부, 신혼이 맞나?
남편 요시다카의 라이프 플랜은 온통 ‘아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계획에 동참할 수 없었던 아야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마음이 심난해진 아야네는 친정 홋카이도에 며칠 다녀오겠다고 하며 집을 비운다.
그 시간에 다른 여자, 그것도 아내의 제자인 히로미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요시다카.
하지만 그런 그가 독살을 당한다.
집의 모든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고, 그는 그저 커피를 마시다가 죽었다.
범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한 것일까?
사건은 이렇다.
어쩌면 범인은 정해져 있었고, 마지막까지 밝혀야 하는 것은 ‘어떻게’ 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도 구사나기처럼 다른 범인이 있지 않을까.' 하며 끝까지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유가와가 밝혀 내고야마는 트릭을 보고는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었던 이성적인 생각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동정의 마음과 준비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겪었을 혼란, 배신당한 분노 등 범인이 느꼈을 감정이 일시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과학 수사를 추구했지만, 그래도 히가시노 작품의 특징이 남아 있었다는게 느껴진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보다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더 찾아 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흥미진진하게 몰입하여 읽은 기분이다.
'노장은 죽지 않아!' 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그래서 다음을 지켜봐야 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점에서 그의 다음 작품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는데, 그의 다른 작품도 기대해본다.